모두 죽을 준비 하셨습니까?
    2009년 09월 21일 02:5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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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민중의집>에는 유언장을 쓰기 위해 사람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화창하고 맑은 가을날, 왜 유언장을 쓰기 위해서 사람들은 <민중의집> 2층을 꽉 메우고 열띤 시간을 가졌을까.

‘찬란한 유언장’은 ‘다양한 가족형태에 따른 차별 해소와 가족구성권 보장을 위한 연구모임’(이하 가족구성권연구모임)에서 주최한 행사이다. 이 모임은 혈연·혼인제도 중심으로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가족제도에 문제제기하며, 다양성과 평등함을 기초로 가족구성권을 만들어나가고자 하고 있다.

   
  ▲ 유언장 쓰기의 방법을 듣고 있는 참가자들 (사진=나영정)

그런데 이러한 가족구성권과 죽음은 어떻게 연결될까. 한국사회에서 사람이 죽으면 사망신고가 되고, 상속이 발생한다. 상속을 하기 위해 혈연과 혼인을 중심으로 한 가족관계를 규명하고, 그에 따라 정해진 비율로 재산이 이동한다. 민법에서 친족편과 상속편을 가족법으로 통칭하는 것을 보면 한국사회에서 ‘가족’을 둘러싸고 발생하는 주요한 법적 행위들은 가족의 범위를 규명하는 것과 상속이라는 재산권의 행사인가보다.

상속은 ‘있는 집’ 얘기 아닌감?

한편으로는, 상속은 ‘있는 집’에 관련된 일이고, 보통 사람들은 물려줄 게 ‘빚’밖에 없다며 자조하는 게 대부분이지만 상속의 효과는 전 사회적으로 뿌리가 깊다. 상속의 순위와 비율을 둘러싸고 성차별이 존재했었고, 부계와 모계에 대한 차별이 존재했다.

몇 년 전 호주제가 폐지되면서 호주를 중심으로 한 상속의 문제는 개선될 근거들이 생겨났지만, 여전히 현재 가족제도가 혈연과 혼인중심으로 짜여 있기 때문에 현재 상속에서 배제된 사람들은 상속에서만 배제되는 것이 아니라 가족이 아니라는 규정을 받게 된다.

그래서 소위 ‘법정상속인’의 지위를 갖지 못하는 사람, 관계들을 가진 이들이 모여 유언장 쓰기를 시작했다. 한국사회에서 유언장은 대단한 재산을 가지고 있거나 대단히 영향력있는 사람이 쓰는 이례적인 문서로 인식되고 있지만, 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죽음을 생각하며 남기는 유언은 필사적인 것이다.

   
  ▲ 극단<목요일오후한시>의 공연모습 (사진=나영정)

행사를 시작하고 초반에는 자신의 유언장을 쓰기 전, 죽음에 대해 좀 더 생각해보기 위해서 극단<목요일오후한시>와 함께 “내일 내가 죽는다면?” “죽음하면 떠오르는 것은?”에 대해 나누고 극으로 표현해보았다.

참가자들은 십대에 성정체성 문제로 고민하며 자살을 생각했던 일, 어느 날 엄마와 함께 승용차를 타고 가다가 핸들을 잡은 엄마가 “우리 같이 죽을까?”라고 해서 그때 삶의 의지가 생겨났던 일에 대해서 들려주었다.

"우리 같이 죽을까?"

특히 어떤 참가자는 ‘혼외자’라는 이유로, 첫째와 성이 다르다는 이유로 자신의 아이를 구청장이 직권으로 친아버지의 자식으로 바꿔서 기록해버린 일을 얼마 전에 알게 되어 이날 행사에 참석했다고 밝혔다. 문제제기를 통해서 그 기록을 바꾸는 것도 필요하지만 지금 유언을 남겨놓지 않는다면 그 아이가 나의 자녀라는 사실도 인정받지 못하고 잊혀질 것을 생각하곤 매우 힘들었다고 했다.

본격적으로 유언장 쓰기에 대한 안내를 통해 유언장의 구성과 효력의 요건들을 알아보고 유언작 작성 예시를 살펴보았다. 나의 자식으로 인정받지 못한 혼외자나 동성파트너 등 공식적으로 승인되지 못한 관계들이 나의 죽음으로 인해서 사라지지 않도록 유언장에 명시해두는 것도 필요하다.

또한 그들에게 나의 재산의 일부를 남기고 싶다면 법정상속인(혈연, 혼인관계자)에게 가도록 되어있는 유류분을 제외하고 재산을 남길 사람을 명시해두어야 한다. 또 나의 부고를 꼭 알리고 싶은 사람들을 명시해둘 수도 있고, 내가 원하는 장례식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부탁해둘 수도 있다.

내가 원하는 영정사진을 정해둘 수도 있고 유명인은 아니지만 나의 유지도 남겨둘만하다. 유언장을 구성하는 법적 요건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라해도 작성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유언장을 쓰고 다시 삶으로

가족구성권을 갖지 못한 사람들이 남기는 유언은 결국, 삶의 문제이다. 죽음에 있어서 차별이 있다면 그것은 삶에서 존재하는 차별의 문제이다.

간단히 말하면 어떤 이의 죽음은 국장으로 애도되지만, 어떤 이의 죽음은 주검조차 거두어지지 못하는 비명횡사이다. 어떤 이의 죽음은 기억되고 나의 조상으로 기록되지만, 어떤 이의 죽음은 혈연관계, 혼인관계가 아니라는 이유로 그 어떤 인정도 받지 못한다.

   
  ▲ 유언장을 작성해보고 있는 참가자들 (사진=나영정)

어떤 이의 죽음이 명예롭게 기억된다는 것은 그 죽음의 이유를 살아남은 자들이 기억하는 것이다. 그래서 의문사는 밝혀져야 하고 역사적 교훈으로 밝혀져야 한다. 그러나 죽음의 이유조차 기록되지 못하는 소수자들이 많다. 노숙인들의 죽음이 그렇고, 성정체성 문제로 자살했으나 성적비관으로 둔갑된 10대의 죽음이 그렇고, 최근엔 장자연씨의 죽음이 그렇다.

행사에 참석한 이들은 유언장을 들고 다시 삶의 공간으로 나아간다. 우울증과 자살충동이 함께 했던 10대를 갓 빠져나온 이들, 함께 마련해 온 재산을 동성 파트너에게 남기기 위해 유언장을 함께 써왔던 레즈비언 커플, ‘혼외자’가 아버지의 자식으로 둔갑되어 있는 상황을 바꾸기 위한 투쟁을 준비하고자 하는 비혼여성들이 모여 만들어냈던 그날의 열기가 계속 확산되었으면 좋겠다. 벌써 거제도에서 이 행사를 해보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 행사 문의 variousfamilies@hanmail.net/ 02-745-7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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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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