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태 배후엔 실시간 검색어가 있다"
        2009년 09월 18일 11:3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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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7월24일. 서울 상암 구장. 네 번째 골을 성공시킨 이탈리아 국적의 18살 먹은 공격수는 활짝 웃으며 양손을 귀에 가져다 댔다. 관중들의 더 큰 환호를 유도하는 포즈였다. 벌써 네 골이나 먹었건만 홈팬인 서울 관중은 속도 좋게 환호로 답하고 있었다.

    배알도 없는 놈들. 집에서 TV로 중계를 지켜보던 나는 분통을 터뜨렸다. 현대축구는 전쟁 아니던가? FC바르셀로나에서 ‘독재자 프랑코의 팀’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한 배신자 피구를 응징하기 위해, 경기장에 난입해서 피구 얼굴에 FC바르셀로나 수건을 던지는 축구팬이 있는 판에 – 홈팀을 박살내고 있는 상대팀 스트라이커에게 찬사를 보내다니.

    상대팀 스트라이커에 찬사를?

    이해할만한 구석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홈팀인 서울 FC. 사실 말이 좋아 홈팀이지 시민들에겐 생소한 팀 아니던가? 현재 이 팀이 K리그에서 몇 위를 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 서울시민이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2009년 9월 17일 현재 1위다).

    차라리 이 날 경기장을 가득채운 관중들에겐 원정팀이자, 박지성의 소속팀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가 더 친숙한 팀이었다. TV에선 모든 경기를 생중계해주고, 스포츠 뉴스에선 이 팀의 동향을 밤낮으로 알려주는 판국 아니던가?

    지구화시대, 매스미디어 시대에 너무 국적을 따지는 일은 촌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낯선 지역연고 팀보다, TV로 매일 만나는 지구 반대편 팀에 더 큰 친숙함을 느껴 원정팀을 응원한 상암의 팬들이 국제화시대에 걸맞는 반응을 한 걸 수도 있다.

       
      ▲ 양 손으로 귀를 당기며 세레머니를 하고 있는 마케다(가운데)

    ‘동양인 비하 의혹’. 이튿날 스포츠 신문들은 전날 네 번째 골을 넣은 맨유의 스트라이커 마케다에 대한 의혹을 일제히 보도했다. 사진 속의 마케다는 손을 귀 뒤에 대고 있는 대신 양 손으로 귀를 당기고 혀를 길게 내밀고 있었다. 사진 밑에는 원숭이 흉내를 내서 동양인들을 원숭이로 비하하는 인종차별적 세레모니라는 설명이 붙어있었고, 댓글엔 마케다를 비난하는 사람들과 ‘뭔가 오해가 있는 게 분명하다’며 마케다를 두둔하는 맨유 팬들 사이에 일대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마케다, 인종 비하 의혹

    귀를 잡아 당기고, 혀를 길게 내밀고 – 이게 진짜 동양인을 비하한건지? 단순한 장난인지? 마케다의 마음 속에 들어가보지 않는 이상 이를 정확히 알 도리는 없다. 마케다로선 억울할 수도 있는 사안이다. 하지만, 마케다의 팀동료인 긱스가 달려와 심각한 표정으로 마케다의 손을 귀에서 떼놓는 사진까지 있는 상황에서, 인종비하 의혹을 전적으로 부정하긴 쉬운 노릇이 아니다.

    게다가 말이지. 이 녀석이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부와 명예를 얻게 된 게 과연 누구 덕택이던가? 맨체스터가 속해있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가 작년에 거둔 매출 2조원. 여기에는 10억 인구의 아시아시장이 기여한 바가 상당하잖는가? 수백억대의 연봉을 자랑하는 프리미어 축구팀들이 앞 다투어 지구 반대편 아시아에서 시범경기를 갖는 이유도 다 아시아 시장이 갖는 중요성 때문이다.

    준 거 없이 인종차별을 당해도 역겨울 판에, 축구가 없었다면, 그리고 축구를 스포츠가 아닌 산업으로 만들어 준 팬들이 없었다면, 단순히 덩치 큰 무식쟁이(무식하지 않고서야 인종주의자가 될 수 없는 법)에 불과했을 놈의 지갑을 살찌워주는 게 누군데, 어디라고 감히 모욕질인가. 마케다에 대해 충분히 분노할만하지 않은가?

    덩치 큰 무식쟁이 지갑, 누가 살찌워주는가

    뜬금없이 마케다 얘길 꺼낸 이유는 그룹 2PM의 재범사태 때문이다. 출발은 매우 간단했지만 이후 정신없는 후폭풍이 불고 있는 재범사태, 정리하자면 대충 이렇다.

    1) 데뷔 전의 재범이 개인블로그에 ‘한국이 싫다’는 글을 올렸다는 사실관계가 보도되고
    2) 팬들이 분노한다는 보도가 잇따르더니, 그리고 재범의 그룹 ‘자진 탈퇴’라는 결과 발생
    3) 이에 따르는, 애국주의 광풍이 애매한 청년을 하나 때려잡았다는 이런저런 언론 보도들.

    이를 정석대로 되짚어 보려면, 사실관계인 1)부터 차근차근 밟아봐야겠지만. 개인적으론, 이 사태에 대한 해석전쟁(?)이 상당히 재밌는지라 3)부터 언급해 보겠다.

    나는 각종 언론들이 왜 이 사태를 한국의 국수주의가 애매한 청년을 잡았다는 식으로 해석을 하는지 이해가 잘 안 간다. 아무리 봐도, 사람들의 분노 포인트는 ‘국가에 대한 불충’에 놓여있는 게 아니라 마케다 케이스의 분노지점 비슷한 곳에 놓여있다.

    재범사태, 마케다와 비슷한 분노

    각종 댓글이나 인터넷 게시판을 읽어봐도, 재범의 불충을 꾸짖는 글은 한 개도 없었다. ‘얼굴은 황인이지만, 정신세계는 백인인 철없는 젊은이가 백인들이 가질 법한 편견을 여과없이 배설했다’ 충분히 가질만한 불만 아닌가?

    게다가, 한국의 팬들이 아니었다면 백인들에게 2류시민 취급 받으면서 (본인 스스로 인정하듯) 힘들게 살았을 재범이, 본인의 부와 명예의 원천인 한국인들을 무시했다는 소문이 도는데 속 좋게 넘어가는 게 더 이상한 일일 거다.

    언론이 잘못 들이댄 ‘애국주의’란 프레임이 그대로 통용되고 있는 상황 – 재범사태를 설명하는 본질이라 생각한다. 더 나아가 이 본질은 (글 마지막에 언급할) 마케다의 인종차별 세레모니의 향후 처리과정에도 이어져 있다. 단언컨대, 이번 사태의 알파와 오메가는 인터넷 포털의 ‘실시간 검색어’이다.

    사태의 본질은 ‘실시간 검색어’

    다시, 사태의 발단이 된 사실관계를 짚어보자. ‘애국주의’란 프레임이 등장한 후 재범을 동정하는 언론에서 여러 차례 보도됐듯, 재범의 한국폄하는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다. 짧은 필자의 영어실력으로 봐도, 한국에서 힘든 연습생 과정을 견디고 있는 어린 소년의 외로운 불평으로 밖에 보이질 않았다.

    설사, 그 글이 진정 한국폄하 글이라 해도, 데뷔전 4년 전 쓴 글을 가지고 문제를 삼을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는 사실관계를 갖고 ‘재범 한국비하 의혹’이라 불을 지피기 시작한 건 바로 인터넷을 중심으로 한 언론들이었다.

    언론에서 이번 사태에서 재범이 뭔가 큰일을 당한 것처럼 보도하는 것 역시 전혀 이해가 안된다. 과거의 유승준 사태와는 달리, 이번에 재범이 입은 피해는 별로 없다는 점이다.

    이번 사태와 자주 비교되는 유승준 사태 – 미국 국적을 선택한 결과 군대에 가지 않게 된 유승준에 대해 비난 여론이 일자. 병무청, 법무부가 나서 제대로 된 법적근거도 없이 다시는 한국땅을 밟지 못하게 한 사태다. ‘신성한’ 병역의무를 면탈해서 ‘국가의 안녕을 저해한’ 유승준의 기본권을 박탈한 이 사태는 충분히 국가주의의 미친 짓이라 부를 만하다. 하지만, 이번 재범 사태는 도대체 누가 누구에게 피해를 입혔단 말인가?

    누가 누구에게 피해를 입혔는가

    ‘재범 한국 비하’라는 기사에 달린 악플들. 단언컨대 유승준 사태에 비해서는 말도 안 되게 적었고, ‘음주운전’ ‘폭행’ 등 각종 스캔들 기사보다 결코 강한 수준이 아니었다. (악플의 천국인 디시뉴스에 올라온 ‘재범 한국 비하’ 최초 보도다. 다른 기사에 비하면 그닥 시끄러운 것도 아니었다)

    데뷔전의 힘든 시절, 그것도 개인 블로그에 올린 글. 게다가 그 내용도 한국을 폄하한 것으로 보기가 힘든 사안이라는 걸 상당수 네티즌들이 인식하고 있었고, 심지어는 ‘소속사인 JYP가 노이즈마케팅을 노리고 일부러 흘린거다’ 라는 관측까지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재범은 ‘자진 탈퇴’를 해버렸다. 소속사 대표인 박진영은 ‘본인은 끝까지 말렸으나,불같은 성격의 재범이 팀을 탈퇴해버렸다’로 요약될 수 있는 해명 글을 올렸다. 이게 사실이라면 가해자는 누구고, 피해자는 누구란 말인가?

    악플은 나쁜 거 맞다. 하지만, 연예생활에 어쩔 수 없이 따르는 것이 악플인 이상 어느 정도는 참아 넘겨야하지 않겠는가?(심지어는 IQ430인 나의 칼럼에도 악플이 달리는 판이다) ‘성질 더러워’ 못 참고 자기 발로 뛰쳐나간 재범을 ‘잘못된 애국주의’의 피해자라 하는 거는 아무리 봐도 오버다.

    ‘잘못된 애국주의’의 피해자?

    개인적으로 재범은 자진 탈퇴한 게 아니라, 소속사인 JYP가 일종의 절단 수술을 한 거라 보고 있다. ‘재범 한국 비하’라는 첫 보도가 나간 후 일련의 반응은, 그 자체로 재범의 가수생활을 끊을 만한 폭발력 있는 사안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성질 더러운’ 재범은 ‘자진’ 사과를 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건으로 이슈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언론플레이의 달인인 JYP가 선제적으로 대응을 했다고 밖에 볼 수가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그래도 사태가 가라앉지 않자 꺼낸 게 재범의 ‘자진 탈퇴 카드’가 아닐까 한다.

    손끝에 생긴 가벼운 상처. 가만히 두면 자연 치료될게 뻔하지만, ‘미국에서 2류시민 취급받았을 놈이 한국 와서 백인행세 한다’는 형태로 두고두고 곪아 들어 갈까봐 사과 처치. 오히려 사태가 커지자 더 곪기 전에 절단. 그리고 조용해지면 슬그머니 복귀 – 아무리 봐도 이게 타당한 스토리인 거 같다.

    무에서 창조된 거대한 유 –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폄하발언, 그리고 존재하지 않는 가해자와 피해자, 그리고 이해가 안 되지만 버젓이 통용되는 ‘애국주의’라는 해석. 원인은 하나다. 바로 인터넷 포털의 ‘실시간 검색순위’. 사건이 관심을 만드는 게 아니라 관심이 사건을 만들고 있다.

    관심이 사건을 만든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2009년 9월 17일 오후 4시 현재) 인터넷 포털 다음에서 클릭을 해보니 ‘고양이 성형’이 실시간 검색어 1위였다. 고양이를 닮고 싶어서, 얼굴을 고양이처럼 성형수술을 한 여성이 화제가 된 건데, 이 무슨 큰일이라고 30분 만에 각종 언론이 줄줄이 달라 붙었다.

       
      ▲ ‘고양이 성형’이 실시간 검색어 1위로 올라온 직후(위)와 30분 후(아래)

    특히, 주목할 만 한 것은 아래 사진 두 번째에 있는 ‘소비자가 만드는 신문’인데, 좀 황당한 실시간 검색어가 떠오를 때면 반드시 1~2위로 검색되는 신문이다. 실시간 검색어로 ‘뛣췗쀌’이 떠오르면, 하다못해 ‘뛣췗쀌, 네티즌들 사이에서 대 화제’라는 형태로라도 기사를 반드시 내고야 만다. 화면에 나온 제목을 보면 알겠지만, 실시간 검색어인 ‘고양이 성형’을 눈에 잘 띄게끔 제목 제일 앞에 반영했다.

    클릭수 = 광고단가로 이어지다 보니 이런 일이 벌어 진건데, 이러다 보니 ‘사태 -> 보도 -> 사람들의 관심’ 순으로 흐르는 게 아니라. ‘사람들의 관심 -> 보도 -> 사태’로 거꾸로 흐르는 경우도 왕왕 벌어지고 있다. 재범사태 역시 이 루틴의 무한반복을 통해 사건이 증폭된 케이스라 하겠다.

    앞서 소개한 마케다 케이스의 결말을 소개하며 글을 끝맺겠다. 경기장내에서의 인종차별 –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축구장 안에서 선수가 심판이나 관중을 폭행 한 것 다음으로 강력한 벌칙이 부과되는 것이 인종차별행위라고 해도 좋을 만큼, 세계 축구계의 가장 큰 관심사는 인종차별의 배격이다. 오죽하면, 2006년 독일월드컵 공식 슬로건이 SAY NO TO RACISM(인종주의에 대한 거부)였겠나. 선수에게는 장기간의 출장금지 처분, 소속구단에는 엄청난 벌금과 함께 때로는 홈경기 금지 처분까지 받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인종차별이다.

    언론의 상업적 선택 ‘재범’

    하지만, 마케다의 ‘원숭이 세레모니’는 맨체스터 구단의 자체조사 결과 ‘오해’로 결론지어졌고, 이틀정도 사납게 떠들어 대던 언론들도 ‘아 그렇군요’ 모드로 곧 잠잠해졌다.

    잠깐.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마케다의 소속구단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사건의 당사자이다. 마케다가 출장정지 징계를 받을 경우 전력의 타격을 입을 뿐만 아니라, 별도로 거액의 벌금을 내야하는 게 바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다. 사건의 당사자가 별다른 조사도 없이 내린 ‘오해’라는 결론 – 하지만, 여기에 대해 지적한 언론은 단 한군데도 없었다.

    마케다와 재범의 차이. 클릭 수 장사가 되고 안 되고의 차이가 아니었을까?

    필자소개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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