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선제 반대는 정파들 기득권 지키기”
    2009년 09월 08일 03:0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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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11년 전인 1998년 민주노총 위원장 선거에서 직선제를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된 2기 위원장입니다. 무려 11년을 끌어오다 겨우 첫 시행을 눈앞에 둔 이 때 또다시 직선제를 연기한다는(사실상 포기하려는) 중앙위원회의 결정을 보고 또 다시 이렇게 넘길 수 없어 글을 적습니다.

   
  ▲ 이갑용 전 민주노총 위원장

직선제는 지난 10년 동안 모든 집행부가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다 결국 밀리고 밀려 대의원대회를 통과한 사안입니다. 겨우 선관위를 꾸리고 이제 막 걸음을 떼려는 순간에 또다시 직선제를 막으려는 움직임을 보니 착잡할 따름입니다.

직선제 반대는 이미 지난 번 성폭력 사태 이후 김금수, 하부영, 이수호, 단병호 등이 일관되게 주장해 왔습니다. 직선제 반대에는 정파가 따로 없는 형국입니다. 왜 노동계의 여론을 만드는 사람들이 이토록 직선제 반대에 목소리를 높이는지 궁금합니다. 그런 궁금함 때문에 ‘직선제가 그렇게 싫은가’라는 글을 <오마이뉴스>에 기고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공개적으로 답하지 않고 있습니다.

강승규, 김영대 재정위 선거비리 사건의 예

2기 집행부가 직선제를 내 건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가장 중요하게는 ‘조직 내 민주주의 강화’와 ‘현장 투쟁력 복원’ 때문이었습니다. 1998년 제가 출마했던 임원선거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1998년에 민주노총에서 재정위원회의 비리사건이 터졌습니다. 민주노총의 도덕성이 땅에 떨어졌고 어떻게 해결하는가를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중앙위원회와 대의원대회를 열었을 때 각 정파의 간부들과 대의원들은 이 문제를 덮으려 했습니다. 형사고발해야한다는 의견은 묵살되었고, 결국 쪽수에 밀려 개인변제 등으로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그 때 대의원대회에 보고조차 되지 않은 사건이 있었는데, 바로 재정위 돈으로 임원선거를 치른 일입니다.

1997년 당시 민주노총의 사무총장 직무대행이던 김영대 부위원장이 재정위원회를 맡고 있었는데, 1998년 임원선거에 당시 택시연맹의 강승규 위원장이 김영대에게 재정위의 돈 500만 원을 빌려 맹비로 납부하고 대의원수를 이 돈 만큼 더 배정 받은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재정위 사건 때 이 문제가 터지자 500만원을 다시 입금하고 덮어버렸습니다.

사건을 마무리하지 못한 책임이 나에게도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는 않지만, 2기 집행부가 내려온 후 조사위원회의 결과가 발표되었고, 제 뒤의 집행부가 마무리 하는 시점에서 이 문제를 말하기 어려워 그냥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제 책임이 크며 반성합니다.

문제가 터지지 않았으면 아마 그 돈은 회계처리도 되지 않고 묻혀 버렸을 것입니다. 어떻게 연맹위원장이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중앙조직의 공금을 빌려 대의원 배정을 받는다는 발상이 성립될 수 있는지 한심할 따름입니다. 이는 돈 많은 자본이 민주노총의 대의원을 돈으로 구매하는 것을 인정해 주는 것과 같습니다. 이를 막지 못하니 지금도 연맹선거에서 맹비는 적게 내고 대의원 수나 조합원 수는 늘리기 위해 대의원대회 중앙위원회에서 치열하게 대립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그 500만 원은 조합원의 투표권을 보장해주려는 충심에서 비롯된 행동이 아니었습니다. 그 때 500만 원으로 배정받은 대의원은 2기 집행부 선거에서 자신의 정파후보를 찍었습니다. 잘못을 저질러도 자신들이 힘이 있으니 덮을 수 있다는 자신감들이 있었습니다.

직선제 반대에 한 목소리를 내는 정파들

그 사건을 저지른 정파, 그 사건을 함께 묻어둔 정파들이, 좌우를 막론하고 모두 직선제 반대에 한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저는 그 동기가 불순하다고 생각합니다. 말로만 정파구도 혁신을 외치면서 사실 지금의 정파구도, 대의원간선 구도가 그들에게는 권력을 잡기 더 쉽고, 기득권을 내놓기 싫은 이유에서라고 판단합니다. 백 번을 양보한다고 해도 직선제는 10년 세월 동안 시기상조와 현실부족 논리를 들어 안하려고 하던 것을 겨우 대의원대회에서 결정한 ‘조직의 결정사항’입니다.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말을 이유로 내세운다면 이는 거꾸로 10년 동안 하나도 준비하지 않은 사람을 문책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정치인에게는 공약을 지키지 않는다고 욕하면서, 직선제 공약을 걸고 당선된 사람들이, 조합원들에게 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단순히 선거 때 한 순간을 위해 거짓말을 한 것 밖에 되지 않습니다.

현실의 어려움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민주노총은 그런 어려움을 뚫고 몇 차례나 조합원 총투표를 성사시킨 전력이 있습니다. 여러 어려움에도 대의원대회에서 직선제를 시행하라고 결정을 했다면, 집행부는 이를 차질 없이 준비하는 게 의무이지, 집행기관을 장악했다는 이유로 마음대로 이 문제를 훼방 놓는 다는 것은 조직의 결정에 대한 도전이면 조합원에 대한 기만입니다.

집행부가 할 일은 투쟁이 기본이며, 선거로 당선된 사람들인 만큼 공약을 실천하고 대의원대회 결정사항을 수행하는 일입니다. 준비가 부족해서 못한다고 말하려면 적어도 누구의 어떤 준비가 부족한지 그 이유를 설명하고 누군가는 그 책임을 져야합니다. 그런데 어떤 준비가 부족한지, 이를 어떻게 할 것인지, 어떤 부서의 책임인데 그 동안 누가 이 준비를 안 해와서 시행 두 달을 앞두고 발을 빼는지 이런 것에 대해 아무런 설명도 없습니다.

10년입니다. 10년 동안 준비부족이란 핑계만 들어야 했습니다. 이제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습니까? 저는 10년 동안 이 준비를 하지 않은 간부들이 오히려 징계를 당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우려했던 것은 어쩔 수 없이 시행을 하는데, 의지가 없으니 제대로 홍보도 안 하고, 어영부영하다가 결국 “자 봐라, 직선제 해보니 이렇게 안 되지 않느냐, 다시 간선제로 돌아가자”할까 하는 우려였습니다.

그런데 예상을 뒤엎고 아예 시행조차 하지 않겠다는 집행부의 말을 들으니, 이렇게 조합원을 우롱해도 되는가 싶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직선제 선거를 준비하는 간부들인 마당에 그 직선제가 제대로 될 리 없습니다. 직선제는 준비단 먼저 새로운 사람들로 채워야 합니다. 10년 동안 반대하고 있던 사람들이 과연 어떤 충심이 생겨 갑자기 그 선거를 하도록 뛰어다니겠습니까?

현장의 노동자를 중심에 두고 투쟁하는 조직이 되어야 하는데, 중앙의 정파들과 노회한 관료들이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민주노총으로 자꾸 변질시키고 있습니다.

정파들의 민주노총에서 조합원의 민주노총으로

민주노총은 조합원 하나하나가 모여 만든 조직입니다. 노동자 혼자 버티기 힘든 세상에 노동조합이 우리를 묶어주고 있습니다. 개인의 소중함을 지키기 위해 조직을 만든 것이고 이 개인이 소중한 것을 모르거나 잊어버리면 이 조직의 존재 가치가 없어집니다.

성폭력 사건을 다루면서 민주노총이 조직을 위해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여 된서리를 맞았습니다. 조합원 1명도 지키지 못하면서 조직을 지키겠다고 하면 그 조직이란 무엇이며 누구의 조직입니까? 나를 지켜달라고 만든 조직이 주인인 나를 버리고, 간부와 정파들을 위해 존재한다면 누가 민주노총의 조합원임을 자랑스러워하겠습니까?

위원장은 감옥에서 아무것도 모른 체 조직을 지키기 위해 사표를 내야 했고, 피해 당사자에게는 또 다른 피해와 희생을 강요하며 살려야하는 조직이 과연 누구를 위한 조직입니까? 그렇게 위원장을 내려 보내고 또 다시 조직들이 담합해서 위원장을 뽑더니, 이제 혁신의 노력도 없이 뜬금없이 직선제를 미루자고 합니다.

저는 민주노총 직선제를 연기하자는 중앙위원들이 모두 관료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진짜 조직을 위한 충정에서 조직이 혼란스러울까 우려하여 연기를 주장한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왜 직선제가 수많은 논의를 거쳐 조직의 ‘혁신안’이 되었는지 다시 한 번 헤아려주시길 간곡히 바랍니다. 개인의 충정을 정파와 관료들은 이용합니다. 그리고 교묘하게 선전할 것입니다.

문제는 집행부의 의지 : 하고자 하면 방법을 찾고 피하고자 하면 구실을 찾는다

민주노조 운동의 역사는 노동시간 단축투쟁과 직선제 쟁취 투쟁의 역사입니다. 직선제는 민주노총을 만든 주요 이유이기도 합니다. 3중간선 어용노조인 한국노총에서 그 간선제를 깨기 위해 수많은 노동자가 희생하고 투쟁해야 했습니다. 결국 민주노조의 조직인 민주노총을 만들었습니다.

시행의 부정적인 사례를 들어 반대하기도 하는데 직선제를 문제없이 운영한 조직의 사례 또한 많습니다. 어느 걸 취하고 어느 걸 버리면서 더 나은 제도를 만들어갈 것인가는 시행하는 우리 몫이며 집행부의 의지입니다. 어떤 선거건 갈등 없는 선거는 없습니다.

그러나 준비만 잘하면 축제처럼 신나는 직선제를 치를 수 있습니다. 갈등이 있다 해도 갈등이 반드시 나쁘다고만 보지는 않으며, 현재 간선제와 정파싸움 구도에서 벌어지고 있는 갈등보다 더할 거라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 아시다시피 지금 민주노총의 대의원대회는 선거 때 정파 후보 뽑는 기능으로만 작동합니다. 선거 안건이 없을 때는 대회 성사조차 잘 되지 않습니다. 이게 우리의 현실입니다.

우리가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통해 노동자 권력을 잡기 위해 정치라는 걸 했습니다. 민주노동당을 만들었고 노동자 국회의원도 배출했습니다. 국회의원이 과반수 이상이 된다고 해서 우리가 원하는 법이 만들어지긴 어렵습니다. 법을 바꾸려면 3/2가 되어야 하고, 우리가 원하는 법 대부분은 기득권층과 자본의 로비와 방해로 더 어렵습니다.

우리는 총칼을 쥔 군부처럼 쿠데타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맨 몸 하나가 무기인 노동자들입니다. 우리가 70만이라는 많은 수를 가진 조직인데, 기존 정치권과 다르게 올바른 공약과 검증으로, 공정한 룰을 적용해서 신나게, 그리고 투쟁하며 선거를 치러낸다면 단지 선거로만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이를 지켜보고 참여한 수많은 눈들이 여론이 되어 사회를 바꾸어 가고, 국민들이 ‘모두가 썩었지만 민주노총은 다르구나’하는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집단으로 비칠 수 있습니다. 저는 이게 일반 국민과 노동자를 상대로 국회의원 당선보다 더 큰 정치세력화를 할 수 있는 실천이라고 생각합니다. 민주노동당을 만들어 이 실험을 했으나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거기에서도 기존 정치권과 전혀 다르지 않게 줄 세우기, 정파 세팅 선거, 보스 정치, 권력 잡기에 몰두해 당의 이익보다 정파의 이익을 위해 복무하는 조직이 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직선제는 잘만 운영하면 최선이 될 수도 있습니다. 잘못 운영된다 해도 차선입니다. 간선제는 차악이라고 생각합니다. 오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고, 과감하고 단호하게 다시 현장을 살리고, 조직을 살리는 길에 함께 해 주시길, 간곡히 요청 드립니다. 조합원의 힘만이 정파관료와 기득권 세력을 넘어설 수 있습니다. 그것이 민주노총을 바로 세우는 길입니다.

공은 집행부에 있습니다. 더 이상 핑계대지 말고, 못하면 깨끗이 포기하고 민주노총 집행부를 물러나든지,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투쟁하라는 조직의 결정을 이행하지 못해서 집행부가 물러나고 비대위가 꾸려졌습니다. 직선제 또한 조직의 결정입니다. 의지가 없는 것인지, 자신이 없는 것인지, 솔직하게 드러내고 이제라도 집행부가 아닌 민주노총을 위해 싸워주기 바랍니다. 의지만 있다면 아직 시간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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