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민 울리는 ‘이명박 전세폭탄’
        2009년 09월 08일 10:3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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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세값이 심상찮게 오르고 있다. 앞으로 2∼3년이 더 문제라고 한다. 자칫 전세대란으로 갈 가능성이 높단다. 셋방 사는 서민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도대체 왜 이러나? 오늘은 집없는 서민의 처지에서 전세대란 조짐은 왜 일어나며 대책은 무엇인지 공부해본다.

       
      

    1. 셋방 가구 절반이 2년마다 이삿짐

    먼저 전세폭탄이 노리고 있는 집없는 서민들은 얼마나 되며 어떻게 살고 있는지 보자. 2005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에서 셋방 사는 사람은 657만 가구 1,666만 명에 달한다. 가구 기준으로 열 중 넷 꼴로 셋방을 떠도는 셈이다. 356만 가구 1,000만 명은 전세방에, 239만 가구 543만 명은 보증금 있는 월세방에 산다. 또 33만 가구 62만 명은 보증금 없는 월세방에, 28만 가구 57만 명은 사글세방에 산다.

    전세가구는 가구당 평균 보증금 5,109만 원짜리 전세방에 산다. 보증금 있는 월세 가구는 가구당 평균 1,157만원에 월 21만원을 내고 있다. 월세와 사글세는 각각 매월 21만 원과 28만 원을 내고 있다. 물론 지역별로 차이가 있어서 전세의 경우 서울은 가구당 7,191만 원으로 가장 높고 다음이 경기 5,404만원, 대전 4,181만원, 대구 3,810만원, 울산 3,787만 원 순이다.

    또 같은 전세라도 아파트에는 가구당 7,409만원, 오피스텔 등 주택이외 거처는 5,317만 원, 다세대주택은 4,474만원, 연립주택은 4,247만원, 단독주택은 3,207만 원을 내고 있다. 셋방 사는 가구 중 55%는 단독주택에, 33%는 아파트에, 나머지 12%는 연립주택이나 다세대주택 등에 산다.

       
      

    셋방사는 가구 중 80%는 현재 사는 집에 산 지 5년이 채 안되며 특히 52%는 2년이 안 된다. 5년에서 10년 사이는 14%, 10년 이상은 16%에 머문다. 다시 말하면 세사는 사람 열 중 다섯은 2년 안에 한 번씩, 이들을 포함한 여덟은 5년 안에 한 번씩 이사를 다닌단 얘기다.

    셋방사는 657만 가구 가운데 67만 가구는 어딘가 자신 명의의 집을 사놓고 경제적 형편이나 직장 또는 자녀교육 문제 등의 사정으로 남의 집에서 전월세를 살고 있다. 이들을 제외하면 집 없이 셋방사는 가구는 590만 가구로 인구수로는 약 1,500만 명에 달한다.

    집이 아예 없이 셋방사는 590만 가구 가운데 3분의 2가 넘는 67% 396만 가구는 전월세 보증금이 3천만 원도 안 된다. 이들을 포함한 83% 490만 가구는 보증금 5천 만 원 미만의 전월세에 산다. 17% 100만 가구가 5천만 원 이상의 셋방에 사는 데 이 가운데 보증금 1억 이상은 4% 24만 가구에 불과하다.

    물론 지금까지 살핀 통계는 2005년 11월 통계청의 인구주택총조사 기준이기 때문에 지금은 좀 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같은 조사를 5년에 한 번 씩 하기 때문에 최근 통계가 없어 현재상황을 정확히 알기는 어렵다. 다만 전월세값 변동에 대한 정부 공식 통계인 국민은행 전국주택가격동향조사에 따르면 2005년 11월∼2009년 8월까지 3년10개월 동안 전세값이 전국 평균 11.6% 올랐고, 서울은 평균 17.5%가 올랐다. 이 점을 감안하면 가구당 평균 전세 보증금은 전국은 5,700만 원, 서울은 8,500만 원으로 올랐을 것으로 추정된다.

    2. 전세대란 조짐에 가슴이 철렁

    집값이 떨어진다던 소리가 잠깐 들리더니 불과 몇 달 새 또 치솟는다고 한다. 전세값도 뛴다고 한다. 셋방을 떠도는 서민들에겐 가슴 철렁하는 소식이다.

    실제로 전세값은 얼마나 올랐을까. 국민은행의 전국주택가격동향을 보면 8월 한 달 동안 전국의 평균 전세값은 0.5% 수도권은 0.7%가 올랐고 조사대상 144개 지역 중 113곳이 올라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매년 8월은 가을 이사철을 앞두고 전세값이 오르는 달이긴 하지만 올해는 최근 5년 동안 가장 많이 올랐으며, 특히 서울은 0.8%가 올라 1986년 이후 24년간 평균 상승률 0.7%를 웃돌았다.

    전세값은 미국발 금융위기의 여파로 작년 가을부터 떨어지기 시작해 올해 2월까지 내리막길이었으나 3월부터 다시 올랐다. 그 결과 작년 12월 전세값을 100으로 했을 때 올해 8월 가격이 전국은 100.4로 수도권은 100.7로 서울은 101.7로 각각 뛰어 지난 해 하락 이전 가격을 빠르게 회복해가고 있다.

       
      

    요즘 이사하거나 재계약하는 가구 대부분이 2년 전에 전세계약을 맺은 점을 감안해 2007년 8월부터 올해 8월까지 2년간 전세값 변동율을 보면 전국 평균 2.8%가 올랐고 수도권은 3.4% 서울은 3.9%가 올랐다. 특히 서울 강북 14개구는 평균 5.9%가 올라 강남 11개구 2.0%의 세 배가 올랐다. 가장 많이 오른 지역 역시 강북구(13.4%), 성북구(11.4%), 광진구(8.3%)로 모두 강북지역이다.

       
      

    주로 서민들이 사는 소형주택의 전세값이 더 큰 폭으로 올랐다는 점도 주목된다. 2008년 12월 서울 전세가격을 100으로 했을 때 소형주택은 2007년 12월 96.4에서 올해 8월 101.6으로 뛰었다. 이 같은 현상은 서울 강북 14개 구에서 더 심하지만(95.3→100.9), 강남 11개구도 그에 못지않았다(97.8→102.4). 반면 대형주택은 101.6에서 101.7로 큰 변동이 없었고, 중형주택은 100에서 102.8로 조금 올랐다.

    전월세값이 오를 때 집없는 서러움은 뼈 속에 사무친다.

    우선 주택임대차보호법에 전월세계약기간은 2년까지만 보호하고 있기 때문에, 계약 기간이 끝나고 집주인이 나가라면 나갈 수밖에 없다. 또 재계약을 할 때는 집주인은 보증금이나 월세를 마음대로 올려 받을 수 있다. 현행법에는 이 같은 상황에서 셋방사는 사람을 보호할 아무런 장치가 없다.

    결국 인간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가장 극단적인 흑백논리라 할 “방뺄래? 올려줄래?” 둘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 당장 전월세 계약이 만료된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몇 달 후 아니 아무리 길어봐야 2년 안에 1,666만 명 모두가 전월세금을 올려주든가 이삿짐을 싸든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3. 누가 ‘전세폭탄’ 만들었나

    물론 전월세값 오르는 게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최근 23년간 전체 전세값은 4배, 아파트 전세값은 5배가 올랐다. 외환위기 당시 잠시 떨어졌을 뿐 집값과 마찬가지로 오르기만 하는 게 전월세값이었다. 역대정권이 집값을 끌어올리는 부동산 정책을 편 결과이다. 그러니 너도나도 내집 장만이 꿈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역대정권 보다 더 부동산에 올인하고 있다. 최근 전세값이 오르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이명박 정부 들어 경제위기 극복을 명분으로 부동산 투기를 권장하고 집값과 전월세값을 끌어올리는 부동산 정책을 쏟아낸 결과다.

    이명박 정부는 종합부동산세와 양도소득세를 비롯해 집부자들의 세금을 듬뿍 깎아줬다. 투기를 막는 각종 규제를 풀어버려 돈 많은 부자들이 투기하기 좋게 만들었다. 사상 최저 금리로 그렇지 않아도 시중이 유동자금 수백조가 떠도는 가운데 4대강 정비 사업 등 각종 개발정책을 쏟아냈다. 이 같은 투기 부양책이 경기가 내리막길일 때는 표시가 잘 나지 않다가, 최근 경기가 회복될 것이란 기대감이 생기자 집값과 전월세값이 들썩이게 하는 강력한 효과를 발휘하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최근 서울지역 전세값이 오르는 데는 뉴타운 재개발이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재개발은 동네에 있는 집을 한꺼번에 다 부수면서 시작된다. 그런데 부수는 것은 순식간이지만 그 자리에 다시 집을 짓는 데는 최소 몇 년이 걸린다. 따라서 집주인이든 셋방사는 사람이든 이 기간 동안 그 동네 사람들이 살 곳을 미리 마련해놓고 시작해야 한다. 그러나 뉴타운 재개발은 전면철거형 속도전식으로, 그것도 한 두 동네가 아니라 서울시내 곳곳에서 동시에 공사판을 벌이는 식으로 막개발이 돼버렸다. 그러니 당연히 셋방을 구하려는 사람은 넘치는데 이사 갈 곳은 없고, 그 결과 전월세값은 뛰게 된 것이다.

    특히 뉴타운 재개발 등 도심 재개발을 거쳐 새로 짓는 집의 99%는 아파트고 주로 중대형이다. 그런데 서울에서 셋방사는 178만 가구 중 아파트에는 24%만 살고 나머지 59%는 단독주택에, 12%는 연립‧다세대주택에, 5%는 기타 거처에 산다. 또 아파트에 비해 단독‧연립‧다세대주택 셋방은 더 좁고 값이 싸다. 결국 뉴타운 재개발은 셋방사는 서민이 살던 소형저가의 단독‧연립‧다세대주택을 헐고 값비싼 중대형 아파트를 짓는 것이니 당연히 셋방사는 사람들이 살 곳은 없어지는 것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2006년에서 2010년 사이에 뉴타운 재개발 등으로 사라지는 소형저가주택은 13만6천 채에 달하는데, 공급은 6만7천 채에 불과하다. 뉴타운 재개발이 활발한 강북지역에서 주로 소형주택 전세값이 가장 많이 오르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또 뉴타운 재개발 소식이 들리는 순간부터 그 동네 집값과 전월세값이 오르고 근처 동네에도 영향을 주는 특성이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서대문구 가재울 3구역은 재개발 구역 지정단계와 시행단계에서부터 이미 다른 동네에 비해 전세값이 더 많이 뛰다가 관리처분단계에서는 무려 13.5%나 치솟았다. 이후 본격적으로 이사를 가게 될 때는 셋방이 부족해 근처 동네 전세값이 덩달아 올랐다.

    또 뉴타운 재개발이 휩쓸고 간 곳은 전세값이 엄청나게 뛰어 서민들이 살 수 없는 동네가 돼버린다. 서울시에 따르면 전세값이 4천만 원 미만의 집이 83%나 되던 동네가 뉴타운 재개발 사업 뒤에는 4천만 원 미만 셋방은 단 한 개도 남지 않게 된다.

       
      

    결국 전세값 상승은 잘못된 정책이 만들어낸 ‘인재’다. 특히 과거 이명박 서울시장 시절 시작한 뉴타운 재개발과 현재 이명박 정부가 쏟아내고 있는 부동산 투기 부양책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과거와 현재가 만들어낸 ‘이명박 전세폭탄’이 서민들 머리 위에서 터지고 있는 것이다.

    4. 이명박 대통령이 결자해지해야

    이미 전세값은 오르고 있지만, 뉴타운 재개발이 본격화될 경우를 생각하면 지금 오르는 전세값은 시작에 불과하다. 빨리 제대로 대책을 세우지 않는다면 자칫 전세대란으로 번질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현 상황은 집없는 서민들에게 비상한 위기가 닥치기 시작한 심각한 국면이며, 그에 걸맞은 비상한 대책이 나와야 한다.

    이런 점에서 국토해양부가 지난 8월24일 전세시장 안정 대책을 내놓으면서 현 상황을 ‘작년에 서울 강남의 대규모 입주여파로 급락했던 전세가격이 회복되는 측면이 큰 상황’으로 진단한 것은 매우 안이한 태도다. 매각가격과 마찬가지로 전세값 역시 1년 전 가격 자체가 지나치게 비싼 것일 뿐 아니라 뉴타운 재개발의 후유증이 커질 앞으로 몇 년 상황이 훨씬 심각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전세대란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뉴타운 재개발 계획을 수정해야 한다. 그래야 한꺼번에 몰리는 전세수요가 분산될 것이기 때문이다. 늦출 수 있는 동네는 최대한 늦추는 방식으로 시기를 조정해야 한다. 유감스럽게도 국토부가 내놓은 전세수요 분산 대책에는 태풍의 핵인 뉴타운 재개발 시기를 조정하겠다는 계획은 아예 언급도 없다. 대신 ‘서울 경기 입주단지 위치와 시점 등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안이한 상황진단에 더 안이한 대책이 아닐 수 없다.

    시기 조정에서 더 나아가 뉴타운 재개발 방식 자체를 전면 수정해야 한다. 재개발 공사 기간 동안 살 집을 먼저 마련해놓고 차례대로 돌아가는 순환재개발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 또 용산참사에서 극명하게 드러난 건설재벌과 부유한 부동산 소유자의 개발이익을 극대화하는 현행 재개발 방식을, 세입자와 가난한 집주인을 포함한 동네 사람 전체의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 점은 정부와 여당 특히 서울시장 시절 뉴타운 재개발을 시작해 불씨를 만든 이명박 대통령이 결자해지 차원에서 해결할 책임이 있다.

    또 집값과 전세값을 끌어올리는 잘못된 부동산 정책을 바로잡아야 한다. 이명박 정부가 쏟아낸 부동산 정책의 84%는 건설재벌과 집부자들에게 혜택이 돌아갔다. 이제 되돌려야 한다. 부동산 부자들을 겨냥해 깎아준 세금과 강남을 찍어 특혜를 주려 완화한 투기규제 장치들을 되돌려놓아야 한다. 4대강 정비 사업을 비롯한 개발정책도 다시 논의해야 한다. 투기에 기름을 붓게 될 분양가 상한제 폐지 방침은 거둬들여야 한다. 사상최저금리, 주택담보대출 확대 등 부동산 거품을 조장한 금융분야도 집값 전세값 안정을 위한 각도에서 재조정해야 한다.

       
      
       
      

    전세값 폭등으로 위험에 처한 셋방사는 사람들을 보호할 대책도 시급하다. 전월세 가격 인상 상한제나 전월세 계약 기간을 실질적으로 10년 정도로 늘리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저금리 시대에 월세를 선호하는 집주인들이 전세를 월세로 돌리면서 과도한 임대료를 요구하지 못하도록 월세전환이율도 낮춰야 한다.

    5. 셋방 서민 울리는 서민정책 안돼야

    전세값이 오르자 일부 언론에서 그 원인을 주택공급 부족에서 찾고 이번 기회에 집을 더 많이 지어야 한다는 식으로 건설재벌을 대변하는 논리를 펴는 것은 사실에 맞지도 않고 의도도 불순하다.

    우선 집을 짓는데 최소한 몇 년이 걸리기 때문에 지금 당장 뛰는 전세값을 잡는 데는 대책으로서 한계가 뚜렷하다. 또 현재 주택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도 아니다.

    작년 말 현재 우리나라 주택보급률은 110%로 전체 국민이 가구당 한 채씩 내집을 갖고도 128만 채가 남아돌 정도로 집이 넘친다. 최근 미분양 주택이 사상최고를 기록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1인가구와 단독주택의 거처를 반영한 신주택보급률 역시 101%로 집이 남아돌긴 마찬가지다. 집이 부족하다는 서울 역시 신주택보급률이 94%를 기록했으며, 집계에서 뺀 주거용 오피스텔 수십만 채를 감안하면 이미 100%를 넘어섰다.

    집이 남아도는 데도 국민 열 중 넷 꼴로 셋방을 떠도는 이유는 집값이 터무니없이 비쌀 뿐 아니라, 혼자서 1,083채를 소유하는 등 소수 집부자들이 집을 독점하며 임대소득을 올리고 투기를 일삼기 때문이다. 문제는 주택부족이 아니라 투기와 소유편중인 것이다. 전월세값이 올라 이익을 보는 사람 중 상당수는 집을 두 채 이상 심지어 수십 채, 수백 채 소유하면서 임대소득을 올리는 집부자들이다.

    이미 충분히 공급된 집을 소수 집부자들이 독점해 이익을 보는 현실에 눈을 감고 무조건 집을 더 짓는 게 대책이 될 수는 없다. 더구나 집을 더 짓는다 해도 무주택자 보다 이미 집을 갖고 있는 여유 있는 사람들이 더 많이 사들여온 게 그동안 주택공급의 결과였다. 1990년에서 2005년 사이에 새로 공급된 주택 621만 채 중 41% 254만 채는 무주택자가 한 채 씩 사서 내집을 장만했지만, 59% 367만 채는 이미 집을 소유한 사람이 사들였다.

    그 결과 집을 두 채 이상 여러 채 소유한 다주택자는 1990년 43만 가구에서 2005년 105만 가구로 2.4배 불어났고, 이들이 소유한 주택수도 103만 채에서 469만 채로 4.6배 늘어났으며, 가구당 소유 주택수도 2.4채에서 4.5채로 불었다(필자의 블로그 글 ‘집은 어디로 갔을까’ 참조)

    물론 무주택자는 집을 사고 싶지만 집값이 터무니없이 비쌀 뿐 아니라 가진 게 변변치 않고 벌이도 시원찮아 도저히 살 수 없기 때문이다.

       
      ▲ 보금자리주택 예정 지구

    이명박 정부가 집없는 서민들을 위한 정책으로 임기 안에 보금자리 주택 32만 채를 시세 보다 싸게 지어 공급하겠다고 했지만, 셋방사는 사람 중 이 집을 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 드는 것도 같은 이유다.

    서민용 보금자리 주택 한 채가 3억대라고 한다. 3억이 넘는 집을 사려면 은행대출과 부모형제 도움 받는 걸 감안하더라도 최소한 종잣돈이 1억은 넘어야 엄두를 낼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집없이 셋방사는 사람 들 중 1억 이상 보증금을 내고 사는 사람은 4% 24만 가구에 불과하니 나머지 96%에겐 그림의 떡이다.

    과거 판교의 예에서 보듯 현재 정부가 발표한 분양가격이 그대로 유지될지도 의문이고 그린벨트를 파괴하는 것도 큰 문제다. 물론 셋방사는 사람들이 내집을 장만할 수 있게 돕는 정책은 필요하다. 그리고 내집마련 지원 정책의 핵심은 집값을 낮추는 동시에 소득을 높여야 한다. 그러자면 투기규제와 함께 비정규직, 동네 구멍가게, 재래시장 등 서민경제를 살려 먹고살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정작 집값을 끌어 올리고 서민들 먹고살기가 더 힘들게 하는 정책을 펴면서, 집만 많이 짓겠다니 과연 대다수 서민들로서는 헛물만 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보금자리 주택은 자칫 일부에게 ‘로또’를 안겨주고 건설경기를 부양해 건설재벌 좋은 일만 시켜주는 대신 투기를 일으켜 집값과 전세값을 더 끌어올릴 가능성이 크다.

    뿐만 아니라 보금자리 주택을 지으려는 서울의 강남구 세곡동과 서초구 우면동, 경기도 하남미사지구, 고양원흥지구는 다른 곳에 비해 셋방에 사는 가구가 훨씬 많고 특히 (반)지하방과 비닐하우스, 옥탑방 등에 사는 가구가 많은 게 특징이다.

    서울과 경기도의 전월세 가구 비율이 54%와 44%인 데 비해 이들 지역은 61%에 달하며, (반)지하방과 비닐하우스 등 거주 가구 비중도 서울과 경기도에서 12%와 6%인 데 비해 이들 지역은 무려 23%에 달한다(필자의 블로그글 ‘대통령 눈엔 왜 비닐하우스만 보였을까 참조’). 용삼참사와 수많은 뉴타운 재개발 공사처럼 또 다시 이들을 가혹하게 희생하려 할 경우 가장 처지가 딱한 서민의 보금자리를 파괴해 보금자리 주택을 짓는 결과가 될 것이다.

    6. 셋방 서민 처지에 맞는 주택정책을

    물론 지역에 따라서는 주택공급도 필요하고, 풍요로운 주거생활을 위해서 선진국 수준의 주택보급률을 목표로 삼는 것을 나무랄 일만은 아니다.

    그러나 반드시 집을 새로 지어야만 시장에 주택을 공급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주택 3채 이상을 소유한 집부자들이 투기목적으로 갖고 있는 집이 전체 주택의 20% 260만 채에 달한다. 집을 여러 채 갖고 투기를 하면 손해를 보도록 정책을 펴서 이 집을 소유하고 있는 것보다 파는 게 낫도록 한다면 시장에 나오는 집이 넘쳐 집값은 떨어지고 전세값도 안정될 것이다. 집값이 충분히 떨어질 때 중앙정부나 지방정부가 적절한 주택을 사들여 공공임대주택으로 활용한다면 재정도 적게 들고 후손에게 빌려온 환경도 파괴하지 않아 일석이조 효과가 있다.

    또 지역에 따라 집을 새로 지을 필요가 있다 해도 이미 주택보급률이 100%를 넘겨 집이 남아도는 시대의 주택공급은 과거와는 다른 목적과 내용, 방식이어야 한다. 이 때 중점을 둬야 원칙은 ‘집 없이 셋방 사는 사람들에게 무엇이 가장 도움이 되는가’이다. 그러자면 셋방 사는 사람의 처지에 맞는 맞춤형 공급이어야 한다.

    내집장만이 여의치 않은 보증금이 3천만 원도 안 되는 셋방에 사는 사람들, 이들을 포함해 5천만 원도 안되는 셋방에 사는 83%의 셋방 가구에게 필요한 건 내집이 아니라도 이사 갈 걱정 않고 전월세금 올려줄 걱정 없이 생활할 수 있는 집이다.

       
      

    최근 20년 동안 주변 시세보다 훨씬 싸게 살 수 있는 시프트 주택이 인기를 끌고 있지만 현재까지 불과 6천 채밖에 짓지 않아 경쟁률이 최고 128대 1에 달하고 있다. 시프트주택, 국민임대주택, 매입형임대주택 등 공공임대주택의 종류는 다양하고 형태에 따라 장단점이 있지만 셋방 사는 사람들에게 집 걱정에서 헤어날 가장 현실적인 대안인 점만은 분명하다.

    네덜란드는 전체 주택의 36%가 공공임대주택이고 대부분 선진국이 20% 안팎을 공공임대주택으로 공급해 집없는 서민에게 최소 30년 계약 기간으로 빌려주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2007년 말 기준으로 전체 주택의 3.7%에 그치고 있다. 역대정권이 집없이 셋방사는 서민들 처지에 맞는 정책을 펴지 않은 결과다. 그나마 노무현 정부 들어 정부가 짓는 주택은 공공임대주택을 중심으로 공급하겠다는 방향을 잡아놓아서 사정이 좀 나아질 것 같았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지난해 9.19대책에서 이걸 뒤집어 분양 중심의 주택공급정책을 펴겠다며 공공임대주택을 뒷전으로 밀어냈다. 그 결과가 보금자리 주택 공급정책이다. 이런 일이야 말로 집 없는 서민을 울리는 정책이다.

    주택보급률 100% 시대의 주택공급은 집없는 서민 처지에 맞는 공공임대주택이 중심이 되어야 하며, 분양주택을 공급할 경우라 하더라도 서민용 소형저렴주택이어야 하며 환매조건부 공급 등 로또가 되지 않게 하는 정교한 장치가 뒷받침돼야 한다.

    7. 서민을 모르거나 이용하거나

    이명박 정부가 서민정책이라며 내놓은 정책이 서민들 처지에 맞지 않는 이유는 뭘까. 아마도 강남부자 정권이란 말처럼 서민의 처지를 잘 몰라서이거나, 서민들의 내집마련 꿈을 이용해 부동산 투기 부양책을 쓰려는 나쁜 의도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이명박 대통령의 과거와 현재의 산물인 ‘이명박 전세폭탄’을 미래의 이명박 정부가 해결하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할 지도 모른다.

    문제는 이명박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비판하고 서민이 집 때문에 고통받는 책임을 모두 이명박 정부에 돌리는 것으로 해결되기 어렵다는 데 있다. 부동산 정책에서만큼은 권위주의 정부나 민주정부 할 것 없이 가격 동향에 따라 냉온탕 정책을 되풀이했을 뿐, 서민 처지에 맞는 제대로 된 정책을 펴지 못해왔다.

    외환위기 직후 김대중 정부의 부동산 경기부양 정책은 물론이고 노무현 정부가 정권을 내놓아야 했던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부동산 정책 실패에 있다는 사실은 덮기 어려운 뼈아픈 실책이다. 현재 민주당은 이명박 정부의 전세대란을 비판하며 전월세 5% 상한제 등의 대안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세입자 보호 방안은 오래 전부터 제시돼온 것으로 자신들이 집권할 때는 외면하다가 야당이 되니까 주장하는 것은 진정성이 떨어진다. 또 누구보다도 집없는 서민을 대변해야 할 진보정치세력 역시 진정성과 실력 모두 매우 부족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어쩌면 이명박 정부는 그 내용이 문제여서 그렇지 나름 확고한 부동산 철학이 있 다고 할 수 있지만, 민주개혁세력이나 진보세력은 부동산 문제에 대한 독자적인 철학과 정책, 실행계획이 매우 부족한 게 현실이다. 스스로 이 점을 뼈아프게 돌아보지 않고는 한 발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것이다.

    셋방사는 가구의 절반이 2년에 한 번씩 이사를 다니고, 이들을 포함한 82%가 5년도 안 돼 이삿짐을 싸고 있다. 부모야 집없는 서러움을 가슴에 삼킬 수 있다지만 초등학교조차 두 번 세 번 전학 다녀야 하는 셋방사는 부모를 둔 자식이 감당해야 하는 아픔은 우리 사회 모두가 책임져야 할 일이다.

    셋방사는 1,666만 명이 뿌리 뽑힌 잡초처럼 2년에 한 번씩 떠돌아다니는 고달픈 현실에게 벗어날 길은 정녕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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