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또는 국가승인 없는 국가대표
By mywank
    2009년 09월 04일 10:1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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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국가대표> 포스터

미국으로 입양되었던 소년이 청년이 되어 돌아와 낳아준 엄마를 찾으면서 시작되는 <국가대표>는 가족-민족-국가로 이어지는 상상의 소속감과 책임감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출발한다.

 

돌아온 청년의 미국 이름은 밥, 한국 이름은 차헌태(하정우). 살가운 보살핌을 받았던 미국의 가정에서 밥으로 지내면서 주니어 알파인 스키 미국 국가대표까지 지냈던 그가 왜 스키를 그만 두게 되었는지 짐작은 가지만 분명하지는 않다.

밥의 엄마찾기는 미디어를 창구로 하고, 그런 밥에게 다가온 이는 엄마가 아니라 아직 실체도 없는 스키점프 국가태표팀 코치(성동일)다.

올림픽 메달, 아파트 그리고 군 면제

방코치는 생경한 종목을 지도할 코치로서도, 국가대표팀을 책임지고 운영할 스포츠 행정가로서도, 자신의 가족을 책임질 아버지로서도 뭐 하나 믿음직한 구석이 없는 인물이지만 밥에게는 엄마를 찾을 유일한 동아줄이 된다. 그 동아줄에 밥이 엮이고, 밥만큼이나 신세 처량한 청년들이 줄줄이 엮인다.

고교 시절 나름 앞길 창창한 스키 선수였으나 약물 복용으로 메달을 박탈당하고 나이트클럽 웨이터로 껄렁대며 지내는 흥철(김동욱), 고깃집 아들로 숯불 붙이고 음식 나르는 사이 종업원 조선족 아가씨와 정분이 난 재복(최재환), 생활력없는 할머니와 모자란 동생을 책임지느라 고단한 삶에 찌든 칠구(김지석), 해맑게 웃는 것 말고는 제 앞가림하기에 한참 모자라는 칠구 동생 봉구(이재응)가 방코치의 동아줄에 엮여 스키점프 ‘국가대표’팀을 꾸린다.

밥이 엄마를 찾기 위해 필요한 것은 함께 살 아파트, 임신한 애인 때문에 또는 생활력 없는 할머니와 동생 때문에 재복과 칠구에게 필요한 것은 군대 면제, 그저 여자만 밝히는 흥철에게 필요한 것은 예쁜 애인.

도전해보자니 위험천만하기 짝이 없고, 일단 시작해보자니 여건조차 변변하지 않은 상태에서 ‘국가대표’는 각자에게 필요한 것을 모두 주겠노라고 약속한다. 올림픽 메달만 따면 나라가 아파트를 내어줄 터이니 엄마를 찾아 함께 살 수 있고, 군대도 면제가 될 터이며, 행실은 의혹투성이지만 외모 하나는 빼어난 방코치의 딸이 근사한 애인도 되어줄 터이다.

참 희한하게도, 그래서 영화적으로는 너무 당연하게도 방코치의 딸을 비롯해 국가대표팀에 엮인 청년들 모두 엄마가 없다. 잃어버린 엄마가 되었든,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의 엄마가 되었든, 힘든 삶의 굴레를 벗겨줄 모국이 되었든, 아버지로서의 현실 권력을 통하지 않고는 도달할 수 없는 것이 어머니로서 ‘국가’다.

 

   
  ▲ 영화의 한 장면

 

어머니 부재

국가대표가 되어 국제대회에 나서야만 아버지로부터 승인받을 수 있고, 아버지로부터 승인받아야 가족/민족의 일원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는 모진 현실을 받아들인 청년들의 훈련은 고되기 짝이 없다.

비인기 종목, 그것도 아직까지는 국내에 있지도 않았던 새로운 종목, 그저 동계올림픽을 한국에 유치하기 위해 대외적으로 명목상 필요한 종목인 스키점프는 국가대표팀 각자에게는 무엇보다도 가족 찾기, 지키기, 만들기 프로젝트다.

훈련시설도 재정지원도 변변치 않은 국가대표팀이지만 목표가 절실한만큼 노력도 대단하다. 그래서 흘린 땀에 행운이 보태져 바라던 올림픽 출전 자격을 따냈건만 막상 아버지/국가의 반응은 냉담하기만 하다.

아버지/국가가 원했던 것은 선수들 각자의 간절한 꿈을 이루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동계올림픽 유치였기에 그 대의가 무산되는 순간 올림픽 출전 자격을 따낸 국가대표팀이고 뭐고 간에 헌신짝처럼 버려진다.

이 지점에서 불거지는 것은 ‘자유’의 문제다.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 개념인 자유. 역사적으로 자유의 개념은 민주주의의 발전과 더불어 변화해왔다.

근대 이전, 혹독한 전제정치를 벗어나려던 초창기에는 모든 평등한 개인이 권력으로부터 억압당하고 착취당하지 않을 ‘국가로부터의’ 자유. 그런 소극적 자유로부터 나라의 주인으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주체로서의 민주시민이 국가의 정책 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적극적인 자유로서의 ‘국가에의’ 자유.

 

   
  ▲ 영화의 한 장면

 

그리고 이제 필요한 것은 ‘국가에의’ 자유. 사회적 약자도 자신이 하고자하는 것을 당당하게 국가에 요구하고, 살고자 하는 국가에서 살 수 있는 그런 자유, 국민의 삶에 복지와 행복이 가장 우선되는 나라를 이루어 그곳에서 살려는 자유.

국가, 민족주의, 자유

<국가대표>는 사회적 약자인 청년들로 구성된 국가대표팀의 도전기를 통해 스포츠를 소재로 하는 많은 영화가 국가라는 상징과 만났을 때 쥐어짜내기 쉬운 애국주의나 민족주의가 아니라 ‘자유’가 국가라는 실체와 얼마나 밀접한 관계가 있는지를 보여준다.

함께 살아야 마땅한 가족이 흩어져 살도록 만드는 나라, 하고자 하는 운동을 제 아무리 열심히 해서 태극마크를 가슴에 달더라도 ‘국가’의 승인이 없이는 운동을 계속하기는커녕 삶을 꾸려나가는 것조차 어렵도록 하는 나라는 자유로운 민주국가가 아니다.

간신히 ‘국가대표’의 이름으로 세계대회에 나가더라도 크게 전시효과 없는 종목이면 자기 주머니 털어 훈련하고, 참가비 내서 가든지 말든지 알아서 하라는 금전만능의 세계화를 외치는 신자유주의 국가. 이런 나라에서 개인이, 그 중에서도 사회적 약자가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 지를 영화 <국가대표>와 영화의 모델이 된 실제 스키점프 국가대표팀은 온몸을 부딪쳐 보여준다.

아찔한 도약대에 온몸을 던지기까지의 고난과 두려움을 겪어내고야 누릴 수 있는 것이 하늘을 날아가는 자유라는 것을 보여주는 영화 <국가대표>는 국가가 승인했을 때야 인정받는 것이 국가대표가 아니라, 아무리 어렵고 힘든 처지에 있더라도 우리들 각자가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려 애쓸 때 국가를 상대로 당당한 대표가 될 수 있다는 기본적인 자유의 권리를 일깨운다.

 

   
  ▲ 영화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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