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금도 국가재정이다
        2009년 08월 24일 02:3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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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박 정부가 내년에 주요 민생예산을 삭감해 사람들의 분노를 자아내고 있다. 부자들 세금은 깎아주고 4대강 사업에 목돈을 사용하려는 바람에 힘없는 복지예산에 불똥이 튄 것이다. 필자는 지난 달 이를 우려하는 글을 언론에 기고한 적이 있다.

    연금공단의 항의, "우린 국가재정이 아니다"

    “(내년) 복지지출액은 82조1천억원으로 올해 80조4천억원에 비해 겨우 1조7천억원 늘어난다. 이 증가분도 국민연금 급여 증가액 1조5천억원을 충당하면 금세 동이 난다. 기초노령연금, 기초생활급여, 건강보험 등 자연 증가할 사업들은 더 있다. 결국 자연 지출 증가분을 메우기 위해선 현재 정부의 249개 복지사업 중 상당수 삭감 조치가 행해질 수밖에 없다.” (경향신문 2009. 7. 27 ‘복지축소 아닌 직접세로 풀어야’)

       
      

    이 기고글이 저녁 인터넷판에 올라간 후 언론사 편집부에서 급하게 필자를 찾았다. 연금공단이 기사내용에 항의하며 정정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공단의 주장을 정리하면 대략 이러했다.

    ‘내년 연금지출이 1조5천억 증가하는 건 맞다. 하지만 이 지출분은 가입자 보험료로 적립된 연금기금에서 마련된다. 기사는 국고에서 지원되는 공무원연금을 국민연금으로 혼동하고 있는 것 아닌가.’

    아마도 연금공단은 이 기사가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을 더 키울까 우려했을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연금공단의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어디서 혼란이 생기고 있는가?

    답은 ‘기금’에 있다. 연금공단은 국민연금기금의 지출이 국가재정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생각한 것 같다. 국민연금기금은 세금이 아니라 가입자의 보험료로 재원을 조성하고, 연금공단이라는 공공기관을 통해 자동으로 연금을 지급하기 때문이다.

    연금공단을 탓할 일은 아니다. 그만큼 현재 우리나라 국가재정체계가 뚜렷하게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지 않은 것이다. 

    기금의 전성시대

    국가재정은 한 사회의 공적 주체가 운용하는 재정으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재정을 합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국가재정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편성하고 국회와 지방의회가 심의하는 돈이라는 의미에서 보통 예산으로 불리었다.

    지난 반세기 우리나라 국가재정의 기본틀은 1961년 제정된 예산회계법에 기초해 왔다. 그런데 이 법은 일반회계와 특별회계만을 다루고 기금은 다루지 않는다. 기금이 그다지 존재하지 않았던 시대를 반영한 것이었다.

    그런데 점차 기금이 공적 재정의 중요한 주체로 등장했다. 국가지출 영역이 다양해지면서 기금의 종류와 규모가 증가했다.

    몇가지 예를 보면, 국민체육을 지원하기 위한 국민체육진흥기금(1972), 주택사업 활성화를 위한 국민주택기금(1981), 국민연금제도 도입에 따른 국민연금기금(1988),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남북협력기금(1991), 자유무역협정에 따른 농민 피해 지원을 위한 자유무역협정이행지원기금(2004) 등 여러 기금들이 신설되고 규모도 커지고 있다. 2009년 현재 기금의 수는 63개이다. 가히 ‘기금의 시대’로 불리울 만하다.

    기금, 국회 심의를 받는 국가재정으로 통합되다

    오래 전부터 기금이 관련법에 따라 설치되고 지출되며 국가조직에 의해 관리된다는 점에서 ‘공적 재정’으로 다루어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이에 1991년 기금관리기본법이 제정되었다. 예산당국이 기금을 종합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법적 기초가 마련된 것이다.

    하지만 이 때에도 기금은 여전히 국회 심의를 받지 않는 돈으로서 행정부의 내부관리 대상으로 머물렀다. 공적 재정이 국회 심의 없이 행정부에 위임되는 위험한 일이 계속된 것이다.

    마침내 2002년 기금관리기본법이 개정되어 기금이 국회 심의 대상으로 포함되었다. 2006년에는 예산과 기금이 각각 다른 법에 주소를 둘 이유가 없다는 점에서 예산회계법과 기금관리기본법을 통합해 국가재정법이 제정되었다.

    이제 국가재정은 일반회계, 특별회계, 기금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정부의 행정 용어로는 일반회계, 특별회계를 합친 것이 예산이고, 여기에 기금이 더해지면 총지출이다. 그래서 정부는 매년 국회에 제출하는 국가재정 요구안을 ‘정부총지출’로 명명한다. (지금까지 국가가 주관하는 재정을 예산으로 불러왔다는 점에서 일반회계, 특별회계, 기금을 모두 합하여 광의의 예산으로 부를 수도 있다. 이 연재도 서술 맥락에 따라 국가재정 전체를 예산으로 표현하기도 할 것이다).

       
      

    <표>를 보면, 2009년 우리나라 중앙정부 총지출 규모는 301.8조원이다. 이중 일반회계와 특별회계를 합친 예산이 210.3조원이고 기금이 91.5조원이다.

    복지 지출 대부분 예산 아니라 기금에서

    예를 들어, 올해 중앙정부 총지출 중 복지 분야가 80.4조원이다. 이 중 국민연금기금, 고용보험기금, 임금채권기금, 국민주택기금 등 기금에서 지출되는 금액이 무려 54조원이다. 복지지출 대부분이 예산이 아니라 기금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다시 앞에서 언급한 기고글로 돌아오자. 지난달 정부가 발표한 2010년 복지지출 요구안 82조 1천억원은 일반회계, 특별회계, 기금 지출을 모두 포함한 금액이다. 내년 증가분 1.7조원에는 당연히 국민연금법에 의해 자동적으로 정해지는 연금지출 자연증가분 1.5조원이 들어 있다(올해 7.7조원 -> 내년 9.2조원).

    그런데 국민연금 이외에도 기초노령연금, 건강보험, 장기요양보험 등 자연증가하는 복지지출이 더 있다. 이에 필자는 정부가 공개한 복지지출 82.1조원 한도를 감안하면, 정부가 정책의지로 추진하는 다른 사회복지 지출이 대폭 삭감되었을 것이라고 추정한 것이다.

    실제 이후 밝혀진 정부 요구안 내역을 보면 기초생활급여, 긴급복지, 공공보건의료 등 취약계층을 위한 지출이 줄어 있다.

    MB, 기금 통해 재정지출 늘려

    현재 기금 역시 예산처럼 관련법에 의해 재원이 마련되고 지출되는 공적재정이다. 매년 일반회계, 특별회계와 함께 국가재정으로 통합되어 국회심의를 받고 있다.

    하지만 국가재정이 예산과 기금을 모두 포괄하게 됨에 따라 정부총지출 구조를 이해하는 데에 주의가 요구된다. 앞의 <표>를 보면, 올해 이명박 정부의 총지출이 작년에 비해 14.8% 증가하였지만, 예산증가율은 12.3%이고, 기금의 증가율이 21.2%이다. 조세수입을 기반으로 하는 예산의 증가율보다는 특정한 재원을 가지고 있는 기금의 증가율이 2배에 달한다.

    이명박 정부의 2009년 재정 확장이 조세를 통해 마련되는 예산보다는 이미 보험료나 부담금으로 조성되어 있는 기금에 상당히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국가재정을 이야기할 때, 기금을 눈여겨 보아야 한다. (다음 글에서 일반회계, 특별회계, 기금에 대한 비교 정리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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