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 공포, <전설의 고향> CG
    2009년 08월 21일 01:4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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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량 특집드라마 <전설의 고향>이 기대 이하의 성적을 거두고 있다. 여기에 대한 평가는 사람마다 각각일 수 있겠다. 하지만 거의 모든 사람에게 지적당하는 것이 있다. 바로 CG의 문제다. <전설의 고향> CG에 대한 민심은 아래의 기사 제목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전설의 고향’ 어설픈 CG논란
차라리 하지 말지 … ‘전설의 고향’ CG 실소
‘전설의 고향’ 스토리는 좋았는데 … ‘CG엔 실소’
‘한국적 공포지만 CG는 별로’

의욕적으로 투입된 특수효과가 오히려 몰입을 방해한다는 것이 <전설의 고향> CG에 대한 반응이다. 명색이 드라마 왕국이라는 나라의 납량 특집극인데 이런 정도의 CG밖에 나올 수 없는가라는 한탄도 있다.

이에 대해 KBS의 비정규직(연봉계약직) 사원 해고 사태와 <전설의 고향> CG 질 저하 사태가 연관이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의욕적으로 투입된 특수효과가 오히려 몰입을 방해한다는 것이 <전설의 고향> CG에 대한 반응이다. 명색이 드라마 왕국이라는 나라의 납량 특집극인데 이런 정도의 CG밖에 나올 수 없는가라는 한탄도 있다. 이에 대해 KBS의 비정규직(연봉계약직) 사원 해고 사태와 <전설의 고향> CG 질 저하 사태가 연관이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KBS는 최근 일부 계약기간이 만료된 연봉계약직 사원들의 계약을 해지한 바 있다. <전설의 고향> 관계자는 “CG 업무를 담당해온 직원의 해고로 전문기술이 부족한 인력이 투입됐다”라고 말했다 한다. 그렇다면 어설픈 CG는 비정규직의 저주였던 셈이다.

리얼 공포, 비정규직의 저주

<전설의 고향>은 공포의 수준이 기대에 못 미친다는 소리를 들었었다. 그러나 반전이 있었다. 내용과 상관없이 <전설의 고향> 작품 자체가 공포였던 것이다. 공포도 보통 공포가 아닌 초특급 리얼 공포다.

<전설의 고향>은 당대에 가장 고통 받았던 사람들의 한을 귀신으로 형상화해 공포를 만들어낸다. 조선시대에 가장 고통 받았던 사람들은 당연히 여성이다. 그래서 <전설의 고향>은 ‘아씨’나, ‘계집종’, 혹은 ‘엄마’의 한을 자주 표현한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당대에 가장 고통받는 사람들은 비정규직이다. 이들에게 그 고통이 응축된 순간은 바로 잘리는 순간이다. 이때 한이 발생한다. 그 한이 <전설의 고향> CG에 서려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이 얼마나 무서운 이야기인가? 몇 백년 전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순간의 한이다. <전설의 고향> 역대 최고의 공포라 할 만하다.

비정규직, 노동유연화를 한사코 확산시키려는 사람들이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단어가 바로 ‘국가경쟁력’이다. 그들은 철밥통 정규직 체제는 결코 경쟁력을 가질 수 없다고 말한다. 노동자는 그저 일회용 이쑤시개처럼 쓰다 버리는 존재로, 잘릴 공포 속에 벌벌 떨 때 스스로 열심히 채찍질하게 되어 경쟁력이 상승한다고 그들은 말한다.

우리는 새로운 전설을 만들고 있다

하지만 드라마왕국의 것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어설픈 <전설의 고향> CG가 말해주는 것은 무엇인가? 사람 자르는 것 좋아하면 그 분야에 대한 숙련성이 떨어지고, 결국 비웃음을 사는 품질이 나온다는 사실이다. 품질이 떨어지는데 어떻게 기업이 살며, 어떻게 국가경쟁력이 살겠는가?

LG경제연구원은 2008년 보고서에서 비정규직 노동자의 비율이 높을 경우 기업 성과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한 바 있다. OECD도 비정규직이 노동생산성을 떨어뜨린다고 했었다. 당연하다 비정규직은 언제 잘릴지 모르는, 말하자면 뜨내기인데 어떻게 그 기업의 일에 몰입할 수 있으며, 숙련성을 높여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 있단 말인가?

OECD는 2008년 한국경제 보고서에서 비정규직의 급격한 증가가 한국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도 했었다. 얼마 전에 일본의 최고급 카메라에 기술적 결함이 생겨 큰 화제를 모았다. 그 원인도 외주 하청, 파견노동 등 기존의 노동체제를 흔든 것에 있다고 지적됐었다.

사람 귀한 줄 알아야, 그 사람이 결국 귀한 기술을 익혀 좋은 생산물을 만들게 된다. 그런 사회에선 당연히 ‘한’도 사라질 것이다. 전통적으로 노동자를 귀하게 여긴 독일과 일본은 세계 최고의 기술경쟁력을 갖게 됐는데 반해, 노동자를 하루살이로 대한 미국의 제조업은 지금 붕괴상황이다. 이런데도 한국은 노동유연화가 국가경쟁력을 올려줄 거라 말하고 있다. 경쟁력은커녕 ‘한’만 생겨날 것이다.

귀한 대접을 못 받은 사람들의 한이 <전설의 고향>의 내용이다. 노동유연화는 노동자를 인간 이하로 여기는 발상이다. 이러다간 비정규직의 저주가 드라마의 CG가 아닌, 한국 사회의 귀곡성으로 엄습할 것이다. 우린 100년 후 한국인이 보게 될 비정규직의 저주라는 전설을 만들어가고 있다. 아마 잘린 비정규직의 마지막 CG에서 귀신이 튀어나온다는 내용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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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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