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혼>, <꽃보다남자>의 허위를 벗기다
        2009년 08월 06일 10:48 오전

    Print Friendly
       
      ▲ MBC의 납량특집드라마 <혼>

    MBC의 납량특집드라마 <혼>이 시작됐다. 1회는 학교를 배경으로 한 학원공포물의 구도였다. 전교 회장과 부회장 사이의 석차 암투, 왕따, 학원폭력, 자살 등이 등장한다. 영상의 ‘때깔’도 아주 좋다.

    이쯤 되면 <꽃보다 남자>가 떠오른다. <꽃보다 남자>도 왕따와 폭력, 자살 등이 등장하는 아주 화사한 ‘때깔’의 드라마였다. 여기에서 왕따, 폭력과 자살을 목격한 정의파 여주인공은, 그 폭력의 원흉인 남학생과 눈이 맞아 ‘행복하게 잘 산다’. 국민은 그 둘의 사랑을 응원한다. 왜? 그 남학생이 잘 생기고 돈이 많아서.

    그렇게 생기지 못하고, 돈도 없는 학생이 폭력의 희생물이 되고 자살을 하건 말건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러나 여주인공이 한 대라도 맞으면 모두가 분노한다. 드라마 속의 왕따에 시청자도 참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꽃보다 남자> 현상은 그 자체로 거대한 공포극이었다.

    하지만 <꽃보다 남자>라는 작품은 화사하고 경쾌하기만 했다. 모든 것이 예뻤다. 구조적인 폭력성이 완전히 가려질 만큼. 잔혹한 현실을 ‘뽀사시’ 필터로 가린 드라마였던 것이다. 

    뽀사시’ 필터를 빼버린 <혼>

    찰리 채플린은, ‘멀리서 본 인생은 희극이고 가까이서 본 인생은 비극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꽃보다 남자>가 학교를 멀리서 봤다면, <혼> 1회는 같은 상황에 가까이 다가갔다.

    ‘뽀사시’ 필터를 깨버린 것이다. 맨 렌즈로 확대한 왕따와 폭력, 자살은 잔혹하고 섬뜩했다. <혼>의 여주인공도 <꽃보다 남자>의 여주인공처럼 왕따와 폭력, 자살을 목격하지만, 그 원흉인 회장과 행복한 사랑에 빠지지 않는다. 대신에 귀신에 빙의돼 끔찍한 공포를 겪는다. 이편이 훨씬 리얼하다.

    학교가 낭만적인 사랑과 해피엔딩의 공간이 아닌, 잔혹한 폭력과 섬뜩한 공포의 공간으로 그려지는 점도 훨씬 현실에 가깝다. ‘뽀사시’ 필터를 빼고 본 우리의 학교는 공포 그 자체라 할 것이다.

    끊임없이 등장하는 학원공포물

    자살, 폭력, 왕따, 혹심한 경쟁 등 한국의 학교는 이미 사람이 있을 곳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학교에 아이를 보내기가 무섭다는 부모가 점점 늘고 있다. 물론 아이들도 학교를 탈출하고 있다.

    학교가 끊임없이 공포물의 배경이 되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우리 전설 속에서 귀신물의 배경으로 서당이 등장하는 경우는 없다. 그땐 입시경쟁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린 학교가 지옥으로 변해가는 시대를 살고 있다. 학원공포물은 귀신을 빌어 이런 시대를 표현한다.

       
      ▲ 드라마의 한 장면

    왕따와 폭력과 악플로 공격성을 표출하며 아이돌에게 괴성을 질러대는 우리 아이들은 점차 악귀처럼 변해가고 있다. 악귀처럼 변해가는 아이들과 숨 막히는 학교를 상징하는 것으론 귀신만한 게 없다. 아이들은 그들이 처한 조건이 무섭고, 사회는 그런 아이들이 무섭다.

    여고생은 특히 감수성이 예민한 존재다. 그러므로 불안과 스트레스에도 취약할 수밖에 없다. 불안한 군중은 공포의 괴담에 휩쓸리길 좋아한다. 불안상태에 빠진 미국인들이 테러의 공포, 후세인 괴담에 열광했듯이, 한국의 여고생은 괴담의 공포에 열광한다. 이것은 좋은 소재이기도 하고, 동시에 좋은 시장이기도 하다. 하여 여고생이 등장하는 학원공포물이 끊이지 않는 것이다.

    학원공포물은 영원하다

    지금 우리 정부는 일제고사 등으로 경쟁교육을 강화하고, 승자가 모든 것을 누리는 냉혹한 차등구조를 강화하고 있기 때문에 학교는 점점 더 지옥으로 변해갈 것이다. 경쟁에 뛰어드는 나이가 어려지고 있으므로 인간성이 보다 효율적으로 거세돼, 폭력성도 점점 강화될 것이다. 따라서 학원공포물은 앞으로도 영원히 번성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 교육정책은 학원공포물 육성정책인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MBC가 납량특집극으로 학원공포물의 설정을 잡은 것은 현명한 선택이었다. 학교에서 벌어지는 공포극에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것이므로.

    <혼> 1회는 우월한 ‘때깔’과 역동적인 전개, 차별성 있는 여주인공의 이미지로 기대감을 안겨줬다. 다만 전통 한국식의 심장이 오그라드는 공포극을 원했던 사람들에게는 실망이 있을 수 있겠다. 일본식 귀신과 미국식 활극 공포의 느낌이 추가된 분위기였다.

    앞으로 활극의 느낌이 강해진다면 일반적인 흥행작이 될 것이고, 학생들의 불안을 섬세하게 그려내면서 심리적인 공포를 느끼도록 한다면 <혼>은 <여고괴담>처럼 시대를 가른 작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필자소개
    레디앙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