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 직접행동, '거리 의회' 구성하자
    2009년 07월 23일 10:0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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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의회주의자라고 생각해왔다. 모든 사회적 갈등과 대립을 의회 안으로 수렴하는 체제를 이상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모든 사회적 갈등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계급 갈등이었는데 현실의 의회는 이 계급 갈등이 전혀 수렴되지 않는 체제였다. 그래서 한국의 의회가 제대로 의회 노릇을 하려면 특정 계급의 이해를 대변하는 진보정당의 의회 진출이 꼭 필요하다고 보았던 것이 나의 생각이었다.

운동장을 넓게 쓰는 의회주의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원내 정치에만 매몰되어 모든 것을 의회 안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빠질 필요는 없다. 그것은 의회근본주의이다. 원래 의회란 장소적 개념이 아니다. 마치 ‘시장’이라는 개념이 장소적 개념의 ‘도깨비 시장’과 구분되듯이 의회도 장소로써의 ‘동그라미’ 안으로 국한 되는 것이 아니다.

물론 명색이 의회주의자이니까 궁극적으로는 의회가 사회적 갈등 수렴의 최고 정점에 존재하는 체제를 소망하지만, 시시때때로 우리가 ‘원내’라고 부르는 일종의 동그라미를 넘나들며 안팎의 역학관계를 재확인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의회이다.

   
  

나는 이렇게 운동장을 넓게 쓰는 의회주의를 ‘역동적 의회주의’ 라고 부른다. 역동적 의회주의는 이미 폭넓게 적용되고 있다. 한나라당도 때로 거리로 나가 장외투쟁을 벌였었다.

그럼 왜 이런 역동적 의회가 필요할까? 그것은 시차 문제 때문이다. 즉 모든 의회는 원내에서 숫자로 표현되는 역학관계와 원외에 존재하는 여론관계의 불일치가 일상적으로 발생한다.

이론적으로 이상적인 의회는 구성될 당시 국민 의식 내부에 형성된 역학관계를 그대로 반영해서 구성된다. 예를 들어 총 국민의식이 부유세 찬성 70%, 부유세 반대 30%로 구성되어 있다면 그에 맞게 의회도 부유세에 찬성하는 의원 70명, 반대하는 의원 30명으로 구성되어야 하는 것이다.

시차의 불일치

그러나 설사 그런 의회가 구성되었다 해도 시차가 발생한다. 2008년에 구성된 의회는 당시의 국민적 역학관계를 반영해서 구성된다 해도 2009년 시점에서 대다수 국민이 반대하는 미디어 관계법을 국회 안의 다수당이 통과시키는 상황이 발생한다. 즉 2008년 상황을 반영해 형성된 의회는 2009년 국민 의식 내부의 역학관계와 전혀 다른 결론을 내린다.

국회 안에서 ‘표결 외의 수단’이 동원되는 이유는 이 불일치 때문이다. 숫자상 원내 역학관계가 그대로 적용되면 국민의 다수 의견과 다른 결과가 나오기 때문에 이를 저지하기 위한(혹은 일치시키기 위한) 별도의 수단이 동원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의회 내부의 역학관계와 동그라미 밖에 존재하는 국민의식 속의 역학관계 사이에 심각한 괴리가 발생했을 경우 이 괴리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형식상 의회를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특히, 7월 국회를 보고 의회를 포기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시점이 동그라미 안에 만들어진 형식적 의회를 포기하고 거리공간에서 임시 의회를 창출해야 할 시점이다.

원래 지도력이란 시련을 통해 형성되는 것이다. 과거 3김 시대의 지도자들은 한 번에 수십 만 명씩의 군중을 모으곤 했었다. 이후 이런 역량이 나온 적은 없었다. 이번에 우리는 야당과 언론이라는 조직된 영역이 조직되지 않은 대중운동과 만나 좀 더 거대한 폭발력을 동원해야 한다. 그것은 새로운 지도력을 형성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더 이상 국정감사를 고민할 필요가 없다. 민중의 직접행동으로 새로이 역동적 의회를 구성해야 한다. 때로 의회를 포기하는 것이 의회주의자의 미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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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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