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릎팍 한비야가 불편한 이유
        2009년 07월 17일 10:5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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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적으로 한비야의 내면세계를 잘 아는 것도 아니고, 그녀에 대해 악감정이 있는 것도 아니다. 아마도 그녀는 순수하고 따뜻한 영혼의 소유자인 것 같다. 이 척박한 아귀다툼의 세상에 그런 삶이 있다는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다.

    문제는 그것의 사회적 의미다. 한비야 개인과 상관없이 그녀의 이름과 행적이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무릎팍도사>에 한비야가 출연한다고 한다. 이미 출간활동을 통해 스타가 된 그녀는 <무릎팍도사>를 통해 더욱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시청자는 아마 한비야를 보며 따뜻한 감동을 받을 것이고, 그녀가 상징하는 가치를 한국사회의 젊은이들은 내면화할 것이다.

    그게 불편하다. 한비야 개인의 순수함, 훌륭함과 상관없이 한비야 현상의 사회적 의미는 좋게 해석될 수가 없다. 한비야 현상이 확대재생산 되는 것도 경계할 일이다.

    해외여행과 국제적 빈민 구호의 낭만

       
      

    한비야는 1990년대 중후반에 국제적 오지여행가, 세계 일주 여행가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세계여행가라든가 여성여행가 등의 타이틀이 생기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부터다. 그녀는 그후 ‘배낭여행의 사부’라는 칭호를 선사받으며, 젊은이들의 폭발적인 해외여행러시 시대의 상징이 되었다.

    해외여행은 낭만, 해방, 일탈 등을 의미한다. 1980년대에 한국의 빈민과 한국의 정의를 위해 사회구조를 개혁하라고 짱돌을 던졌던 20대들은, 1990년대에 낭만과 일탈을 꿈꾸며 배낭을 꾸리기 시작했다. ‘한비야’라는 명사는 그런 시대를 상징하는 것이다.

    그다음 한비야는 국제난민운동가, 국제구호활동가 등의 타이틀로 알려졌다. 제3세계의 빈민들을 돕는 숭고한 성자가 된 것이다. 굶고 병든 제3세계의 아이들을 인도적으로 지원한다는 휴머니즘은 누구도 돌을 던질 수 없는 절대적 가치다. 그에 따라 한비야 현상엔 도덕적인 정당성까지 확보됐다.

    역동적인 20대들이 1990년대에 해외여행 화보와 여행기를 보며 낭만적인 몽상에 에너지를 소모해버리는 사이, 한국엔 빈민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불과 몇 년 안 지나 20대 자신도 더 이상 낭만을 추구할 수 없는 척박한 환경에 놓이게 됐다. 폭발적으로 커진 빈곤의 영역에 진입하지 않기 위한 스펙경쟁이 강화되고, 몽상가들의 무저항 탓에 등록금이 올라 절박한 학비벌이를 시작해야 했던 것이다.

    한국 안에서 양극화가 심화될 때 전 지구적으로도 양극화가 심화됐다. 1990년대 이후 신경제라며 호황을 누리는 제1세계와 제3세계 빈민의 차이는 더욱 드라마틱하게 벌어졌다. 상상을 초월하는 빈곤과 병마에 시달리는 제3세계 빈민의 모습은 점점 더 ‘스펙타클’해졌고 ‘포토제닉’해졌다. 여행가들이 전해주는 그들의 모습엔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힘이 있었다.

    이 대목에서 해외를 향한 낭만적 동경과 휴머니즘이 만난다. 젊은이들의 몽상에 인도적 가치가 합쳐지면 막대한 에너지가 발생한다. 그 에너지가 국내가 아닌 해외로 향할 조건이 형성된 것이다. 이런 구도를 상징하는 이름이 또한 국제구호활동가로서의 ‘한비야’다.

    구호와 선행으로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국제적 빈민구호는 기부, 선행, 복지재단 등을 떠올리게 한다. 미국의 부자와 대중 스타가 좋아하는 일들이다. 미국 팝스타들의 난민돕기, 헐리웃 스타들의 난민돕기, 부자들의 복지재단 기부 등은 세계적인 화제가 되고 미국인들의 존경을 받는다.

    물론 그들의 선행을 통해 누군가는 목숨을 건질 것이다. 하지만 불행한 일은 그런 선행들이 빚어내는 사회적 현상으로 인해 더 많은 사람들이 고통에 빠진다는 사실이다. 그런 선행은 가난한 아이들에게 빵 하나, 항생제 하나를 사주는 일을 화제로 만들면서, 그런 가난을 확대재생산하는 정치경제적 구조를 은폐한다. 가장 기부와 봉사활동이 활발한 미국에서 가장 극단적인 양극화가 나타나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필요한 건 개인적 선행이 아니라 단체와 노조로 뭉쳐 저항하는 것이다.

    요즘 이명박 대통령은 기부운동을 시작했다. 양극화가 심해질수록 부자들의 기부와 복지재단활동은 활발해질 것이다. 여기에 젊은이들이 국제적 빈민구호라는 낭만에 시선을 뺏기고 있으면 미국처럼 될 수밖에 없다.

    비행기 타고 외국에 나가지 않아도 한국에서 할 일은 많다. 빈민에게 당장 떡 하나 주는 것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그런 빈민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일들. 예컨대 민영화 반대 운동, 공공서비스 확대 운동, 사회적 고용 운동, 감세 반대 운동, 복지 확충 운동 등. 이러면 착한 사람들의 선행보다 훨씬 효율적으로 빈곤을 퇴치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사회모델을 수출하면 훨씬 더 많은 국제적 빈곤을 퇴치할 수 있다. 한국은 후발주자 중 경제개발에 성공한 극소수 나라로서 제3세계의 모델이 되고 있다. 얼마 전에도 한국에 온 아프리카의 시찰단이 있었다.

    문제는 한국이 제3세계에 미국식 모델만을 수출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한국은 미국식 시장화를 선도적으로 세계에 전파하는 황당한 나라다. 우리가 먼저 선도적으로 개방한다면서 타국에 개방을 권유하고 민영화를 주도한다. 이러면 전 지구적으로 빈곤이 늘어나 지구적 양극화는 더 스펙타클, 더 포토제닉해질 것이다.

    이것을 막는 것이 진정한 구호다. 한국인은 한국인대로, 미국인은 미국인대로 각자 자기 나라에서 제도를 바로 잡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젊은이들이 해외에 눈을 돌리지 말고 자국의 정치경제적 모순에 집중하며, 조직화되어야 한다. 자국의 빈민과 노조에 연대해야 한다. 한비야 현상은 이것과 반대편에 있다. 그래서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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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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