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폭탄 맞은 서울, 해고폭탄 맞은 비정규직
    2009년 07월 16일 02:4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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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서울을 비롯한 중부지방을 중심으로 쏟아진 폭우로 인해 1명이 숨지고 1명이 실종됐으며 도로 18곳이 통제되는 등 비 피해가 잇따랐다. 비만 많이 오는 것이 아니라 가만히 서있기도 힘들 정도로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언론에서는 ‘물폭탄’이 떨어졌다고 했다.

이날 그 ‘물폭탄’을 그대로 맞으며 집회하고 버스를 타고 다시 다른 곳으로 옮겨가서 집회하고 또 다시 버스를 타고 옮겨 다니며 하루 종일 서울 시내를 순회하며 집회를 한 ‘사람들’이 있다. 바로 서울대병원, 국민체육진흥공단, 공무원연금관리공단, 성신여고에서 해고된 공공부문 비정규직들이다. 이들은 왜 이렇게 하루종일 비를 맞고 집회를 했을까? 이들의 하루를 뒤쫓았다.

   
  ▲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폭우 속에서 집회를 벌이고 있다  (사진=김경민 현장기자)

# 오전 10시 강남 선릉역

서울지방노동위원회 빗속에서 오전 8시부터 선릉역에서 해고자 복직을 촉구하는 선전물을 나눠준 참가자들은 이미 모두 비에 젖은 몸이다. 우비를 입긴 했지만 이미 소용이 없다. 폭우다.

그럼에도 국민체육진흥공단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다 해고된 3명을 포함해 집회에 참석한 30여명이 집회를 시작한다. 양동이로 쏟아붓는 듯한 비 때문이라도 움츠려들만 하지만 마냥 씩씩하다. 해고자를 대표해 전은희씨가 마이크를 잡았다.

“5월 21일 지방노동위원회 부당해고 심리가 열린 날 국민체육진흥공단측에서는 한명도 나오지 않았어요. 24일 열린 심리에는 공단측 사람이 나왔지만 우리가 물어보는 질문에는 대답조차 하지 않았어요. 공익위원이라는 사람은 우리가 질문하면 하지 못하게 막았어요. 그리고선 지방노동위원회는 내게 전화한통으로 해고가 정당하다는 겁니다. 이런 지방노동위원회를 믿지 못하다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요?"

말이 끝나자 사람들의 박수가 이어졌다. 하지만 박수소리는 빗소리에 묻히고 만다.

# 오전 11시 이동하는 버스 안

   
  ▲ 순회 투쟁버스

버스는 다음 집회가 열릴 예정인 문화체육관광부로 향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국민체육진흥공단의 주무부처다. 전은희씨는 비 때문에 시간 때문에 하지 못한 말을 버스 안에서 쏟아냈다.

“제가요. 월요일 빼고는 계속 집회에 나가는데요. 쌍용차 집회든 다른 비정규직 집회든 힘들어도 집회는 빠지지 않을려고 해요. 그건 아이들 때문에 그래요. 아이들이 둘다 대학생인데 얘네들한테까지 비정규직 만들어주면 안되잖아요."

전씨와 함께 해고된 국민체육진흥공단 비정규직들은 모두 30~40대 여성이다. 이른바 ‘아줌마’ 들이다. 이들 아줌마들이 해고된 이유는 매년 실시하는 근무평점이 낮기 때문이라는 것이 공단측의 주장이다. 그러나 해고자들은 하나같이 말도 안된다고 했다. "노조 했다고 자른 거예요. 노조 한 사람들만 콕 찍어서 근무 평점 나쁘게 주고 그걸 빌미로 해고한 거거든요. 일 못해서 잘렸으면 억울하지나 않지요"

버스 안에는 비로 인해 움츠려든 이들을 위해 메실 음료와 따뜻한 커피들이 돌려졌다. 국민체육진흥공단 비정규직 해고자들이 마련한 것들이다.

# 12시 30분 문화체육관광부 앞

문화체육관광부 앞에 현수막이 펼쳐졌다. "우리가 유인촌 장관님이 만나겠다던 국민체육진흥공단 비정규직입니다"라는 글귀가 씌어져있다. 유인촌 문화부 장관이 지난 1일 한 게임업체를 방문해 비정규직, 기업주와 면담을 갖고 "경륜, 경정사업 관련 업무를 맡는 비정규직 등 체육진흥공단에 1300명의 비정규직이 있는데 이번 주에 만나 안정적으로 기다려 줄 수 있도록 얘기하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후에는 말이 바뀌었다. 언론에서는 장관이 직접 만난다고 했는데 실무자들은 만날 계획이 없다고 했다.

"제가 국민체육진흥공단 사무관에게 전화를 해서 장관님이 만나고 싶다는 약속을 지켜달라고 했죠. 그런데… 안 만나주겠답니다. 노사관계에 개입하지 않겠다고요."

   
  ▲ "유인촌 장관은 약속을 지켜라" 문화체육관광부 앞에서 함성지르는 참가자들

공공노조 국민체육진흥공단비정규직지부 김성금 사무국장의 말이다. 그래서 국민체육진흥공단 비정규직들이 직접 문화체육부를 찾아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소용이 없었다. 유인촌 장관은 보이지 않았고 면담 약속도 잡지 못했다.

# 오후 1시 30분 다시 버스 안

버스를 타니 비가 그친다. 버스를 내리면 폭우가 쏟아지고 버스에 올라타면 비가 조금은 소강상태를 보이는게 계속 된다. 아침 8시부터 시작된 선전전과 집회에 지칠만도 한 대 아직은 사람들이 쌩쌩하다. 비만 맞아도 피곤한 게 사람인데도 이들은 심지어 웃고 있기 까지 한다. 공무원연금관리공단에서 해고된 비정규직 성향아씨의 얘기다.

“오늘이 해고된 지 딱 9개월째 되는 바로 그날이에요. 그런데요 힘들지 않아요. 왜냐면 전 잃을게 없잖아요."

공무원연금관리공단에서 해고된 성향아씨는 건강검진센터에서 시간제 일을 하고 있다. 낮 12시에 일을 마치면 일주일에 한번 점심시간에 공무원연금관리공단 앞에서 1인 시위, 서명전, 선전전 등을 계속 하고 있다. 성향아씨가 밝게 얘기한다.

"선전물을 나눠주다보면 사람들의 반응이 예전과 달라요. 요새 공공부분 비정규직 해고문제가 많이 대두되고 있어서 그런지, 관심이 엄청 높아졌어요. 사람들이 유인물에 ‘촛불’, ‘이명박’ 이런 단어가 들어가면 아주 잘 받아가요."

# 오후 1시 50분 서울대병원

서울대병원에 도착하니 다시 또 폭우가 쏟아진다. 이젠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고 눈도 뜰 수가 없다. 그 와중에 공공노조 서울대병원분회 윤태석 부분회장이 마이크를 잡는다.

"지금 비정규직은 아무도 보호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국립대병원이라고 하는 서울대병원도 3명이나 해고했습니다. 정규직 업무를 해야 하는 곳에 외주화 하고 사용자들은 법을 위반해도 아무런 제재가 없습니다. 그럴수록 우리가 나서야 합니다."

   
  ▲ 서울대병원_폭우속에도 즐거운 사람들

비는 더욱 거세졌다. 서울대병원에서 해고된 박소윤씨가 앞에 나섰다.

"서울대병원은 2년 미만 비정규직도 계속 일할 의사가 있으면 해고하지 않는다고 노사 합의까지 했어요. 그런데도 6개월, 3개월 심지어 1개월짜리 계약서를 쓰면서 잘랐어요. 제 일이 없어진 것도 아니에요. 지금 제 일은 다름 사람이 하고 있어요. 이럴거면서 나를 왜 잘랐는지 모르겠어요."

박소윤씨는 서울대병원 부설 강남건강증진센타에서 일하다 6월 30일자로 해고됐다.

# 오후 3시 30분 버스 안

희한하다. 다시 버스에 오르니 다시 비가 잠잠해진다. 사람들도 이상하다며 웃는다. 서울대병원에서 해고됐다는 김성미씨는 "매일 똑 같은 1인 시위, 집회가 조금 지겨웠거든요. 그런데 오늘 같은 버스순회투쟁은 신선하고 재밌는 것 같아요"라고 말한다. 역시 서울대병원이 운영하는 보라매병원 의무기록실에서 해고된 김경연씨는 여전히 힘들다고 했다. "해고 된지 두달 됐는데, 병원의 변화가 없잖아요."

# 오후 4시 30분 성신여대 행정관 앞

사람들이 늘었다. 파란색 우의을 입은 성신여대 학생들도 보이고 성신여대 청소용역노동자들도 하나 둘씩 모였다. 60여명은 족히 되는 사람이 모였다. 사람이 많아지니 발언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도 커졌다. 공공노조 서울본부 진기영 사무처장은 "이 건물에서 세계단 올라가면 성신재단 이사장실, 성신재단이 성신여고에 요구해 정수운 씨를 징계해고 했기 때문에 이 자리에 왔다"며 성신여대에서 왜 집회를 하는지 설명했다.

정수운씨는 두 번이나 해고를 당했다. 같은 학교에서 해고됐다 복직되고 다시 해고됐다. 중간에 해고통보를 받은 것까지 하면 세 번의 해고통보를 받은 셈이다. "마음이 찢어질 듯 아프다"는 심경에 사람들이 숙연해졌다.

정수운씨는 "3번째 해고 돼니까 맘이 정말 않좋아요. 남들이 볼땐 무뎌질만도 하다고 하겠지만, 이 힘든 일을 또 겪어야하나 하는 맘에 우울해요. 이렇게 연대하는 건 좋지만 본인이 해고 당사자면 정말 맘이 않좋아요"고 말한다.

하지만 정수운씨의 옆에는 함께 싸우고 폭우를 맞으며 함께 견디는 사람이 있다. 그래서 여전히 싸워볼만하고 여전히 집회에 나서는 것이라고 했다.

   
  ▲ 참가자들은 풍선을 날리며 집회를 마쳤다

이날 사람들은 하루종일 폭우를 그대로 맞으며 집회를 하러 다녔지만 손에 잡히는 어떠한 성과도 얻지 못했다. 성신여대는 문을 걸어잠궜고, 지방노동위원회는 집회를 한다는 이유로 면담을 거부했으며, 문화체육관광부는 점심시간이 아니라 안된다는 이상한 이유를 대면서 만나주지 않았다.

이것이 우리나라에서 해고된 비정규직 노동자의 현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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