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본주의 벽에 가로막힌 인권
        2009년 07월 08일 10:3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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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구의 권리 개념, 아리트스토텔레스의 천부권리론

    ‘권리’의 개념 : 영어 ‘right’는 희랍어 orektos(‘바른’, ‘올바른’), 라틴어 rektus(‘바른’, ‘바로 서는’)에서 파생된 것임. 지중해의 고대 사회나 유럽의 중세 사회에서는 ‘권리’란 결국 해당 개체 내지 공동체가 ‘마땅히’ 받아야 할 대접, 또는 ‘마땅히’ 해도 되는 일을 지칭한 것이었음.

    보편적인 ‘인간’이라는 개념은 적어도 법적으로 18세기 이전까지 성립되지 않았기에 ‘보편적 인권’이란 존재할 수 없었으며 개별적 공동체/신분 계층의 ‘권리’ 정도는 사회적으로 인식됐다. 대체로 17~18세기의 사회계약설 대두 이전까지 각종 신분계층들의 ‘정의로운 권리’가 보장되는 사회라면 ‘좋은 사회’로 인식됐음.

       
      

    아리스토텔레스의 ‘천부 권리론’. 이 ‘천부 권리’는 일단 원칙상 개체가 아닌 공동체에 귀속됐음 즉, 유기체로서의 도시국가는 개별적 가족의 존재의 조건이었으며, 가족은 개체의 존재 조건이었음. 즉, 아리스토텔레스 등 고대의 대표적 사상가들에게는 ‘전체’에 대한 의무를 떠난 개체의 권리란 논할 수도 없는 것이었음. 또한 개체들은 절대 동등하지 않았으며 그 ‘정의로운 권리’들도 각자 달랐음. 아리스토텔레스에게는 노예제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노예란 자연적으로 남에게 복종하기를 좋아하는 예속적 존재’ – ‘천부 노예론’).

    즉, 서구의 전통사회는 공동체적/신분계층적 ‘권리’ 의식은 있어도 근대적 의미의 보편적 ‘인간’도 ‘인권’도 개념조차 성립되지 않았음.

    단, 이미 희랍/로마 시절부터 전통 서구 사회는 ‘신성한 법’에 대한 존경(준법 의식)을 상당히 강조했음: ‘솔론 (아테네의 유명 정치인) – ‘나는 오로지 신성한 법을 보호해야 할 것이다’. 인간의 법이 자연법을 따른다는 이념은 여기에 큰 영향을 미쳤음.

    보편적 인권의 탄생, 홉스와 로크

    ‘보편적 인간/인권’의 탄생. 17~18세기 부르주아 혁명의 시기. 토마스 홉스(1588~1679) – 모든 인간 (신분 계층 소속과 무관하게)에게 해당되는 ‘자연법’. 홉스가 생각했던 ‘자연법 16칙’ – ‘모든 인간들이 다 평등하다’, ‘모든 인간들이 평화를 갈망하지만, 평화를 향유할 희망이 없을 경우 전쟁을 택한다’ 등등 ‘보편적 인간’에게 해당되는 ‘자연의 법칙’들이 발견된다는 것 자체는 ‘진보’이었지만, 홉스는 모든 인간들에게 같은 ‘인권’을 허용하려 하지 않았음.

    왜냐하면 인간들은 원칙상 평등했음에도 ‘모두와 모두의 전쟁’이 자연의 정상적 상태인 만큼 인간의 세상에서도 많은 경우에는 ‘정의’가 아닌 ‘힘’은 당연히 우세해야 했다는 것. 예컨대 홉스는 전쟁 포로나 ‘야만인’들을 힘으로 잡아 노예로 부리는 것을 ‘자연 상태에서의 모두와 모두의 전쟁의 당연한 결과’라고 봤음.

    이 ‘모두와 모두의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해 전지전능한 국가가 필요했으며, 홉스가 생각했던 이 ‘리바이어던’(괴물)과 같은 국가는 삼권 분립 없이 개인들의 권리를 얼마든지 침해할 수도 있었음. 부르주아적 ‘계몽’의 역설: ‘보편적 인간’이 탄생되는 순간 이 인간의 국가에 대한 예속을 정당화하는 논리도 아울러 탄생됐음: 개인의 자유 가능성들이 강해지는 동시에 개인에 대한 억압도 강해지는 것은 부르주아 사회 역사의 원칙임.

    존 로크(1632-1704) – ‘개인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국가’, 즉 사회계약적 국가를 옹호했는데, 여기에서는 ‘개인’이란 ‘재산 보유자’임. 국가의 목적도 생명과 재산의 보호임. 즉, 명시적 제한이 없는 ‘재산 보유’를 ‘근본적 권리’로 제시한 것인데, 이것도 초기 계몽주의자들의 인권론의 자본주의적 성격을 잘 보여줌.

    무죄 추정, 고문 금지, 노조 인정, 징병제 등

    근대적 ‘보편적 인권’의 정형화 – ‘Déclaration des droits de l"Homme et du citoyen’ (프랑스 혁명의 인권 및 시민권 선언, 1789) – 무죄 추정 원칙 및 고문 금지 등은 역사적 의미가 컸음. 그러나 이 ‘인권 선언’은 원칙상 여성이나 흑인 노예 등에게 아예 해당되지 않았으며, 집회의 자유 등 여러 중요한 인권을 아예 언급하지 않았음.

    노조 결성의 권리 등은 구미 지역에서 1830년대 이후에야 어느 정도 인정되기 시작했으며, 노동자 파업권은 최초로 헌법에서 보장된 것은 1917년 멕시코 헌법임 – 초기 부르주아 사회의 ‘인권’ 인식은 그렇게까지 ‘보편적’이지 않았음. 19세기 내내 – 인권 신장의 지속적 진척. 1900년까지 – 노예 소유는 거의 세계의 모든 나라에서 금지됐으며, 뉴질랜드 (1893) 등지에서 여성 투표권까지 인정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 인권 신장과 함께 ‘리바이어던’과 같은 국가의 개인 관리 능력도 계속 강화돼 갔음. 사례 : 징병제 – 프랑스 혁명 (1793년)이 시작이 되어서 1900년에 이미 미국과 영국을 제외한 거의 모든 주요 열강/구미권 국가에서 이미 이루어지고 있었음 (미국 – 평시 징병은 없어도 전시 징병은 늘 존재했음) – 인권 신장과 국가적 억압의 강화는 병행되는 것은 부르주아 문명의 특징. 국제 여행용 여권 등 인구 이동 관리 장치의 시발점도 바로 19세기임.

    19세기 부르주아 인권 담론의 재미있는 특징: 전쟁 수행 권리는 국가의 당연한 권리로 인식되고 전시의 징병된 군인의 전사는 ‘인권 침해’로 인식되지 않았음. 단, ‘전시 국제법 기준’ 개발 – 포로 대우 등에 대한 규정은 ‘문명 국가’ 간의 전쟁에서 지켜졌음.

    그러나 일제는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이 규정을 지켜도 한반도에서 ‘의병 토벌’할 때에 포로로 잡은 의병들을 얼마든지 쉽게 살해하는 등 한국인에게 ‘문명국가들의 국제법’을 적용시키지 않았음.

    인간 생존권도 ‘인권’으로 간주되지 않았음 – 19세기 후반기에 인도에서 1천5백만 명 정도로 대량 기근으로 아사했음에도 유럽에서 이를 영국 지배로 인한 범죄로 인식한 것은 일부 사회주의자 (Hyndman – The Ruin of India by British Rule, 1907) 뿐이었음. 상당수 주류 평론자는 ‘과잉 인구의 자연스러운 소멸’이라고 인도에서의 대량 기근을 환영했음.

    마침내 20세기, 사회주의

    20세기 – 사회주의 운동과 사회 혁명들은 ‘인권’의 개념을 대폭 확대시켰음. 1948년의 세계인권선언(제2차대전 종식 이후에 앙양된 좌파 운동의 상당수의 요구 사항을 그대로 담았음).

    제22조 : 모든 사람은 사회의 일원으로서 사회보장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제23조 2-4: 모든 사람은 아무런 차별없이 동일한 노동에 대하여 동등한 보수를 받을 권리를 가진다. 노동을 하는 모든 사람은 자신과 가족에게 인간의 존엄에 부합하는 생존을 보장하며, 필요한 경우에 다른 사회보장방법으로 보충되는 정당하고 유리한 보수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가입할 권리를 가진다’

    노조 결성/가입권을 ‘인권’으로 처음 생각한 것은 사회주의 운동이었음. 물론 세계인권선언도 전혀 완벽하지 않음: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당연한 인권’으로 명기하지 않았음 (그 당시 대다수 국가들은 징병제를 운영했으며, 스탈린 시대 소련을 위시한 많은 국가들은 병역거부권을 전혀 인정하지 않았음).

    <사회, 정치 권리 국제 협약> (1966 – 유엔의 주요 인권 관련 문서 중의 하나) – ‘전쟁을 부추기는 선전선동’ 금지 (20조) – 반전 운동의 요구 사항을 충족시키는 이 조항은, 예컨대 ‘북한에 대한 선제 공격’에 대한 주장을 원칙상 북한 주민의 생존권에 대한 부정 (인권 침해)로 볼 근거를 제공함.

    그러나 인권 의식이 이처럼 성장해온 동시 공동체/개인 생활에의 국가/자본의 개입 능력과 범위는 우리 상상 이상으로 늘어났음: 국제 인구 이동 (이민) 제한 – 1920년 이후의 여권 소지 및 필요 시 사증 (비자) 사전 신청의 의무화; 일부 기업들의 세계 시장 독점 (마이크로소프트의 경우; 인도/이란/중국/한국/미국을 제외한 모든 세계 국가에서 미국 영화의 시장 점유율은 50% 이상임)

    ‘자유 무역’의 강요에 의한 개발도상국가들의 ‘주체적 개발 권리의 박탈’ – 많은 빈민들의 ‘생존권 박탈’; 환경 파괴의 대대적인 가속화 (이상 기후의 문제 등). 21세기 벽두의 ‘보편적’ 인간: 국가와 자본 앞에서 전보다 훨씬 더 무력해짐.

    보편적 인권 – 근대사의 귀중한 발견이었지만 자본주의와 함께 발전됐으면서도 자본주의와 본질적으로 잘 호환되지 못하는 부분들은 많음.

    종족적 계급의 출현

    총결론: 원칙상 인종 차별 등이 오래 전부터 세계적으로 금지됐지만 오늘날의 뚜렷한 세계적 현상은 ‘종족적 계급 (ethno-class)’의 출현: 자주적-주체적 개발의 권리를 박탈 당한 수많은 세계 주변부 국가 출신들이 이산/국제적 이동하면서 국적/종족 별로 특정한 업종을 전담하는 것처럼 된다.

    사례: 일본/한국에서의 방글라데시/파키스탄/네팔 남성 출신의 다수 공장 노동자 집단 출현, 유럽에서의 몰도바/우크라이나/루마니아 등 유럽 동남부 남성 출신의 저숙련/비숙련 공장 노동에의 대대적 진출. 노르웨이 – ‘폴란드 남자’는 수리공의 대명사가 되는가 하면, ‘필리핀 여자’는 하녀/베비시터의 대명사가 됨.

    이 ‘종족적 계급’에 대한 각종의 차별들은 성별 차별 (‘폴란드 남자’/’필리핀 여자’에 대한 각종 편견/차별)과 맞물리면서 세계 주변부 계통의 새로운 ‘종족적 계급’들을 신흥 빈민 계급인 precariat의 최하 부류로 만듦. 격차 사회가 점차 고질화되어감에 따라 외부 출신의 precariat와 ‘토착’ precariat 사이에서 처절한 (그리고 우파가 계속 부추기는) ‘생존권 싸움’이 벌이지고 이 과정에서 극우 정파와 각종 인종주의자들이 계속 정치적 이득을 보고 있음.

    자본주의 후기의 세계: 인권에 대한 의식은 심화됐음에도 실제로 가면 갈수록 훨씬 반인권적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음. 자본주의와 인권의 기본적 호환성에 대한 새로운 비판적 검토가 필요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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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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