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6년과 12년, 그때도 지금도 똑같다
    부정선거 백화점…진상조사에 비협조
    [아빠의 현대사 41-2] 새 세상의 꿈, 민주노동당 창당 ②
        2012년 05월 08일 02:4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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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르주아계급의 지배를 전복시키기 위해서는 노동계급은 그들의 적보다 조직적․지적․도덕적 우위를 점해야 한다. 그것은 정치투쟁과 노동조합투쟁에서, 그리고 우리가 어렵게 건설한 협동조합운동에서 끊임없는 노력과 훈련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모든 역량과 자기희생, 지적 능력, 지식, 그리고 성숙함을 손아귀에 움켜쥘 때 가능한 것이다.” (『사회민주주의의 새로운 모색』, 이병천․김주현 엮음 중에서)

    1890년대 스웨덴에서 진보정당을 만드는 과정 중의 논쟁 중에서 브란팅이라는 사람이 했다는 말이란다. 나는 이 말을 연맹의 정치 강좌를 진행하면서 배웠다. 나는 이 말이 좋았다. 민주노동당 활동을 하면서도 무엇보다 내가, 노동자들이, 우리 당원들이 그럴 수 있기를 희망했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최근 진행되고 있는 통합진보당의 비례대표 선거부정 사태를 보면서 무엇보다 먼저 이 말이 떠올랐다. 우리는 과연 보수정당보다 더 나은 지적, 도덕적 우위를 점하고 있는가? 당을 통한 끊임없는 훈련과 노력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 유지해 나갈 진보적인 지적 능력, 성숙함을 만들고 있는가? 답답함이 대답에 앞선다.

    공정하고 객관적인 룰 마련의 실패 

    나는 민주노동당 중앙당 당기위원을 4년 가까이 한 것 같다. 당기위원회라는 게 있다. 당의 규율을 유지해 나가기 위한 징계위원회 같은 것이라고 보면 된다. 정당 활동을 처음 하게 되고, 그것도 지하 혁명 활동이 아니라 대중적인 정치활동을 하다 보니 그에 맞는 질서가 필요했다.

    특히 서로 다른 생각으로 모인 사람들이 많다보니 자기중심적으로, 자신이 속한 조직의 생각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당원간의 취중 폭행, 성희롱과 폭력, 상호비방 등도 발생했다. 무엇이 당원으로서의 품위, 민주노동당의 가치에 반하는 행위인지에 대한 판단을 해야 했다.

    심지어 재향군인회에 가입한 것이 당규 위반이라든지, ‘영세 공장 살리기 운동’이라는 표현을 노동자의 요구를 분명히 살리기 위해 ‘영세업체 노동자 살리기 운동’으로 하기로 대의원대회에서 통과되었는데 후보가 그렇게 쓰지 않았다고 당기위에 제소된 사건도 있었다. 민주노동당의 정체성을 당기위원회를 통해 확인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조직적으로 민주노동당의 지역조직을 장악하기 위한 불법 행위들이었다. “이거 조선일보가 알면 완전 특종감이다.”라고 농담처럼 말했지만 정말 진보정당으로서의 모습과는 거리가 먼 사건들도 많았다.

    당기위원을 하면서 아래와 같은 글을 썼었다. 내가 바라는 희망사항이었다. 그러나 오늘 통합진보당의 비례대표 선거 부정 사태를 보면 그런 희망은 부질없는 것이었을 뿐이다.

    “민주노동당 안에는 많은 논쟁 지점이 있습니다. 이에 따라 정파도 존재하며, 다양한 의견그룹도 존재합니다. 이들 사이의 경쟁과 협력, 그리고 갈등과 화해는 결코 우려할만한 일이 아니며 거꾸로 민주노동당의 발전을 가져 올 촉매제가 될 것입니다. 문제는 모두가 정파와 의견그룹의 차이를 넘어 ‘당’을 중심으로 사고하고, 판단하고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권력에 가까워질수록 내부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 질 것입니다. 그만큼 많은 상처도 생길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에 존재하는 이 모두를 부정한다고 해서 민주노동당이 발전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 이를 인정하되 모두가 동의하는 ‘객관적인 룰-당내 대의적 민주주의’를 어떻게 형성 발전시켜 나가는가가 우리의 과제가 될 것입니다.

    권력을 잡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민주적인 권력 쟁취의 과정을 통해 ‘노동자 민중의 민주주의’에 대해 당원으로서 충분히 훈련되고 해방 세상을 열어갈 지적․도덕적인 능력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결국 기존의 보수정당과 별반 다를 바 없는 모양새로 전락할 것입니다. 결국, 민주노동당 안에서의 ‘노동자 민중의 민주적 활동’을 통해 우리 스스로 단련되고, 그로부터 한국사회 전체를 바꾸는 원동력을 배양해야 하는 그런 과제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가짜 당원 만들기, 대리투표, 위장 전입 등

    민주노동당이 안정되면서 당기위원회도 모습을 갖춰나갔다. 각 광역당기위원회가 1심을 하고, 중앙당기위원회가 최종심을 했다. 중앙당기위원회의 권한은 막강한 것이어서 최고의원도, 심지어는 국회의원의 활동도 중단시킬 수 있는 것이었다. 그만큼 판단이 신중해야 했다. 최고위원 중 한명을 3달 동안 직권정지시키기도 했다.

    나는 지금도 판사나 검사의 지위를 가진 사람들이 그 어려운 일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질 때가 있다. 인간이 인간을 심판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웠다. 이 사람 얘기를 들으면 그게 맞는 것 같고, 저 사람 얘기를 들으면 심정적으로 동감이 가기도 했다.

    나는 당기위원회를 할 때마다 최소한의 당규를 주장했다. 상식에 맞는 당 운영을 얘기했지만 워낙 복잡한 사건이 많아지자 점차 규율이 강화된다. “이러다간 치약을 몇 mm로 짜고, 좌우로 몇 회씩 닦아야 한다, 라는 규정까지 만들어야 하겠다.”라고 농담을 했던 기억도 난다. 그러나 너도 알겠지만 규율이 강해지면 그것을 피하는 방법도 더 세련되는 법이었다.

    민주노동당이 성장하면서 그것을 자기가 속한 조직에 유리하게 가져가기 위한 조직적인 해당행위도 발생하기 시작했다. 용산이나 인천 등 곳곳에서 지구당 위원장 선거에 자신이 미는 사람을 당선시키기 위해 당원을 위장으로 전입을 시키고, 당비도 대납하고, 심지어는 대리투표를 하는 등의 사태가 발생했다. 주로 대학생 등을 신입당원으로 가입시켰다.

    그러나 직접 통화해보면 “입당 자체가 본인의 의사가 아니었으며, 입당원서를 작성한 적이 없고 당비를 납부한 적도 없다.”라고 하는 상황도 있었다. 투표한 적도 없는 사람이 버젓하게 투표한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이런 사건이 전국적인 차원에서 진행된 것이 2006년도 당 대표 선거 과정이었다. 세월을 훌쩍 뛰어넘는 얘기지만, 네가 지금 진행되고 있는 통합진보당의 비례대표 부정투표 행위라는 사태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알기 쉽게 하기 위해 쓴다.

    상대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한 조직적 불법 선거운동

    2006년 2월 18일 2기 1차 중앙위원회는 만장일치로 ‘당대표 결선투표 불법부정선거 의혹 진상조사위원회’ 구성을 결정한다. 당의 모든 기관을 넘어서는 ‘초법적인’ 기구였다. 나를 포함해서 이민종 변호사 등 7명이 위원이었다. 민주노동당 당 대표를 선출하는 과정에서 부정선거가 있었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당시 조승수 후보와 문성현 후보가 결선투표를 진행 중이었다. 그 내용은 다양했다.

    2006년 대표 선거 당시 당권파들이 조승수 후보에 대한 허위 사실을 문자로 보냈다

    “조승수 후보가 당선되면 민주노동당 소속 공직후보자들이 무소속으로 출마하여야 한다.” “정부에서 당원 자격을 인정하지 않으니, 대표 자격도 없으며 따라서 민주노동당은 법외 정당이 되고 지방선거시기 후보들은 무소속으로 출마해야 한다.”라는 내용의 허위사실 유포, 투표가 시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진행된 선거운동, “지방선거시 동일기호 배정 불가, 정당 교부금 받지 못함” 등의 허위 사실 문자 메시지 발송 등이었다. 기존의 선거법에서도 금지하고 있는 후보자 비방에 해당되는 행위들이었다.

    특히 조사를 해보니 부산남부 지역과 경남창원 지역 등 일부지역에서 결선투표 개시일 전 1~2일 동안 이런 일들이 조직적으로 활발하게 이루어졌다는 것이 밝혀져 충격을 받았다. 부산 지역의 대중단체의 사무실 전화임은 확인되었으나 당사자들은 행위 당일 출근자가 누구였는지에 대해 진술이 엇갈리거나, 진술을 거부 혹은 부인하였고, 통화 내역을 제출하지 않는 등 진상조사에 매우 불성실하고 비협조적이었다.

    더욱이 전화가 해지된 상태여서 ‘개설자가 누구인지’, ‘통화자가 누구인지’, ‘통화 내역이 어떠한지’ 등을 조사할 수 없었다. 진상조사위원회는 오랜 논의를 거쳐 ‘허위사실 유포에 동원되었다’고 확인된 5개 해지전화에 대해서 검찰 고발이 필요하다고 보고, 중앙위원회에 결의를 요청한다. 당사자들의 비협조로 인해 조사가 진척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문제를 심각하다고 느낀 것은 보수정당이나 할 선거부정 행위가 민주노동당 안에서도 이루어 졌다는 사실이었다. 당원들은 이렇게 말했다.

    “오늘 심지어 경남 지역에서 ‘유선방송 가입’ 전화가 핸드폰으로 왔습니다. 너무 기분 나빴습니다. 지금까지 서울에서 이런 텔레마케터들의 짜증나는 전화는 받아봤지만, 지역인 경남 텔레마케터전화는 핸드폰 구입 이후 처음입니다. 열 무지 받았습니다. 증거… 055-544-1032 당시 문성현 후보를 찍어달라는 전화가 온 번호입니다. 오늘 055-544-1032 스카이라이프 가입을 요청하는 전화가 온 번호입니다. 불법 아닙니까?”

    “지난 2월 5일 오후 7시 32분경 051-504-6784 라고 찍힌 전화를 받았습니다. 부산하고는 별 연고도 없는데 전화가 오길래, 혹시 학교 동문의 흉사는 아닌가 싶어 그 번호로 전화를 했는데, 계속 통화중이다가 오후 8시 21분경에야 겨우 통화가 되었습니다. 어느 여성분이 전화를 받으셨는데 문성현 후보에게 표를 달라는 전화였습니다.

    그러시면서, 자기가 누구한테 전화를 했는지 체크를 해야 다음에 전화를 또 안할 것이라면서 제 이름을 알려달라고 하길래, 좀 찜찜했지만, 또 전화가 올 수도 있을 것 같아 제 이름을 알려주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어떻게 개인의 연락처를, 그것도 내가 속한 도당도 아닌 특정 지역의 특정 선거운동본부에서 알 수 있는 것인지 대단히 큰 심각성을 가지고 궁금해 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제 오후 3시31분 051-637-8159 이라는 전화번호로부터 전화가 왔다.

    상대 : 문성현 후보 선대본입니다. 이번 대표 결선투표를 아시나요? 등등

    상대 : 두 후보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나 : 네, 두 분 다 훌륭하신 분들이라 생각 합니다.

    상대 : 누구를 선택할지는 결정하셨습니까?

    나 : 글쎄요,

    상대 : 문성현 후보는 통합…..

    나 : 원내외 통합력과 당으로서 정치적 지도력은 조승수씨도 괜찮겠다 싶은데요?

    상대 : 그렇지 않습니다. 조승수 후보는 피선거권이 박탈되어 당선이 되면 지방선거 때 동일 기호를 받지 못하게 됩니다.

    나 : 어떻게 그런 사람이 출마할 수 있느냐? 그게 사실이라면 지금 당장 선거를 중단해야하지 않느냐? 당장 당기위에 회부하고 000후보도 이번 선거를 파행으로 규정하고 선거를 중단해야 될 일 아니냐? 그런데 이런 상황에 그렇게 하지 않고 선거운동을 계속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이냐? 위 사실과 관련된 근거를 구체적으로 알려 달라 나라도 당기위에 제소를 하겠다.

    상대 : 네, 구체적인 사실에 근거해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오래 지체되므로 이만 끊도록 하겠습니다.”

    문성현 후보가 대표로 당선됐다. 문 대표가 최고위원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우려했던 일이었지만 민주노동당이 성장하면서 민주주의의 꽃이라 할 선거과정에 부정행위가 생긴 것이다. 이승만 정권은 3․15 부정선거가 원인이 되어 결국 4․19 혁명에 의해 쫓겨났다. 87년 대통령선거에서 발생한 구로구청 부정투표함 투쟁으로 인해 양원태라는 당시 학생이 반신불구가 되기도 했다, 그만큼 선거과정의 투명성은 매우 중요하다.

    “향후 민주노동당의 선거에서 이와 같은 불법 부정행위가 결코 용납되지 않으며, 불법 부정행위를 저지른 사람에 대해서는 반드시 그에 상당하는 당의 철저한 응징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이 각인되어, 불법 부정 선거 행위가 발본색원되고, 진보정당다운 당내 ‘대의제 민주주의’가 정착되는 일 계기가 된다면, 진상조사위원회는 더 이상의 바람이 없을 것입니다.”라고 진상보고서를 맺었다.

    그러나 네가 보는 것처럼 진보정당을 자임하는 통합진보당에서 다시 이런 일이 발생했다. 난상토론 끝에 대표단과 국회의원 비례대표에게 총사퇴할 것을 권고하게 됐다.

    “우리가 가진 오늘의 부끄러움이 이후 당 발전의 밑거름이 되길 희망합니다. 먼 훗날 민주노동당의 역사를 돌아볼 때 오늘 우리가 썩은 상처를 도려내는 아픔을 겪음으로 인해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민주노동당을 만들 수 있었노라고 자랑스럽게 얘기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라던 바람은 결국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렸다.

    필자소개
    이근원
    대학 입학과 동시에 전두환을 만나 인생이 바뀜. 원래는 학교 선생이 소망이었음. 학생운동 이후 용접공으로 안산 반월공단, 서울, 부천, 울산 등에서 노동운동을 함. 당운동으로는 민중당 및 한국사회주의노동당을 경험함. 울산을 마지막으로 운동을 정리할 뻔 하다가 다행히 노동조합운동과 접목. 현재의 공공운수노조(준)의 전신 중의 하나인 전문노련 활동을 통해 공식적인 노동운동에 결합히게 됨. 민주노총 준비위 및 1999년 단병호 위원장 시절 조직실장, 국민승리 21 및 2002년 대통령 선거시 민주노동당 조직위원장 등을 거침. 드물게 노동운동과 당운동을 경험하는 행운을 가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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