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자동차업체 몰락 요인과 노조의 오류
        2009년 06월 30일 01:3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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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00년간 세계자동차산업을 주름잡던 소위 미국의 ‘빅 3’가 생존의 위협에 처해 있다. 이미 언론지상을 통해 완성차업체 3사 포드, 지엠과 클라이슬러가 어떤 위기에 봉착하고 있는지는 잘 알려져 있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작금의 사태를 초래한 원인으로 낮은 생산성으로 대표되는 생산체계의 문제, 고유가 압력을 견디기 힘든 낮은 연비의 대형차생산, 금융수익에 기반한 과도한 할부금융, 무리한 몸부풀리기와 해외경쟁업체들의 시장잠식, 노조의 과도한 복지부담 요구에 따른 고비용 유발 등을 주로 언급하고 있다.

    미국 자동차 산업 위기의 원인

    하지만 이러한 분석은 ‘빅 3’ 위기의 세부 요인이란 점에서 타당한 지적이지만, 지난 수십년 간 미국완성차업체의 이해당사자들이 산업체계와 노사관계측면에서 답습한 잘못된 관행과 무책임한 태도를 명확히 보여주지는 못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즉 지엠의 몰락으로 대표되는 미국완성차업체의 위기는 구조환경적 요인에 의해서 발생하기 보다는 세계자동차산업의 시대적 흐름에 조응하지 못한 행위주체들의 전략적 ‘실책’이 초래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미국의 자동차산업은 2차 대전 후 고성장의 대표적 주자였기 때문에 60년대까지 포드, 지엠 그리고 클라이슬러가 포함된 ‘빅 3’는 미국자동차시장의 80% 이상을 점유하고 있었다. 이러한 과점체제를 통해 달성된 초과수익은 자본주의의 황금기를 거치면서 중산층화된 소비자들의 구매력에 의해 지속될 수 있었다.

    이는 노동자에게 상대적 고임금을 보장할 수 있는 원천으로 작용하였다. 또한 70년대를 거치면서 자동차 보급률은 급속히 확대되고 미국사회에서 소위 ‘마이카’개념은 가계당 1대가 아니라, 1인당 1대로 발전하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선순환구조는 70년대 말 이후 몇 차례 세계경제를 뒤흔든 ‘오일쇼크’를 통해 지속가능성을 점점 상실해간다. 유가폭등에 따라 정부가 시행한 ‘연비개선법’은 미국자동차산업을 굴절시키는 계기로 작용한다.

    선순환구조의 종식

    픽업트럭을 포함한 상용차의 연비제한규정을 완화시킴으로써, 연비규정이 엄격한 소형승용차의 경우 소비자들이 연비가 좋은 수입차를 선호하게 되고, ‘빅 3’는 대형승용차와 상용차부문에서 자신의 수익구조를 형성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정부가 시행한 일본자동차에 대한 ‘수출자율규제’는 일본완성차업체의 현지공장을 급속히 확대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더욱이 일자리창출과 투자유치라는 명목 하에 미국의 각 주가 벌린 특혜경쟁을 통해 해외완성차업체들은 현지공장에서 저비용생산과 미조직사업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었다.

    대부분의 현지공장은 저임금 청년노동자들이 집중되고 노조조직화가 상대적으로 힘든 남부지역에 자리를 잡게 된다. 이로 인해 미국완성차업체는 수입차의 시장점유율 폭증과 ‘빅 3’ 생산공장의 경쟁력 저하라는 도전에 직면하게 된다.

    한편 80년대 중반 이후 미국자동차시장에서 ‘빅 3’ 과점체제의 붕괴는 명확해진다. 일본 완성차업체를 비롯한 해외 완성차업체는 연비효율성은 물론, 가격 및 품질경쟁력을 무기로 급속히 시장점유율을 확대할 수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전미자동차노조(UAW)는 남부지역의 현지공장에 대한 조직화를 등한시하고 고령화되어가는 기존 조합원들의 이해에 몰입하는 오류를 반복한다.

    전미자동차노조의 오류

    또한 90년대 미국시장의 ‘SUV붐’은 미국완성차업체에게 일정한 수익을 안겨주고 핵심 부품업체들의 분사를 통해 비용절감을 확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지만, 지속가능한 기업 역량의 핵심적인 관건이 되는 품질경쟁력은 계속 하락하고 노사관계 또한 기업 외부자에게 비용을 전가하는 담합적 구조가 고착화된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미국 자동차산업은 전세계적인 불황의 여파로 고전을 면치 못하게 된다. 더욱이 일본업체들 뿐만 아니라, 한국의 현대, 독일의 베엠베와 다임러가 생산공장을 미국에 짓고 가동에 들어가면서 ‘빅 3’를 위협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빅 3’는 차종 다각화를 위한 국내투자 확대, 신기술과 신차종에 대한 연구개발에 힘쓰기 보다는 판매부진과 생산감축에 따른 대규모 인원정리를 감행하여 1980년에 150만명에 이르던 UAW조합원이 2000년에 70만명으로 줄어들게 된다.

    이러한 감원은 청년노동자의 이해를 쉽게 무시하고 장년노동자의 요구에 집착한 노조의 관행에도 일부 책임이 있다. 왜냐하면 사용자의 구조조정 압력에 대해 UAW는 청년노동자들의 일시해고를 무분별하게 용인하였을 뿐만 아니라, 생산물량 변동에 따른 초과노동 요구를 제대로 제어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한편 이러한 관행이 십여 년간 지속되면서 80년대 평균연령이 30대 중반에 불과하던 조합원들이 점점 고령화되어 2000년에 평균연령이 50세에 이르게 된다. 결과적으로 조합원의 고령화는 노조로 하여금 단체교섭에 있어 퇴직 후 연금 보장과 의료비 부담의 축소에 매달리도록 만들었다.

       
      

    조합원 평균연령 50세

    즉 UAW의 이러한 태도로 인해 노조활동은 고령화되어가는 다수 조합원들의 임금복지에 집중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UAW는 조합원의 고령화가 심화되면 될수록 경제적 실리주의에 매몰될 수밖에 없는 ‘내부자중심주의’의 함정에 깊숙이 빠져들게 된다.

    물론 이러한 비용부담을 받쳐주는 기업의 수익구조가 재생산될 수 있다면, 이러한 상황은 유지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유가인상, 유틸리티 차량과 상용차 수요의 감소, 해외업체들의 미국시장 점유율 증가 등으로 인해 ‘빅 3’ 또한 더 이상 이러한 부담을 짊어질 수 없었다.

    마침내 2007년 미국 자동차산업의 실제적 위기가 현실화되면서 노동조합 또한 대대적인 양보교섭을 통해 대규모 감원, 차별임금제도입, 건강보험료부담의 축소 등을 합의하지만, ‘빅 3’의 회생을 위한 시간은 이미 지나가고 있었다.

    결국 2008년 10월 이후 본격화된 금융위기는 ‘빅 3’로 하여금 더 이상의 임시처방을 용인할 수 없는 사태로 발전시켰다. 청산, 회생과 매각의 줄다리기는 경제적 평가 보다는 정치적 결단을 요구하는 문제였다. 지난 9개월간 진행된 ‘빅 3’의 회생방안을 둘러싼 미국 내 이해당사자들의 공방은 결국 지엠의 뉴 지엠화, 클라이슬러의 매각, 포드의 존속으로 마무리되고 있다.

    물론 ‘대마불사’라는 철의 원칙이 다시 한번 확인되었지만, 지엠의 경우 오펠, 복스홀, 홀덴, 사브, 허머, 새턴 등의 자회사를 매각하는 동시에, 기존 인력의 50% 이상을 감원하는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감행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더 큰 문제는 지엠이 파산보호 절차에 들어감으로써 청산 위기를 넘기긴 했지만, ‘뉴 지엠’으로 일컬어지는 기업회생 방안이 얼마나 순조롭게 진행될지는 아직 불명확하다.

    또한 클라이슬러는 피아트그룹에 매각되는 것으로 일단락되고 있지만, 노동자의 고용안정과 기업의 회생가능성은 부차적 문제로 취급되고 있는 실정이다.

    심각한 타격 받은 전미자동차노조

    한편 이번 사태로 인한 UAW의 타격은 정말 심각하다. ‘빅 3’의 구제방안을 두고 벌어진 ‘치킨게임’에서 여론의 신랄한 질타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협상의 결과로 인해 정상적인 노조활동을 향후 몇 년간 제대로 할 수 없는 지경에 처해 있다.

    1980년에 150만명에 이르던 조합원의 수는 2009년 현재 20만명 이하로 줄어들 것으로 보이며, 노조는 임단협을 비롯한 노조활동 보다는 기업회생을 위한 모든 조치에 적극적으로 협력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서 있다. 미국자동차산업의 현 상황은 UAW로 하여금 노조가 아니라, 종업원으로서의 역할을 더 많이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빅 3’의 몰락에 대한 원인진단에 있어 ‘사용자의 경영전략실패’, ‘노조의 관성적 태도’, ‘자동차시장의 과당경쟁’, ‘정부의 정책적 오류’ 등 논자에 따라 방점이 조금씩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러한 위기가 일시적인 요인에 의해 발생한 것이 아니라, 지난 수십년 간 미국자동차산업의 이해당사자가 선택한 잘못된 의사결정에 의해 이미 예정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미국자동차산업은 장기적 관점에서 구조환경적 조건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 필요한 이해당사자간의 전략적 합의을 추구하기 보다는 매 시기 마다 부딪힌 문제들을 봉합하기 위한 단기적 처방에 안주하였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위기에 대한 이해당사자의 인식공유, 대안모색을 위한 공동노력과 책임, 돌파구마련을 위한 전향적 인식과 신속한 실행은 ‘빅 3’의 몰락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역사적 교훈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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