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탄력적 정치동맹 구축해야”
        2009년 06월 22일 09:5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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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는 노무현 전 대통령 비극적 죽음에 대해 “자신이 뛰어넘지 못한 거대한 구조적 재앙, 시대적 재앙에 대한 좌절”이라고 평했다. 그는 수많은 조문행렬에 대해서는 “사회 저변층들의 노 전대통령에 대한 ‘자기 동일시’와 그의 진정성에 대한 공감, 그에 대한과잉 폄하에 대한 미안함”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의 서거로 “보수세력이 독점한 ‘국민정치적 공간’에 진보적 여지가 확장”됐으며, 이는 “단기적으로 노무현 세력, 반독재 중도자유주의 세력의 지지율 상승으로 나타날 것이지만, 급진 진보세력과 좌파세력이 약진할 수도 있는 공간”이라고 전망했다.

       
      ▲ 사진=정상근 기자 

    조 교수는 진보정당들이 “민주주의의 사회경제적 확장”을 이루어내야 하지만 ‘반신자유주의’ 전선에만 복무해서는 안 되”며 “‘계급투쟁’ 전선과 ‘국민정치적’ 전선이 있음을 인정하고, 계급전선 강화와 동시에 계급전선의 강화가 국민정치 공간에 어떻게 효과적으로 개입할지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정치적으로 “개혁세력까지 포괄하면서도 중도세력의 헤게모니를 장악당하지 않는 ‘탄력적 정치동맹’을 구축하”고 “노무현의 4대 개혁입법 비전 처럼, 4대 사회경제개혁입법의 비전”을 마련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인터뷰는 이광호 <레디앙> 편집국장의 진행으로 11일 오전 10시, 성공회대학교에서 약 2시간 동안 진행되었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

                                                      * * *

    1987년 체제, 1997년 체제, 2007년 체제

    조 교수는 본격적인 인터뷰가 시작되기도 전에, 자신이 준비한 ‘본격적’이고 학술적이며 짧지 않은 ‘서론’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87년 체제, 97년 체제, 07년 체제를 넘나들면서 이들 체제의 형성과 성격, 상호 연관성 등을 열정적으로, 강의하듯 설명했다.

    = 인터뷰에 앞서 개념적으로 정리하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87년-97년 체제’라는 말이 있는데 나는 여기에 ‘2007년 체제’가 있다고 본다. 바로 그 세 체제의 상호관계가 이번 인터뷰와 연관이 될 듯하다.

    ‘87년 체제’와 ‘97년 체제’에 대해서는 극단적 해석들이 있다. 특히 87년 체제는 민주주의라는 정치적 체제이기에 이미 종결된 것이고, 97년 체제는 신자유주의 경제프레임이 정착된 계기이기 때문에 97년 체제만이 유효하다는 일면적 시각이 그것이다.

    87~97년 과정은 민주주의의 급진적 확장을 통한 자본주의 개혁의 흐름이 지배적이었다. 이후 97년 체제는 자본세력이 반독재 민주주의 세력마저 개발자본주의 프레임 속에 포획되도록 만드는 과정이었지만, 다른 한편에선 87년 체제에서 추구한 가치와 목표들이 위로부터 실현되는 지점도 있었다.

    97년 체제를 ‘신자유주의화’라고 일면화하는 것은 노동자-일반민중-계급투쟁의 복합성을 충분히 고려치 않은 것이다. 물론 신자유주의 프레임을 적극적으로 수용했고, FTA도 있었지만, DJ-노무현 정부는 과거청산을 했고, 국가인권위원회를 만들었다. 인권위는 신자유주의의 원만한 재생산에 긴장감을 유발하는 기구다. 그 긴장과 모순 속에 10년이 있있던 것이다.

    그런데 보수세력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것은 안보고 부정적인 것만 봤다. 87년 가치와 목표를 실현하는 긍정적 측면을 과잉개혁이란 이름으로 폄하하고 역전시키려 했다. 진보세력도 이러한 상황의 복합성을 충분히 고려치 못하고 신자유주의적 측면들에 집중해 공격을 했다. 크게 보면 좌우 공격에 의해 붕괴된 지점이 있다.

    다만 여기서 좌측의 공격은 언제나 정당하다. 한국을 진보시키려는 흐름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한국의 보수세력이 민주정부 10년에 대한 자신들의 공격과 함께 좌측의 공격과 비판을 우익적으로 전유하는 방식으로 이명박 정부 당선의 동력을 만들었다는 데 있다.

    하나 더 말하자면 87년, 97년, 2007년 체제가 갖는 운동적 의미가 있다. 이것이 지금 진보신당과 민주노동당과도 관련된다. 87년 체제의 제도정당 질서의 핵심은 반독재 중도 자유주의세력에 헤게모니를 전제한 체제였다. 나는 2007년 체제의 전환은 바로 이것의 소멸이라고 본다.

    그람시적 고민이 필요하다

    노 전 대통령 서거는 ‘잃어버린 10년’의 과잉폄하를 넘어, 보수세력이 독점한 ‘국민정치적 공간’에 진보적 세력 진출 가능성을 확장했다. 이는 단기적으로 노무현 세력, 반독재 중도자유주의세력의 지지율 상승으로 나타날 것이나, 급진진보세력과 좌파세력이 약진할 수 있는 공간이 될 수도 있다.

    이 공간에 어떻게 헤게모니적으로 개입할 것인가는 그람시적 고민이 필요하다. 이명박 정부의 탄생은 노무현 정부로부터의 다양한 이반들에 ‘우익적 헤게모니적 접합’이 성공함으로써 가능했다. 이런 점에서 대중들의 다종다양한 저항들을 어떻게 좌파적으로 수렴을 할 것인지, 나아가 국민정치적 공간을 어떻게 급진세력이 전유할 것인지가 중요한 문제다.

    여기에는 이중전선이 있다. 하나는 ‘계급투쟁’ 전선, 하나는 ‘국민정치적’ 전선이다. 문제는 계급전선 강화와 동시에 계급전선의 강화가 국민정치 공간에 어떻게 효과적으로 개입하느냐다. 반독재 중도세력의 계급적 한계만을 지적하는 것으로 적절치 않다.

    진보정당은 2007년 체제의 새로운 모순 하에서 새롭게 변모하고 있는 대중의 역동성, 새롭게 도전을 받는 민중운동과 시민운동과 새로운 관계설정을 통해서 정당의 사회적 기반을 어떻게 확충할 것인지, 고민들을 새롭게 해야 할 것이다.

    –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적 최후가 우리 사회에 던진 충격파는 엄청나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의 원인과 배경은 무엇인가?

    = 자신이 뛰어넘지 못한 거대한 구조적 재앙, 시대적 재앙에 대한 좌절이었을 것이다. 거기서 굳이 타살성을 얘기하자면 자신이 뛰어넘지 못한, 자신을 옥죄고 있는 거대한 기득권적인 힘을 이야기해야 한다. 

    그리고 여기에는 노무현이라는 독특한 캐릭터가 있다. 그의 비주류적 삶, 비주류적 감수성을 함께 느끼는 우리 사회의 감정이 있다. 나는 직접적으로 검찰이 죽였다고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하지만, 굳이 타살성을 찾자면, 비주류적 삶을 일관되게 살아온 사람들이 느끼는 독특한 감수성이 있다는 점은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싶다.

    나도 가끔 느끼지만, 나 스스로도 소수자의 눈으로, 학생의 눈으로 대학을 보지 못한다. 나는 교수의 눈으로 보고 있는데, 학생들의 눈으로 본 대학 행정 문제점을 들으면 ‘나도 교수로서 기득권자구나’ 하는 점을 느낄 때가 있다. 그와 유사한 점이 있었을 것이다.

    사회 저변층, 노무현의 좌절에 자기 투영

    – 5백만에 이르는 조문객의 수라는 슬픔의 양과 그들의 눈물과 통한이 보여준 슬픔의 질 역시 모두를 놀라게 했다. 이 같은 현상의 원인에 대한 다양한 분석과 평가가 있는 것 같다.

    = 거기에는 사회 저변층들의 ‘자기 동일시’가 있었다. 노무현의 좌절과 슬픔에서 자기를 보는 투영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었다. 우선 그의 비주류적 삶의 모습과 태도가 친근한 이미지로 남아 있었고, 비타협적 태도에 진정성이 있었다. 사실 우리 모두 매일매일 타협하며 사는 부끄러운 면이 있다. 그 부끄러움이 던져주는 진정성에 대한 공감이다.

    또 하나는 노무현에게 돌 던지기가 전 국민 오락이었던 시절도 있지 않았나? 그에 대한 미안함도 있었을 것이다. 일종의 과잉 폄하였다. 우리 사회 모든 문제를 노무현 개인의 문제, 캐릭터 문제로 환원한 시기가 있었는데 그 부분에 대한 미안함이 전 국민적인 애도물결로 나오지 않았을까?

    – 민주주의가 비가역적인 수준까지 도달했다고 생각을 많이 했는데, 아직 그런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미디어법이 처리되면 기득권층의 자유와 권리가 강화되는 반민주적 구조가 안착될 가능성이 높다. 이명박 정권이 만들려는 법률과 정책들의 주요 내용이 민주주의 일반이 용납해주는 수준이라고 보는가?

       
      ▲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 

    = 그 점에 대해서는 확고하다. 우리 학교에서도 ‘반독재 학생위원회’가 결성되어 있는데, 나는 그것을 명백한 잘못된 인식이라고 본다.

    이명박 정부를 ‘신보수’, ‘신우파’라고 하는데, ‘신’을 굳이 붙이는 이유는 2007년 체제가 87년 체제로부터 일정한 전환의 성격이 있기 때문이다. 보수의 일정한 진화적 성격이 있다는 것이다.

    반대로 얘기하면 87년 6월 항쟁을 계속 반복한다고 이명박 정권이 극복되지 않는다. 새로운 6월 항쟁이 필요하다. 보수의 진화에 대응하는 저항의 진화가 필요하다.

    정당도 마찬가지다. 도로 민주당은 안된다. 단기적으로는 노 전 대통령 서거가 지지율을 상승시켰지만 민주당은 대안이 아니며 대중도 이를 알고 있다.

    문제는 포스트 이명박 시대의 대안들을 만드는 사고를 해야 한다. 신우파정권 하에 당연히 일정 측면 민주주의 후퇴는 있다. 그리고 그 민주주의 후퇴는 격렬한 저항을 만들어낸다. 87년이 만들어낸 한국사회의 민주주의 마지노선이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사회경제적 확장이 중요하다

    우리가 2009년 6월 이후 정국을 대면할 때는 ‘제2의 6월 항쟁’을 촉발하는 식의 관점에서 접근하면 안된다. 오히려 ‘제2의 6월 항쟁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접근하는 식이 나을 수도 있다. 제2의 6월 항쟁이 가능하려면, 새로운 요소들, 새로운 의제가 필요하다. ‘새로움(newness)’ 없이 지배의 위기는 불가능하다.

    6월 민주항쟁이 다양한, 작은, 새로운 저항들의 만남과 연대에서 가능했듯, 이명박 정부 하에서 만들어내는 새로운 모순에 기인하는 대중들의 새로운 저항성, 새로운 저항들의 새로운 만남과 연대를 만들어내야 한다. 새로운 전선의 경계 이동이 필요하며, 이전에 나오지 못했던 사람들이 나오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민주주의의 사회경제적 확장이 중요하다. 87년 6월항쟁 때 모호했던 사회경제적 요구들을 민주주의 이름으로 쟁취하고 의제화 해야 한다. 또한 일제고사 문제를 해직교사에 대한 투쟁뿐 아니라 일제고사를 안 볼 민주주의에 대한 권리획득 투쟁으로 이어나가는 것도 굉장히 중요한 민주적 권리투쟁이다.

    – 노무현 정신 유지-계승이라는 말들이 많은데, 노무현 정신 또는 노무현이 상징하는 가치의 핵심이 무엇이라고 보는가? 계승해야 마땅한 가치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 보수세력의 ‘잃어버린 10년’ 담론 속에서 민주정부 10년의 긍정적 측면들을 지켜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은 기본적인 민주주의적 개혁의 일환인데 이를 급진적인 민주주의 담론으로 의제 확장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노무현 정부 하 과거청산 작업, 국가권력기구에 대한 시민적 통제, 반부패, 남북화해 등은 민주정부 10년 동안의 긍정적 측면이다. 여기서 과거청산을 예로 들면 그 미완의 과제들을 확장해야 한다. 이를테면 민주화 유공자들을 국가유공자로 만드는 작업도 해나가야 한다. 민주화 피해, 투쟁유공자가 만들어져야 보훈이념의 정상화가 나타난다.

    물론 노 전 대통령이 좌절한 지점들에 대해서는 역전시켜야 한다. FTA나, 미군 주둔 문제들처럼. 하지만 한 마디로 과잉폄하 속에서, ‘물 버리려다 애까지 버리는’ 것처럼, 민주주의 개혁의 긍정적 가치들을 버리지 않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 노 전 대통령의 성과를 승계한다기보다는 그의 실패, 그가 가려 했지만 못 간 곳들을 평가하고 거기서 무엇인가를 시작해야 할 것 같은데, 그런 의미에서 그를 넘어선 대안적 사고를 하는 것이 바른 출발이 아닌가?

    새로운 사회적 민주주의를

    = 노 전 대통령은 정치적으로는 비타협적이고 급진적이었지만 사회경제적으로 정확한 비전과 나아갈 길이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진보세력에게도 일정 부분 한계로 존재하는 지점이다. 그 지점이 바로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다.

    87년 꿈꾼 것이 정치적 민주주의이었다면, 이제 사회경제적 급진 민주주의를 상상하고 대중화해야 한다. 이는 서구의 20세기 사회민주주의가 아닌 혁신된 것이어야 하고, 이는 새롭게 생태와 평화를 담아내는 새로운 사회적 민주주의일 것이다.

    사회경제적 비전을 만드는 것은 이를 수용할 수 있는 대중을 창출할 수 있는 과정이다. 이를 위해 대중들이 이명박 정부 하에서 느끼는 삶의 고통들을 진보세력이 새롭게 제기한 급진민주주의를 통해 해결할 수 있도록 느끼게 만드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런 생각을 해본다. 노무현에게는 4대 개혁입법 비전만 있었고, 4대 사회경제개혁입법의 비전은 없었다. 4대 개혁입법은 다 정치입법이었다. 이는 조중동이 이데올로기화하여 왜곡시키면 대중에게 미치는 영향이 반감된다.

    이제 4대 사회경제적 개혁입법을 생각해야 한다. ‘1가구 2주택 법적 금지’도 검토할 만하다. 바로 이 지점에서 차베스를 생각한다. 노무현처럼 돈키호테라는 비판도 받으나 자신을 지지하는 빈민층에게 확실히 무료 교육-의료 혜택을 제공하며 비전을 주고 그 혜택을 받는 대중과 진보정치가 일체화 될 수 있었다.

    – 반MB 민주주의 연합의 경우 후퇴한 것의 탈환이라는 차원에서 요구 수준으로 볼 때, 불완전한 민주주의, 87년 체제로의 복귀로 볼 수 있는 것 아닌지?

    = 반MB연합으로 87년 반독재 연합을 복원시키려는 것은 상황을 일면적으로만 보는 것이다. 달라진 계급적 사회조건과 정치-사회세력의 헤게모니 전환이 정당하게 반영되어야 한다. 문제는 계급적 성격을 지닌 반신자유주의세력이 국민정치적 전선에 어떻게 개입해 국민들을 반신자유주의적 연합에 동참토록 할 것인가란 지점이다.

    현재의 이중적인 전선을 인식하고 국민적 정치공간의 급진적 변화와 반신자유주의 세력의 결합적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 여기서 반독재 중도세력의 중심성을 전제해선 안된다. 즉 반MB 전선에서 민주당 중심성에 대해 확고한 비판적 시각을 갖고 있어야 한다. 때문에 그 안에서 진보세력은 헤게모니 투쟁을 벌여야 할 것이다.

    하지만 반신자유주의 연합으로 일면화하는 것이 아닌, MB라는 조건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저항들을 어떻게 급진민주주의적으로 접합시킬지 고민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우익적 접합으로 파시즘으로 전환될 가능성도 있다.

       
      ▲ 사진=정상근 기자 

    반MB 전선에서 헤게모니 투쟁해야

    – 반민주 중도세력, 즉 민주당과 진보정치세력이 헤게모니 투쟁을 해야 한다고 했는데, 이게 현재 구체적인 현실 국면 속에서 어떤 방향으로 전개돼야 할 것으로 보이는지, 또한 구체적이고 실천적 맥락에서 어떤 정치적 함의가 있다고 보나.

    = 6.10에 40만이 모인다고 MB가 균열되지 않는다. 오히려 보수가 결집이 된다. 보수를 균열시키는 지점이 있어야 하는데, 반MB로 50만이 모인다고 해도 보수세력 내부에서는 ‘흘러간 옛 노래’라는 말이 나올 수 있다. 이것이 병목지점이다. 오히려 ‘대운하 반대 국민연합’ 같은 전선으로 보수를 균열시킬 수 있을 것이다.

    결국 구체적으로 ‘새로운 정치적 리더십’과 ‘인물’이다. 민주당은 대중적 리더십이 균열되었고 이를 대체하는 리더십이 없다. 또한 대중은 노 전 대통령에 대해 추도의 염원을 보이지만 이명박 정부의 붕괴를 바라지 않는다. 광장에 나온 다수는 지난 대선 때 투표를 안했던 수동화된 대중이 거리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아까 언급했던 사회경제 4대 개혁입법 등을 전면화하고, 헌신과 투쟁을 통해 결국 대중들이 우리들이 내건 의제를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도록 만들어야 한다. 여기에는 일정한 기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 사회경제적 개혁 의제, 아까 얘기가 나왔던 ‘1가구 2주택 금지’ 입법화 등이 대중적인 파급력이 있을 수 있다. 문제는 민주당과 창조한국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등이 실천을 담보하면서 공동으로 내세울 정책이 어디까지인가 하는 점일 것이다. 

    정책연합이든 다른 형태의 연대는 가능한 틀이 있다면, 그 안에서 헤게모니 투쟁이 이어질 텐데, 그 경쟁의 공간 속에서 현실 속의 제 정당들이 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어떤 것들이 있다고 보나.

    시민사회의 새로운 정치적 역할

    = 사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는 막막하다. 제도정치 공간에서 ‘MB반대’ 투쟁은 정치세력 간 관계가 중요한데, 특히 반독재 중도정당의 헤게모니를 전제로 한 비판적 지지의 시대는 갔기 때문에 비판적 지지의 망령에 주저하기보다 ‘탄력적 정치동맹전략’이 필요하다.

    이미 지난 재보선에서 (울산북구의 경우)진보신당이 당선되는 등 일종의 새로운 정치동맹 전략이 있는 상태다. 그리고 이는 민주당 단일 헤게모니가 없기 때문에 가능하다. 아마 10월 재보선, 내년 지자체 선거는 매우 중요한 시험대가 될 것이다.

    이 가운데에서 진보정당은 분당되었지만, 정치적 실체는 있기 때문에, 이를 기초로 진보세력 성장에 실리적으로 유리한 탄력적 동맹방식들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시민사회운동 세력이 이런 점에서 촉진 역할을 해야 한다. 시민사회운동이 다시 과거 반독재 중도정당의 회생이나 복원에 기여하는 방식으로 작동해서는 안된다.

    반독재 중도정당 입장에서야 시민사회운동 세력들을 들러리 세우고 우군으로 만들고자 할 것이나, 시민사회운동세력은 자신의 공신력을 갖고 연대를 통해 내년 지자체 선거에서 프라이머리(예비경선)를 만들 수 있다고 본다.

    국민들에게는 진보신당, 민주노동당이 갖고 있는 정책의제와 노회찬-심상정의 새로운 정치적 리더십을 원하고 있다. 반면 민주당은 새로운 리더십을 탄생시킬 수 없는 불임의 시기에 직면하고 있다. 다만 대중들의 정치적 수준이 새로운 급진민주주의 의제를 자신들의 대안으로 수용하기에는 아직 미진한 과도기에 있다.

    이것에 묘약은 없다. 헌신과 투쟁이다. 용산참사-촛불투쟁을 통해 대중을 변화시켜야 할 것이다. MB정부처럼 대중들의 정치적 실망이 ‘구조화’되는 이 공간보다 더 좋은 정치적 조건이 없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밥상까지 차려주기 바라는 건 너무 과한 기대다.(웃음)

    – ‘촛불 프라이머리’가 잠깐 언급되었는데, 노 전 대통령 사망 이후 민주당의 지지율이 오르고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노무현의 사람들’, 유시민, 한명숙 같은 사람들이 지지율이 오르고 있다. 이러한 국면이 조 선생이 말씀하시는 탄력적 정치동맹 또는 연합에 어떤 영향을 줄 것 같나?

    노무현 과잉평하 반성하나, 한계 또한 기억

    = 노 전 대통령 서거에 따른 국민적 추모열기에 가려져 있는 측면을 봐야 한다. 국민들은 노무현 정부에 대한 과잉폄하는 반성하지만 그 한계와 실책지점들은 명확히 기억하고 있다. 때문에 유시민이나 한명숙이 컴백해 서울시장이 될 것이라 보지 않는다.

    친노세력도 마찬가지다. 노 전 대통령이 남긴 정치적 자산이 국민적 정치자산이 되려면 새로운 틀을 만들어야 하는데, 친노가 다시 나와 행보하는 순간 추모의 염원은 실망이 될 수 있다. 이게 딜레마다. 구 민주당은 중심성을 상실했고, 친노는 진정성은 각인시켰으나 정치적 무능력을 드러낸 지점도 있다.

    이 점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과거 선택들은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김 전 대통령은 김근태 전 장관 등 얼마 안 되는 재야세력들을 끌어들이며 새정치 국민회의를 만들어 냈고 이를 신민당과 연합하는 방식을 통해, 자기변화를 만들어 내, DJ에 실망한 세력까지 재결집하는 계기를 만들어냈다.

    그 재정렬 방식이 스스로의 형태전환 방식이 될 것일지는 모르겠지만, 진보신당의 경우에는 시민사회 좌파나 노동좌파를 흡수해 새롭게 변화된 모습을 보이는 것도 중요하다. 이런 식의 정치적 형태전환을 먼저 해서 다가가는 것이 노 전 대통령의 정치적 유산을 더 많이 차지할 수 있을 것이다.

       
      ▲ 이광호 <레디앙>편집국장 

    – ‘새로운 틀’을 말했는데, 예컨대 기존 민주당이나 친노세력이 재결합해서 새로운 틀의 정당을 건설하는 시나리오도 가능하다고 보나? 

    = 민주당은 불가피하게 그런 방향으로 갈 것이다. 그것이 고전적 방식이고 DJ적 방식이다. 아마 시민사회 일부, 외부 인사를 흡수하는 방식으로 일정하게 달라진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나는 그것을 진보정당이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 이와 관련해 진보정당과 민주당의 개혁 분파가 정치적 연대를 해야된다는 의견이 있다. 그것이 가능할지 의문이 들지만, 그런 입장에 대해 어떻게 보나?

    새로운 진보적 정치블록 가능

    = 단일정당이 만들어질 수도 있겠으나, 정치연합도 가능할 것이라고 본다. 진보신당과 민주노동당, 그리고 이탈이 쉽지는 않겠지만 임종인 전 의원을 포함해 민주당 개혁분파 쪽까지 (연합이)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노동 쪽 세력들, 시민사회에서의 정치적 부분 등 각 블록의 독자성을 인정하는 새로운 진보적 정치연합도 가시화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생태주의세력이 중요한 부분일 것이다. MB정부에서의 새 대치전선이 녹색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상상력이 필요하다. 한시적 선거연합도 가능하고, 그것이 일정한 국민적 지지를 받는다면 민주당과도 탄력적 정치동맹을 구상할 수 있겠다. 그리고 일정 부분에서 민주당을 지지했던 대중들이 이전하는 계기를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 구체적으로 올 10월, 그리고 내년 지방선거에 서울시장 등 광역단체장 출마 문제도 있고, 그와 관련해 시민사회가 매개된 오픈프라이머리도 말한 것 같은데, 내년 지방선거에서 ‘탄력적 정치동맹’의 부분에 대해 더 구체적인 얘기를 한다면?

    = 지자체 선거와 관련해 또 다른 중요한 축은 교육감 선거라고 본다. 주경복-김상곤을 축으로 하는 ‘전국적 진보개혁교육감 네트워크’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고, 이는 일정하게 국민적 지지를 받을 것이다. 여기에 민주당이 협조를 해야 한다. 민주당이 자기 후보를 내면 이런 네트워크가 현실적으로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민주당이 효과적 반MB전선을 균열시키는 요인으로 작동할 수도 있다. 자기들이 다 독점할 수 없다는 점을 자인하고 오히려 탄력적 정치동맹이 민주당에게도 유리할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무엇보다 민주당에 양보를 강제할 수 있는 사회-정치적 힘이 중요하다. 이는 민주당에게도 플러스 요소가 있다.

    친노세력 지지율 상승, 창조적 동맹 어렵게 할 수도

    사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로 인해 유시민-한명숙이 부각되고 있으나. 서거 이전에는 한나라당 후보를 제외하고 민주당 후보와 진보 후보, 예를 들어 노회찬 대표가 나온다면 거의 비슷한 수준의 지지를 받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이것은 국민들에게 일정한 희망을 줄 수 있다고 본다.

    딜레마는 노회찬이나 심상정이 국민적 후보지만 진보신당적 지지 기반밖에 없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로서는 서거정국이 정치적 대안을 만들어 가는데 마이너스적 요소가 일정하게 있다. 갑자기 민주당 친노세력의 지지기반을 대폭 강화하는 형태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10월 보선도 마찬가지다. 탄력적 동맹전략의 선택폭을 줄였다. 그러나 나는 이 현상이 오래가지는 않는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민주당 양보를 강제할 수 있는 사회정치적 힘을 만든다면 여지가 있지 않겠나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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