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 사회주의를 해야 한다”
        2009년 05월 30일 01:2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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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대학교 사회과학원은 29일 서울에서 ‘대안세계화 운동 이념과 전략의 국제비교’라는 제목의 국제학술대회를 열었다. 10시간 가량 진행된 이 학술대회에서 국내외의 여러 진보적 학자들은 세계 각국의 최근 사례를 소개하며, 공황에 직면한 신자유주의 이후의 사회에 대한 대안이나 단상을 내보였다.

    발표자와 약정된 토론자 및 사회자가 15명에 이르고, 다양한 수준의 여러 주제를 다루다 보니 이견이 제대로 드러나거나 토론되지는 못했지만, 각각의 발표에 담겨있는 정보와 견해만으로도 한국 진보운동의 진로를 정하는 데 귀중한 참고가 될 만한 학술대회였다.

    아래는 영어로 진행된 이날 학술대회의 발표들 중 일부의 요지다.

    ‘미주대륙을 위한 볼리바르 대안(ALBA)’의 교훈 : 마틴 하트 랜드버그, 루이스 앤 클라크대

       
      ▲ 왼쪽이 랜드버그 교수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겪은 제3세계 나라들에서는 동아시아 모델을 들면서 경제성장을 기대하는데, 그것은 사실 노동자들에 대한 엄청난 억압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동아시아에서의 경제동력도 한계점에 도달해 있다. 국내 수요를 높여 위기를 돌파하자는 주장도 있는데, 동아시아 수출경제가 그렇게 쉽게 변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사회주의적 대안을 모색하는 ALBA를 주목해야 한다. NAFTA에 대항키 위해 쿠바, 볼리비아, 베네수엘라 등에 의해 만들어진 ALBA는 지역 중심 분권 무역 모델로 세계적 수출경제인 동아시아 모델과 크게 다르다. ALBA의 목표는 지역의 대형 사업체를 만듦으로써 지역 내부를 성장시키는 것이다.

    우려스러운 바도 있다. ALBA의 정책 결정은 아래로부터 이루어지지 않고 각국의 대통령들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러나 보니 대형 프로젝트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베네수엘라 석유에 대한 의존이 지나친 것도 문제점이다. 국제석유가가 낮아지면서 문제가 드러나고 있고, 베네수엘라의 이익이 ALBA의 결정이라는 외피를 쓰는 경우도 있다.

    ALBA의 자주적 경제노선을 위해서는 은행 설립이 필수적인데, 참가국들의 이견으로 아직 운영되지 못하고 있다. 베네수엘라 주도에 브라질이 브레이크를 걸고 있다.

    우리는 특정 모델에 집착하기보다는 지역 조건에 맞는 다양한 모델들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그리고 지역화에 대해 조심스럽게 긍정해야 한다. 진정한 변화는 국가로부터 오지 않는다. 변화는 초국적인 기층으로부터 올 것이다.

    ALBA 모델 등은 자본주의를 타도하는 여러 방법 중 하나로 논의될 수 있다. 사회주의는 자본주의보다 더 높은 생산력이 아니라, 더 높은 삶의 질이라는 사실을 알려 나가야 한다.

    다중의 정치학을 넘어, 동아시아에서의 사회노동운동 : 장대업, 런던대

       
      ▲ 장대업 교수

    이제, 노동운동과 다른 가치의 여러 사회운동을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사회노동운동(Social-labour Movement)으로 개념화하겠다.

    ‘노동계급이여 안녕’이라는 주장은 유효하지 않으며, 한편 노동운동은 노조를 넘어 다양한 가치 전선의 사회운동에 참여해야 한다.

    2005년 홍콩에서의 반WTO 시위는 사회노동운동의 실험실이었다. 이 시위에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사회운동이 참여했었다.

    홍콩의 이주노동자들이 이 운동을 시작했고, 한국 농민들이 합세하며 이 운동이 커졌다. 이전에 직접행동 사회단체들이 시위를 주도한 것과는 달리, 전통적이고 보수적이라 여겨지던 대중조직, 즉 민주노총과 전농이 홍콩 시위를 주도했다. 이것이 성공 요인이다.

    그러나 홍콩 시위에는 ‘무엇에 맞선다’는 것은 있었으나, ‘무엇을 위한다’는 것은 없었다. 유일한 합의는, 합의가 없다는 것이었다. 이는 동아시아 사회운동이 ‘다중의 정치학’이라는 한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네그리의 ‘다중(Multitude)’ 개념은 다양성의 묘사로는 훌륭하나, 정치적 프로젝트와 전략을 짜는 데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다양한 사회운동의 연합을 어떻게 건설할 것인가? 현실의 다양한 운동을 통일시키려면 추상적 이론이 아니라, 신생 운동과 연결하기 위한 구체적 스텝을 밟아야 한다. 기존 운동을 부정해서는 안 되고, 새 운동의 정서를 강요해서도 안 된다. 노동조합에 대한 태도가 중요하다. 예를 들어, 빈민운동을 노동운동과 빈민운동 양측에서 새 노동운동으로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대위기와 마르크스주의적 대안 : 마이클 크라케, 랭카스터대

       
      ▲ 크라케 교수

    2007년부터 시작된 세계금융위기는 동시에 글로벌 거버넌스의 위기이며, 국민국가의 위기다. 1945년 이후 최초로 세계 경제규모가 축소되고 있다. 10~15년 안에 구체적 행동에 착수하지 않으면, 우리는 대재앙에 직면할 것이다.

    미래는 투쟁의 결과에 달려 있는데, 현재의 대안은 네 가지다. 1) 개혁된 신자유주의, 2) 경제 국수주의, 3) 사회민주주의, 4) 맑스주의.

    1)은 약간의 규제와 일시적 국유화를 통해 부담을 납세자에게 떠넘기며 새 버블로 위기를 타개하려는 것이다. 2)는 지역블록, 통화블록, 국가산업 재건 등을 의미한다. 3)은 세계 금융질서를 공공적으로 재편하고, 자본주의의 녹색화를 이루려는 것이다. 나는 맑스주의적 모델을 지향한다.

    지금 필요한 것이 규제냐 아니냐는 논쟁은 옳지 않다. 탈규제가 위기의 원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국가는 축소된 적이 없으며, 신자유주의는 강력한 국가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 화폐, 금융, 신용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필요하다. 복지국가를 재건해야 하고, 대기업 소유권을 수용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유럽의 사회민주주의 모델이 세계 헤게모니를 장악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중국과 전세계 강자들이 패권을 다투는 각축장이 될 것이다.

    21세기 초의 위기와 계급대립 : 제널드 듀메닐, 파리10대학

       
      ▲ 듀메닐 교수

    자본주의 역사 전반에서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는 나타나지 않았다. 1930년대의 위기와 지금의 위기는 이윤율 저하에 의한 것이 아니라, 공산당선언에서 이야기된 바 있는 자본주의 확장으로 인한 폭발, 헤게모니의 위기이다.

    자본가의 욕구를 규제하던 케인즈주의의 1970년대 실패 이후 자본주의 경제가 조금씩 변해 신자유주의가 되었다.

    20세기 초 미국 최부유층의 소득은 국가 전체의 17% 가량을 차지했는데, 2차대전부터 1970년까지는 계속 축소되다가, 이후에는 다시 상승하고 있다. 그리고 근로소득자 중 상위 5%와 나머지 95%의 소득 격차도 크게 벌어지고 있다.

    계급관계를 자본가 대 노동자로 보는 이분법적 계급 구분법, 마르크스주의적 시각은 잘못된 것이다. 자본가 안에도 여러 층이 있고, 노동자 안에도 여러 층이 있고, 그 사이에 관리자계급이 자리하고 있다. 이 관리자계급에 대한 분석의 부재가 마르크스주의의 약점이다.

    지난 세기 초에는 자본가계급의 헤게모니가 행사됐지만, 1940년대부터는 관리자계급과 대중계급의 좌파타협이 이루어졌고, 그 타협이 자본가계급을 통제했다. 신자유주의란, 관리자계급과 자본가계급의 타협이 이루어져, 자본가계급의 헤게모니가 회복된 것이다. 그 과정에서, 관리자계급에 속해 있던 사회주의당은 자본가당으로 변했다.

    1940년대에 계급타협이 왼쪽으로 이루어졌던 것은 대중투쟁과 사회주의 정책, 전쟁의 영향이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강력한 대중운동이 없고, 관리자계급에게 사회적 타협을 강제할 힘도 없다. 노동운동은 대리주의를 택하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는 새 관리자계급이 권력을 장악했던 소련에서와 같은 일이 벌어질까 우려된다.

    물론, 다시 사회주의를 해야 한다. 그런데 이번의 사회주의는 민주적이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지향만으로 사회주의가 가능하지는 않을 것 같다. 레닌은 당시의 사회주의자들 중에서는 굉장히 민주적인 사람이었지만 결국 실패했다. 지금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은 상층계급끼리의 타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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