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엄마' 낱낱이 부수기
    By mywank
        2009년 05월 22일 06:3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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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준호 감독은 <마더>에서 엄마라는 너무도 익숙한 존재를 낯설게 만들기 위해 카메라와 스크린, 관객 사이에 자신의 시선을 개입시킨다. 그 시선을 따라 보는 순간, 엄마라는 기표가 품고 있는 기의의 소름 돋는 본질이 드러난다.

    감독이 선택한 시선의 방식은 영화적으로는 특별한 렌즈를 통해 특별한 방식으로 보는 것이다. 찍을 때부터 렌즈가 대상을 압축해서 정보를 가능한 한 꽉꽉 채워 담는 아나모픽 렌즈를 선택해서는 2.85:1의 스크린에다가 그 정보를 가능한 한 넓게 풀어내 보인다. 그렇게 담긴 정보의 방식은 극단적인 클로즈업과 극단적인 롱샷.

       
      

    대개 익숙한 존재는 그렇게 바짝 가까이서, 또는 아득히 멀리서 보게 되지 않는다. 적당한 거리, 적당한 시선으로 존재 자체를 매 순간 새로 보기보다 늘 그러려니 하는 습관으로 대하게 된다.

    그래서 눈앞에 있는 그 존재를 거의 의식하지도 않고 무심히 지내다가 문득 눈여겨보게 되는 순간, 불현듯 낯선 느낌에 소스라치기도 한다. 가족, 그 가운데서도 ‘엄마’라는 존재가 특히 그렇다.

    불현듯, 소스라치게… 엄마

    엄마는 자식을 지켜‘보고’, 돌‘보고’, 앞길까지 살펴‘보는’ 존재다. 자식은 뭔가 필요하거나 불편할 때, 아니면 엄마가 자신을 보아주기 힘들어졌을 때가 되어서야 엄마를 보게 되곤 한다.

    엄마라는 기표가 지극정성으로 ‘보는’ 존재로서 영화며 드라마에서 재현될 때, 그래서 몇몇 여배우가 연기하는 엄마의 역할이 거의 관습적으로 의례화된 일상적 기표로 기능할 때, 그 재현된 이미지를 두고 배우에게 ‘국민엄마’라고 느슨하게 이름 붙인다.

    이 국민엄마라는 호명은 실체가 없이 관념만 있는 공허한 부름이다. 마치 우정의 무대에서 한 두 마디 목소리와 두루뭉수리 그림자만 비춰지는 한 여성을 두고 수십 명의 청년 병사들이 ‘우리 어머니가 틀림없습니다!’라고 외치며 우르르 몰려나가는 것이 별 뜻 없이 웃자고 하는 일이듯.

    그러므로 봉준호 감독이 대표적인 국민엄마로 불리는 배우를 전면에 내세워 영화를 만들고서는 영화 제목을 ‘엄마’가 아니라 ‘마더’라고 한 것은 아주 의미심장하다. 감독 봉준호와 배우 김혜자는 ‘엄마’라는 명사가 지닌 고정관념으로부터 출발해서 공허한 기표가 아닌 자기 자식을 가진 실체로서의 ‘어미’의 본성을 집요하게 파헤치는 극한으로 나아간다.

    가장 사랑스럽거나, 가장 포근하거나, 또는 가장 지긋지긋하거나. 이런 여러 감정이 뒤엉켜 있는 가장 원초적인 인간관계를 엄마와 아들의 관계로 보고, 엄마라는 존재가 영화적인 세계 속에서 어디까지 폭주할 수 있는지 극한까지 가고자 했다던 감독의 의도는 접신의 경지에 이른 배우와 만나 진실에 도달하는 것이 얼마나 서늘한 일인지를 보게 한다. 내 아들을 위해서는 못할 것이 없고, 내 아들 앞에서는 눈에 보이는 것이 없는 엄마라는 존재에 대한 애증.

    멀리서도 한 눈에 그이가 엄마임을 알게 하는 아나모픽 렌즈를 통한 롱샷은 엄마라는 표상의 허허로움을 공간 속에서 확인하게 하며, 화면을 꽉 채우는 극단적인 얼굴 클로즈업은 표상 아래 감춰진 복잡한 감정의 심연을 담아내는 틀이다.

    ‘엄마’가 아니라 ‘어미

    애면글면 키운 아들이 살인 혐의로 잡혀간 상황에서 그 아들을 구할 사람은 자기밖에 없는 막막한 처지의 엄마. ‘내 아들은 아니야’라는 무한한 믿음 하나에 기대 아무도 없는 길을 혼자 걸어갈 때, 멀리서 아득하게 보이는 엄마의 모습은 애처롭고 스산하다. 어눌한 아들 뒷바라지 때문에 가녀린 몸으로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다니는 엄마가 멀리 떨어진 롱샷에 잡힐 때, 엄마의 딱한 처지는 더 아득하게 보인다. 그 아득한 거리를 두고 아들에 대한 엄마의 믿음이 관객에게 밀려온다.

    영화는 클로즈업을 통해 ‘다성적’ 표정연기라고 하는 것을 최초로 가능하게 만든 매체다. 얼굴 클로즈업은 한 얼굴 안에 드러나는 모순된 표현들, 다양한 감정들, 열정들, 사고들을 극단적으로 확대해 보여주면서 인간 영혼의 다양성을 미세한 떨림조차 놓치지 않고 샅샅이 담아낸다.

    이런 클로즈업을 감당할 수 있으려면 배우의 연기가 감독의 생각과 일치해야만 한다. 일상적인 시각으로는 볼 수 없었던 미세인상학의 세계는 대사로 표현될 수 없는 영혼의 심연, 인간의 비극을 전달한다. <마더>에서 봉준호 감독이 시도한 극단적인 크기의 얼굴 클로즈업은 김혜자라는 영매를 통해 영화라는 매체만이 해낼 수 있는 비극적인 진실에 도달하고, 그 진실을 관객에게 낱낱이 보여준다.

    <마더>가 파헤친 진실, 엄마라는 존재의 극한은 고정관념을 때려 부수고 재로 만들지만, 그 잿더미를 뒤에 두고 온전할 수 없을 정도로 그 진실은 잔혹하다. 그러니 이 영화가 아들에 대한 엄마의 지극한 사랑에서 출발한 영화라 할지라도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이 된 건 당연하다. 가정이 평안해서 자식들 단도리 잘하고, 그 평안을 바탕으로 사회가 안정되기를 바라는 세상에서 이런 진실이 알려지는 것은 위험하다고 여겨질 것이다.

    엄마들은 그렇다면 <마더>를 반성적으로 볼 수 있을까? 영화가 시작할 때 넋이 나가 들판에서 고통스레 혼자 춤추던 엄마가 영화가 끝날 때는 다른 엄마들의 질펀한 춤판으로 빨려 들어가 고통을 벗어나려한다. 그 처절한 춤사위가 절절하고 안쓰럽기는 해도 선뜻 위로할 수 없다.

    어쩌면 대부분의 엄마들은 ‘나라도 그럴 거야’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고 지레 짐작하는 것도 또 하나의 고정관념일 수도 있지만, 엄마들이 자식을 믿는다고 하는 말 뒤에 숨은 뜻은 믿는 바대로 만들고야 말리라는 고집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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