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인 욕망 아니라, 지식인 계급 문제
        2009년 05월 22일 10:0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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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황석영 개그’가 적지 않은 논란을 일으킨 듯한데, 이 문제에 대한 토론은 조금 엉뚱한 쪽으로 흘러가는 것 같습니다. 이 논의는 자꾸 황석영 선생의 개인 ‘욕망’ 문제로 귀결되는 것 같은데 사실 진정한 문제는 그 분의 ‘개인’ 문제는 절대 아닙니다.

       
      ▲ MBC <황금어장-무릎팍 도사>에 출연한 황석영 (자료=MBC)

    지식인 계급사회 내부 풍경

    조금 과장해서 이야기한다면 그 분과 같은 ‘급’에 오른 사람이라면 그 분과 같은 류의 행동을 취하지 않는 사람이야말로 멸종위기에 처해진 희귀 종류입니다. 즉, 이는 단순히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그 개인의 ‘급’의 문제로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옛날 칼 만하임 선생의 말대로 지식인을 free-wheeling, 즉 자율적 존재로 보려는 사람들은 많지만 이는 진실의 절반 정도입니다. 상사의 말을 그냥 그대로 따라야 하는 ‘영혼 없는 공무원’이나 재벌의 머슴들에 비해서야 연구실에 앉아서 제 생각을 거의 여과없이 이렇게 써낼 수 있는 저 같은 인간이야 좀 free-wheeling 하겠지요.

    그런데 이와 동시에 지식계야말로 눈에 보이는, 또한 보이지 않는 ‘계급’이 정확하게 정해져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외부자들에게는 당장 파악되지 않을 수 있지만, 내부자 입장에서는 거의 지식인마다 딱지처럼 그 ‘급’이 붙어 있지요.

    또 독자들의 입장에서는 그 ‘급’이 꼭 지명도에 따라 정해지는 걸로 보일 수도 있지만, 문단의 경우에는 그런 측면이 강할지 몰라도, 꼭 그렇지만 않습니다. 등단한 잡지, 수상한 상, 내부적으로 ‘키워준’ 후견자, 같은 ‘계통’에 속하는 문인들이 누구냐는 그 ‘줄세우기’에 크게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제가 비교적으로 잘 아는 국내 사학계 같으면 대체로 출신대학, 은사, 연령, 직장, 업적 순일 것입니다. 즉 서울대 국사학과의 유력한 분에게 배운 40~50대의 수도권대/지방거점대 교수는 어느 정도의 업적이 쌓이면 ‘권위’가 되기에 비교적으로 쉬운 입장에 있다는 것이지요.

    학계 내부 위계질서 유럽도 존재

    출신대학/은사를 물신화시키는 데에 있어서 국내/일본의 분위기는 좀 특이하지만 학계 안에서의 위계 질서는 구미권에서도 엄밀히 존재하지요. 예컨대 학술지에 게재하기 위해 논문을 심사에 맡길 때에 ‘급’이 같거나 더 높은 사람에게 보내는 것은 불문율입니다. 교수 채용 때의 심사와 같은 정말로 중요한 문제라면 그 ‘급’이란 더욱더 분명해지지요.

    문제는 무엇입니까? 그 위계질서에서 어느 정도의 ‘급’에 도달한 이상 또 하나의 권력, 즉 국가권력을 상대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기본적으로는 예컨대 본인과 본인의 ‘문하생’들을 위해 연구비라도 따내야 하지 않습니까?

    연구비, 출판보조비, 학회 보조비 등은 그나마 국가와의 ‘괜찮은’/’건전한’ 관계일 수도 있지만, 특히 국내에서는 많은 교수들이 각종 ‘국책 사업’ (국가 위원회들 등등)에 참여하도록 학교 측으로부터 상당한 압력을 받을 수도 있지요.

    학교로서는 이게 학교 사이에서의 ‘무한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하나의 방도이기도 합니다. 사실, ‘무한의 경쟁’이란 결국 경쟁 주체의 국가권력에 대한 ‘무한의 구애’를 의미하기도 하는데, 신자유주의자들은 보통 이 치사한 부분을 잘 이야기해주지 않더랍니다.

    또 국가로부터 정기적으로 연구비를 받고, ‘국책 사업’에 자주 참여하고, 그 덕으로 많은 박사과정생들이나 젊은 박사들에게 용역을 많이 주고 그러다 보면 그게 어느덧 관습화되어서 국가와의 관계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됩니다.

    비겁함 또는 현명함

    그러면 그 관계를 ‘관리’할 필요가 생기는데, 일단 국가 정책 등에 대한 대외적 발언의 수위를 적절히 조절하는 게 기본입니다. "제자들을 위해 좀 참자"라고 하면서 이렇게 함구하면 자신이 비겁하다는 생각도 잘 들지 않습니다. 비겁함은 어느덧 현명함으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학교에 얽매여 있는 교수보다 작가가 더 자유롭다고 보시는 분도 계시는데, 착각일 뿐입니다. 잘 안 팔릴 소설들을 영어나 스웨덴어 등으로 번역, 출판케 지원해줄 주체는 과연 누구이고, 각종 작가포럼 등을 지원할 주체는 누구입니까?

    하여간 ‘정상적인’ 지식인이란 ‘보신’, ‘자기 보존’ 본능이 대단히 잘 발전된, 자신의 ‘급’이 높은 만큼 국가 관료들의 ‘급’도 알아주는 사람입니다. 체제에 일단 순응한 지식인에게는 체제에 대한 의미 있는 ‘반대’를 기대한다는 것은 사하라사막에서 물을 찾는 일과 똑같은 것이지요.

    물론 각자 취향에 따라 ‘표현’의 수위는 다를 것이고, 적어도 ‘반대하는 시늉’이라도 해줄 소수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는 오십보백보일 것입니다. 거기에서 욕심이 조금 더 크면 국가와의 ‘통상적’ 협력 이상으로 나아가는 것이지요. 즉, 국가 정책을 명시적으로 찬양하거나, 국가에 의해서 돌연히 크게 기용되거나…

    이러한 ‘특별한 유착’은 세인들에게 – 특히 해당 지식인이 ‘반대자’로서 알려졌을 경우에는 – 좀 괴이하게 보이겠지만 지식인 사회의 ‘통상적 협력’의 정도를 아는 사람에게는 별로 이상하게 안 보일 것입니다. 사실, ‘통상적 협력’보다 단 한 걸음, 두 걸음만 더 나아가면 국가와의 ‘특별한 관계’가 이루어질 수도 있지요.

    지식인들을 좀 냉소적으로 볼 필요는 있습니다. 그들에게 특별한 기대를 걸거나 특별한 후광을 부여한다는 것은 좀 어리석은 일을 가능성이 큽니다. 지식인 본인들도 대체로 매우 냉소적으로 처신하기에 그들을 같은 방법으로 대하는 게 적당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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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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