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돈 역외유출이 선진화?
    2009년 05월 12일 05:2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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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앙>에서 편집장 메일이 왔습니다. 뭐, 다른 일이 있을 때에도 메일이 가끔 옵니다. 전화로 목소리를 들려주면 될 터인데, 무슨 낚시도 아니고 꼭 메일만 줍니다. 투덜투덜.

교육분야 무슨 위원인가를 하라고 하더군요. 무슨에 들어갈 말은 생각나지 않습니다(뭐였지?). 언제나처럼 다음 작업을 위해 이전 기억을 소거하여 작은 뇌에 빈 공간을 만드는 버릇 때문입니다. 그래도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대충 합니다. 교육 쪽으로 무슨 일이 생기면 펜을 쥐는 거겠죠. <레디앙>에만 싣는 글 말입니다.

또 금요일에 이런다

지난 5월 8일 교육과학기술부(이하 ‘교과부’)와 기획재정부(이하 ‘기재부’)는 <서비스산업 선진화 방안>을 발표했습니다. 2월부터 민․관 합동회의를 구성하여 토론회 등을 거친 후 마련한 내용이랍니다. 교육과 의료 등 10대 분야가 ‘유망 서비스 분야’라는 이름으로 대상이 됩니다.

   
  ▲ 8일 청와대에서 열린 서비스산업 선진화를 위한 민관합동회의 (사진=청와대)

그런데 발표를 또 금요일에 합니다. 월요일이나 화요일도 있는데, 주말을 앞둔 금요일에 합니다. 이명박 정부는 사교육비 발표처럼 뭔가 불리하거나 논란꺼리가 될 만하면 주말 직전에 내놓는데, 이번에도 또 그럽니다. 왜들 이러는지 모르겠습니다.

사소한 실수도 눈에 띕니다. 기재부 보도자료 및 보고서에는 차별개선, 교육, 콘텐츠, IT서비스, 디자인, 컨설팅, 의료, 고용지원, 물류, 방송통신이 10대 분야로 되어 있습니다. 교과부 보도자료에서는 교육, 의료, 물류, 방송통신, 콘텐츠, 광고, 디자인, IT서비스, 컨설팅, 고용지원입니다.

뭐가 다르냐구요? 차별개선이 기재부에는 있고 교과부에는 없습니다. 거꾸로 광고가 기재부에는 없고 교과부에는 있습니다. 기재부가 밝힌 10대 분야가 정확합니다. 교과부가 실수한 것이지요. 과중한 업무로 인해 발생한 일이겠지만, 씁쓸합니다.

한국 학생이 90%가 넘는 ‘외국’교육기관?

교육분야 서비스산업 선진화 방안의 주요 내용은 외국교육기관의 △내국인 입학비율 확대, △과실송금 허용 등 두 가지입니다. 외국학교법인의 편의를 봐주겠다는 겁니다.

내국인 입학비율은 현행 재학생의 30%에서 정원의 30%로 늘어납니다. ISS가 관여하고 있는 송도국제학교를 예로 들겠습니다. 지난 4월에 학교건물이 완공되었지만 아직 개교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학생이 없기 때문입니다.

송도경제자유구역에 등록된 외국인은 744명이고 학령기 아동은 50여 명입니다. 이 아이들이 모두 송도국제학교에 입학한다고 하더라도 외국인 학생 50명에 내국인 학생 15명(재학생의 30%) 하여 65명 정도입니다. 송도국제학교의 정원은 2100명인데 학생은 고작 65명입니다. 유령학교가 될 판입니다.

정원의 30%로 바꾸면 내국인 학생은 630명까지 받을 수 있습니다. 외국인 학생 50명까지 합하면 680명입니다. 그래도 2100명 정원에 미치지 못하지만, ‘유령학교’에서는 벗어날 수 있습니다. 물론 송도국제학교를 ‘외국교육기관’으로 불러야 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680명 학생 중 630명(92.7%)이 우리나라 학생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상관없습니다. 건물만 지어놓고 문을 열지 못하면 무조건 손실이지만, 개교하면 어떻게든 만회할 수 있으니까요.

마침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이 올 9월 개교를 확정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중앙정부가 관련 편의를 봐주는 내용을 발표하고, 뒤이어 지역의 해당청이 확정하고, 참으로 아름다운 ‘부창부수(夫唱婦隨)’가 아닐 수 없습니다.

안을 발표만 했는데 그게 바로 되는 거냐구요? 괜찮습니다. 내국인 학생 비율 확대는 시행령 사항이라서 국회를 거치지 않고 정부가 바로 할 수 있습니다. 자사고도 시행령으로 처리했는데, 뭔들 못 할라구요. 봐줄 때는 확실히 봐주는 정부랍니다.

2100명 정원에 학생 680명 규모면 그래도 운영적자가 나지 않느냐구요? 괜찮습니다. 경제자유구역의 외국교육기관에는 국가와 지자체가 재정지원할 수 있습니다. 송도국제학교의 경우는 5년간 100억 원 정도를 중앙정부와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이 메꿔줄 것이라는 말도 나옵니다. 외국학교법인이 학교를 지으면 학생 조달해주고 세금이나 개발이익으로 손해 메꿔주고, 이거 투자할 맛 나겠는데요.

제주도 분들은 화내겠습니다

과실송금 허용은 외국학교법인이 우리나라 학생과 학부모가 낸 돈을 자기 나라로 가져갈 수 있도록 하는 겁니다. 일종의 역외 유출이지요.

과실송금 허용을 왜 하냐면, 이게 되지 않아서 그동안 외국학교법인들이 잘 들어오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정부 용어로는 “결산상 잉여금의 타회계 전출 불허로 외국교육기관의 진출 인센티브 부족”라고 합니다.

그래서 법을 바꿀 계획입니다. 작년 6월 한나라당 원유철 의원이 발의한 법안이 있는데, 그걸 통과시키겠다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나라 돈이 다른 나라로 갈 수 있습니다. 지역의 대형마트에 지불한 돈이 본사가 있는 서울로 가는 ‘역외 유출’ 현상이 국가간에 벌어집니다. 지역주민의 돈이 그 지역 안에서 도는 게 아니라 엄한 곳으로 빠져나가는 일이 나라 사이에 벌어집니다.

이처럼 국부유출을 허용해야 외국교육기관의 진입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 들어오려고 하는 기관을 ‘교육기관’과 ‘수익사업체’ 중에서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그런 기관들의 편의를 봐주려고 하는 우리 정부는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국내 영리법인과 합작하여 제주특별자치도에 들어오려고 하는 미국 브랜다이스대학은 유치 교섭경비로 10~20억 원을 요구하고 있는데, 편의를 봐줘야 할 겁니다. 비즈니스 프랜들리 정부이니까요. 그 다음 요구조건은 어떻게 할까요?

그런데 과실송금 허용은 제주 영어교육도시의 국제학교에는 해당되지 않습니다. 경제자유구역이나 제주도내 다른 지역의 외국교육기관에는 해당됩니다. 차별입니다. 당연히 앞으로 있을 정책설명회, 공개토론회, 국제포럼, 법 개정 과정에서의 각종 논의에서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제주도 분들이 영어교육도시의 국제학교도 과실송금을 허용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겠죠.

제주도 분들의 또 다른 목소리도 나오지 않을까 합니다. “괜찮은 국제학교나 외국교육기관은 제주도만 있으면 된다”라는 내용을 약간 각색한 이야기 말입니다. 하긴 수도권인 인천과 달리, 비행기와 배로 바다를 건너야 하는 제주는 바다가 장점이자 약점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교육분야 서비스산업 선진화 방안을 둘러싸고 제주도 분들과 수도권, 수도권과 지방 사이에서 오가는 이야기도 관전 포인트입니다.

일단 배운 다음에 수출하자?

이번 방안은 ‘서비스산업 선진화’라고 명명되어 있는 것처럼, 철저하게 산업의 관점에서 교육을 바라봅니다. 교과부와 기재부 등 관련부처가 공동으로 작성한 보고서에서는 2008년 유학수지가 44억불 적자로 심각한 수준이니 개선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방법은 일단 개방입니다. 개방해서 외국교육기관을 유치하면 국내 교육서비스의 경쟁력이 올라갈 것이고, 그런 다음에 수출하자는 겁니다. 어디로요? “국제적 수준의 서비스 제공을 통해 동남아 등 개발도상국의 고등교육 시장 진출 기회 확보”, 즉 동남아입니다.

그런데 이런 청사진이 과연 가능할까요. 가능하다고 여기는 분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우린 지난 수십 년 동안 사람이 직접 바다 건너 유학을 갔습니다. 주로 영미권 유학을 다녀와서 대학이나 연구소 등에 터를 잡습니다.

재밌는 점은 이 다음입니다. 1세대 유학파는 2세대 유학파와 3세대 유학파로 이어지고 점차 그 수도 많아집니다. 1세대 유학파가 학문의 기틀을 잡은 다음에 후학들을 키우면 될 법한데,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괜찮은 학생에게 오히려 유학을 권합니다. 그리고 국내에서만 공부한 후학들은 쉬이 인정하지 않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생각하는 것처럼 초중고등학교 단계의 외국교육기관이 소위 ‘선진 교육기법’을 전수하여 우리 교육의 경쟁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킬까요? 아니면 ‘영업비밀’은 숨긴 채, 한국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익을 창출하거나 본국으로 이송하는 징검다리를 만들까요? ‘국내용 경쟁’을 위해 조기유학을 보내는 분들은 국내에 있는 분교와 본국에 있는 본교 중에서 무엇을 선호할까요?

이화여대 부근에 한 대학원대학이 있습니다. 국내의 교육개방 현황에서 꼭 언급되는 대학입니다. 다른 나라의 모 대학과 교육과정을 소위 ‘합작’하여 운영합니다. 그리고 한 달 정도 본국의 대학으로 학생을 보냅니다. 이거 본국의 대학 입장에서는 꽤 괜찮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선진화라고 부릅니다. 경제자유구역 이외의 다른 지역에서 ‘역차별’을 제기할 사안을 선진화하고 부릅니다. 한국인 학생을 조달해주고 역외 유출을 허용하는 방안을 선진화하고 부릅니다.

한동안은 학원산업을 키우더니, 이번에는 외국교육산업의 국내 진출을 돕습니다. 정부가 나서서 판촉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남은 건 국내 사학의 영리행위 허용입니다. 교육‘산업’의 전성 시대가 멀지 않습니다. 물론 ‘교육’의 전성시대가 될지는 확신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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