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뇌물 먹은 양윤재를 다시 장관급으로
        2009년 05월 08일 12:0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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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필적 악의적 서평을 쓰게 만든 원인은?

    용산참사 이후 국익을 재물로 바친 제2롯데월드 건설허가, 용산개발이 다시 꿈틀거리는 등, 서울은 자본이 원하는 공간으로 편성되어 가고 있다. 그렇다면 그 공간에서 살고 있는 시민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과연 현재 진행 중인 서울의 막돼먹은 돈먹고 돈먹기식 공간 전략을 제지할 수는 없는 걸까?

    최근에 출간된 건축역사가 스피로 코스토프의 <역사로 본 도시의 모습>(2009, 공간사)을 읽으면서 알게 된 샌프란시스코 사례는 필자의 의도가 한갓 낭만에 그치는 것이 아님을 확인시켜준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수단 좋은 정치가들과 개발업자들의 영향에서 벗어나기 위해 행동주의자들이 벌인 정치적 선전운동은 1985년 가을, 도시중심지에 대한 새로운 계획을 통과시켰다. 그 계획은 구시대의 고층 건물들을 포함하여 많은 랜드마크를 허물지 못하게 했다. 과밀한 금융지구부터 새로 지어지는 사무용 고층 건물을 금지했고, 1년에 지을 수 있는 실질적인 건물의 수를 제한하는 규제를 추가했다. 이를테면 ‘성장제한growth cap’이라는 것이다.”

    이 문장들은 현재 세계도시 서울을 만들기 위하여 활발하게 추진 중인 서울시의 도심재개발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수단 좋은 정치가들과 개발업자들의 영향권에 놓여 있는 서울이야말로 ‘성장제한’이 필요하다.

    상당히 두터운 원서를 부지런하게 옮겨놓은 번역자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와 같은 정치가들과 개발업자들로부터 운동을 통해서 성장제한을 쟁취할 불순한 의도에서 번역했을까? 80년대 녹두나 백의와 같은 인문사회과학출판사들에서 번역된 책들은 단순히 외국어를 한글로 옮긴 게 아니라 이러한 실천적 고민이 반영되었던 것을 회상한다면 그러한 심증은 더욱 강해졌다. 이명박식 법치시대에 이러한 불순분자를 이명박 정부가 과연 용인할 수 있을지 심히 걱정이 된다. 번역자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나는 이 책을 번역하면서, 이 책이 우리나라의 건축과 도시계획, 조경 및 도시설계 관련 학자와 연구자, 학생과 실무에 종사하는 전문가, 그리고 이 분야에 관심을 가진 보통 사람들이 우리가 사는 도시의 모습을 좀 더 정확히 인식하고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고자 노력했다.

    그래서 우리의 도시를 보다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가는데 도움이 되고, 나아가 이 분야의 연구자들과 전문가들의 실무에도 보탬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러나 막상 책을 번역해 놓고 보니 부족한 점이 너무 많아 독자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지식소매상 유시민은 최근에 출간한 자신의 책이 주목받게 되면서 각종 강연회가 잡혔었다가 노무현 전대통령을 둘러싼 부패사건이 터지면서 ‘정치적 경호실장’ 유시민으로서 강연회 일정을 취소하고 활동을 자중하고 있다고 들었다.

    나는 유시민의 이러한 행보를 두고서 참여정부의 도덕성이 아직 남아 있다면서 옹호할 생각은 없다. 다만 직접적으로 부패사건에 연루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지식인으로서 유시민은 최소한의 ‘염치’는 갖고 있었다는 것을 언급하고 싶었을 뿐이다.

    여기까지 읽으면서 이 글이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의아해 하는 독자들이 많을 거 같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서 앞서 소개한 책의 번역자를 소개할 필요가 있다. 책에 적혀 있는 약력을 그대로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와 환경대학원 도시계획학과. 미국 일리노이공대 대학원, 하버드 대학 설계대학원에 건축과 도시계획, 조경 및 도시설계를 공부했다. 이후, 미국의 S.O.M에서 건축과 도시설계 실무를 했다. 서울대학교 교수로 환경대학원과 건축학과에서 도시설계를 가르쳐 왔으며, 미국 워싱턴 대학 교환교수, 서울시 청계천복원사업본부장과 행정2부시장을 역임했다.”

    이 책은 2009년 1월에 출간되었다. 그런데 번역자의 이력은 행정2부시장을 끝으로 그 이후가 생략이 되어서 아래와 같이 친절한 보충이 필요하다.

    부정부패로 구속된 자도 장관급으로 임명하는 이명박 정부의 윤리성

    번역자인 양윤재는 지난 2003년 청계천복원사업본부장으로 있으면서 당시 청계천 주변 재개발과 관련하여 개발업자로부터 층고제한을 완화해달라는 청탁과 함께 2억 원을 받는 등의 총 4억 원의 뇌물을 받아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혐의로 구속기소되었고, 징역 5년형을 받았다가 이명박 대통령의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지난해 풀려났다. 그리고 넉 달 후에 국가건축정책위원회 위원(장관급 대우)으로 임명되었다.

    유시민의 ‘염치’가 이명박 정부에서 얼마나 절실한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오랜만에 상기해보자면 청계천 복원사업은 자그마치 3800억 원에 달하는 서울시민의 혈세가 들어간 엄연한 공공사업이었다.

    그런데 양윤재는 개발업자로부터 4억에 달하는 뇌물을 받아먹는 사익행위를 통해서 감옥에 들어갔던 사람인데 남아있던 징역을 마저 살지는 않고, 태연하게 장관급 대우를 받는 공직으로 화려한 컴백을 하였다. 이렇게 얼굴에 철판으로 코팅한 행보가 정녕 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에 걸 맞는 품위를 지킨 것인가.

    한국사회 상위 지도층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상류층의 도덕적 책무)는 증발된 지 오래고, 그 아래 계층에서는 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 無錢有罪)라는 말이 설득력 있게 배회하고 있다.

    현재 검찰이 수사 중인 죽어있는 권력에 대한 조사는 살아있는 권력에의 부정부패에도 똑같이 적용할 것인지도 지켜보아야 할 것이지만, 양윤재와 같은 인물이 현 정권에서 태연자약 활동하고 있는 것을 볼 때 현 정권이 ‘윤리’라는 단어를 과연 알고 있는지도 의구심이 든다.

    다시 강조해서, 누구보다도 양윤재는 청계천 복원과정에서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의 행동대장으로 앞장서 시민단체의 의견을 묵살하고, 시공을 앞당겨서 청계천을 복원 아닌 왜곡을 초래했었다.

    그것도 모자라 청계천 사업과정에서 수단 좋은 정치가들과 개발업자들의 영향에서 벗어나기는커녕 뇌물을 받아먹었음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이렇게 뻔뻔하게 “우리가 사는 도시의 모습을 좀 더 정확히 인식하고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고자 노력”하고, “막상 책을 번역해 놓고 보니 부족한 점이 너무 많아 독자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또한 양윤재는 자신이 다음의 335쪽을 번역하면서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궁금하다.

    “그들이 사는 도시의 모습을 최종적으로 결정해야 할 사람은 집단적인 목소리를 내야하는 시민들이다. … 만약 우리가 도시라는 공동체가 우리의 가치를 품어주고, 우리가 함께 사는 법을 배울 수 있는 자리를 우리에게 마련해준다면, 도시를 설계하는 방향을 정하는 일은 우리들이 함께 책임을 질 것이다.”

    만약 ‘염치 있는’ 양윤재였다면 속죄하는 마음으로 쓰다만 약력에 자신의 뇌물혐의로 구속되고, 정권의 은총으로 장관급 대우를 받는 감투를 받았다고 밝혔을 것이다. 그리고 옮긴이의 글에서 ‘생계 때문에 막상 책을 번역해 놓고 보니 제가 뇌물 먹은 먹물이라서 독자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고 썼을 것이다.

    번역을 반역으로 만드는 번역자의 윤리성도 중요하다

    덧붙여 번역서의 출판사가 공간사였던 것도 씁쓸하다. 김중업과 함께 한국 건축역사에서 양대 산맥인 김수근의 주도로 1960년에 창립한 이래로 공간그룹은 일개 건축사무소가 아니라 월간 <공간>을 통해서 근 반세기동안 한국건축역사에서 독보적인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공간>을 중심으로 당대의 건축담론논쟁을 주도했었던 공간그룹의 역사를 감안할 때 최소한 지식인으로서 절필 사유인 공공사업에서 뇌물로 구속된 자를 왜 하필 오랜만에 공간에서 출간된 훌륭한 원서의 번역자로서 마주쳐야 했는지는 오랜 독자로서 씁쓸할 뿐이다. 질 좋은 양서에 대한 번역자의 비윤리성이 번역을 반역으로 만들게 되었다. 이 서평이 첨이자 마지막으로 곤혹스러운 서평이길 바란다.

    참여정부의 부패사건이 민주화 세대들에게 절망이었다면, 이명박 정부에서 버젓이 부패를 저지르고도 염치를 모르는 먹물이 한국사회를 얼룩지게 하는 것은 온 국민의 절망이다. 그나마 아주 최소한 양윤재의 미덕은 “도시의 모습을 최종적으로 결정해야 할 사람은 집단적인 목소리를 내야하는 시민들이다”라는 역설적인 번역문을 한글로 유포시킨 점이다.

    시민들의 뇌리에서 희미해져가고 있는 용산참사를 반추하여 도시의 모습을 최종적으로 결정해야 할 사람이 바로 우리라는 자각이 필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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