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 당위 아니라 당장 필요한 무기
By 나난
    2009년 05월 04일 12:3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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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은 성공했다. 노동자는 갈라졌다. 자본과 권력의 동맹군이 성공적으로 수행한 노동자 계급 분할 통치는, 그들의 속셈을 알면서도 노동자들이 어쩔 수 없이 당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비정규직은 꼼짝달싹하기 어려운 고용의 ‘덫’에 걸려있고, 정규직은 나라도 살아야 된다는, 비난만 할 수 없는 이유로 연대를 기피하고 있다.

연대는 당위가 아니라 실천적 당면 과제

하지만 비정규직, 정규직을 넘어선 노동자들의 ‘연대’는 가치나 당위 차원이 아니라, 현실에서 부딪치는 문제를 풀어나가기 위한 당면의 과제로 부각되고 있다. 실제로 연대에 취약한 사업장에서는 비정규직에 대한 공세가 정규직까지 겨냥하고 있으며, 비정규직-정규직 연대를 이뤄낸 곳에서는 모두 승리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코스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475일간의 긴 싸움 끝에 지난해 12월 노사가 ‘무기계약직 전환’에 합의하며 일단락됐다. 하지만 코스콤 비정규직 노동자가 2번의 겨울을 길에서 보내는 동안 정규직 노동자는 이들의 직접 고용을 반대해 왔다. 민주노총은 지난 2007년 11월 “비정규직 정규직화 투쟁을 외면했다”는 이유로 코스콤 노조를 제명했다.

지난 3월 GM대우 노사가 전환배치에 합의하며 비정규직 노동자 900여 명이 무급휴직을 권고 받는 등 대규모 구조조정을 예고하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일하던 자리에는 정규직 노동자들이 옮겨왔지만 자본은 이들에게조차 임금 10% 삭감, 복리후생 중단 등을 요구하고 있다.(GM대우와 타타대우, 당신이라면 어딜? redian.org/news/articleView.html 기사 참조)

지난해 12월 29일 국민은행은 무기 계약직 은행원 457명에게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이미 170여 명이 계약 만료로 회사를 떠난 상태였다. 이들의 빈자리는 임금피크제 시행으로 일자리가 없어진 정규직들이 차지했다. 이 과정에서 노조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노조

정규직의 일자리 확보를 위해 비정규직의 집단해고가 묵인되고 있는 것이다. ‘정규직 조합원의 이기주의’라는 말은 ‘내 일’이 아닐 때 쉽게 내뱉을 수 있지만, 구조조정의 칼날이 내 눈 앞에 왔을 때는 ‘살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 되기도 한다. 이미 IMF 이후 심각한 구조조정을 몸소 겪은 이들에겐 더욱 그러하다.

   
  ▲정규직 노동자의 외면 속에 475일간의 외로운 사투를 벌인 코스콤 비정규직 노동자들.(사진=코스콤비정규지부)

하지만 비정규직 조직화에 있어 정규직의 연대는 필수조건이다. 조직력과 교섭력을 지닌 정규직 노조의 힘은 비정규직 조직화에 ‘막강 파워’가 된다. 이런 의미에서 7년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실행하고 있는 금속노조 타타대우상용차지회는 모범적인 사례로 손꼽힌다.

타타대우차 회사와 금속노조 타타대우상용차지회는 지난해 임단협 합의 정신에 따라 비정규직 42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데 합의했다. 이로써 하도급업체 직원 320명 중 13%인 42명이 정규직으로 전환될 예정이다.

타타대우상용차지회의 경우

5월 정규직 전환 대상에 오른 원택희 금속노조 타타대우상용차지회 조합원은 “3년 전 비정규직으로 들어와 열심히 일하면 정규직으로 채용된다는 걸 알고 목표가 생겼다”며 “정규직이 되면 임금이나 복지 면에서 혜택이 늘어나니 모든 비정규직이 정규직이 되고 싶어 한다”고 말한다.

타타대우의 정규직 전환은 지난 2003년부터 시작됐다. ‘매년 일정 비율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한다’는 노사 합의에 따라 지금까지 정규직으로 바뀐 비정규직만도 260여 명. 이에 앞서 노조는 지난해 6월 노조 규약을 바꿔 비정규직 320명을 조합원으로 받아들이기도 했다.

김근규 타타대우상용차지회 부지부장은 “일부 대공장이 정규직-비정규직 간 작업 조끼 색마저 다른 반면 타타대우는 같은 라인에서 일하기 때문에 정규직-비정규직의 형태가 아닌 선후배 등의 인간관계가 형성돼 있었다”며 “비정규직의 고충과 요구에 대한 정규직 조합원과 비정규직 출신 노조 간부의 이해가 있었기에 정규직 전환이 이뤄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9월에 예정된 집행부 임기 마감 이후 “성격이 다른 집행부가 들어선다 해도 노사 간 합의사항이기 때문에 정규직 전환은 이행될 것이며 조합원 안에서도 이미 동의된 부분이기에 임의적으로 중단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조합원-비조합원 연대

2006년 6월 정규직으로 전환된 손성찬 타타대우상용차지회 조합원은 “일부 정규직 중에서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나 노조 가입으로 정규직이 피해 입지나 않을까 우려하는 부분도 있었지만, (상호 이해를 바탕으로) 위에서 잡고 끌어주는 정규직 조합원들이 있었기에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이뤄졌다”며 정규직 연대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한편 최근 사측의 외주화 방침에 비조합원을 노조에 가입시키며 연대 투쟁에 나선 사례가 있어 주목받고 있다. 이는 비정규직과 정규직 간의 연대를 넘어 비조합원과 조합원 간의 연대라는 점에서 더 각별하다.

발레오전장시스템스코리아(주)는 지난 4월 청소, 식당, 차량, 경비 부문에 대한 아웃소싱 계획을 발표했다. 식당․청소․차량노동자는 금속노조 발레오만도지회 조합원이었지만 문제는 조합원이 아닌 14명의 경비노동자였다.

정연재 발레오만도 부지회장은 “모든 노동자가 발레오만도지회에 가입할 수 있도록 문을 열고, 단체교섭에 따라 지회에 가입할 수 없는 경비노동자를 금속노조에 가입시켰다”며 “그들에 대한 관리권을 위임받아 아웃소싱 저지를 위해 노조가 함께 싸우고 있다”고 말했다.

사측은 경비노동자에 대해 ‘사업주의 물적, 인적 재산관리와 보안책임을 맡고 사용자의 이익을 대표하여 행동하는 자’라는 이유로 이들의 노동조합 가입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법에 위반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금속노조에 따르면 노조법 제2조 제4호의 단서 조항 ‘노동자의 자주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사용자 또는 항상 사용자의 이익을 대표하여 행동하는 자의 노동조합 참가 금지’ 부문에 따라 경비노동자는 노동자의 “자주성을 훼손할 우려가 없기 때문”에 노조 가입이 합당하다는 주장이다.

"노동조합 인정 안 할 거면 같이 죽자"

발레오만도지회 조합원 627명은 지난달 28,29일 본사 사장의 경주 지사 방문 당시 ‘반격’이란 단어가 새겨진 빨간 티셔츠를 입고 ‘노동조합 불인정 함께 죽자 발레오 자본’이라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이들은 현재 경제위기를 틈탄 아웃소싱 시도와 경비 노동자 14명에 대한 노동자성 불인정에 ‘전면파업’으로 맞설 계획까지 세운 상태다.

   
  ▲ 금속노조 타타대우상용차지회는 7년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사진=타타대우상용차지회)

정부 여당은 7월 임시국회 처리를 위해 비정규직 관련법과 최저임금법 개악을 추진하고 있으며 경제위기는 노동자의 생존권을 더욱 위협하고 있다. 특히 이명박 정권은 ‘흔들리지 않고’ 공권력과 제도를 앞세우며 노동조합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전진’하고 있다.

노동운동 진영이 이를 막아내기 위한 견고한 연대 전선이라는 진지를 구축해내지 못할 경우, 민주노조가 수십년 동안 ‘쟁취’한 성과들이 급속하게 무너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노동자와 시민사회의 투쟁으로 이뤄진 민주적 제도와 절차가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는 것처럼.

투쟁으로 확보한 거점 급속히 무너질 수도

지난해 9월부터 4개월간 하청업체 비정규직 해고자 30명의 정규직 복직을 위해 투쟁에 나선 김석진 현대미포조선 현장노동자투쟁위원회 의장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자본이 만든 질서”지만 그 질서를 깰 사람 역시 “그 속에서 잘 조직된 정규직 노동자”라는 점을 강조한다.

경제위기에 일부 정규직 노조가 선택한 무기계약직과 외주용역화는 ‘영구 비정규직’과 ‘비정규직 대량해고’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칼날은 결국 ‘예산 절감’이라는 이유로 정규직의 비정규직화, 비정규직의 외주용역화라는 악순환 고리를 그리며 모든 노동자의 생존권을 위협하게 된다.

김 의장은 최근 정규직 전환배치에 승인한 GM대우 노조에 대해 “어렵다는 핑계로 (구조조정 칼날이) 가장 먼저 치고 들어 올 비정규직의 생존권을 자르는 것은 결국 정규직의 생존권과 연결될 수밖에 없는 일”이라며 정규직들의 비정규직 조직화 투쟁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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