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정규직 철폐 꿈 안고 페달을 밟다”
    By 나난
        2009년 04월 25일 07:0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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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정규노동자 및 장기투쟁 노동자들이 진보신당, 비정규없는세상만들기, 불안정노동철폐연대, 민주노총, 민주노동당 그리고 시민들과 함께 4월 21일부터 “너희가 아닌, 우리의 세상을 향한 질주”라는 이름으로 전국을 순회합니다.

    대학교수부터 블로거까지, 다양한 미디어 활동가들로 이뤄진 미디어행동네트워크, ‘미행美行’이 그 여정에 동참하여 그들의 목소리를 전합니다. – 편집자 주

    [질주 첫날] 낯선 얼굴들, 그러나 전혀 낯설지 않은 간절한 싸움들…

    ‘경제위기, 구조조정, 고통분담…’ 토씨 하나 다르지 않게 반복되고 재생되는 21세기 자본주의 한국사회의 전도된 담론이자, 계급투쟁의 이데올로기 지형을 드러내는 핵심 코드이다. 그러나 싸움의 징후는 좀처럼 밖을 향한 자장을 형성하지 못하고 세계와의 교섭에서 밀려난 것처럼 보인다.

    운동의 위기와 전망의 부재를 고민하는 여러 층위의 목소리들이 들리고, 운동의 재구성을 모색하자는 갑론을박은 넘치지만 그것이 구체성을 획득하고 현실과 부딪치며 전선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질긴 투쟁으로 지쳐있던 비정규직과 장기투쟁 사업장의 노동자들이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또다시 길을 나섰다. 상복을 입고 삼보일배를 하던 그 길을 이들은 자전거를 타고 달려서 움직이지 않는 운동진영을 호명하고 침묵하는 세상을 고발하겠다고 한다.

    “너희들의 세상이 아닌 우리들의 세상을 향한 질주”라는 이름으로 동서를 횡단하는 전국 순회투쟁에 나선 것이다.

    그 첫걸음을 대구에서 시작하였다. 모든 지역이 그렇듯이 중앙에 대비되는 공간으로만 인식되며 운동의 변방으로 기억되는 대구에서의 첫날은 얼마나 폭넓은 관심을 모아낼 수 있을까? 우려와 기대가 교차하는 가운데 매우 숨 가쁘게 진행되었다.

    21일 오후4시 대구 출입국관리사무소 앞에서 진행된 이주노동자 단속추방 규탄집회에 참석해서 질주투쟁의 결의와 취지를 알리고, 이주노동자들의 절실한 요구와 만날 수 있었다.

    그물처럼 드리워진 한국사회의 수많은 차별과 배제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현실은 굳이 불러내지 않더라도 거울처럼 우리 사회를 비추면서 곳곳에서 지워지지 않는 흉터처럼 환부를 드러내고 있다. 그 비틀어진 자화상이 바로 노예적 삶을 강요받는 비정규직 문제와 이주노동자들이 일상으로 겪고 있는 현실이다.

    예정된 인연처럼 이들은 집회에서 만나기 이전에 아주 오래전부터 삶의 현장에서 만나고 있었다. ‘조선족’이라는 배타적 작명으로 건설현장에서, 그리고 ‘식당아줌마’란 이름으로 허름한 밥집에서, 영세 중소사업장의 노동자로 쇳가루 날리는 마찌꼬바에서…

    다만 서로를 똑같이 착취당하는 노동자로서, 그리고 함께 어깨 걸고 연대할 저항의 주체로서 마주서지 못했을 뿐, 우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서로에게 다가서지 않을 수 없는 동지였다.

    이주노동자는 배제의 대상

    1년짜리, 혹은 2년짜리로 불리거나 파견 또는 하청으로 이름 붙여진 비정규직 노동자와 단지 국적만을 달리하는 이주노동자는 인간 이전에 이윤에의 욕망을 존재근거로 삼는 자본의 이해 앞에 동일한 타자(他者)로서 배제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대구지역 이주노조 관계자에 따르면 “얼마 전에 대전에선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단속한다는 미명하에 실제 일하고 있는 식당에 출입국관리소 담당직원들이 들이닥쳐 손님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마구 폭언과 폭행을 휘두르며 강제단속하고 구금 수용하는 일이 있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바로 이곳 대구에서도 전날 십여 명의 이주노동자들이 강제단속으로 구금수용 되었기에 진상을 조사하고 이에 대한 규탄과 항의의 뜻을 전하기 위해 집회를 진행하고 있으며 면회를 추진하는 중이라고 했다.

    잠시 후 면회결과 구금된 사람은 4~5명 정도이며 나머지 이주노동자들은 항의 움직임에 앞서 다른 곳으로 이감 조치한 것 아닌가?라는 의혹이 있다고 했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자본운동은 이미 노동력의 폭발적인 이동을 낳을 수밖에 없는 단계에 들어섰다.

    그런데 아직도 노동의 국경과 장벽을 전제한 관점으로 국가경쟁력 강화를 내세워 일상적인 수탈을 견디며 구석진 삶의 이면(3D업종)에서 사회적 필요를 채우기 위해 사회적 생산의 한축을 담당하는 이주노동자를 인간사냥 하듯이 추방과 단속의 대상으로만 사고하는 것이 유일한 이주노동자 대책이라 할 수 있다.

    더구나 이명박정권은 기본적 노동의 권리조차 박탈당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의 최저임금을 깎고 숙식비를 임금에서 공제하여 벼룩의 간을 빼먹는 입법을 강행하려 하고 있다.

       
      ▲ 질주 실천단의 이주노동자 차별철폐 행진.

    MB정부가 국가경쟁력위원회에 법무부와 노동부 공동명의로 제출한 “비전문외국인력관리대책”에 따르면 이주노동자들의 재고용과 재입국의 칼자루를 고용사업주에게 쥐어줌으로써 이주노동자들의 심각한 임금하락과 장시간노동이 강제됨은 물론 이들의 기본적 인권도 급격하게 후퇴할 것이 분명하다.

    이처럼 이명박정부가 직접 나서 이주노동자들의 목을 조르고 있는 서글픈 현실을 걷어내기 위해 운동의 경계와 구획을 넘어 우리는 보다 넓은 사회적 관심을 모아낼 때이다.

    질주실천단이 기자회견을 마치고 서울을 출발하려 할 때 이번 순회투쟁의 제안주체로서 깊은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던 금속노조 동희오토 사내하청지회의 지회장과 조직부장이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받을 것이란 얘기를 들었는데, 우리가 대구에서 여장을 풀었을 때 결국은 구속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그런데 구속과정에서 경찰의 집단폭행으로 안경이 부서지고 얼굴이 부어오르는 등 심각한 인권유린이 자행되었으며 심지어 국가인권위원회 면접신청도 거부하고 부상자 치료를 위해 병원으로 이송해줄 것을 요구하는 구속노동자에게 수갑과 포승줄을 모두 묶어 옥죄는 이중결박을 강요하는 등 수감자의 인권을 철저히 짓밟는 행위를 서슴지 않았다고 한다.

    구속사유는 지난해 공장정문 앞에서 있었던 집회에서 지역노동자들과 경찰 간의 몸싸움과 관련한 것이라는데, 이미 2월에 조사가 모두 종결처리된 사건을 다시 들추어 탄압을 강화하는걸 보니 아마도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모터쇼에서의 항의투쟁과 이번 ‘질주 순회투쟁’의 흐름을 미리 차단하려는 의도를 갖지 않았을까 짐작되기도 한다.

    어쩌면 이번 동희오토 노동자들의 구속이 바로 “정리해고 분쇄와 비정규직 철폐”의 요구를 전면에 걸고 시작된 질주투쟁의 의미와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생생한 현장증언이자 상징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질주 둘째날] 성서공단의 모래바람, 노가다에서 노동자의 이름을 얻기까지

    공단풍경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굉음처럼 들리는 기계음에 묻혀 사람들의 웃음소리나 담소를 나누는 풍경은 좀처럼 찾기 힘들고 점심시간에나 겨우 공장 앞 공터에 모여 삼삼오오 족구를 하며 자투리 시간을 보내는 노동자들의 모습은 변함이 없다.

    그런데 성서공단에서 선전전을 진행하는 내내 어딘지 모를 쓸쓸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불황이 본격화되기 전엔 어디를 가든 낙서 같은 구인광고와 파업을 알리는 벽보 등이 자주 눈에 띄었는데, 그런 것을 찾아볼 수 없었다.

    물론 요즘엔 인터넷 환경의 변화로 구인벽보를 붙이는 경우가 많지 않겠지만 생산 현장에서 노동자를 찾는 손길이 거두어지고 실업과 해고가 만연한 시대에 노동자 스스로 자기 목소리를 조직해내는 파업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는 공단의 풍경은 쓸쓸하고 허전함이 묻어난다.

    또 하나 이상했던 것은 지역동지에게 듣기로 성서공단에도 이주노동자가 적지 않다고 들었는데, 점심시간에 족구를 하거나 거리에 나온 사람들 중엔 이주노동자가 전혀 눈에 띄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공장안에서 여전히 이방인으로 일상적인 소외를 경험하며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6만 명 중 조합원은 130명"

    성서공단노동조합 위원장의 말을 들어보자. “성서공단에는 대략 6만여 명의 노동자가 일하고 있는데 이들 중 금속노조와 성서공단노동조합의 조합원을 합치면 130명 수준으로 대부분의 노동자들을 노동조합으로 조직하지 못한 미조직 상태에 놓여있다”고 한다.

    “50인 이하 영세사업장을 대상으로 조직사업을 하며 공단 전체의 공단 단협을 지향하고 있으나 현재 70명의 조합원으로 주체의 조직화가 미흡해 일영정밀과 매직셰프 2개 사업장 교섭을 진행하고 있을 뿐이다.”

    “단협 체결로 보자면 사업주의 교섭주체 요구를 할 수 있어야 하는데 노조의 조직역량이 충분치 않아 교섭력 확장에 한계가 있다.”

    위에 언급한 일련의 고민들을 들으며 노동조합운동의 병목지점을 보는 것 같아서 마음이 무거웠다.

    그럼에도 노조는 지역에서 ‘들풀’이란 이름의 개별 노동자들을 조직하는 그릇을 준비하여 실천하고 있고, 이주노동자를 조직하기 위한 현장위원회 활동도 한축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하니 어려운 조건에서도 스스로 힘을 만들어가는 그들이 든든했다.

       
      ▲ 질주 실천단은 ‘비정규직 철폐, 구조조정 및 경제위기 고통전가 분쇄’를 위해 자전거 대행진을 벌이고 있다.

    공단을 향하기 전 질주실천단은 새벽잠을 밀어내고 건설노동자들의 거친 숨소리를 찾아 진천동 계룡건설 현장으로 달려가 아침 선전전을 진행했다. 현장으로 가기 전에 건설노조 사무실에서 보았던 포스터의 내용이 머리속을 떠나지 않았다.

    ‘노가다 VS 노동자’라는 제목의 포스터였다. 한 두 번의 인터뷰와 관찰자의 눈으로는 절대 공감하기 어려운 질문이지만 그래도 확인하고 싶었다.

    우선 지역 건설노조의 상반기 투쟁기조가 궁금했다. 핵심 쟁점은 이곳 역시 마찬가지로 경제위기를 빌미로 임금을 삭감하겠다는 내용이며 이는 지역 건설자본 연합체인 <대구경북전문건설 철근콘크리트협의회>(이하 협의회) 명의의 협조공문에서 확인할 수 있다.

    「건설노조 대구경북본부」수석부지부장에 따르면 “지금의 건설경기는 부동산투기와 건설자본만 살찌우는 정책을 펴는 정부와 고분양가 행진과 그로인한 미분양 속출 속에 오직 이윤창출에만 혈안이 된 건설자본의 책임을 무엇보다 먼저 물어야 하는데 건설 회사들이 건설노동자에게 일방적으로 고통을 전담시키려 하고 있다.”

    “<협의회>의 의도대로 임금삭감이 추진될 경우 그 첫 희생은 비조합원과 도급팀을 중심으로 먼저 시작될 것이며 이는 순식간에 모든 현장으로 확산될 것이다. 더 심각한 것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임금삭감의 바람은 노동시간 연장과 노동 강도 강화로 이어질 것이 분명하다”는 점이다.

    노가다 VS 노동자 ???

    현장에 도착했을 때 쌀쌀한 날씨만큼이나 불황의 그늘은 깊어 보였다. 건설현장은 미분양이 속출하고 공정이 불안해짐에 따라 건설노동자들의 실직이 줄을 잇고 있다고 했다.

    IMF에 이어 밀어닥친 불황의 여파는 일명 ‘노가다’라 부르는 건설노동자의 구성이 달라질 만큼 심각하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소규모 영세 자영업의 몰락으로 이들의 건설현장 유입이 늘고 있으며 전교조 해직교사 등도 건설현장에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노가다’의 신세에서 당당한 ‘노동자’로 자기존재를 긍정하게 되었을까?

    그 해답은 지난해 파업투쟁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2008년 9월 이들은 연장과 장비를 내려놓고 일만 하던 손을 멈추어 전면파업에 들어갔다. 40일간 계속된 파업을 통해 전원복직과 단협 이행 약속을 쟁취할 수 있었다. 물론 무노동 무임금이 여기선 통하지 않았다. 건설노동자들의 노동시간 단축의 꿈도 8시간 노동제 확보로 현실화될 수 있었다.

    그것은 기적이 아니었다. 이들은 현장을 조직하기 위해 아주 소박한 요구에도 귀를 기울였다.

    ‘함바’라 불리는 현장 식당의 부식 개선부터 노동자들의 산재대책에 이르기까지 이들이 조합원의 신뢰를 얻고 삶의 투쟁을 함께 열어갈 현장인부들을 조직하기 위한 꾸준한 노력이 그들을 ‘노가다’의 자기부정을 극복하고 당당한 ‘노동자’로 다시 설 수 있게 한 힘이 아닐까?

    현장에서 활동하는 조합원의 사람 좋은 너털웃음을 마주하며 오래전 흙집을 짓던 가난한 아버지의 주름을 잠시 생각했다.

    오후4시 근로복지공단 들머리에서 열린 노동자 건강권 쟁취를 위한 집회에선 백마디 발언보다 무서운 한 줄의 외침이 절규처럼 맥박을 울렸다.

    “제발 죽지 않고 다치지 않고 일하고 싶다.” 2년 전에 레미콘 벨트에 빨려 들어가 사투 끝에 목숨은 건졌지만 한쪽 팔을 영원히 잃어버린 누이의 아들 녀석 생각이 났다.

    근로복지공단의 ‘업무상 질병판정위원회’라는 곳이 산재 직업병 심사기관인데 이곳이 공정성을 잃고 산재불승인을 남용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정부는 요양기간을 축소하고, 강제종결을 남발할 수 있는 산재법 개악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이제 싸움은 특정주체 만의 몫으로 남겨둘 수 없음을 소리 없이 항변하는 사례들은 곳곳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전선은 선언과 당위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지금 오월에서 유월로 이어지는 투쟁을 전국적인 흐름으로 키워내기 위한 작은 몸짓들이 꿈틀거리고 있다. 그 한복판을 질주의 자전거가 달리고 있다. “비정규직 철폐! 정리해고 분쇄! 민중생존 총고용보장”의 당당한 요구를 걸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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