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니가 해라, 혁명"
        2009년 04월 25일 08:0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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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지.

    작년 이맘때쯤 서울 광화문 청계천 광장 한 구석에서부터 촛불들이 확산되기 시작했고, 6월에 이르러서는 전국적으로 촛불이 넘실거렸다.

    당시의 촛불집회는 제2의 86년 항쟁이라고 평가될 정도로 시민들의 역동적인 힘을 확인할 수 있었지만, 컨테이너로 쌓아올린 명박산성처럼 촛불의 함성을 들을 줄 몰랐던 이명박 정부의 난청 때문에 이내 급속도로 촛불들은 사그라졌다.

    촛불 이후의 방법론

    촛불운동은 광우병 등의 소비와 관련된 부르주아적 운동의 한계라는 뻐근한 평가도 있었지만, 대의 민주주의의 한계를 인식하고서 그 대안으로 직접 민주주의 논쟁이 점화되고, 전통적인 운동의 엄격성에서 벗어나 놀이, 축제와 같은 다채로운 운동의 빛깔이 번지면서 한국사회운동에 새로운 좌표들을 설정했다는 점에서는 소중한 수확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수확물을 어떻게 다시 씨를 뿌리고, 열매를 맺어서, 신자유주의, 대의 민주주의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을까? 마치 한 밤중 정전이 되었을 때 촛불의 소중함을 인식하다가도 이내 전기가 들어와서 형광등이 켜지고 나면 촛불의 고마움은 금방 잊혀졌듯이, 촛불의 활력을 끄지 않고서 키워나가는 것은 불가능할까?

    『혁명을 표절하라-세상을 바꾸는 18가지 즐거운 상상』(트래피즈 컬렉티브 엮음, 황성원 옮김, 2009, 이후)은 촛불이 꺼진 후의 곤혹스러움을 대비할 수 있는 일말의 방법을 제시해 줄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의 경제 제도에 저항하는 대중 운동이 시애틀에서 멕시코 칸쿤에 이르기까지 탄환처럼 날카롭게 날아서, 현수막과 최루가스, 폭동의 현장을 넘나들었지만, 거리가 다시 조용해졌을 때 일상의 사람들은 또 다른 가능한 세상의 벽돌을 상상하고, 만들고, 실천을 통해 학습하면서 비범한 일들을 행하고 있다.”(20쪽)

    Do It Yourself

    이 책의 저자들은 한 두 사람이 아니다. 명시적으로 저자는 세 명이지만, 책에 소개된 각종 전술(?)과 내용들은 전 세계의 아나키스트들과 반세계화 단체들의 노하우를 모아놓은 것이다. 책의 원제는 DIY(Do It Yourself), 즉, ‘너 스스로 하라’라는 의미인데, ‘DIY’라는 용어는 한국사회에서는 이미 흔한 용어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대한민국 주부들이 살림을 할 때 직접 일상에서 손으로 생활용품을 만드는 데에서 이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해서, 이제는 여러 분야에서 DIY 용어는 흔하게 사용되고 있다. 이 책에서 사용한 DIY도 그 의미가 다르지 않다.

    저자들은 혁명 또는 운동의 뜨거운 열기가 지나가고 돌아온 일상에서 어떻게 또 다른 가능한 세상의 벽돌을 상상하고, 만들고, 실천하여, 혁명을 지속시킬 수 있는가를 바로 그 일상생활에서의 DIY를 통해서 주장한다.

    이 책의 구성은 크게 이론과 실천으로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정부나 기업에 의존하지 않고자 하는 무정부주의 사상에 기초하여 우리 손으로 세상을 만들어 가기 위해서, 너무 시시콜콜하게도 전기를 자급하는 방법부터 의사결정에 합의를 이루게 하는 방식, 병원 없이도 건강을 지키는 법, 학교 없는 교육, 먹을거리 등의 자조적인 삶을 살 수 있는 방식부터 시작하여 국가기구와 자본에 빼앗긴 각종 권리를 획득하기 위한, 대안언론, 직접행동의 방법과 사례들까지 망라하고 있다.

    가령, 화석연류, 중앙 집중화된 전력망에 의지하여 온수를 사용하는 방식에 대한 대안으로 태양열 온수 샤워기의 제조법을 상세히 설명해놓는가 하면, 도시의 오염물질을 줄이는 일환으로 사람의 대변을 간단한 저장시설을 만들어서 하수도 시설이 필요 없는 퇴비형 화장실을 만드는 제조법을 도면과 함께 다음과 같이 상세히 밝히고 있다.

    싸움의 기술들

    “퇴비형 화장실의 가장 일반적인 모델은 두 개의 지하 저장 시설을 가진 방식이다. 일반적으로 나무나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저장 시설들이 대안적으로 사용될 수도 있다. 방 한 개가 거의 차면 봉쇄되고(구멍 위에 판자를 얹어 막는다) 다른 방이 개방된다.

    이 다른 방을 사용하는 동안 첫 번째 저장소에서 퇴비화가 진행되는 것이다. 온대기후에서는 적절한 퇴비화가 진행되는 데 보통 1년 정도면 충분하다. 저장 시설에는 뒤로 접근할 수 있는 문이 있는데, 이곳을 통해 만들어진 퇴비를 밖으로 끄집어낸다.

    퇴비는 정말로 영양분이 풍부한 흙처럼 보이며, 냄새가 나지 않고 원래 그것이 어떤 물질이었는가에 대한 흔적이 전혀 없다. 만들어진 퇴비를 다 끄집어내고 난 뒤에 그 방은 다시 새로운 순환을 맞게 되며 적절한 때가 되면 지하 저장 시설의 용도가 바뀔 수도 있다.”(78-79쪽).

    당장에 토건국가 한국에 쓸 만한 전략도 소개되어있다. 대처 총리가 집권하고 있었던 1980년대 영국에서는 대규모 도로 건설계획을 저지하고자 환경주의자들은 저항캠프를 만들어서 다음과 같은 직접행동을 했었다.

    “저항 캠프는 어떤 공사가 시작되기 전에 그 진행을 막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캠프는 굴착기 밀어 떨어뜨리기부터 하청 업자 사무실 점거하기에 이르는 행동 기지의 역할을 한다. 캠프에서 먹고 자는 사람들은 꾸준히 다른 사람들이 관련 사안과 저항에 대해 상기할 수 있는 시각적 자료들을 제공하면서 사람들이 해당 지역에서 참여하고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고양시킨다.”(429쪽)

    이러한 노력들은 결국 영국정부가 도로 건설계획을 포기하도록 만들었다. 이러한 직접행동을 통해서 말귀를 알아듣는 영국에 비해서 이명박 정부의 토건지향적 정책들에 대한 대응전략으로 이런 것들(굴착기 밀어 떨어뜨리기)을 사용한다면 법치정부에서 어떤 결과를 나올지는 미지수겠다.

    일상의 실천과 구조 변화

    이 밖에도 빈집 점거를 위해서 자물쇠를 바꾸는 법을 도면까지 친절히 그려서 설명해주기도 한다. 이러한 일상에서의 전략들은 단순히 독자의 흥미를 노리고서 쓴 것은 아니다. 물론 이러한 얘기들이 자본주의의 대안이 될 수는 있는가라는 반문이 나올 수도 있겠다.

    하지만 퇴비형 화장실 제조법만 보더라도 기후변화로 인한 물 부족 현상의 심화에 대한 대안으로, 풍력을 이용한 극소형 발전시설이나, 태양열을 이용한 온수 샤워기 등은 인류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인구가 여전히 전등을 켤 수 있는 전기 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자본주의의 붕괴 이후에 이러한 적정기술들을 통해서 인류가 생존할 수 있는 대안임을 저자들은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자 했다.

    이 밖에도 정당 민주정치의 한계에 대한 직접 민주주의를 위하여 합의를 이루기 위한 수레바퀴형 의사결정방식, 안전한 먹을거리를 공급받기 위하여 공동체 정원을 만드는 전략들은 무정부주의적 관점에서 자족적 공동체를 만들어서 국가를 대체할 대안일 수도 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국가의 한계를 인정하고, 국가의 기능을 보완한다는 측면에서도 의미 있는 전략들이겠다.

    전후 프랑스의 대표적인 공산주의자이자 철학자인 앙리 르페브르는 혁명의 성공을 위해서 일상에서의 실천을 강조했다가, 당대의 구조를 고민하고, 거시적인 변혁을 통해서만 혁명에 성공할 수 있다는 교조적 마르크스주의자들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은 바 있다.

    이는 한국에서도 비슷한 상황인 듯싶다. 87년 6월 항쟁 이후 20년이 흘러 제 2의 민주항쟁으로 불린 촛불운동까지 나아갔지만 현 정부는 녹록치가 않았다. 도리어 거대한 운동의 실패가 깊은 냉소주의의 확산과 더불어 너무 쉬운 좌절을 경험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감도 있다.

    빈집 점거 등의 사례를 한국사회에 직접 사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겠지만, 책에서는 국가와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다양한 전술들을 소개하고 있어서 실제로 실천해봄직한 내용들을 참고해도 좋겠다. 책의 제목처럼 이 안내서에서 소개한 혁명을 표절하여, 자신만의 DIY를 통해서 또 다른 가능한 세상의 벽돌을 한 장씩 쌓아올리는 유쾌한 실천들을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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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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