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보선과 적전 분열
    2009년 04월 23일 03:5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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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4.29 재보선이 코앞에 다가왔다. 이번 선거의 프레임은 MB통치 1년에 대한 심판론의 성격을 띠고 있음은 불문가지의 일이다. 지난 서울교육감 선거의 패배에도 불구하고, 얼마 전 치러진 경기교육감 선거에서의 김상곤 후보의 당선은 투표율이야 어쨌거나 반(反) MB 정서가 물밑에서 얼마만한 영향력을 보여줄 수 있는지를 실감케 했다.

선거와 관련한 언론보도를 보면, 부평을 선거구에서는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초박빙의 승부를 벌이고 있고, 울산북 선거구에서는 후보단일화만 된다면 진보정당 후보의 당선이 거의 확실해 보인다. 전주 덕진은 탈당한 정동영 후보와 민주당의 김근식 후보가 경합하고 있지만, 누가 되든 반(反)MB 세력의 당선은 당연한 결과다. 한나라당의 텃밭인 경주 역시 반(反)MB 정서가 없다고 할 수 없다. 이른바 ‘친이’와 ‘친박’의 세력다툼은 한 지붕 두 가족인 한나라당의 향후 역학관계를 가늠하는 분수령이 될 것이다.

이렇게 보면, 이번 선거에 임하는 모든 정치세력은 보수․개혁․진보 세력 모두가 반(反)MB 프레임 안에서 선거의 당락을 결정짓게 되는 셈이다. 현정부 들어 국회는 사실상 여야를 막론하고 행정부의 거수기 역할로 전락했고, 민의는 거듭 모욕당하고 있음을 생각해 본다면, 여야를 막론하고 반(反)MB 세력의 선전은 그래서 기대해 볼 만한 일이라고 판단된다.

그러나 이른바 개혁․진보세력의 선전을 기대하면서도, 그것이 흔쾌한 느낌을 갖게 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거기에는 이유가 있다.

정동영 사태, 지역정당 재확인

개혁세력의 경우, 정동영 후보의 공천 문제를 둘러싸고 민주당은 커다란 내분에 휩싸였다. 선거 결과에 따라 후폭풍은 당연히 뒤따를 것이다. 정동영 공천 문제는 민주당의 대안정당으로서의 경륜을 시험할 수 있는 장이었다. 공천문제를 어떻게 매끄럽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민주당이 진짜 개혁세력인지 아니면 한나라당과 별다를 것 없는 지역정당인지를 판가름할 수 있었다. 물론 결론은 명백한 지역정당으로 귀결되었다.

   
  ▲ 사진=정동영 홈페이지

그 책임은 물론 당지도부와 정동영 후보 모두가 짊어져야 할 정치적 책임이다. 나는 당지도부가 전주 덕진 지역에 정동영 후보를 절대 공천할 수 없다고 나선 것은 정치적 패착이었다고 본다. 그가 당의 대선후보였고 서울의 지역구에 출마했다 낙선한 ‘전력’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그의 정치적 고향에 출마하겠다는 의지를 ‘개인적 권력욕’ 수준으로 폄하하는 것은 사려 깊은 태도가 아니다. 동시에 민주당이 전략공천 한 김근식 후보가 과연 이 지역구와 어떤 연계가 있었는지도 알 수 없다.

정동영 후보 역시 책임을 면할 수는 없다. 탈당을 불사하고 무소속연합을 구성하는 등의 정략적 발상으로 의회에 입성한 뒤, 결국 민주당으로 귀환하겠다는 정 후보의 공언은, 공천에 실패한 뒤 ‘친박연대’라는 기묘한 그룹을 만들어 의회에 입성한 구(舊) 한나라당 정치인들과 아무런 차이가 없는 당내 계파갈등의 노골적 표출에 불과할 뿐이다.

설사 그가 당선된다고 할지라도, 정치적 경륜과 리더십을 회복할 수 있겠는가 하는 회의론은 그의 정치인생 후반부를 계속 따라다닐 것이고, 그가 가슴 속에 품고 있는 ‘큰 꿈’의 진정성을 회의하게 만드는 부정적 ‘낙인’을 더욱 선명하게 할 것이다.

그럴 가능성은 낮아 보이지만, 만일 정후보가 낙선하게 된다면 당연히 그의 정치인생은 여기가 ‘끝’이다. 정 후보 역시 정치적 패착을 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래서 오히려 이 시점에서 와신상담하고 있는 손학규 전 대표의 정중동의 움직임이 더욱 돋보이는 것이다.

울산 북구, 진보양당 실망스러워

울산 북구에서의 진보양당의 경합 역시 실망스러운 것은 마찬가지다. 이 지역의 국회의원이었던 조승수 후보에 대한 현지의 지지율은 상당히 높은 편이다. 선거법 위반으로 그가 낙선하지 않고 울산 북구에서의 의정활동을 지속했다면, 세력이 미미한 사회당을 제외하고 유일 원내 진보정당이었던 민주노동당의 정치적 기반은 민주당의 패착 때문에라도, 대안정당으로서 발돋움할 수 있는 가능성의 공간이 더 넓게 열렸을 것이다.

그러나 진보정당을 분열시킨 ‘원죄’에 대한 대중적 추궁으로부터 그는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그 자신의 선의야 어떻든 민주노동당을 마치 ‘종북세력’의 집결지인 것처럼 비난하면서, 양당의 분열을 촉발시켰던 당사자가 재보선 국면에서 국회의원에 발 빠르게 입후보하고 또 단일화를 요구한다는 것 자체가 민주노동당 입장에서는 마뜩치 않은 사태인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해서 민주노동당의 김창현 후보의 행보가 마냥 긍정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정치인이라면 당연히 정치적 야심이 있는 것이고, 후보단일화 과정에서 가급적이면 자신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단일화의 조건을 제도화하려는 유혹을 갖고 있겠지만, 후보단일화의 셈법을 민주노총의 전략적 지지표와 연결하고자 끝까지 애쓰는 모습은 과연 그가 단일화에의 의지가 있는 것인지 회의케 하기에 충분하다.

동시에 진보정당이 양당으로 분열되었다면, 민주노총의 민주노동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 역시 상징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분열될 것은 분명한 일 아닌가. 동시에 울산북구 지역이 노동자의 도시라고 해서, 과연 이 지역의 민심을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대표할 수 있느냐는 원리적인 의문도 당연히 제시된다. 지역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것과 노동자 대표를 선출하는 것은 범주가 다른 문제다.

   
  ▲ 조승수 진보신당 후보(왼쪽)와 김창현 민주노동당 후보

결국 진보양당의 후보 역시 전주 덕진에서의 정동영․김근식 후보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정치적 욕망만을 내세우다가, 후보등록 전 단일화는 고사하고 선거 직전까지 서로를 비난하다가 결국 단일화에 실패해 정치적 냉소를 초래하거나, 단일화를 통해 당선된다고 해도 ‘상처뿐인 영광’으로 진보정치에 대한 희망을 거두게 만들지 않을까 진심으로 우려된다.

반MB 빼고 뭐가 있나? 박근혜 체제 귀결?

물론 정치행위는 ‘최선’을 추구해야 하되, 실제로는 ‘실현가능한 최선’의 한계 안에서 결정되는 것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개혁세력을 자처하건 진보세력을 대표하건 간에, 오늘의 정치지형이 여야를 가리지 않고 반(反)MB 전략 빼고는 미래전망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실로 우려스럽다.

돌이켜 보면 소수야당인 민주당은 선거 패배 이후 야성(野性)을 강화시켜 확고한 개혁세력으로서의 면모를 일신해왔다기보다는 ‘촛불정국’에 기대어 내부개혁과 미래전망에 대한 체계적인 설계를 방치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진보양당 역시 ‘촛불정국’에서 자못 치열한 장외투쟁을 벌인 것은 인정하겠지만, 변화된 정치적 환경 속에서 과연 정국운영의 아젠다는 고사하고, 진보정치의 미래전략을 얼마나 가다듬고 있었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면 대단히 회의적이다.

사실 어떤 측면에서 보면 이것은 진보․개혁 세력 전체의 위기 문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국민들의 반MB정서가 높다는 사실이 ‘진보의 재구성’이라는 목표를 지체시킬 수 있는 원인일 수는 없다. 최근의 민주노총을 포함한 사회운동의 위기는 제대로 된 ‘진보의 재구성’이 없다면, 마치 대처 시대의 영국과 같이 보수세력의 장기집권으로 한국정치가 빠져들 수 있다는 우려를 현실화시킬 확률이 높다.

이른바 반(反)MB 정서의 고양이 개혁․진보 세력의 입지나 정치적 영향력을 강화시키기보다는 ‘보수혁명’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오히려 촉발시켜, 한국판 대처 이미지로 무장할 것이 분명한 ‘박근혜 체제’로 귀결될 확률이 오히려 높다.

어떤 점에서 보면, 오늘의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양립은 영국의 노동당 세력이 노동당과 사민당의 양당체제로 분열된 후, 사민당은 정치적으로 사멸하고 노동당조차 신자유주의의 거센 흐름 속으로 타협해 들어간 영국 진보정당 운동의 역사를 회상하게 만드는 측면도 없지 않다.

투자자가 된 노동자

그래서 이 부분에서 우리가 한 번쯤 진지하게 던져야 할 질문은 이런 것이다. 진보양당이 여전히 신뢰하고 있는 ‘노동자 중심성’이라는 테제가 과연 오늘의 현실에서도 유효한 진단인가 하는 점이 그것이다. 사실 오늘의 민주노총의 위기를 포함하여, 이데올로기의 측면에서는 개혁․진보세력에 동의하는 유권자들이 선거 국면에서 보수정당에 지지표를 던지는 아이러니는 이면의 더 강력한 현실적 계급의식이 존재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1990년대 이후 일반화된 ‘투자자’라는 정체성이 그것인데, 1960년대 영국 노동당의 선거에서의 패배를 레이먼드 윌리엄스는 이 ‘투자자’ 정체성에서 찾았고, 1980년대 대처리즘의 확산의 원인을 검토했던 스튜어트 홀이 지적했던 것 역시 노동자들의 ‘투자자’ 정체성으로의 ‘변형’이었다.

2009년 현재 한국의 노동자 전체가 이 ‘투자자’ 정체성에 함몰되어 있는 것은 물론 아닐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적극적으로 노동조합 운동에 참여하고 정치적으로는 진보․개혁 세력임을 스스로 공언하는 사람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나날이 변화하는 증권시황판에 눈길을 던지면서, 자신이 투자한 펀드와 부동산의 등락에 예민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음을 우리는 의지적으로 부정하지 말고 비관적으로 직시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노동자라고 해서 자동적으로 진보적 노동자 의식을 갖게 되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이른바 ‘강부자’에 속한 계층이 열렬한 ‘강남좌파’로 변신하는 것 역시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노동자들 자신이 처해 있는 변화하고 있는 물적 토대의 변화는 동시에 그의 정치적 의식 역시 유동적으로 만들며, 정체성이란 그렇게 역사적 환경변화 속에서 수시로 출렁거리는 액체성에 가까운 것이다.

때문에 오늘의 진보․개혁세력들이 고민해야 될 문제는 이것이다. 평소에는 정치적으로 개혁적이고 진보적인 견해를 표출하고 있던 사람들이 왜 지난 대선국면에서 MB를 지지했는가. 금융자본주의의 세계화에 따라, 그것에 연결된 노동자 정체성과 이데올로기 역시 유동적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른바 진보․개혁세력이 이러한 계급 정체성의 문제나 이데올로기 지형에 대한 고민을 성숙하게 전개시키면서, 새로운 리더십의 모델 및 정치적 아젠다를 창출하는 노력을 치밀하게 진행시키지 않는다면, 임박한 재보선의 결과와 무관하게 진보개혁 세력의 정치적 전망은 장기적으로 보자면 어두울 수밖에 없다.

제대로 된 ‘진보의 재구성’이 말이 아닌 실천으로 나타나야 할 때가 지금이다. 그러니 재보선 정국에서의 적전분열 양상이 내게는 더욱 안타깝게 느껴지는 것이다.

* 대안지식연구회 정치사회비평 http://jihaeng.net/b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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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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