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신당은 벽돌 두 장…현미밥 짓자"
    2009년 04월 20일 10:2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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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점심 시간에 맞춰서 호텔로 오세요.”

이탈리아 요리사와의 점심 약속. 촌스럽게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머릿속에선 이미 파스타가 돌돌 말리거나, 핏자에 얹힌 치즈는 쭉쭉 늘어나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와 마주한 곳은 가든호텔 옆 김치찌개 백반집. 으랏차차!

기대와는 전혀 다른 메뉴에 잠시 실망했던 게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가 인터뷰 도중 이야기했던 대로 좋은 음식은 좋은 관계를 만들어 냈다. 시종일관 즐겁게 인터뷰를 진행했다. 잠시나마 옹졸한 마음에 꺼내어 들었던 ‘참 쉬운’ 질문 “오바마의 미국과 한반도 그리고 2012년 체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는 도로 집어넣었다. 김동규 가든호텔 노조 사무국장을 마포구 공덕동에서 만났다.

   
  ▲ 김동규 가든호텔 노조 사무국장 (사진=고세진 기자)

– 언제부터 근무했나?

= 94년에 양식부 요리사로 입사했다. 당시 조리과 졸업을 앞둔 학생 신분이었는데, 실습을 나왔다가 그대로 입사로 연결되었다.

"그때는 정규직, 비정규직 없었는데"

– 바로 정규직 채용이었나?

= 이게 참 씁슬한 대목이다. 그런 말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난 그때 비정규직이라는 말을 들어보지도 못했다. 취직했다 못했다지, 정규직이니 비정규직이니 하는 말은 못 들어봤다. 당시만 해도 취직하면 다 정규직이었다. 나와 같이 졸업한 동기들도 호텔이나 대기업 식당 등에 다들 취직했다. 당시만 해도 일자리가 있었다.

– 노조일을 맡게 된 계기가 있나?

= 계기라고까지 할 건 없다. 다들 안 하려고 하니까 하게 되었다. 그런데 어느덧 6년째다. 지금도 간혹 주방으로 돌아가고 싶을 때가 있긴 하지만, 아직 노조에서 내가 해야 할 일들이 있다.

– 노사 관계는 어떤가?

= 노조가 87년 유니온샵으로 출발했다. 지금은 사측과의 관계나 노조운영이나 안정기에 접어들었다고 볼 수 있다. 회사가 최근 몇 년간 계속해서 적자상태여서 어려움이 많았는데, 함께 잘 견뎌냈다.

재밌는 건 흑자로 전환된 게 작년 하반기부터인데, 당시 한창 국내경기가 바닥으로 곤두박질  칠 때였다. 그때 오히려 호텔업이 살아났다. 환율 때문이었다. 레스토랑, 커피숍 등 내국인을 상대하는 영업장은 지금도 경기대로 움직이지만, 객실은 평일에도 방이 없다. 일본인 등 외국인들이 환율 특수를 끼고 한국을 많이 찾고 있음을 실감하고 있다.

"환호하는 자주파들"

– 정당 활동은 언제부터?

= 2003년인가?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민주노동당에 입당했다. 난 소속된 정파가 없다. 분당의 진통을 겪을 당시에는 중앙위원이었다. 당시 심상정 비대위 안을 걸고 탈당을 이야기하던 사람들이 있었다.

서로 간의 이념이 어찌되었든 함께 동거동락하던 동지들이 탈당을 이야기하던 그 심각한 상황에서, 일부 자주파 친구들이 비대위 안이 부결되자 박수를 치고 환호했다. 그 모습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았다. 많은 서운함을 느꼈고 실망했고, 절망했다. 탈당한 뒤, 진보신당 창당과 함께 입당했다.

– 노조 차원의 결정이었나?

= 입당도 그랬듯이 탈당도 개별적이었다. 탈당하지 않은 조합원들도 있다. 관계에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세액공제처럼 정치적 입장이 갈리는 일이 걸리면 서로 눈치가 보이는 건 사실이다.

– 노조가 지역에서는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가?

= 지역주민센타를 통해 저소득층 학생 3명에게 매달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다. 상암동에 있는 한 보육원에는 분기별로 음식자원봉사를 해왔다. 그리고 ‘민중의 집‘이 생기고 나서는 노조 이름으로 회원가입을 했고, 조합원들과 함께 ‘화요밥상’이나 ‘요리연구회’같은 프로그램들을 진행해 왔다.

앞으로 지역사업은 전체적으로 ‘민중의 집’을 중심으로 일원화하고, 그 규모를 넓혀나갈 계획이다. ‘민중의 집’과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을 논의 중이고, 일단 5월부터는 본격적인 요리교실의 문을 연다. 또 최근 문을 연 ‘민중의 집’ 공부방 사업에도 동참해 간식마련 등에 힘을 보탤 계획이다.

   
  ▲ 사진=고세진 기자

– ‘민중의 집’을 통해 만난 지역주민들의 반응은 어땠나?

= 프로그램을 진행하다 보면 조합원이나 지역주민 모두 즐거워하고, ‘민중의 집’과 같은 지역사업의 필요성에 모두들 공감한다. 다만 아직까지는 ‘민중의 집’을 매개로 모인 분들이 특정한 영역에서 활동하거나 생활하시는 분들이 많다.

당원이거나 시민단체 회원이거나, 생협이나 노조 조합원이거나 혹은 정치적으로 ‘민중의 집’과 그 지향이 같은 분들이 대부분인 것 같다, 뭐랄까 아직은 우리끼리만 모여 앉은 느낌이랄까?

보다 다양한 계층의 지역 주민들을 만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노동조합도 그렇지만, 진보정치도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못하고 있거나, 잘못 알려져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바꿔야 한다. 발로 뛰어야 한다. 필요하다면 그게 언제든지 간에 ‘민중의 집’으로 달려갈 생각이다. 

"요리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정치는?"

– 정치와 요리를 비교한다면?

= 정치가 요리 정도만 됐으면 좋겠다. 좋은 요리는 입을 즐겁게 만들고, 몸을 건강하게 만들고, 관계를 기쁘게 만들고, 생활을 행복하게 만든다. 좋은 요리에 드는 품만큼만 정치에 들여도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대한민국 정치를 음식으로 비유하자면 한 마디로 정크푸드(junk food)다. 값도 싸고 맛도 좋고 또한 간편하게 먹을 수 있다고 떠벌리지만 결국 쓰레기를 포장해서 국민들에게 들이미는 꼴일 뿐이다.

누구는 그 단맛이 좋다고 먹고, 누구는 돈이 없어서 먹는다고 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먹는 게 다 거기서 거긴데 대충 아무거나 먹자고도 한다. 하지만 목구멍을 넘기는 순간부터 악순환의 고리는 더욱 단단해진다.

한나라당은 먹는 즉시 고꾸라지는 독든 사과를 강매하고 있고, 민주당은 당장은 괜찮을지 모르는 광우병 쇠고기 요리들을 자꾸 내오고 있다.

진보신당은 현미밥을 지어야 한다. 윤기 좌르르 흐르고 입안에 착착 감기는 흰쌀밥이 아니라, 현미밥을 지어야 한다. 당장은 입안에서 껄끄럽고 익숙치 않아 외면당할지 모르지만, 국민들이 먹고 건강과 행복을 다시 되찾을 현미밥을 지어야 한다.

힘들더라도 비료 뿌리거나 농약치지 말고, 일일이 손으로 피 뽑아가며 유기농으로 그 현미를 농사지어야 한다. 또 겉으로만 봐서는 이게 진짜 유기농인지 아닌지 알 수 없기에 시식하는 좌판을 전국적으로 깔고 국민에게 다가가야 한다고 본다.

요리를 하는 입장에서 볼 때, 내가 내 요리에 만족해야 남을 만족시킬 수 있다. 우리 스스로부터 현미밥을 지어먹고, 새롭고 다양한 요리법을 함께 연구하고 시도했으면 좋겠다.

– 진보신당이 출범한 지 1년이 지났다. 어떻게 보는가?

= 내가 기억하는 진보신당은 벽돌 2장으로 출발한 정당이었다. 지난 해 총선 때 마포에서 몰고 다닌 허름한 유세차에 벽돌 2장을 실고 다녔다. 이 벽돌이 망가진 사이드 브레이크를 대신했다. 우리 사회를 지탱해야 하는 망가진 안전장치 대신 벽돌 2장으로 이 사회를 괴겠다고 진보신당이 나섰다고 생각한다.

처음 우리가 계획한 만큼 가지는 못했지만, 뒤돌아보면 많이 왔고 많이 발전했다고 본다. 이렇게 앞으로 가면 된다고 생각한다. 함께 노력하면 우리가 가려는 곳을 갈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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