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절’인가 ‘오일절’인가?
    2009년 04월 14일 08:2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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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노총 주최 노동절 대회 모습. 

돌아오는 5월 1일은 제 119주년 세계 노동절이다. 그런데 달력에 보면 ‘노동절’이 아니라 ‘근로자의날’이라고 되어 있다.

이는 단순한 용어의 문제가 아니다. 여기에는 ‘노동자’ vs. ‘근로자’ 용어를 둘러싼 사회, 정치적 역사가 담겨 있다.

노동절은 "1889년 7월에 세계 여러 나라 노동운동 지도자들이 파리에 모여 결성한 제2인터내셔널의 창립대회에서 결정하여 1890년 제 1회 대회를 치른 후, 지금까지 세계 여러나라에서 기념해오고 있다." 노동절을 5월 1일로 정한 것은 미국에서 8시간 노동제를 요구하며 싸운 1986년 5월 1일 총파업 투쟁을 기념하기 위해서다.

46년 5월 1일, 20만 노동자 운집

한국에서도 일제 식민지 시기 노동계급이 등장하고 노동자 조직이 만들어지면서 해마다 노동절을 기념해 5월 1일이면 동맹 파업 등 대중투쟁을 벌였다. 그리고 해방 이후 첫 노동절이었던 1946년 5월 1일에는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전평), 조선공산당, 경성지방평의회 공동주최로 서울 운동장 야구장에서 20만의 노동자가 참여하여 메이데이 60주년 기념식을 성대하게 거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미군정의 탄압으로 전평이 무너지고, 남북분단과 전쟁을 거치면서 자주적인 노동운동은 거의 파괴되었다. 이윽고 1958년, 이승만 정권은 노동절을 5월 1일에서 3월 10일로 바꾸었다. 3월 10일은 어용 대한노총의 전신인 대한독립촉성노동총연맹의 창립일이었다.

한 발 더 나아가 "박정희 정권은 1963년 4월 17일 <근로자의 날 제정에 관한 법률>을 만들어 껍데기만 남아 있던 노동절을 그 이름마저 ‘근로자의 날’로 바꿔 버렸다. 경제 성장과 부의 축적을 위해 한마음 한뜻이 된 권력과 자본은, 혹시 노동자라는 말이 노동자 계급의 자주적이며 민주적인 정치의식을 일깨울까봐 두려웠던 것이다. 대신에 그들은 오직 희생과 순종만을 미덕으로 알면서 최저 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쥐꼬리만한 임금에 감지덕지하는 근로자라는 이름을 이땅의 노동자에게 선사했다."

이후 다시 노동절이란 말을 되찾기까지는 26년이 걸렸다. 1987년 7~9월 노동자 대투쟁을 통해 전국적으로 민주노조가 깃발을 올렸고 전국적으로 결집했다.

26년만에 되찾은 이름

민주노조 진영은 근로자의 날을 ‘노동자 불명예의 날’로 규정했고, "1989년 ‘세계 노동절 100주년 기념 한국노동자대회’를 치르면서 드디어 이 땅에 메이데이가 화려하게 되살아났다." 그리고 지금까지 매년 5월 1일을 노동절로 정해 투쟁해왔다.

이러한 노동자들의 투쟁에 "메이데이 행사를 불법으로 여기던 정부도 마침내 1993년 5월 1일에는 ‘옥외 집회와 가두행진’을 허용할 수밖에 없었"고 1994년에는 "’노동기념일을 5월 1일로 하되, 이름은 노동절이 아니라 근로자의 날로 한다’고 결정했다" 5월 1일은 "어쩔 수 없이 되돌려 주겠지만 노동자라는 말은 계속 압류하겠다는 뜻을 숨기지 않"은 것이다.

서두가 좀 길어졌는데, 우리가 노동절이라 부르는 5월 1일이 달력에는 여전히 근로자의 날이라고 쓰여있는 데에는 이와 같이 오래된 사회, 정치, 역사적 배경이 있다. 노동절이라는 말 속에는 한국 노동운동의 고난과 투쟁의 역사가 담겨 있는 것이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어디서부터인지 모르게 ‘노동절’이라는 말 대신 ‘오일절(5.1절)’이라는 말이 사용되고 있다. 뭐 노동절이 5월 1일이고, 세계적인 공식 이름이 ‘메이데이’니까 5.1절이란 말도 틀린 것은 아니다. 아니 어쩌면 더 정확한 단어일 수도 있다.

5.1절의 연원

그런데, 5.1절이란 말은 언제부터, 어디서부터 사용하기 시작한 말일까. 네이버 국어사전에 ‘오일절’이라고 치니 "노동절의 북한어"라는 설명이 나온다. 내 경험으로도 몇 년 전부터 ‘5.1절’이란 말을 사용한 것은 북한에서 사용하는 ‘5.1절’이란 말을 그대로 옮겨온 것으로 여겨진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중국에서도 ‘5.1절’이라고 부르는 것 같기도 하다.

북한의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문제삼는 것이 아니다. ‘5.1절’이란 말을 수용해서 사용하는 과정의 성찰 없음을 문제 삼는 것이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노동절이란 말 속에선 한국 노동운동의 고난과 투쟁의 역사가 담겨있다. 그리고 그것은 현재진행형의 역사이기도 하다.

과연 노동절이란 말 대신 5.1절이란 말을 사용해야할 어떤 필요가 있는 것일까? 5.1절이란 말 속에서 우리는 어떤 역사와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노동절이란 말을 사용하지 않으므로 해서 그 안에 담겨있는 고난과 투쟁의 역사마저 잊어버리게 되는 것은 아닐까?

별 생각 없이 노동절 대신 5.1절이 말을 쓰는 것이, 운동의 진정성을 상실해가고 있는 한국노동운동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다. 아무런 비판의식이나 성찰 없이 노동절을 5.1절로 바꿔 부르는 것이 영 마뜩찮다.

※ 따옴표 안의 글들은 모두 『메이데이 100년의 역사』(역사학연구소 지음, 서해문집)에서 인용한 것입니다.(필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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