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디어법에 가려진 '숨은 악법'들
        2009년 02월 27일 12:0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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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님’의 말 한 마디에 한나라당이 일사분란하다. 25일 미디어법을 기습 직권상정한 데 이어 같은 날 한미FTA를 상임위 내 법안심사소위에서 통과시켰다.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 등 여당의 중진들은 연일 “2월 국회 내 쟁점법안 처리”를 주장하며 김형오 국회의장이 쟁점법안들을 직권상정할 것을 압박하고 있다.

    2월 국회가 열린 직후 한나라당 내에서는 속도조절론에 힘이 실리며 2월 국회에서 쟁점법안 처리가 강행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했다. 그런데 이번 주 초부터 점차 친이계열로부터 강경발언에 힘이 실리더니 25일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의 쟁점법안 기습상정 독려 발언으로 상황이 역전되었다. ‘형님발’ 2차 법안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26일 열린 한나라당 최고위원회에서 홍준표 원내대표는 "야당 의원들이 나가도 국회법대로 표결처리하라"는 등 강경발언을 쏟아냈다.(사진=한나라당) 

    그런데 이번 2차 법안전쟁이 미디어법 기습 상정으로 촉발되면서 미디어법이 거의 유일한 이슈인 것처럼 비치고 있다. 물론 미디어법이 재벌과 족벌언론에게 언론독점권을 부여해 항구적 보수우파사회를 만드려는 매우 위험한 법안임은 분명하지만, 이 때문에 미디어법 만큼 위험한 다른 법안들이 가려져 있다.

    특히 강력한 전선을 형성하고 있는 미디어법에 비해 다른 ‘MB악법’들에 대한 야당과 시민사회계의 전선이 강력하지 못하고, 경제관련 악법들에 대해서는 제1야당인 민주당도 강경한 반대 의지를 보이고 있지 않아 김형오 국회의장의 선택에 따라 직권상정의 가능성이 매우 농후하다.

    이런 악법들 중에 대표적으로 한미FTA(대한민국과 미합중국 간의 자유무역협정 비준동의안)가 있다. 25일 법안심사소위를 통해 가결된 한미FTA는 상임위 전체회의만 통과하면 본회의로 직행한다. 현재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의원들이 이에 반발해 통외통위 위원장석을 점거하고 있지만, 한미FTA의 원죄가 있는 민주당이 어디까지 버틸지 미지수다.

    한미FTA와 재벌법, 민주당 어디까지 버틸지 미지수

    정태인 진보신당 ‘미래상상’연구소 이사는 “미국이 앞으로 한미FTA에 대한 재협상을 요구할 것은 확실한 일인데 이렇게 강행처리로 비준안을 밀어붙인다면 앞으로의 협상과정에서 미국의 요구수준을 그대로 맞추겠다는 것”이라며 “사실상 협상을 포기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정태인 이사는 “예를 들어 미국은 자국의 사정에 따라 ‘의약품지적재산권’을 강화하려는 것이 뻔할 텐데 우린 아무런 협상카드도 없이 미국에서 하자는 대로 바꿔야 한다”며 “비준안이 그 협상카드가 될 것인데 이를 너무 빨리 버렸다”고 지적했다. 정 이사는 “한 국가의 100년지 대사가 달린 일을 여야 모두 너무 정략적으로 처리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위험하고 시급한 법안은 ‘재벌특혜법안’이라 불리는 금산분리 완화와 출자총액제한제 폐지법안이 있다. 이 두 법안이 통과되면 은행이 재벌의 사금고화되는 등 재벌그룹의 족벌경영, 방만경영을 피할 수 없게 되며, 향후 한국경제의 위험성도 가중된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 두 법안의 직권상정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김형오 국회의장은 26일 “민생과 경제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법이라고 국민이 기대하는 법안에 대해서는 이번 임시국회에서 처리될 수 있도록 해당 상임위가 27일까지 관련 법안 심사를 모두 완료해 주기를 강력히 요청한다”며 경제관련 법안에 대한 직권상정을 암시했다.

    심상정 진보신당 상임공동대표는 이들 법안에 대해 “절대 통과시켜서는 안된다”고 못 박았다. 심 대표는 “1월 원내교섭단체 합의 때도 야당들은 금산분리 완화 등의 경제법안들은 협의처리키로 하면서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왔다”며 “금산분리, 출총제 폐지는 이명박 정권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몇 십년 한국의 미래를 규정할 수 있는 법안이므로 안이한 판단을 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심 대표는 “만약 우리경제의 구조와 미래를 파탄으로 몰고가는 중요한 법안들이 소홀히 다뤄져 통과된다면 이는 야당에게도 책임이 있는 것”이라며 “이들 법안은 은행을 재벌의 사금고화시키고 재벌의 독점지배력을 높여 노동자 서민의 생존대책과는 거꾸로 가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민영화법과 민주주의 되돌리기법

    또다른 중요한 법안은 각종 ‘민영화’다. 특히 산업은행법과 수돗물 병입판매를 추진하는 수도법은 특히 위험한 법안이다. 산업은행 민영화에 관련, 진보신당 장석준 정책실장은 “금융위기 문제 해결의 핵심이 금융 공공성 강화”라며 “이 공공성 강화의 기지 역할을 해야 할 산업은행을 민영화하는 것은 시대를 너무 거슬러 오르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수도법에 대해 강은주 진보신당 정책연구원은 “국민의 세금으로 만든 수도시설에서 나온 물을 다시 돈을 주고 사야 하는 이중부담의 문제와 함께 기존수도시설에 대한 개선투자 없이 고급 수돗물에 대한 투자로 가는 방향 자체가 잘못되었다”며 “결국 지자체는 수입을 늘리기 위해 병입수돗물 투자를 늘릴 것이고 수도공공성은 파괴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민주주의 관련 법안도 주목해야 한다. ‘마스크 처벌법’으로 불리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행정안전위원회에서 법안상정 대기 중이다. 불법집단행위에 관한 집단소송법안도 대표적인 악법이다. 정보위원회에서 논의되는 ‘국가정보원법’도 군사독재시절 안기부의 망령을 되살릴 수 있는 위험한 법안이다.

    이들 법안들은 각 상임위에서 논의단계에 불과하지만 모든 상임위에서 한나라당의 수가 압도적인 만큼 정상적인 절차에 따라 처리된다는 보장이 없다. 특히 27일로 예정되었던 본회의가 한나라당의 요청으로 취소되면서 3월 2일 예정된 본회의에서 이들 쟁점법안들이 직권상정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날 하루로 대한민국의 미래가 좌우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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