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실 성적조작이 의미하는 세 가지
        2009년 02월 19일 03:2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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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북 임실의 놀라운 성과는 성적 조작의 결과였습니다. 한 초등학교의 경우 미달학생이 국어 5명, 사회 6명 등으로 보고되었는데, 교육청 집계과정에서 누락되었답니다. 교육청은 실수라고 하고 있고, 교육시민단체들은 고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정확한 진상은 차차 가려지지 않을까 합니다.

    하지만 적어도 ‘조작’을 부인하는 쪽은 없습니다. 진실인 겁니다. 따라서 진상조사와 책임자 규명을 떠나, 진실 임실의 성적조작 사건을 계기로 몇 가지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개인의 도덕성이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입니다

    용산참사 관련 청와대 이메일 사건처럼 이명박 정부는 임실의 성적 조작도 ‘도마뱀 꼬리 짜르기’를 하지 않을까 예상됩니다. 관계자 한두 명, 그것도 하위 명령계통에서 지시에 따라야 하는 몇몇 개인을 문책하는 형태가 되겠지요.

    물론 안병만 교과부 장관은 19일의 기자협회 토론회에서 현행 학업성취도 평가(일제고사)의 채점 및 집계 방식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이 발언을 믿고 싶습니다. 임실의 성적조작은 개인의 도덕성 차원이 아니라 채점 및 집계 시스템의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작년 일제고사 이전의 학업성취도 평가는 일괄수거 방식입니다. 시험이 끝나면 바로 시험지와 답안지, 그리고 배경변인을 알아보기 위한 설문지를 모두 수거해갑니다. 그리고 교육과정평가원에서 성적 산출 및 분석 작업을 진행합니다. 여기에 상당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평가 결과는 보통 1년 뒤에 발표해왔습니다.

    그런데 지금 일제고사는 학교에서 채점하고 상부에 보고하는 방식입니다. 이 방식은 조작의 여지가 상당히 많습니다. 채점할 때, 엑셀화일에 입력할 때, 상부에 보고할 때 손을 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 임실 사건처럼 상부가 집계할 때 손을 댈 수도 있답니다.

    한 마디로 지금 시스템은 조작을 양산할 수 있는 구조입니다. 당연히 임실의 사례는 다른 곳에서도 발견될 수 있습니다. 여기다 정부는 앞으로 인사 및 재정지원에 반영한다면서 성적 경쟁을 부추기고 있으니, 많은 곳에서 ‘데이터 마사지’의 유혹을 느낄 겁니다.

       
      ▲ 일제고사 시행을 반대하는 한 학생이 ‘일제고사, 즐’이라고 적은 OMR 답안지를 들고 있다 (사진=손기영 기자) 

    그런 만큼 임실의 죄인은 임실군 내 몇몇 개인이 아닙니다. 일제고사를 만든 당사자, 은근슬쩍 성적경쟁을 부추긴 당사자가 죄인입니다.

    이런 ‘데이터 마사지사 양성 프로그램’을 어떻게 바꾸어야 할까요. 예전의 일괄수거 방식이 현재로써는 답입니다. 하지만 이 또한 문제가 없는 건 아닙니다. 이번 일제고사에서 시험 본 학생이 196만 명입니다. 재작년 2007년까지 일괄수거할 때의 응시생은 최대 6만 명 정도입니다. 일제고사 대상이 30배가 넘습니다.

    그리고 재작년까지의 일괄수거 시스템에서는 시험 본 다음에 결과 발표까지 걸린 시간이 1년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간단한 산수이겠지요. 6만 명 처리할 때 1년이었는데, 그 30배인 196만 명 처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그리고 여기에 투입되는 인력과 장비는 얼마나 될까요. 비정규직 일자리 창출 차원이라면 모를까 아마도 상당할 겁니다.

    물론 정보통신기술이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단축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10월에 시험보고 2월에 발표하는 ‘4개월 속도전’은 당분간 불가능할 겁니다. 이런 까닭에, 일괄수거 방식을 택하게 되면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전집평가는 할 수 없습니다. 일부만 치르는 표집평가가 되어야 합니다.

    ‘경쟁’은 부진아 판별에 백해무익합니다

    일제고사의 필요성에 대해 이명박 정부는 ‘부진아 판별’과 ‘지원을 통한 상향 평준화’를 이야기합니다. 19일의 기자협회 토론회에서도 안병만 교과부 장관은 “이번 시험의 목표는 기초학력 미달학생이 많은 학교를 파악해 집중 지원하기 위한 것”이라고 발언합니다.

    이것이 정말 목적이라면, 경쟁시키면 안 됩니다. 정확하게 파악하는 데 걸림돌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미 성적 올리는 방법은 다들 알고 있습니다. 정규 수업시간이나 ‘방과후학교’를 가장한 보충수업에서 시험대비 문제풀이 수업하기, 하위권 학생과 사회적 약자를 시험 못 보게 하기 등이 대표적입니다.

    이렇게 하면 일제고사 점수를 올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교육장이나 학교장은 자랑스러울지 몰라도, 지역과 학교는 더 곤란해집니다.

    조작이 벌어진 임실의 경우를 보겠습니다. 중학생 중에서 미달자는 약 10% 내외로, 전국 평균치입니다. 초등학생은 조작이 밝혀지기 전까지는 거의 0%라고 소개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지원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중학교는 행재정적인 지원을 해야 하지만, 초등학교는 중단하려고 할 겁니다. 조작 이전에는 초등학교의 성과가 여기저기에서 지원한 방과후 학교 때문이라고 했는데, 그걸 끊으려고 하겠죠. 곤란한 일이 벌어집니다.

    이처럼 일제고사 성적 올리기 경쟁을 시키면, 정말 지원이 필요한 지역과 학교가 지원에서 배제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성적을 있는 그래도 솔직하게 밝히면 인사나 각종 불이익을 당하고, 성적을 올리면 지원이 중단되는, 이상한 상황이 벌어지는 겁니다.

       
      ▲ 한 여학생이 ‘일제고사 꺼져’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손기영 기자) 

    그래서 경쟁마인드나 ‘미리미리 대비’ 마인드는 접어야 합니다. 정말 지원과 부진아 판별이 목적이라면, 평소 실력으로 평가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가장 좋은 건 예고없이 시험지를 배포하는 그림입니다.

    일부만 평가하는 표집으로도 충분합니다

    물론 굳이 시험을 보지 않아도 됩니다. 판별하고자 하는 부진아는 사실 다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학생 당사자는 어느 부분이 뒤처지는지 스스로 너무나 상세히 알고 있고, 그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도 파악하고 있습니다. 뒤처지는 학교 또한 동네 아주머니나 학부모들에게 물어보면 웬만큼 압니다.

    그래서 정말 판별이 목적이라면, 다 아는 사실을 듣겠다는 자세면 충분합니다. 학생, 교사, 학부모, 지역주민의 이야기를 듣는 자리, 그들과 소통하는 자리를 만드는 데 신경을 써야 합니다. 물론 정부당국만 부진아, 뒤처지는 학교 및 지역을 모른다면 말입니다.

    사람들의 의견을 굳이 믿지 못하겠으면 그 때 가서 평가를 하면 됩니다. 그렇다고 모든 학교의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시험을 볼 필요는 없겠죠. 온 국민을 대상으로 하지 않아도 여론조사 결과를 신뢰하듯이, 일부 학교의 일부 학생만 대상으로 시험을 치르면 됩니다.

    이렇게 △1단계 당사자와 소통 통로 구축, △2단계 표집 평가, △3단계 전문가 진단 등의 다단계 시스템을 구축하면, 판별은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그 어디에도 일제고사는 필요 없습니다.

    우리 교육은 거품붕괴와 연착륙을 고민해야 합니다

    그래도 이명박 정부는 일제고사를 계속 강행할 겁니다. 촛불집회에도 불구하고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한 것처럼 말입니다. ‘부진아 판별’이니, ‘지원을 통한 상향평준화’니, ‘교육과정과 교수방법 질 관리’니 하는 등의 명분을 걸고 있지만, 핑계에 가까우니까요. ‘경쟁’의 머리띠를 질끈 동여매고 있으니까요.

    한 개인이 ‘경쟁’을 좋게 생각하는 건, 개인의 자유이니 뭐라고 하면 곤란합니다. 하지만 정부가 경쟁마인드를 지니고 있으면 생각을 해봐야 합니다. 더구나 우리 교육의 상황과 어울리지 않으면 고민을 좀 더 해봐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초중고등학교의 성적이 세계 최상위권입니다. 하지만 교과흥미도나 자신감은 상당히 낮습니다. 이건 거품이 잔뜩 끼어있다는 뜻입니다. 누구나 공부를 해보셨겠지만, 공부의 기본 바탕은 ‘이거 흥미진진한데’라는 재미와 ‘난 할 수 있어’라는 자신감입니다.

    그런데 우리 청소년들은 재미는 커녕, 억지로 또는 강요로 공부하면서 높은 성적을 보이고 있습니다. 기초는 부실한데, 어떻게 어떻게 해서 괜찮은 결과를 낳는다는 뜻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경쟁은 어떤 영향을 끼칠까요. 승리의 기쁨을 줄 수 있다고 말하는 분도 있겠지만, 패배의 쓰라림과 포기도 고려해야 합니다. 하고 싶지 않으나 할 수밖에 없어서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있는데, 경쟁까지 더 치열해지면 거품이 급격하게 꺼질 수도 있습니다. 어느 날 붕괴하는 날이 올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경쟁 마인드보다는 흥미 마인드가 필요합니다. 경쟁 마인드보다는 역차별적인 지원 마인드가 요구됩니다. 요즘 간혹 언론에서 다른 나라 교육개혁의 최근 동향을 보여주는데, 전반적인 접근방법이 무엇인지 살펴보십시오.

    추신. 앞으로 교육청 직원 분들이나 학교 선생님들은 조심하셔야 합니다. 웬만하면 일제고사 채점이나 보고, 그리고 취합 작업을 하지 마십시오. 다만, 짤린 다음에 다른 직장을 찾을 자신이 있다면 하셔도 됩니다.

    * <오마이뉴스>에 함께 기고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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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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