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보수 대립 넘어 좌-우 대립으로"
    2009년 02월 11일 07:5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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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초록사회당의 도메인을 구입하다

2008년 1월, 친구랑 술을 먹고 같이 민주노동당을 탈당했다. 왠지 모를 허전함이 밀려왔다. 오랫동안 당원이었다가 더 이상 당원이 아니었던 짧은 기간 동안, 정치 금단현상이 밀려온 것이었다. ‘당은 우리에게 일종의 마약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그때 들었다. 얼마 후 일심회 관련자 제명 요구가 거부된 나간 2월 3일 당 대회가 있었다.

2.3 당 대회 이후 나는 gsp.or.kr 이라는 도메인을 하나 샀다. 새로이 갈라져 나온 당은 ‘초록사회당’ (약칭 사회당)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 미리 인터넷 주소를 사둔 것이었다. 이 주소가 1년이 넘어 다시 주인 없는 상태로 맥없이 돌아갔으니, 벌써 분당도 1년이 넘은 셈이다.

   
  ▲ 지난 해 2월 3일 비대위측 ‘혁신안’이 부결되자 대회장을 떠나는 심상정 대표 (사진=진보정치)

2. 무에서 유를 창조했던 민주노동당

진보신당의 창당은 탈(脫)민노당에서 시작했지만, 단순히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분당 과정에서 제기된 ‘진보의 재구성’이라는 말은 한국 정치판 전체를 상대로 뭔가 새로운 충격을 가하겠다는 새 판짜기에 대한 의지를 담고 있었다. ‘분당’은 단순히 당내 권력투쟁이나 그에 따른 감정대립 문제가 아니었다. 정치는 순간의 감정적 판단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그것은 고도의 합리적 선택일 뿐이다.

구민노당은 2000년 창당하면서 ‘당비 내는 당원’과 ‘당원직접투표에 의한 공직후보 선출’을 도입해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의석 하나 없는 원외정당이었지만 정신적, 논리적으로 다른 당을 압도했던 것이다.

이 때문에 심지어는 한나라당도 상향식 후보선출 과정을 일부 도입하게 된다. 2007년 대선 과정에서 당권파가 아니던 이명박이 한나라당 후보가 될 수 있었던 것은 2000년 민주노동당의 창당으로 인해 정치판 전체에 도입된 이른바 상향식 후보선출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명박의 등장에는 민주노동당이 공헌한 바 가 있었던 셈이다. 분당으로 우리가 꿈꾸었던 것은 이렇게 정치판 전체를 충격으로 몰고 갈 ‘역사적 작용’이었다.

3. 한국 정치 새판 짜기

정치적 결정사항은 흔히 어떤 대립구도에 의해서 좌우된다. 그리고 해당 시기를 지배하는 정치지형을 우리는 지배적 대립구도라고 부른다.

한국의 지배적 대립구도는 꾸준히 변화해왔다. 군사정권 시절 ‘민주와 반민주의 대립구도’를 거쳐 영남과 호남의 대립으로 나타나는 ‘지역간 대립’, 그리고 조중동 반대로 상징되는 ‘진보와 보수의 대립’으로 진화해 왔다. 그렇다면 이 다음의 대립구도는 무엇일까?

호남에서는 민주당이 줄줄이 당선되고 영남에서는 한나라당이 줄줄이 당선되는 오늘날의 정치지형은 태생적으로 주어진 것도 아니고 고정불변의 법칙도 아니다. 우리는 무엇인가 이 다음의 정치지형을 준비하고 주도적으로 기획할 필요가 있었다.

나는 진보-보수라는 대립구도 이후에 ‘좌-우 대립’이라 부를 만한 새로운 구도가 생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왜?

현재 형성된 진보-보수의 대립구도는 몇 가지 문제가 있다. 우선 개념 구분이 이상하다. 우리나라 언론은 일본의 민족주의를 우파라고 부르면서 한국의 민족주의는 진보세력이라고 부른다. 이상한 어법이다. 우파 역시 자유와 시장을 부르짖으면서 국가보안법이나 미네르바 사건에서 보듯이 정치적 자유는 부정한다. 그들이 말하는 시장이란 정치철학으로서의 시장이 아니라 도깨비 시장에 지나지 않는다.

노무현이 좌측 깜빡이를 켜고 우측으로 갔고 스스로도 좌파신자유주의라는 신조어를 내놓기도 했지만 이것이 노무현만의 잘못이 아닌 측면이 있다. 한국의 진보-보수 대립 구도는 개념상 뒤죽박죽되고 정리가 안 된 상태이다. 원천적으로 취약한 구도이다.

게다가 진보-보수의 대립 구도는 ‘진보는 무조건 좋고 보수는 무조건 나쁘다’ 라는 일종의 선악 구도를 취하고 있다. 이런 고등학교 고전문학시간에나 나오는 선악구도는 정치적으로 생명력을 가질 수 없다.

반면 좌-우 대립구도는 어떤 사회 문제에 대한 ‘해법의 충돌’을 담고 있기 때문에 꼭 어느 한쪽이 반드시 옳다는 것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 이런 맥락에서 향후 도래할 대립구도는 좌-우 구도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가능하다. 그리고 이런 방향으로의 진전이 역사의 건강에 바람직하다.

4. 진보의 재구성에서 좌우의 재정립으로

사실 진보란 매우 정체불명의 노선이다. ‘진보이론’이 따로 정리된 책이 있는 것도 아니고 좌파라는 개념처럼 역사성이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시대의 진보란 뭘 의미하는지?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용어 중에 하나이다. 단어가 주는 막연한 호감만 있을 뿐이다.

유일하게 ‘진보’가 실체를 갖는 것은 정치적인 맥락뿐이다. 민노당이 2004년 의회진출 당시 13%의 정당지지율을 받았는데 그 이후 이 10%~13% 구역이 지속적으로 확인되었다. 즉 민주당 왼쪽에 민노당+창조한국당+진보신당 등으로 표현되는 10~13% 수준의 꽤 현실적인 고정블록이 존재한다. 실물정치학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가 말하는 ‘진보’란 바로 이 구역을 의미하는 단어일 뿐이다.

   
  ▲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각 후보들의 모습. 왼쪽부터 강기갑, 노회찬, 심상정, 문국현

이런 맥락에서 보면, 분당 국면에서 제기된 ‘진보의 재구성’이란 용어는 민노당+창조한국당+진보신당 이렇게 3당이 갖고 있는 10~13% 수준의 민주당 왼쪽 구역을 재편하자는 발상으로 이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를 현재 상황에 대입해 보면, 민노당과 진보신당이 좁은 공간에서 경쟁하는 것으로 귀착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탈민노당의 근본적인 의도는 13% 구역 안에서 다른 소위 진보정당들과 아귀다툼을 벌이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제한되는 순간 그것은 이 계획의 실패를 의미했다.

진보신당의 역사적 임무는 정치지형 전체를 뒤흔들어 아예 좌-우 대립이라는 새로운 대립구도를 창출하는 데 있다. 이것은 13% 진보구역을 넘어서고 민주당도 훌쩍 지나쳐 기존 한나라당 지지층 중에 가난한 계층을 새로운 지지층으로 개척해야 가능하다.

그럼 어떻게 우리는 오른쪽으로 진격해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노동계급을 탈환 할 수 있을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바로 새로운 당의 성격규정이고 우리의 전략이 된다.

5. 민족주의 유전자를 삭제한 새로운 좌파정당

새로운 당의 성격을 규정하는 방식은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우리가 뛰쳐나온 기존의 틀을 부정하는 방식이고, 또 하나는 우리가 새롭게 만들고 싶은 미래를 규정하는 방식이다. 양자는 긴밀히 연관될 수밖에 없다.

일단 우리가 벗어나고 싶었던 기존 틀이란 친북당, 민주노총당, 데모당으로 규정되었던 민노당의 낡은 모습이었다. 이를 벗어던지기 위한 새로운 정당의 성격이 다음 두 가지 였다.

1. 민족주의의 유전자를 삭제한 새로운 좌파정당
2. 민주노총으로부터 독립한 노동자 대중정당

여기서 새로운 당의 첫 번째 성격 규정 즉 ‘민족주의 유전자를 삭제한 좌파정당’은 기존 진보정당의 친북노선이 좌파에겐 정체성에도 맞지 않고, 전략적으로도 반드시 버려야 할 부분이라는 판단 때문에 제시된 것이었다.

왜 많은 노동자가 한나라당을 지지하는가? 한나라당은 다리 4개짜리 식탁처럼 다음과 같은 4개의 지지층으로 지탱되고 있는 정치적 상부구조이다.

1. 반북주의
2. 성장 우선론
3. 영남 지역 정체성
4. 부유층

여기서 부유층만 계급적으로 자기 이익에 맞는 투표를 하고 있고 나머지는 이데올로기에 입각한 투표를 하고 있는 상태이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실제 자기이익이랑 상관도 없는 영남 지역정체성/ 성장 우선론/ 반북주의 같은 이데올로기에 감염되어있을까?

어찌 보면,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지만 사실 이것은 전혀 바보 같은 행동이 아니다. 정치란 원래 이데올로기의 향연이다. 사람들은 말로는 무슨 주의를 싫어한다고 하지만 실제 정치적 선택은 이런 자질구레한 이데올로기를 따른다.

여기서 한나라당으로부터 노동계급을 빼앗아올 수 있는 가장 쉬운 통로가 ‘반북주의’이다. 우리는 북한과의 전쟁이 없기를 바라지만, 굳이 같은 민족이라는 이데올로기를 동원해 하나의 국가라는 관점으로 서로를 얽어 매야 할 필요를 못 느낀다. 우리가 친북노선의 폐기를 명확히 하는 순간, 반북주의에 빠진 노동자를 계급적 관점에서 설득하지 못할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이렇게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4개의 기둥 중에 하나를 뽑아내 기존의 정치지형을 흔들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이것은 이른바 김대중의 햇볕정책 이후 계속된 진보=친북의 등식을 허무는 것이기 때문에 무척 중요한 대목이다. 새로운 좌파의 등장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도될 수밖에 없다. 북한 체제에 비판적인 좌파정당의 성립 없이 ‘진보의 재구성’을 뛰어넘는 ‘좌-우의 재정립’은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6. 민주노총으로부터 독립된 노동자 정당

두 번째 ‘민주노총으로부터 독립된 노동자 대중정당’이라는 성격 규정은 노조운동과 노동정치운동과의 나이 차이 때문에 발생한 문제였다.

원래 민노당 창당시의 구상대로라면 ‘노동조합운동’과 ‘노동정치’가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며 함께 발전해야 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노동자 정치운동이 너무 늦게 태어났다. 그래서 결국 양자 간의 ‘나이 차이’가 발생했다. 민주 노조운동은 소년기-청년기-장년기를 지나 벌써 노년기에 들어서고 있었다. 그러나 옆에서 함께 성장했어야 할 노동자 정치운동은 이제 갓 어린티를 벗고 소년기에 들어선 것이었다.

이러한 ‘나이 차이’는 심각한 문제를 일으켰다. 2004년 민노당의 의회진출 이후, 늙은 민주노총은 이후 노동자 정치운동을 보호, 확장하기보다는 젊은 민노당의 정치적 입지를 축소시키는 쪽으로 기능했다. 민주노총은 민노당에 물적 기초를 제공하는 대가로 채용비리, 뇌물수수, 내부폭력사태, 최근 성폭력사건에서, 때로는 부정선거 의혹까지, 종류도 여러 가지의 고춧가루를 노동자 정치운동에 뿌렸다. 사회적으로 보통 늙은 조직에서 종종 드러나는 각종 조직욕망의 유형이 다 드러난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민노당은 전통적 노동당 모델에 과도하게 집착했다. 여기서 말하는 전통적 노동당 모델이란 독일사민당의 시조(?) 쯤 되는 라쌀레가 주장한 그 모형 즉 대규모 노조와의 조직적 연계를 통해 노동정치의 기반을 공고히 유지하는 그 모형이었다. 이런 맥락에서 내가 볼 때 구민노당은 사민주의적 모형의 신봉자들이었다.

기억력이 좋은 사람들은 과거 민노당의 어느 시점에서 ‘노동부문 대의원 할당제’를 없애버리자거나 민노당 스스로 ‘민주노총의 배타적지지에 반대’하는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있었음을 기억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목소리는 힘을 얻지 못했다. 결국 민노당은 민주노총 문제 앞에서 정치적으로 피해 다니기 바빴다.

과거에 우리는 민노당=민주노총당이라는 항간의 핀잔을 들으며 오히려 행복해 했던 순간이 있었다. 노동자 대중조직의 기반 없이는 당비 내는 당원과 상향식 공직후보 선출이 불가능하고 이것이 불가능하다면 진보정치의 실험도 불가능하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어느 시점부터 노동자 대중조직의 존재가 노동자 정치를 위한 필요충분조건이 아니라 필요조건 정도로 위상이 달라졌다는 판단이 들었다 (어찌보면 바로 이 판단이 분당의 기원일 수 있다). 따라서 이른바 배타적 지지나 의결기관 할당제 없이 노동자 개인이 참여하는 새로운 노동대중정당의 형태를 구상해야 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 민주노총의 배타적 지지도 포기할 수 있어야 했다. 탈(脫)민노당이란 곧 민주노총 배타적 지지로부터의 이탈이라는 의미를 동시에 갖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1. 민족주의의 유전자를 삭제한 좌파정당 2. 민주노총으로부터 독립한 노동자 대중정당이라는 두 가지 위상을 통해 10%짜리 진보라는 구역을 박차고 나가 오른쪽으로 진격해서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노동계급을 탈환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집권 가능한 좌파정당을 형성한다. 이것이 탈민노당의 기본 구상이었던 셈이다.

   
  ▲ 지난 해 3월 열린 진보신당 창당대회 모습

7. 초록+복지

새로운 길을 찾을 때는 기존의 낡은 틀을 탈(脫, post)하는 것과 함께 새로운 자기 전망을 제시해야 한다. 나는 이것을 ‘초록+복지’라는 개념에서 찾았다.

구민노당의 강령을 5글자로 줄이면 ‘자주와 평등’이었다. 그리고 이 ‘자주와 평등’을 각기 두 측면에서 분해-재평가해본 결과, 찾아낸 대안이 1. 민족주의의 유전자를 삭제한 새로운 좌파정당 2. 민주노총으로부터 독립한 노동자 대중정당이었다. 이것은 다시 초록+복지 노선을 통해 긍정형태로 표현할 수 있었다.

구민노당 시절 초록+복지는 당내 진정성 있는 이념으로 정착할 수 없었다. 북한 핵무기를 긍정하는 세력이 다수파로 존재하는 상황에서 ‘초록’을 주창한다는 것은 대중에 대한 기만이었다. 독도에 군대파견을 주장하는 판국에 ‘독도는 새들의 고향’이라는 인식은 씁쓸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민주노총에 대한 부문할당조차 손대지 못하는 상황에서 어쩌면 대기업노조의 양보를 요구해야 할지 모르는 복지국가 이행전략을 작성하는 것도 문제가 있었다.

탈민노당 당시 선도탈당파들은 별로 치열하게 토론해 본 적도 없지만, 약간씩 비슷한 용어와 개념들을 쓰고 있었다. 당시에 적록연대라는 말이 있었다. 물론 적록연대라는 표현은 노동조합의 이해관계와 생태주의 사이의 충돌 없는 연대가 가능한가? 라는 질문을 받아야 했지만 아이디어 자체는 ‘초록+복지’라는 맥락과 통한다고 보였다.

현재 진보신당의 4대 강령처럼 표현된 평등, 평화, 생태, 연대라는 개념도 대체로 이 같은 ‘초록+복지’ 혹은 적록연대라는 문제의식을 용어를 달리해서 표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말은 조금씩 달랐지만 우리가 생각한 새로운 시대정신을 표현하는 용어들이었다. 평등과 연대라는 말이 복지라 표현되었고 평화, 생태라는 말이 초록으로 표현되었지만 말의 차이를 넘어 배경에 담긴 생각과 감각은 무척 유사했다. 나는 이런 맥락에서 초록+복지, 혹은 평등+평화+생태+연대를 구현한 당명이 초록사회당이라고 보았던 셈이다.

8. 시베리아! 그 오염되지 않은 청정지역

지난 07년 대선 결과, 구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은 재통합했다. 갈라지니 별 볼일 없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같은 07년 대선결과 진보신당은 거꾸로 민주노동당에서 분리되어 나왔다. 이것은 역사의 중요한 한 단면이다.

정당을 만들기 위해선 꿈과 힘이 필요하다. 꿈이 없는 당은 맹목적이고, 힘이 없는 당은 공허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꿈과 힘을 한 번에 다 얻을 수 없을 때, 우리는 꿈을 위해 현실의 힘을 포기해야 한다. 그래서 진보신당은 힘을 포기하고 꿈만 쫓아 알몸으로 시베리아에 나왔다.

민족주의라는 겉옷을 벗어던지고 민주노총이라는 속옷도 집어던진 채 알몸으로 시베리아에 나왔지만 우리는 얼어 죽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많은 좌절이 기다리고 있겠지만, 우리는 우리의 체온으로 시베리아를 다 녹일 때 까지 진보신당이라 불리는 이 씨앗을 포기할 수 없을 것 같다. 진보신당은 순수하게 꿈만 갖고 당을 만들어낸 우리시대의 마지막 세력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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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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