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이제 진보신당을 말하지 않는다
명박산성만큼 넘기 힘든 '진보관성'
    2009년 02월 09일 08:1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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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신당 제2창당을 위한 당대회를 한달 여 앞두고 있는 상황이지만, 안팎의 관심은 예상외로 저조한 형편이다. 가건물을 부수고 제대로 된 집을 짓는 시점에서 오히려 당에 대한 기대와 당원들의 열정이 예전같지 않다.

그 이유는 무엇이고 극복 방안은 무엇일까. 어렵사리 분당을 감행하고 새로운 진보정당의 길을 주장한 이들이 갖는 소회는 남다를 것이다. 이른바 ‘선도탈당파’로 불리던 이들의 진보신당에 대한 진단과 전망은 무엇일까.

<레디앙>은 분당의 선두에 섰던 이들이 기획하고 집필한 몇 편의 글을 ‘기획 투고’ 형식으로 연재한다. 생산적인 토론이 이어지기기를 기대한다. <편집자 주>

나는 얼마나 순진했던가?

“형, 진보신당이 민주노동당과 다른 점이 뭐야?”

얼마 전, 한 후배가 조심스럽게 나에게 물었다. 진보신당 창당을 앞둔 시점에서, 집회 한 번 나가보자는 말도 안했던 내가 당원가입을 하자고 하여 고민 끝에 처음으로 정당에 가입한 후배였다. 새로운 진보정당운동을 해야 한다고 11페이지에 달하는 입당 권유 글을 읽고 어렵사리 정당 활동에 첫발을 내딘 초보당원이었다.

“조금만 더 기다려줘.”

머뭇거리며 나지막하게 대답을 한 나는 한참을 고민했다. 나의 후배이자, 나의 동지였던 그는 무엇이 궁금했을까? 나에게 어떤 대답을 듣고 싶었을까? 그가 정말로 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이었을까?

1년 전, 새로운 진보정당의 탄생을 앞두고 무척이나 설렜다. 지난 진보정당운동에 대한 과감한 평가와 함께 당내 민주주의와 실험적인 체계를 갖자며 “제2창당운동을 시작하자”고 했던 사람들의 말에 나는 처음으로 정당 활동을 해보겠다고 결심하였다. 정치 활동이 금지된 신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구속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뛰어든 그 때의 결의는 누구보다도 확고했다.

그런데 정당 활동을 하면 할수록 나는 ‘현실’을 배웠다. 제2창당운동을 시작하자며 이야기했던 내용들이 얼마나 이상적인 이야기인지를 깨닫는 과정이었다. 새로운 진보정당을 만드는 것이 진보진영 내의 작은 ‘혁명’이 될 것이라고 믿었던 내가 얼마나 순진했는지 알아가는 과정이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주변의 동료들에게 진보신당을 말하지 않는다. 왜 진보신당이어야 하는지, 민주노동당과 다른 점은 무엇인지 나는 설명하지 못한다. 그리고 나의 권유로 가입한 동료들에게 이 자리를 빌어 처음으로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명박산성만큼 넘기 어려운 진보의 관성

첫 정당 활동을 시작한지 1년여의 시간이 흐른 시점에서 나의 머릿속에는 ‘무엇이 나를 변화하게 하였는가?’라는 질문이 맴돌고 있다. 길수도 있고, 짧을 수도 있는 1년의 시간 동안 나는 왜 이렇게 변하였는가에 대해 스스로 답을 찾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내가 내린 결론은 ‘명박산성만큼 넘기 어려운 진보의 관성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진보의 관성이란 무엇일까? 지난 1년을 돌아보면 무수한 사례를 찾을 수 있다.

지난 정당운동에 대한 평가의 과정을 살펴보자. 진보정당운동 10년의 평가와 성찰은 진보신당의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핵심적인 과정이었다. 그런데 확대운영위원회에서 ‘평가위’를 구성하고 저명한 학자와 활동가들을 중심으로 배치하여 그들만의 리그로 만들어 버렸다. 그들이 내놓은 수십 장의 평가글을 바탕으로 중앙당 회의실에서 몇 차례 토론회로 이루어졌다.

   
  ▲ 진보정치 10년 평가위원회 회의장면(사진=정상근 기자)

당원들이 참여하지 않은 것은 그들의 무관심 때문일까? 아니면 그들의 열정이 부족해서일까? 나는 아니라고 명확하게 대답할 수 있다. 진보신당 창당이 되기 이전부터 다양한 경로를 통해 많은 평가글을 접할 수 있었다. 또한 창당 이전과 총선 직후에 보여준 당원들의 열기는 무척이나 고무적이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당원들이 참여할 통로를 마련하지 못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 왜 진보신당은 당원들과 함께 진행해야 할 평가의 역할을 소수에게 맡겨버린 것일까? 수십 장의 평가서를 읽고 나서 “너무 많이 들었던 이야기를 왜 이렇게 어렵고 길게 써놨냐”는 한 당원의 푸념이 떠오른다.

차라리 당원들에게 A4 반 장 분량이라도 좋으니, 지난 10년의 활동에 대한 평가를 요구하였으면 어땠을까? 그것을 모아 정리함으로써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의 질문을 던졌다면 어땠을까?

사업이 있으면 그것을 책임질 사람을 만들고, 그 사람들에게 모든 것을 맡겨버린다. 지난 진보정당에서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진보신당 10년 평가위원회가 구성될 때, 그것을 반대한 당원들에 대해 대답해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평가초안을 바탕으로 토론을 진행한다고 하였고, 3개월이 지난 뒤부터 6차례의 형식적 토론회가 있었을 뿐이었다.

보다 더 높은 소통의 벽

관성의 벽 중에서 가장 높은 벽은 소통의 벽이다. 내가 다니는 학교에서 선거철만 되면 그 규모와 상관없이 ‘소통’을 화두로 던지고 있다. 한나라당조차 국민소통위원회를 구성하여 적진인 아고라에 뛰어들기도 한다. 그런데 진보신당만큼은 다르다.

지난 1년간 새내기당원으로서 가장 큰 관심사는 ‘제2창당’이었고, 또 많은 고민을 했다. 그리고 다양한 방식을 통하여 내 의견을 과감하게 밝혔다. 직업 활동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수차례 확대운영위원회를 참관하였고, 각종 토론회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나의 생각이 반드시 옳다는 생각보다는 더 많은 활동경험이 있는 분들의 평가를 듣고 함께 대화를 하고 싶었을 뿐이다.

아무 직책을 맡은 것이 없는 소위 ‘새내기당원’은 제2창당에 참여할 공간은 없었다. 서울시당 토론회에서 밝힌 입장에 대해 시간적 제약으로 많은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 그리고 그것이 중앙당에 보고되었는지는 파악할 수 없다. 중앙당에서 정리한 내용에 내 이야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일부 소수의 의견이 있을 뿐이라는 말만 들었다.

비단 나와 같은 새내기당원만의 문제가 아니다. 중앙당에서 밝힌 방법대로 초안에 대해 지역 당원들과 토론하여 제출한 일부 당협의 수정안이 광역시도당에 제출되었을 때, 그것을 수용할 권한이 없다고 하였다. 그것을 수용하였는지에 대해서 정확히 듣지 못했지만, 중앙당에서 그것에 대해 평가하는 것은 보지 못했다.

대의원대회에 당원 몇 명 혹은 대의원 몇 %의 추천을 얻어 수정안을 제출하면 된다고 규정하였다. 이것이 결국 제2창당을 고민하는 당원이 선택할 수 있는 마지막 소통의 방법이다. 원안에서 크게 벗어나는 수정안이 만들어질 수 없는 한계는 차치하고서라도 지금까지 제기된 수많은 쟁점을 3월 1일 하루 동안 결정해야 한다는 현실은 나의 상식을 넘어선 상황이다.

지난 1년의 경험은 새내기당원에게 양자택일을 강요했다. 스스로의 능력으로 당에서 발언할 수 있는 권력을 쟁취하거나, 그렇지 못하면 조용한 지지자가 되라고 말이다.

평화로운 노심체제 1년, 발전도 없었다

작년 6월, 7차 확대운영위원회에서 제2창당 방향에 대해 논의하는 모습을 보고 너무나 화가 난 나머지 처음으로 발언권을 얻어 ‘싸가지 없다’고 여길 정도의 성토를 했다. 그 발언 직후 정회가 되었던 것을 생각하면 내가 생각해도 부끄러운 일이다.

   
  ▲ 지난 해 1월 열린 새로운진보정당운동 공식출범 사진

그 발언 직후, 노회찬 대표는 나에게 “조금 더 많은 경험을 하라”며 충고했다. 잠시 담배를 피러 나온 자리에서 만난 심상정 대표는 자신이 생각한 제2창당의 방향에 대해 처음으로 이야기를 해주었다. 두 대표는 스쳐 지나갔겠지만, 소위 새내기당원인 나는 그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그런데 두 대표에 대한 믿음은 시간이 지날수록 약해졌다. 더 많은 경험을 하기에는 나의 인내심이 부족하다는 생각도 든다.

내가 지켜본 당 대표의 역할은 ‘얼굴마담’이었다. 촛불집회나 외부 행사, 각종 집회에서 당 대표로 인사하고 발언하는 것이 주요 역할이었다. 대표단 회의를 통해 많은 결정을 내렸지만, 진보신당을 변화시킬만한 결정은 아무리 결과보고를 살펴봐도 찾을 수 없었다.

제2창당에 대해 잠재한 갈등이 산적해 있음을 누구보다 당원들이 절실히 느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대표들은 침묵했다. ‘민주대연합’에 대한 입장은 언론을 통해 밝힐지언정, 진보신당의 내부 문제에 대해서는 발언을 너무나도 아꼈다.

새내기당원의 초보적인 시선으로 볼 때, 노심체제의 1년은 쟁점도 없었고, 갈등도 없었다. 너무나 고요해서 후폭풍이 두려울 만큼 평화로웠다. 덕분에 진보신당의 발전도 없었다.

새로운 진보에 대한 열정, 어디로 갔나?

진보신당의 오늘에 대한 책임이 비단 대표단의 문제만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화려한 수식어를 붙이며 ‘새로운 진보정당운동’을 시작하겠다고 한 사람들의 무책임한 모습에 나는 실망했다.

짧게는 10년, 길게는 20년의 진보정당운동을 성찰하고, 새로운 진보정당운동을 시작하겠다고 약속했던 사람들. 나로 하여금 진보신당 활동을 하게 했던 사람들. 이들이 창당 직후 1년여 동안 보여준 모습은 나의 상식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무엇이 두려운 것일까? 기존 진보정당의 상징 자본마저 포기한 채 얼어 죽을 각오로 나온 마당에 그들이 침묵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얼마나 더 자기성찰을 해야, 얼마나 더 진보신당이 정체되어 있어야, 다시 싸움을 시작할 것인가?

경험은 짧지만 내가 생각할 때 바로 옆에 있는 동지마저도 운동의 대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소통하고, 논쟁하는 것은 운동의 핵심이라고 본다. 그러한 입장에서 수많은 당원에게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하고 침묵하는 이들에게 1년간 당신은 운동의 본분을 망각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나는 부산에서 올라와 이랜드 투쟁에 적극 나섰던 해운대 당원들에게 받은 감동이 여전히 생생하다. 하루 몇 시간씩 카페를 지키며 당내 민주주의를 당원의 손으로 만들겠다던 직접행동 회원들의 열정이 아직도 뜨겁게 다가온다. 당원들의 열정을 식게 만든 책임은, 현재의 진보신당을 보면서도 침묵한 이들에게도 있다. 

희망의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나는 요즘 주변사람들에게 힘들다는 말을 많이 한다. 솔직히 진보신당으로 인한 피로감이 언제 나의 의지를 넘어설지 확신할 수 없다. 더 정확히 내가 입당을 권유해 처음으로 당원이 된 동료들에 대한 나의 책임감이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쓰는 것도 여전히 진보신당에 대한 희망을 버릴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는 여유를 가지라고 한다. 또 누군가는 더 많은 경험을 쌓으라고 한다. 그러나 내가 옳다고 여기는 것에 대해 침묵하는 것이 진보정당운동이라면, 차라리 운동을 포기하는 것이 마음 편하다. 배워야 할 여유와 경험이 관성과 줄서기로 바탕된 진보정당운동이라면, 나에게 있어서 운동은 ‘거짓말’에 지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혹독한 비난과 주변의 손가락질을 받아도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것을 말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관철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 그것이 당원을 향해서든 대중을 향해서든 ‘진보정당운동’의 전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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