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닌텐도는 그냥 나오지 않는다”
    2009년 02월 06일 10:2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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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박수와 환호, 웃음소리, 꽃다발과 사인 공세, 포토타임까지. 공간을 꽉 채운 550여 사람들의 조합은 얼마나 다양한지 엄마 손을 잡고 온 7살 어린 아이부터, 대학생, 30~40대 아주머니와 직장인까지.

이곳에 등장할 그에게는 ‘국민오빠’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을 정도라고나 할까. 그가 등장하기 한 시간 전부터 사람들로 북적이기 시작한 이 공간은 이후 30분 만에 준비된 좌석이 동이 났다. 늦게 도착한 청중들이 바닥에 자리를 마련한 탓에 공간은 콩나물시루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유명한 연예인 공연이었냐고? 통상적인 ‘연예인’이 아닌 한자 그대로 ‘재주를 펴는 사람(演 펼 연, 藝 재주 예, 人 사람 인)’을 연예인이라고 한다면 그도 연예인으로 분류될 수 있을 터. 열기만 보자면 진보진영의 토론 대표주자 진중권(중앙대 겸임교수, 이하 진 교수) 강연장은 유명 가수의 공연장과 다를 바 없었다.

진보신당 노회찬 대표는 그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자유’라는 말이 떠오른다며 그를 소개했다. 좌파이면서 좌파로부터 자유로운 사람, 관성적 행위를 누구보다 날카롭게 비판할 수 있는 사람. 이 시대 지식인상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람이라고.

노 대표의 소개 후 청중의 우뢰와 같은 박수와 환호 속에서 “디지털과 문화”라는 주제의 강의가 시작됐다. 이번 강의는 2월 4일 서울북부고용지원센터 10층 대강당에서 열린 마들연구소(이사장 노회찬) 명사초청 6번째 특강이었다.

“닌텐도 만들어?”

   
  

진 교수는 ‘닌텐도에 얽힌 대통령의 에피소드’로 강의의 포문을 열었다. 닌텐도DSL은 우리에게 ‘슈퍼마리오’라는 게임으로 익숙한 일본 콘솔 게임 전문업체가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에 콘솔시장을 내어주고 난 이후에 절치부심하여 휴대용게임기의 진화와 대중화를 위해 몇 년 전 내 놓은 휴대용 게임기다.

닌텐도DSL은 게임기의 소비층을 집에서 즐기는 10~20대 남성에서 전 세대로 확장시키며 10년 만에 다시 한 번 닌텐도의 아성을 쌓으며 전세계 게임시장을 석권했다. 세계적 히트 상품인 닌텐도를 보며 이명박 대통령이 “(닌텐도 같은 게임기를) 만들어 보라”라고 주문했다는 것.

이에 대해 진 교수는 “닌텐도는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다”라며 닌텐도 같은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런데 현 정권은 “문화를 읽는 코드가 전무하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이 정권 하에서는 닌텐도 같은 상품이 나오기 어렵다는 것.

“미래의 문맹은 이미지를 못 읽는 사람”

진 교수는 현대를 ‘이미지 시대’로 봤다. 문자가 없던 시절 기억이 곧 권력이 되는 ‘선사 시대’에서 문자 발명 이후 문자 활용이 권력이 되는 ‘문자 시대’를 거쳐, 이미지 생성과 활용이 힘이 되는 ‘이미지 시대’로 변화해 왔다는 것.

그의 말처럼 현재 20~30대의 젊은 세대는 이미지로 말하고, 이미지로 소통한다. ‘말이 필요 없는 세대’가 등장했고, 이들이 사회의 주류가 될 것이라고 그는 전망한다. 문자가 소통의 도구가 됐던 ‘문자 세대(진 교수에 의하면 우리 사회 386세대까지)’는 선형성과 논리를 중시했다면 ‘말이 필요 없는 세대’는 순간성, 현재성을 중시한다.

글이 아닌 하나의 이미지로 말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 진 교수는 발터 벤야민의 “미래의 문맹가는 글자를 못 읽는 사람이 아니라 이미지를 못 읽는 사람이다”를 인용하며 이미지와 사운드로 소통하는 이 시대에는 완전히 다른 문자능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진 교수는 현대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를 ‘창의력’으로 꼽았다. 문자 이전 시대, 기록 이전 시대에는 지식을 기억하는 능력이 경쟁력이었고, 자연스레 연장자가 사회의 권력자가 됐고, 문자 시대에는 문자와 숫자를 활용하는 능력이 중시됐지만 컴퓨터의 등장 이후 컴퓨터가 할 수 있는 지식저장과 단순계산 능력이 컴퓨터의 몫이 됐기 때문이다.

그는 “기계가 할 수 있는 건 인간의 몫이 아니다”라고 단언한다. 그는 미래 사회에서는 기계가 할 수 없는 인간의 몫, 알고리즘화되지 않는 프로그래밍 능력, 창의성을 기반으로 새로운 구조를 짜는 능력이 경쟁력의 기준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엔지니어-아티스트-인문학자의 삼각 컨소시엄

그는 닌텐도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엔지니어-아티스트-인문학자의 삼각 컨소시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진 교수는 “단순히 게임기를 만드는 기술을 갖고 있다고 닌텐도가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다”라며 “인문학자에서 나오는 콘텐츠 생산능력과 아티스트의 상상력, 콘텐츠 기획과 상상력을 현실화하는 엔지니어의 기술력이 합쳐져야 이미지 시대를 주도하는 창의적 산물의 생산이 가능하다”고 꼬집었다.

진 교수는 현재 한국사회가 “인문학자, 아티스트, 엔지니어 각각은 해당 영역에서 세계적인 수준의 능력을 갖고 있지만, 이 세 영역의 융합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이미지 시대, 문자시대형 인간관

이미지 시대의 도래, 창의력과 컨버전스가 시대의 화두로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현 정권은 정책은 여전히 ‘문자시대형 인간관’을 고수하고, 지향하고 있다는 것이 진 교수가 던지는 문제의식이다.

글 잘 쓰는 능력, 계산 잘하는 능력이 더 이상 시대의 경쟁력이 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현 정권의 교육·입시 정책은 국어·영어·수학이라는 소위 ‘주요과목’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문자 시대에 유효한 정책이고, 이미지 시대에는 창의력과 개인의 능력·잠재성을 계발하는 방향으로 사회가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 진 교수가 던지는 화두다.

진 교수는 진보진영에 대한 쓴 소리도 잊지 않았다. 그는 진보진영의 가장 큰 문제를 “문자문화, 산업사회 모델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라고 지적하며 인식의 틀 변환을 주문한다. 진보가 NL, PD로 칭해지는 농경, 산업사회 모델에서 벗어나 “사회 전체를 책임질 수 있는 진보”가 되어야 함을 역설한다.

더불어 “창의성이 진정한 경쟁력이고 정의(正義)가 더욱 효율적일 수 있음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 진보”라는 말로 강의를 끝맺었다. 7시 30분, 늦은 오후에 시작한 강의는 9시가 다 되도록 진행됐지만 자리를 뜨는 사람들은 없었다. 강의가 끝난 후에도 진 교수에게 사인을 받으려는 사람들과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강연장은 인산인해를 이뤘다.

강연 중 그가 가장 많이 사용한 말은 ‘변화’다. 문자 시대에서 이미지 시대로의 ‘변화’, 패러다임의 ‘변화’, 지식운용 방식과 그에 따른 권력의 ‘변화’. 변화의 시대에 이 정권은 과거로의 ‘변화’를 외치고 있다는 게 그의 주된 문제제기였다. 변화란 필시 발전하는 방향으로의 변화이며, 과거로의 변화는 변화가 아닌 ‘퇴보’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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