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사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2009년 02월 05일 07:5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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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경찰차와 기자들 차가 쭉 늘어섰거든.”

    퇴근하여 옷을 벗는 와중에 아내가 건네준 말입니다. 브라운관의 9시 뉴스에서는 요즘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연쇄 살인범 보도가 한창이더군요. 현장검증을 했는데 이랬다 저랬다 라는 멘트와 화면이 지나갑니다.

    그제서야 아내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챕니다. TV 화면이 보여주는 장소는 익숙한 곳이거든요. 이사갈까 하던 아파트도 보이고, 아이와 가끔씩 놀러가던 곳도 나옵니다. 또다시 무서움을 느낍니다. 어지러운 생각이 오고가는 와중에 아내와 대화가 이어집니다. 현장검증을 지켜보는 화면상의 동네사람들 얼굴과 같은 표정을 지으면서 말입니다.

    "삭막한 콘크리트 공간이 아니어서 좋았는데"

    “에쿠스가 왜 저기 있지 했는데, 그게 그건지 몰라” “응”
    “그래서 가끔씩 경찰이 검문을 했나봐” “응”
    “아파트에 붙여져 있던 실종자 사진도 그건가 봐” “응”

    요 며칠새 했던 이야기를 부부는 또다시 나눕니다. 두려워서 그럴 겁니다. 어쩌면 모르고 넘어갔지만 마주친 적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지도 모릅니다. 소름이 돋습니다. 세상이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나 라는 마음도 아내와 주고 받습니다. 이사갈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연쇄살인범 검거 소식을 듣고, 범인이 차로 5분 거리의 마을에 산다는 이야기를 접하면서, 제일 먼저 떠오른 건 ‘이사 가야 하나’였습니다. 시멘트로 둘러싸인 삭막한 공간이 아니어서 마음에 들었는데, 아이에게 자연을 보여줄 수 있어서 좋았는데, ‘아예 여기를 떠야 하나’라고 생각했답니다.

    물론 ‘옆 마을은 몰라도 먼 곳으로 이사가는 건 좋지 않은데’, ‘아니, 인근이라 하더라도 이사 자체는 아이에게 좋지 않은데’… 고민은 꼬리에 꼬리를 뭅니다.

    그 와중에도 언론은 얼굴을 공개해야 한다느니 안된다느니 하며 떠들어댑니다. 사이코패스니 뭐니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도 가슴에 와닿지 않습니다. 그냥 흘러보낼 뿐입니다. 아이 때문입니다. “마을이 아이들을 키운다”는 말이 있는데, 마을이 무섭기 때문입니다. 이 마을을 떠나면 벗어날 수 있다는 확신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명박 정부 경쟁교육이 더 두렵다

    이명박 정부의 경쟁교육이 더 두렵습니다. 물론 여기를 떠나면 ‘어쩜 그와 스쳐 지나갔는지 몰라’라는 소름에서 벗어날지 모릅니다. 하지만 장담은 못하겠습니다.

    심리학이나 범죄학에 대해서 문외한인 까닭에, 언론이 보도하는 내용을 그런가 보다 하며 볼 뿐입니다. 그래도 가끔은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유심히 보는 게 있습니다.

    “연쇄살인은 공동체가 파괴되면서 증가한다”, “연쇄살인은 소외가 두드러지면 많아진다”, “흉악범죄의 빈도는 사회통합과 반비례한다” 등이 대표적입니다. 박사나 교수라는 사람들의 이런 설명을 접하면, 거의 자동적으로 교육이 떠오릅니다. 교육학 교과서를 얄팍하게 봤고 교육을 살피는 일을 하다보니, 직업병 마냥 학교가 생각답니다.

    그래서 더 두렵습니다. 이명박 정부의 극단적인 경쟁교육이 더 두렵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경쟁적인 학교를 더 밀어부치는 지금이 무섭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이기주의와 소외가 여러 가지 현상으로 나타나는데, 이명박 정부 교육정책이 낳을 미래를 생각하면 숨이 막힙니다.

    핀란드처럼 경쟁이 적으면서도 훌륭한 교육시스템을 구축한 나라가 지구상에 엄연히 존재하는데도, 이명박 정부는 일제고사다, 영어교육이다, 자사고다 하여 아이나 선생님들을 더 격렬한 싸움의 장으로 모는데 몰입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복지가 발달한 북유럽은 연쇄살인이나 흉악범죄가 적다”라는 전문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한편으로는 소름이 끼치기도 한답니다.

    내년 봄이면 계약기간이 끝납니다. 그 전에 이사 여부를 결정해야 할 겁니다. 하지만 그 결정이 무엇이든 간에 한 가지는 확실하답니다. 어린이집에 다니는 큰 딸아이가 내후년이면 초등학교에 입학합니다. 멀지 않아 ‘이명박 세대’나 ‘공정택 세대’가 되는 건 확실하답니다.

    정말 두렵고 걱정되는 건 이겁니다. 어미와 아비가 연쇄살인범 보도를 보면서 도달한 종착역은 이명박 세대로 불릴 아이와 그 아이가 터할 마을의 장래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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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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