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순이 김석기 살렸다는 경찰
    2009년 02월 04일 09:16 오전

Print Friendly
 
   
 

국제통화기금(IMF)은 한국의 2009년 성장률을 마이너스 4.0%로 전망했다. 주요 20개국(G-20) 가운데 가장 낮은 수치다. 청와대는 IMF가 2010년에는 플러스 4.2% 성장을 예측했다면서 한국의 경제 회복 속도가 가장 빠르다고 홍보했다.

2010년 경제전망이 맞아떨어져도 2년 동안 한국경제가 제자리걸음을 한다는 것은 ‘산수’만 알아도 간단히 풀 수 있는 결과이다. 최악의 경제상황을 엉뚱하게 홍보하는 모습은 국민에 대한 눈속임과 무엇이 다를까.

이명박 정부에서 경험하는 어이없는 상황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SBS <대통령과의 원탁대화>에 출연해 “미디어 발전법으로 방송통신 융합이 되면 바로 2만 개의 일자리가 생긴다”고 홍보했다.

여권이 추진하는 방송법이 일자리 2만 개를 만든다는 홍보 논리는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의 보고서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나 공신력 있는 국가 기관인 국회 예산정책처는 설득력이 부족한 보고서라는 평가 자료를 내놓았다. 한마디로 ‘뻥튀기 보고서’란 설명이다.

이번에는 ‘용산 참사’이다. 5명의 시민과 1명의 경찰관이 희생된 이번 참사는 국민의 걱정을 일으킨 사건이다. 그러나 경기 서남부 연쇄 살인사건에 여론이 눈길을 돌리자 경찰과 검찰, 여권은 엉뚱한 해법 찾기에 골몰하고 있다. 4일자 주요 아침 신문에는 ‘황당 뉴스’에 나올 법한 검찰과 경찰의 씁쓸한 모습이 담겨 있다.

다음은 4일자 주요 아침신문 1면 머리기사다.

-경향신문 <“방송규제 완화 예상효과 일자리 2만개 근거 없다”>
-국민일보 <고려대, 고교등급제 공식화>
-동아일보 <‘대학 5학년’ 다시 쏟아진다>
-서울신문 <북, 대포동 2호 발사 준비>
-세계일보 <‘학진’ 지원 연구비는 교수 쌈짓돈>
-조선일보 <외국인들 “한국을 사라”>
-중앙일보 <선생님 한 명이 학교를 바꿨다>
-한겨레 <한-미 FTA 비준안 2월처리 유보>
-한국일보 <올 -4% 성장 ‘G20 중 꼴찌’>

경기 서남부 연쇄 살인사건은 치안 부재의 현실을 드러낸 사건이다. 안타까운 생명이 목숨을 잃는 동안 대한민국 경찰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차분하지만 냉철하게 따져볼 대목이다.

국민 걱정을 가중시키는 이런 사건이 발생하면 경찰이나 정부는 고개를 들지 못할 정도로 책임감을 느끼는것이 보통의 모습이다. 그러나 이번 사건이 경찰이나 정부의 또 다른 치부를 감추는 용도로 활용되고 있다면 이는 정상적인 모습일까.

국민일보 "경찰 속으로 쾌재 불러"

   
  ▲ 국민일보 2월4일자 2면.  
 

국민일보 조국현 기자는 4일자 2면 <경찰 표정관리?>라는 제목의 ‘현장기자’ 칼럼을 통해 경찰의 현 상황을 질타했다. 조 기자는 “경찰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지난 주말 터진 강호순 연쇄살인 사건으로 국민들 관심이 용산 참사에서 멀어졌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국민일보 기사를 접한 독자들은 자신의 눈을 시험해야 하는 상황이다. 말도 안 되는 얘기지만 책임 있는 언론 지면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기사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조 기자는 “실제 경찰은 강호순 사건이 용산 참사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상당히 감소시켰다고 보고 표정 관리에 들어간 인상이다. 경찰 내부에서는 ‘강호순이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를 살렸다’는 말까지 나돌고 있다”고 주장했다.

국민일보가 전한 기사 내용이 사실이라면 이는 적당히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경찰 하나만이 아니다. 이번에는 한국일보가 검찰의 현실을 드러내는 기사를 내보냈다.

한국일보 "검찰, 어떤 방법으로 ‘편파 수사’ 논란 피하려 할까"

   
  ▲ 한국일보 2월4일자 6면.  
 

한국일보는 6면 <“편파수사 논란 막아라” 검의 묘수는>이라는 기사에서 “검찰은 어떤 방법으로 ‘편파 수사’ 논란을 피하려 할까. 용산 참사에 대한 수사결과 발표가 임박하면서 검찰이 발표 내용에 논란을 최소화할 수 있는 각종 안전장치를 포함시킬 것이란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국일보는 “일단 검찰은 ‘진인사’를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양적인 측면에서는 검찰 수사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다음으로 검찰은 경찰 책임자들의 법적 책임과 상관없이 도덕적 비난 소지를 충분히 제공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검찰이 철저한 진상 규명을 통해 한 점 의혹 없는 수사 결과를 발표하는 것이 아니라 편파수사 논란을 막기 위한 묘수 찾기에 골몰하고 있다니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이명박 대통령이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의 내정 철회 불가 방침을 밝힌 이후 이러한 상황은 어느 정도 예견됐다.

경향신문 "얼치기 수사"

   
  ▲ 경향신문 2월4일자 사설.  
 

경향신문은 4면 <여당 ‘김석기 문책-유임’ 역주행>이라는 기사에서 “‘용산 철거민 참사’에 대한 한나라당의 대응이 역주행하고 있다. 사건 초기에 압도적인 비판 여론에 위축돼 ‘책임자 문책론’을 내던 모습은 오간 데 없고 ‘법치’를 내세워 노골적으로 ‘김석기 살리기’에 앞장 서고 있는 형국”이라고 비판했다.

경향신문은 <얼치기 수사로 ‘용산 참사’ 진실 묻으려는가>라는 사설에서 “수사는 대통령의 뜻을 헤아리고, 여권의 압력을 의식한 흔적이 짙다”면서 “정권 안보를 위한 법치는 권력의 사유화이고 민간 독재의 방편일 뿐이다. 법치를 더 이상 모욕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한겨레는 <검찰 수사, 법의 탈을 쓴 ‘야만’이어선 안 된다>는 사설에서 “‘용산 철거민 참사’에 대한 검찰 수사가 걱정한 대로 잘못된 방향으로 치닫고 있다. 검찰은 농성자들이 뿌린 시너에 화염병 불이 붙어 참사가 빚어졌을 뿐, 경찰에겐 형사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잠정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고 지적했다.

한겨레 "법의 탈을 쓴 ‘야만’"

   
  ▲ 한겨레 2월4일자 사설.  
 

한겨레는 “망자의 억울함과 국민의 충격을 달래지는 못할망정, 정략적 공세로 곤경을 모면하려는 그 뻔뻔함이 놀랍다. 이런 행태를 두고선 ‘야만’말고 달리 일컬을 말이 없다.…국민의 생명을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게 바로 전체주의와 독재”라고 비판했다.

서울신문은 <김석기 조사않고 수사 마무리 안된다>는 사설에서 “우리는 김 청장을 소환조사하지 않으려는 검찰의 방침이 여권의 김 청장 감싸기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고 본다”면서 “김 청장을 소환조사한 뒤에 김 청장의 거취도 결정돼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지면에는 검찰의 ‘적당 수사’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찾아보기 어렵다. 이들 언론은 경기 서남부 연쇄 살인사건에 대한 국민 정서를 자극하는 기사를 지면에 전진 배치했지만 용산 참사에 대한 검찰 수사 논란은 조용하게(?) 실었다.

조중동, 강호순 사건 관심 집중 다른 의도 있나?

   
  ▲ 조선일보 2월4일자 1면.  
 

조선일보는 1면에 <강호순에 희생된 여대생 연씨의 장례식>이라는 기사를 내보내면서 <“무사히만 보내주면 용서하려 했는데 아가야…아가야…엄마는 눈물마저 말랐구나”>라는 중간 제목을 달았다.

조선일보는 10면에도 <“범행 책 써서 아들이 인세 받게 하겠다”>라는 강호순 관련 기사를 머리기사에 배치했고, 지면 왼쪽에 <인터넷 방송 2곳 압수수색>이라는 제목으로 용산 참사에 대한 검찰 수사 소식을 실었다.

동아일보도 1면에 <“하마터면 나도…무서워 밖에 못 나가”>라는 제목으로 강호순 관련 기사를 비중 있게 실었지만 용산 참사 검찰 수사 소식은 12면에 <용상 농성 가담자 20명 안팎 기소할 듯>이라는 제목으로 실렸다.

전철연 일부 회원 재산에 관심 보인 중앙일보

   
  ▲ 중앙일보 2월4일자 4면.  
 

조선과 동아는 용산 참사에 대한 검찰 수사를 우려하는 내용의 사설을 싣지 않았다. 중앙일보는 용산 참사와 재개발 철거민에 대한 관심을 보였지만 관심의 포인트는 검찰의 ‘적당 수사’가 아니었다.

중앙일보는 4면 <이런 전철연 회원도…>라는 기사에서 “서울중앙지검 정병두 1차장 검사는 3일 수사 브리핑에서 일부 전국철거민연합(전철연) 회원의 재산과 관련해 ‘한 라디오 방송에서 농성자들이 모두 살 집이 없는 이들이라고 표현했는데 신중하게 말해 달라’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농성자 중에는 재산이 많은 사람도 있다는 설명이다.

중앙일보는 “경찰도 지난달 20일 서울 용산의 재개발 농성자 사망 사건 때 현장에서 연행된 일부 전철연 회원들 중 재산을 많이 가진 사람이 있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무엇을 말하려는 것일까.

중앙일보는 “(강모씨는) 야탑동에 아파트 한채(전용면적 131.4㎥·48평)를 소유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시가는 6억2000만원이었다”면서 “그는 경기도 오산시 두곡동에 3058㎥짜리 땅도 갖고 있다고 경찰 관계자는 전했다”고 보도했다. 중앙은 용산 참사 관련 검찰 수사를 우려하는 사설은 싣지 않았다.

용산 참사 사건의 본질 꿰뚫고 있는 한국일보 칼럼

   
  ▲ 한국일보 2월4일자 39면.  
 

중앙일보의 남다른 관심과 경찰의 친절한 설명에 독자들은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까. 검찰과 경찰, 일부 언론이 여론의 물줄기를 돌리고자 노력하고 있지만 용산 참사의 근본적인 문제는 달라지지 않는다.

그들은 왜 망루에 올라가 극한 투쟁을 벌일 수밖에 없었는지, 그들은 무엇을 말하고자 했고 사회는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는지, 경찰은 그들에게 ‘법치’를 내세워 강경 진압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전국의 수많은 재개발 현장의 문제점을 그대로 방치해도 되는 일인지 따져봐야 하지 않을까.

한국일보 39면에 실린 황상진 논설위원 칼럼은 문제의 본질을 꿰뚫고 있다. 황 논설위원은 <낮은 곳은 보지 않는 법치>라는 칼럼에서 “‘법대로’만 외치는 게 법치는 아니다. 법에 따라 주어진 공권력을 국민들을 향해 앞뒤 안 가리고 휘두르는 게 법치라고 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황 논설위원은 “법치의 궁극적인 목적인 국가 권력이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지 않도록 법에 의해 견제하고 감시하는 것이다. 여기에 보수나 진보와 같은 이념의 문제가 끼어들 틈은 없다”면서 “진정한 법치는 법치 이전에 이 사회의 낮은 곳, 소외된 곳에 있는 이들이 법에 의해 보호받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하고, 법과 법을 집행하는 권력이 만인 앞에 평등하게 작용한다는 믿음을 주는 데서부터 시작한다”고 지적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