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중의 침묵은 '살인 무기'
        2009년 01월 28일 08:1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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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주일 전에, 즉 1월19일에 모스크바에서 또 다시 충격적 소식이 들렸습니다. 마르켈로프 변호사가 모스크바 시내에서 백주대낮에 괴한의 권총에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그와 함께 걸어가고 있었던 야당지 <노바야 가제타>의 바부로바 여기자가 괴한에게 저항을 시도했다가 역시 흉탄에 쓰러져 결국 유명을 달리 하게 됐습니다.

       
      ▲ 미르켈로프 변호사

    모스크바 시내, 크레믈린궁과 도보 30분의 거리에서 말씀입니다. 괴한의 행동을 보면 꼭 사형을 집행하는 ‘공무원’의 행태였답니다.

    백주대낮에 두 사람을 죽인 뒤에 천천히 지하철역을 향해 걸어가 지하철에서 잠적하고 말았지요. 권총도 버리지 않았답니다. 아주 유유자적하게, 아주 태연하게…

    공무집행과도 같은 태연한 살인

    확실히 사람이 ‘국살’ (國殺)의 막대한 책임을 지고 일을 저지를 때에 공연히 덤빌 일이 없어요. 누가 잡기라도 하겠어요? 공인된 직업인데 말씀입니다.

    이 마르켈로프씨를 떠올리면 식민지 시대의 허헌 선생님이나 최근의 조영래 변호사와 같은 像이었어요. 인권 변호사의 전형이었지요.

    그가 수임한 일 중에서는 개발업자들로부터 시민의 숲을 지키려다가 ‘괴한’ (그 정체를 아마도 경찰만이 모를 것입니다)들로부터 살인적 구타를 당해 지금 중태에 빠져 겨우 목숨을 유지하고 있는 모스크바 부근 한 지역 신문의 편집장도 있었고, 지난 번에 비슷한 형태의 ‘국살’로 숨진 안나 폴리트코브스카야 기자의 유족들도 있어요.

    그러나 그가 수임한 사건 중에서는 가장 사회적 파급력이 있었던 것은 물론 ‘부다노프 대령 사건’이었습니다. 체첸 독립운동 진압에 참전한 부다노프 대령이라는 사람(?)이 2000년2월에 딸이 태어났다고 하여 ‘잔치와 같은 기분’을 탔을 때에 처음에 ‘재미’로 큰 대포로 체첸 마을 하나를 초토화하려 했는데 부하의 저항에 부딛쳐 죄절됐습니다.

    기분이 나빠지자 18살의 체첸 처녀를 붙잡아 ‘폭도들의 저격수’라고 혐의를 덮어씌워 자신의 사무실에서 강간하여 목졸라 죽인 것이었습니다.

    여성 납치, 강간, 살해… 그 당시에 러시아 진압군 측에서 그러한 일이 다반사이었는데, ‘부다노프 사건’에 대해 독일 등 러시아 정부에 영향력을 행사할 위치에 있는 몇 개 유럽 나라에서 알아차려 강력한 조치를 주문했습니다.

    기쁨에 넘친 러시아 극우파들

    그 외압도 있고 체첸 민심에 대한 생각도 있어 부다노프 대령이 재판이라도 받았는데 (그 당시 다수의 러시아군 전범들과 달리) 결국 10년형으로 일단락됐습니다. 그 재판에서 마르켈로프 변호사는 그 체첸 여성 유족을 대변했어요 (암살의 위협에 시달려온 그 유족들은 지금 여기, 노르웨이에서 망명 생활합니다).

    그러다가 금년 1월초에 부다노프가 ‘모범수’로서 조기석방하게 됐는데, 마르켈로프가 유족을 대표해서 조기석방취소 가처분신청을 해놓은 상태이었어요. 그러나 부다노프가 석방되고 그 뒤에 바로 4일 지나서 마르켈로프가 살인됐습니다.

    그리고 러시아 인터넷에서 파시스트 등 극우들이 기쁨에 들떠 자축하는 분위기로 돌변됐지요. "우리 영웅적 군인이 드디어 석방되고 그 깜둥이 놈들을 변호하던 병신이 드디어 응당의 처분을 받았구나!" 대체로 이런 식입니다.

    물론 한국에서는 보도조차도 거의 안됐던 것 같아요. 대한민국의 재벌과 재벌언론들은 러시아에서 휴대폰 판매와 에너지 개발 이상의 그 어떤 관심이라도 갖겠어요? 또 미국이나 일본에서 그런 일이 저질러졌다면 보도라도 됐겠지만 러시아 같은 ‘변두리’에 대한 관심은 별로 없지요.

    남의 나라에서 이루어지는 이 끔찍한 일들을 갖고 제가 글을 쓰는 이유는 무엇이냐고요? 이웃 나라이기에 일단 러시아의 점차적 파쇼화 과정에 대해서는 국내에서도 관심을 갖고 연구라도 해볼만합니다. 러시아 파시스트로부터 공격을 받아 숨지거나 부상을 당한 수백 명의 외국인 중에서는 한국인/북한인 몇 명도 있는데 말씀입니다.

       
      ▲유리 부다노프

    그리고 러시아와 비교될 수 있는 수준은 결코 아니지만 ‘외국인 범죄’, ‘외국인 불법 체류자 추방’이니 들먹이는 일부 ‘아류 파시스트’들이 국내에도 있고 세계 불황이 깊어짐에 따라 또 활발해질 수도 있기에 일단 경각심을 갖고 있는 게 좋습니다.

    친절한 명박랜드, 즐거운 민간 파시스트 

    물론 외국인에 대한 살인적 단속을 국가가 알아서 다 해주는 이 ‘친절한 명박랜드’에서는 민간 파시스트들이 굳이 할 일도 그리 많지 않은데 (지금 이상으로 외국인 노동자를 더 괴롭힐 수 있나요?) 모든 카드들을 다 써버리게 되면 극우 세력들이 ‘배외주의’ 카드를 꺼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요. 러시아만큼은 안가겠지만 그래도 안심할 수는 없지요.

    그리고 마르켈로프 변호사에 대한 ‘백색 테러’를 이렇게 한글로 논하게 되는 또 한 가지 이유는 정치적 살인의 중요한 논리 하나를 설명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번 일이 ‘주상께서 분부하신 바’인지 그 ‘주상’의 주위에서 결정해 처리한 것인지 아니면 민간 파쇼들이 국가보안기관의 지원을 적당히 받아 한 것인지 저도 모르고 아무도 모르는 것이지요.

    ‘민간 파시스트 + 어느 정도의 안보기관의 지원’일 가능성이 제일 높은 듯합니다. 그러나 어쨌든 간에 주인네들이 이러한 ‘국살’의 형태를 이용하여 백성들 중에서 ‘叛民’이라고 생각되어지는, 남보다 용감한 이들을 ‘쥐도 새도 무르게’ 처리해버릴 때에 꼭 한 가지 판단이 그 전제가 됩니다.

    "이 일쯤 가지고 민란이 일어날 일 없겠다"라는 판단이 있지 않고서야 누가 인권변호사를 크레믈린 근방에서 죽이게 하겠어요? 즉, ‘다수의 침묵’, ‘대중 독재’, 즉 독재적 권력에 대한 다수의 동의의 지속은, ‘불평불만 분자 개인’에 대한 ‘비공식적 사형’의 전제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대중의 침묵이 살인 무기

    그리고 독재자들은, 저들이 운영하는 사회를 너무나 잘 알고 있어요. 좌파와 자유주의자 등이 경악하고 분개하고 있지만 러시아인의 절대 다수는 별로 신경쓰지 않는 것은 인권 변호사의 죽음입니다. 그들의 침묵이 계속 지속되기에 다음의 ‘불평불만 분자’ 제거에 대한 계획도 수립될 만할 것입니다.

    한 사람씩, 한 사람씩… 다수가 자기 밥그릇만 챙기는 ‘순한 양’이 되면 ‘순한 양’이 될 수 없는 개인들이 이렇게 처리됩니다. 대중의 침묵이란 살인 무기에요, 살인 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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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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