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주의',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2009년 01월 05일 10:2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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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평소에 즐겨 읽는 사이트 중의 하나는 www.wsws.org 입니다. 트로츠키주의 사이트인데, 시야가 넓고 자본주의 세계의 주요 경향들을 잘 짚어주는 장점이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트로츠키주의’라 하면 ‘다함께’와 같은 조직들이 맨 먼저 떠오르지만, 제가 말한 그 사이트에 의하면 ‘다함께’의 모태인 영국의 사회주의노동당은 단지 ‘기회주의적인 개량주의자’들이랍니다.

그러니까 본인들의 주장으로는 그것보다 더 왼쪽이라는 이야기지요. 뭐, ‘혁명’을 이야기하면서 ‘혁명’을 실천할 가능성이 별로 없는 것은 사회주의노동당이나 그 www.wsws.org나 마찬가지지만, 사회주의노동당 같으면 매우 폭넓은 ‘통일전선’ 전략을 추구하여 그 주의를 꼭 공유하지 않는 사람들과도 사안별로 연대하지만, www.wsws.org 는 ‘독야청청’, 양보없는 ‘트로츠키주의 사상적 순수혈통’을 자랑합니다.

그거야 저로서 일종의 ‘좌파적 위정척사’로 보이지만 미국이나 유럽 정체, 사회의 이면들을 잘 폭로해주는 기술을 www.wsws.org으로부터 충분히 배울 만합니다. 그래도 썩어빠진 이 세계에서 그러한 독자적 목소리를 낸다는 것부터 고마운 일이죠.

www.wsws.org가 이번 가자지구에서의 이스라엘 도살 작전을 어떻게 보는가 궁금했는데, 역시 예상대로입니다. 이 분들이 똑똑하게도 ‘양비론’으로 빠지지 않고 하마스 아닌 도살자 이스라엘에만 이 사태에 대한 주된 책임을 추궁하는 동시에 ‘아랍 대중들과 이스라엘 노동계급의 연대된 사회주의적 투쟁, 그리고 중동의 사회주의적 혁명과 중동에서의 사회주의적인 연방 건설’을 주문했습니다. (관련 링크 ☞바로가기)

 

   
  ▲ 이스라엘의 공습 후 폐허가 된 건물에서 생존자를 찾고 있다.

"사회주의로 개종하세요"

그걸 읽으니 감동의 눈물이 쏟아질 뻔하네요. 지금 아랍인 학살을 이미 지상에서도 시작한 이스라엘 군인들에게 "군복을 벗으세요, 지금 저지르는 악행을 회개하세요, 그리고 사회주의로 개종하고, 팔레스타인인들과 손을 잡고 착한 사회주의적 투쟁에 나가세요"를 말하는 격인데, 이건 말하자면 나의 목에 칼을 들이대는 강도에게 "일제중생들이 실유불성인지라 참회하여 이런 악업을 저지르지 마오. 도반이 되자"하는 것과 같은 격입니다.

어찌 보면 참 선한 일이 아닐 수야 없지요. 이상적으로야 강도가 칼을 들이대는 상황에서 강도에게 설법하는 것은 좋은 일일 테고, 아랍인과 유태인들이 계급형제가 되는 것은 중동 문제의 가장 근원적 해결임에도 틀림없지요. 이상적 차원에서 말입니다.

그런데 <삼국유사>의 ‘도적을 만난 영재스님’ 이야기가 아닌 현실 세계에서 여러분들께서 설법을 듣고 참회하여 칼을 던진 도적을 많이 보셨어요? 이스라엘 군인들이 www.wsws.org를 열독한 뒤에 자동총을 던져 계급투사로 업종변환할 가능성은, 러시아 스킨헤드들을 모스크바에서 만난 부랴트 자치공화국 학생이 그들에게 부처님과 악업, 선업, 윤회를 이야기하여 그들로 하여금 악도를 벗어나게끔 할 가능성만큼이나 미미합니다. 뭐, 도력이 높으면 가능할 수도 있지만, 도력이 높은 사람들을 여러 분들이 많이 보셨나요?

피해자가 가해자를 설득하여 회개케 하고, 나아가서 ‘공동체’를 이루는 길…. 참 이상적인 해결법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글쎄, 저만해도 예컨대 서울의 뒷골목에서 어떤 젊은이가 칼을 들이대면서 "돈을 내놓아!"라고 하면 아마도 시도를 해보겠습니다.

"당신이 생계 때문에 이러는 것이죠? 그렇지 말고 내가 갖고 있는 돈을 우리가 같이 나누고 앞으로 서로 도와주면서 삽시다. 어려운 입장이라곤 알겠지만, 다른 사람을 해치면 당신도 크게 나아질 일 없고, 그 다른 사람도 어렵게 되니 우리는 그렇지 말고 윈윈 전략으로 합시다." 일단 시도는 당연히 해볼 것입니다.

이상과 차악, 국가폭력

뭐, 싸우거나 돈을 그냥 내놓는 것보다 아무래도 나은 전략일 것 같아서요. 그러나 만약 이 젊은이가 저를 잘 때려 넉다운시킨 뒤에 제 지갑을 그냥 가져가버리면 反폭력주의자인 저라도 과연 어떻게 할 것인가요? 역시 경찰에 신고하는 등 ‘차악’인 국가폭력에 그저 호소할 셈입니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국가 폭력에 어쩔 수 없이 호소하게 될 확률이 어느 정도 될까요? 많이 내려잡아도 약 90% 이상일 것입니다. 팔레스타인의 아랍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이 호소할 수 있는 ‘세계 경찰’이란 없기에 (세계 깡패인 미국에 호소해봐야 득이 없는 건 세상이 다 아니까요) 그들 자신들이 ‘경찰’이 되는 수밖에 없습니다.

즉, 이상론은 어떻든 간에 현실론적으로는 이스라엘의 무도극악에 맞설 수 있는 방안은 전체 아랍인 민중들의 연대와 무자비한 무장 투쟁일 것입니다. 그게 개개인의 도덕 차원에서 보면 절대 좋은 일이 아니지만 ‘지금 거기에서’는 뚜렷한 대안이 보이지가 않아요.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는, 비극적인 현실입니다.

"지금 국제계급연대주의는 무효다, 폭력적인 민족투쟁밖에 대안이 안보인다." 이런 말을 쓰고 나니 이를 고치고 싶은 욕망이 절로 생깁니다. 미미하더라도 이스라엘인들의 – 계급적이든 종교적이든 도덕적이든 – 개과천선의 가능성을 정말로 찾고 싶은 심정이죠.

그런데 예컨대 역사적으로 그런 경험이 있어요. 1941~45년 간의 소독 전쟁을 보시면 독일군이 우세했던 1943년초까지는 독일군인들이 탈영하여 소련 측에 넘어가 반파쇼 투쟁에 참여하는 경우들이 아주 드물었지요 (예컨대 카렐리아 전선에서는 단 한 명도 없었어요 : 관련 링크 ☞바로가기)  

그런데 스탈린그라드 대첩 이후에 파쇼들의 패색이 짙어지자 특히 옛날 공산당이나 사민당 당원들이 탈영을 해서 반파쇼 전선에 합류하는 일은 훨씬 흔해졌어요. 소련 군인들이 그들에게 "그러면 어떤 경위를 통해 원래 공산주의자 내지 사민주의자인 당신이 파쇼군인이 됐는가?"를 물었을 때에 "1934년, 히틀러가 이기고 공산당, 사민당이 패배자임이 드러나자 일단 당원증을 없애고 당원이었음을 숨기면서 살았다"는 답은 보편적이었답니다.

양심을 되찾을 상황의 문제

그런데 파시즘이 승자가 아닌 패자임이 또 분명해지기에 오랫동안 잊어온 사회주의자로서의 양심이 다시 살아난 셈이었습니다. ‘양심’이라는 것은 – 칸트가 뭐라 하든간에 – 절대적인 차원은 절대 아닙니다. ‘양심’과 현실, 즉 현실 속에서의 생존을 추구하는 본원적인 물적 욕망들은 아주 복잡한 상호 작용을 하는 것입니다.

양심이 전혀 없는 극소수와, 양심만으로 자기 생존을 포기할 만큼 의인 기질이 높은 극소수는 그 숫자는 아마도 비슷할 것이고, 나머지들의 양심 발로의 가능성은 ‘상황에 따라서’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군인들이 잊어온 양심을 되찾자면, 대체로 그 군대는 일단 한 번쯤 완패를 당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팔레스타인 문제’를 힘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걸 몸으로 체득할 것이고 ‘양심적 방법’의 모색에 들어가겠지요.

이런 글을 쓰느니 차라리 안썼으면 좋겠어요. 저는 ‘폭력은 유일한 길’이라는 말을 절대 하고 싶지 않습니다. 아랍 민중 중에서는 예컨대 저처럼 폭력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글로, 노래로, 춤으로 음악으로, 무엇으로든 간에 이스라엘 유대인들에게 "아랍인도 인간이다. 아랍인과 평등하게 공존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을 계속 깨우쳐야 할 것입니다.

즉, 개개인의 차원에서 본다면 이스라엘의 무도함에 맞서는 방법은 충분히 비폭력적일 수도 있어요. 그러나 ‘아랍인’ 전체로 봐서는 지금 무장 항쟁의 정당성에 대해서는 뭐라고 토를 달기가 힘듭니다.

‘전쟁’을 아주 싫어하는 저로서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엄연히 현실입니다. 이미 파시즘과 많은 면에서 닮아간 시온주의를 벗어나지 못하는 이스라엘인의 다수를 깨우치기 위해서는 ‘스탈린그라드’가 역사적으로 필연적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참 답답한 심정으로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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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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