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민학생연대활동? 농촌봉사활동?
        2008년 12월 31일 09:4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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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는 계속 ‘답답함’의 연속이다. 촛불집회로 국민들의 의사를 보여주었지만, 이명박 정부는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고 방송법, 한반도대운하 등 주요 현안을 밀어붙이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저탄소 녹색성장’이라는 이름으로 핵발전위주의 대규모 에너지 사업을 추진하면서 ‘녹색’의 이름을 더럽히고 있기도 하다. 연말이기도 하고 답답함을 벗어나고 싶기도 하여 이번에는 현실과 조금은 떨어진, 그러나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이야기를 하나 해 보려고 한다.

       
      ▲ 위키피디아 대표 이미지

    인터넷에 관심이 많은 이라면 위키백과(wikipedia)에 대해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Web 2.0의 대표적 예, 집단지성 등 다양한 수식어로 소개되곤 하는 위키백과는 누구나 접근하여 내용을 작성할 수 있는 백과사전이다.

    시작한 지 채 10년이 되지 않았지만, 영어판이 267만 개의 표제어를 갖고 있는 것을 비롯, 독일어판(84만 개), 프랑스어판(74만 개) 등 많은 표제어들이 등록되어 있고 언어의 종류도 260여 개에 달해 에스페란토어, 라틴어는 물론 간단한 영어로만 서술하는 simple english나 중국 고어까지 포괄하는 세계 최대의 백과사전이다.

    한국어판의 경우 아직 표제어가 작아서 8만4천여 개 정도밖에 되지 않지만, 랭키닷컴 같은 인터넷 순위 싸이트에서 160위(영어판을 포함한 전체 위키백과 순위)를 차지할 정도로 접속자의 숫자가 많은 백과사전이다. 랭키닷컴 기준으로 오마이뉴스의 랭킹이 110위이고 레디앙이 1500위 근처를 기록하고 있으니, 두산백과사전 25만 표제어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그 가능성 만큼은 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농활의 명칭을 둘러싼 작은 논쟁

    필자는 얼마 전 이 위키백과에서 작은 논쟁을 하나 경험했다. 종종 시간이 나면 위키백과에 비어있는 표제어를 채우곤 하는데, 얼마 전 위키백과 한국어판에 ‘농활’이란 표제어가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위키백과는 표제어가 없을 경우 해당 단어를 붉은색으로 표시하는데 농활이 붉은 색으로 표시되어 있었던 것이다.

    농활에 대해 특별히 애착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대학시절 학생회 활동을 했던 이들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정도의 농활에 대한 애증(!)을 갖고 있었던 나는 농활을 표제어에 추가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간단히 적은 2~3줄. 농활에 대한 풍부한 설명은 아니어도 최대한 위키백과의 붉은 색(비어있는 표제어)를 없애겠다는 마음으로 등록을 마쳤다. 당연히 표제어의 제목은 ‘농활’이었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내가 글을 쓰고 10분이 지나지 않아 다른 사용자가 문학 상록수에 나오는 농촌활동을 추가하면서 ‘농활’이라는 표제어 제목을 ‘농촌봉사활동’으로 바꾼 것이다. 농활은 ‘농촌봉사활동’의 준말이기 때문에 원말을 써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이 사실을 발견하고 나는 조금 당황스럽기도 하고,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시절 농활을 ‘봉사활동’이라고 이해하고 들어오는 이들이 있으면 왜 그것이 아니고 ‘연대활동’이 되어야 하는지를 설명했던 기억도 한꺼번에 스치고 지나갔다.

    물론 나는 90년대 농활의 끝자락에 있는 세대이다. 농활이 변질되어 가고 있는 것을 현장에서 목격했고, 그래서 농활이 아닌 ‘환경현장활동’으로 방학 프로그램을 바꾸어가는데 앞장섰던 사람이기도 하다. 하지만 당시 치열한 고민과 열정으로 진행된 농활이 ‘봉사활동’으로 치부되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었다. 충분히 설명되지 않으면 정말 농활은 ‘봉사활동’으로 국한되겠구나 하는 안타까움도 함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 <민중의 집> 여름농활 사진 (사진=레디앙) 

    그래서 다시 최근 기업체 등에서 진행하고 있는 농촌‘봉사’활동과 일제시대 상록수 등에 나오는 농촌‘계몽’활동, 그리고 80~90년대 진행되었던 농민학생‘연대활동’에 대한 설명을 추가하고 표제어를 다시 ‘농활’로 바꾸었다.

    이후 위키백과 ‘농활’ 문서의 토론란에는 글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국립국어원 국어사전에는 ‘농활’이 ‘농촌활동’의 준말로 되어 있다는 글, ‘농촌활동’이란 말은 거의 사용되지 않는 말이지 않느냐는 반론, 구글을 검색했더니 ‘농촌활동’이 더 많다는 글까지.

    결국 수차례 토론과 수정을 거쳐 농촌계몽활동, 농민학생연대활동, 농촌봉사활동을 모두 포괄할 수 있는 ‘농촌활동’을 표제어로 하고 ‘농활’은 검색시에만 사용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모든 토론 내용과 수정내용은 위키백과 ‘농촌 활동’ 문서에서 볼 수 있다.)

    작지만 의미있는 토론, 그리고 남은 과제들

    어찌 보면 짧은 헤프닝이지만, 이 짧은 논쟁은 그동안 진보진영에게 부족했던 점들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아 조금 씁쓸하다. 치열했던 운동의 역사는 기록되고 정리되지 못하고 개인의 기억이나 술자리의 이야기로 남아 있고, 이를 알 수 없는 많은 이들은 보수진영의 논리를 그대로 따라가고 있는 것 같아서이다.

    농활을 ‘연대활동’으로 만들기 위해 흘렸던 노력과 무관하게 제도권에 편입된 농활은 ‘봉사활동’으로 기록되고 재생산되고 있다. ‘역사는 기록하는 자의 것’이란 말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이후 사람들의 인식이 어떻게 될 것이라는 것은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것이 어디 농활뿐이겠는가? 중고생, 대학생 등과 함께 일을 하다보면 전태일을 홍경인 주연의 영화 제목으로만 알고 있는 20대와 그나마도 모르는 10대, 체르노빌을 바이러스 이름으로만 알고 있는 20대와 그도 모르는 10대를 찾기는 어렵지 않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인터넷상에서도 이들에게 그러한 정보는 제공되지 않았고, 조중동 등 보수언론의 논리는 끊임없이 제공되고 있다. 이들 중 일부가 노동자들의 파업을 보수언론과 같은 논리로 비판하거나 상업용 핵발전에 찬성하는 것은 물론이고 북한을 핵무기로 쓸어버려야 한다는 극우논리를 인터넷에 올리는 것은 우리 사회의 안타까운 모습이다.

    진보진영은 과연 이들에게 얼마나 친절한 설명과 진실을 알리기 위해 노력해 왔는가? 잘 정리된 역사와 정보, 그리고 세련된 설명은 언제나 보수언론의 몫이고 진보진영은 감정에 호소한 투박한 설명을 반복하고 있지는 않은가? 아니면 투박한 설명조차 없이 입에서 입으로, 아니면 술자리의 전설(!)로 진보의 역사를 전하고 있지는 않은가? 많은 생각이 교차하면서 스스로도 반성하게 되는 대목이다.

    오늘(29일) 위키백과 한국어판은 대문에 오늘이 운디드니 학살 118주기가 되는 날이라고 알려주고 있다. ‘운디드니 학살’이라는 항목이 붉은 색(빈 항목)으로 표기되어 3줄짜리 짧은 글로 미군의 인디언 학살 내용을 채웠다.

    채우는 김에 12월 3일자 일지에서 최악의 화학공장사고인 인도 ‘보팔 가스 사고’에 대한 항목도 짧게 채웠다. 짧은 몇 줄의 설명으로 그 사건을 충분히 설명할 수는 없겠지만, 이런 일들이 반복되면 브리태니커나 두산백과사전이 다룰 수 없는 관점과 내용으로 인터넷을 채워 갈 수 있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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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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