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렵지만 오를 수밖에 없었던 이유"
        2008년 12월 31일 02:1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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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노총(울산) 간부들은 단위노조 간부들에게, 단위노조 간부들은 민주노총 간부들에게 서로 믿음과 기대를 걸었다가 실망하고 좌절하기를 한두 해 반복해온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조합원들과 간부들의 관계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서로에게 믿음과 꿈을 심어주기보다는 불신과 경계를 키워왔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활력을 잃어왔습니다

    어찌보면 우리 노동운동은 너무 오랜 세월 가랑비에 옷을 적시듯 그렇게 활력을 상실해 왔습니다. 그 결과 불신과 패배주의가 만연하게 되었습니다. 저 또한 그런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사람입니다.

    임기 중반부터는 너무 괴로웠습니다. 조합원들에게 어떠한 비전도 제시하지 못하는 민주노총 울산 주요 간부가 바로 저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저 자신에게도 간부, 조합원들에게도 죄송한 마음이 컸습니다.

    그렇게 임기를 마쳐가던 중 우리 민주노조 운동이 결국 풀지 못한, 아름답지만 가슴 아픈 이랜드노조의 투쟁 종결 소식을 들었고 현대미포조선 이홍우 조합원의 투신 소식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날 밤, 홈에버 집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 자책의 눈물을 얼마나 많이 흘렸는지 모릅니다.

    저도 모르게 더럽혀진 양심을 자책의 눈물로 씻어내며 이홍우 조합원을 향한 마음을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이름, 얼굴도 한 번 듣도 보도 못한 사람이지만 울산 민주노총의 간부로서 조합원이 온 몸을 던져가며 제기한 숙제를 여러 동지들과 함께 꼭 책임있게 풀어보리라, 그와 내 자신과 다짐하고 약속했습니다.

    어떤 고난과 두려움에도 의연히 맞서리라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이홍우 조합원과 저는 이렇게 얼굴을 마주하지 못한 채 첫 만남을 가졌습니다.

    저는 너무 두려웠습니다

    간부 동지 여러분!

    저는 너무 두려웠습니다. 임기를 며칠 남겨두지 않은 제가 집행유예까지 안고 있어 일이 잘 풀린다 하더라도 제법 긴 세월의 구속생활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너무 부담이 되었습니다. 투쟁과정에서 우리 동지들은 물론이고 경찰이나 사측 관계자 누구라도 다치지는 않을까 염려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이 문제를 책임지고 수습해야 할 미포조선 사측이 무책임하게 나와 상황이 어렵게 되면 이홍우 조합원과 그 가족은 어떻게 되는 건가 불안하다 못해 겁이 났습니다.

    활력을 상실한 우리 노동운동 또한 이홍우 조합원의 투신을 부른 원인 중 하나라고 보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다 함께 책임있게 행동하지 못하면 그 책임을 어떻게 짊어지고 살 것인가, 마음이 너무 무거웠습니다.

    투쟁과정에서 누가 또 한 사람 투신하는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소릴 듣고는 정말 걱정이 태산이 되었습니다. 노동운동을 계속해야 하나 고민이 파도처럼 밀려들었습니다.

    "모두가 행복해지고자 하는 활동인데 이렇게 여러 사람으로 하여금 죽음까지 생각하도록 하는 것이라면 좀 불행하게 살더라도 포기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저들의 극악한 노조활동 탄압이 우리 동지들을 죽음으로 몰고 갔다’고 그렇게 간단하게 정리될 수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제 머리 속에서는 그렇습니다. 너무 힘들고, 슬픈 시간이었습니다.

    그런 소릴 제 앞에서 한 동지들에 대한 섭섭함도 컸습니다. 지금 이 상황도 너무 안타깝고 힘든데 내가 또 그런 동지들 마음까지 돌려세우는 역할까지도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라니 저도 부족함이 많은 사람인지라 화도 치밀고 짜증도 참 많이 났습니다.

    동구청, 경찰 만행 더 못봐

    사태 해결이 지체되고 있는 가운데 동구청과 경찰이 협력하여 도로변 버스 승강장을 이용한 미포조선 조합원들의 소박한 농성장을 두 번씩이나 철거하는 만행이 저질러졌습니다. 농성장을 지켜내야 할 책임을 지고 있던 저로서는 미포조선 조합원들의 그 소박하고도 절박한 의지가 거듭 짓밟히는 것을 보고서는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현수막을 통한 의사 표시도 못하게 방해하고, 천막농성장 설치도 못하게 해서 그리고 승강장을 이용하는 시민도 거의 없어 민원이 발생할 가능성도 없는 그곳에 추위막이 비닐 한 장 덮은 거, 그것마저도 용인할 수 없는 행정이라면 그게 무슨 놈의 행정입니까. 피도 눈물도 없는 야만적인 행동일 뿐이지요. 행정의 그런 태도에 굴복한다는 것은 정말 비굴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농성장이 다시 철거된 날(12월23일) 밤, 김순진 조합원(이홍우 조합원을 회원으로 두고 있는 노조 현장조직 ‘현장의소리’ 의장)을 포함하여 몇몇 동지들과 저녁식사를 하고 밤 늦게 이홍우 조합원의 병실을 방문했습니다.

    이 날도 그는 저를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할 뿐 말이 없었고, 저는 "참 어렵네요." 하며 솔직한 심정을 보였습니다. 병실을 나와 아래층으로 내려와서는 김순진 조합원이 지난번에 이어 또 "이영도 수석요. 나는 마음을 세웠습니다"라고 하더군요.

    저는 그것이 무엇까지를 의미하는 것인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 사태를 잘 수습해야 한다는 의지를 다지고 다져왔습니다. 문제는 그런 나의 의지로 김순진을 지켜낼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농성장을 잃은 그때 노조 농성을 권유했지만 그는 어찌보면 아무런 준비도 없이 끝장을 보겠다는 태도였습니다. 저는 김순진 조합원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끝까지 살아서 투쟁하겠다는 약속을 분명히 하면 무엇을 하든 내가 김순진 동지와 끝까지 함께 할게요. 그것을 약속할 수 있나요?"

    울산 동지들의 연대가 절실합니다

    약속을 받고는 가족들 얼굴 한번 만져보려고 밤늦게 척과(울주군 범서읍에 있는 지명 이름-편집자)에 있는 집에 다녀왔습니다.

    병원에서 기다리고 있던 김순진 조합원을 다시 만나 남목 해장국집에 들러 묵 째 한그릇씩을 먹고서는 두근반 세근반 하는 가슴을 억누르며 이곳 굴뚝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여기까지가 굴뚝에 오르게 된 사연의 대강입니다.

    조합원 동지 여러분!

    하루하루가 불안과 고통의 연속입니다. 한마디로 너무 춥고 배가 고픕니다. 밤마다 몰아치는 칼바람은 저들의 탄압 이상으로 무섭습니다. 저들이 소각장 가동을 중단하면서 굴뚝에서 느껴지던 한점 온기도 사라졌습니다. 남은 의지처는 오직 우리 조합원밖에 없습니다.

    김순진 조합원은 처와 두살박이 딸, 뱃속에 내년 4월 출산 예정인 둘째를 두고 있습니다. 우리 정규직 운동으로 보면 아직 젊은 나이라고 할 수 있는 37살입니다. 이 나이에 현장조직 의장이 되어서 그 책임감에 너무 힘들어 하고 있습니다.

    김순진이 가장 밝은 표정을 보일 때는 출근한 미포조선 조합원들이 이곳 굴뚝을 향해 손을 흔들며 마음을 전해올 때입니다. 제가 보기엔 지금 이 시간 김순진을 지키고 있는 가장 큰 힘은 자기 사업장 조합원들의 그런 마음나눔입니다.

    저는 지역 동지들의 연대가 동토의 땅 미포조선 조합원들의 그런 마음을 반드시 키워낼 것이라 믿습니다. 간부 동지 여러분! 조합원 동지 여러분! 이홍우 조합원을 지켜주십시오. 김순진 조합원의 투지와 책임감에 함께 해 주십시오.

    우리 모두의 건승을 기원하면서.

    2008.12.28. 일요일 낮에

    민주노총울산지역본부 권한대행 이영도 올림.

    * 이 글은 울산노동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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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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