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투자하는 운동가들
    2008년 12월 18일 01:1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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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어느 날, 나는 초등학교 딸아이의 중간고사 시험공부를 돕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한 순간 나는 당황했고, 딸아이는 곤란해 했다.

“음…, 아빠 생각에 이 내용은 문제가 좀 있는 것 같은데.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를 이런 식으로 비교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은 것 같아.”

“사회 선생님이 중요한 내용이라고 했고, 여기서 문제가 나올 수 있다고 했단 말이야.”

“아빠가 사회주의자인데, 아빠가 생각하는 사회주의는 이런 것이 아니야.”

“몰라, 몰라. 에이, 그냥 넘어가자.”

딸아이와 내가 그런 대화를 하도록 만든 것은 초등학교 5학년 2학기 사회 과목 1단원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의 한 대목이었다. 1단원 안에 ‘베짱이 나라와 개미 나라’라는 대목이 있는데, 사회주의를 베짱이 나라에 비유하고, 자본주의를 개미 나라에 비유하고 있다.

   
  ▲초등학교 5학년 사회과목 참고서.

   
  ▲초등학교 5학년 사회과목 참고서.

베짱이 나라는 “적성과 능력에 관계없이 나라에서 정해주는 직업을 가지고, 나라에서 똑같은 양의 식량을 나누어 주기 때문에 일할 의욕이 생기지 않는 것”으로 설명한다. 반면에 개미 나라는 “능력과 적성에 따라 직업을 자유롭게 선택하고, 서로 경쟁하며 일한 만큼 식량을 얻는 것”으로 설명한다.

그러면서 그 결과로 베짱이 나라는 경제가 발전하지 않고 식량이 부족해지며, 개미 나라는 경제가 발전하고 식량이 풍부해진다고 결론짓고 있다. 사회과목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그 대목만이 아니었다. 나는 딸아이의 사회과목 시험공부를 도와주면서 먹먹했다.

딸에게서 배웠다

나는 지금까지도 딸아이에게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차이를 설명하지 않았다. 학교 선생이 가르친 내용을 틀렸다고 하면서 아이의 가치관에 혼란을 주기에는 아직 어리다는 판단이었다. 내가 어렸을 때 배웠던 것처럼, 북한 사람은 머리에 빨간 뿔이 있고 온몸에 시커먼 털이 났다고 했으면, 딸아이에게 쉽게 설명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만 했다.

이 글을 쓰면서 나는 다시 딸아이에게 물었고, 딸은 대답했다. 사회 선생의 예고대로 그 대목이 시험문제로 나왔고, 딸아이는 틀리지 않았다…고 했다. 그렇게 아이는 아빠의 신념에 반대표를 던졌다.

나는 노동운동을 하면서 가정 일에 매정하리만치 무관심했었다. 그러나 딸의 성장과 교육문제 만큼은 나 몰라라 하지 못하고 있다. 아이에 대한 사랑과 의무감 때문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성장한 것은 오히려 나였다. 나에게는 그 과정이 노동운동과 진보운동을 더 깊게 생각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많은 것을 깨닫고 후회하고 고민했다.

노동운동과 진보운동은 사교육 천국이 되어버린 한국의 교육정책을 비판하고 투쟁한다. 투기가 난무하는 주택정책을 비판하고 단체를 만들어 실천한다. 주식 광풍에 대해 침을 튀겨가며 비판한다. 의료정책에 대해서도, 연금정책에 대해서도 비판하고 투쟁한다. 모두 대중의 삶과 연관되는 문제다.

그런데 한국의 노동운동과 진보운동은 대중의 삶과 괴리되어 있다. 그것은 대중의 삶과의 괴리만이 아니다. 자신의 삶도 자신의 운동과 괴리되어 있다. 이율배반이다.

이번에 발생한 세계경제 공황을 맞아 노동대중이 타격을 입은 것은 고용과 임금과 노동조건과 복지만이 아니었다. 그것이 본격 닥치기도 전에 노동대중은 이미 주식폭락과 집값 하락으로 큰 타격을 입었다. 주식과 주택이 바로 그들의 문제였던 것이다.

이 문제는 굳이 노동대중을 거론할 필요도 없다. 진보운동과 노동운동을 하는 의식 있는 활동가들의 상황도 매한가지다.

주식 투자하는 운동가들

그들 또한 주식을 했다. 스스로의 판단이었든 은행원의 달콤한 유혹의 전화 한 통이었든, 펀드에도 가입했다. 투기목적으로 아파트를 불리기도 했다. 밖에서는 공적 보험의 강화를 주장하면서 집에서는 생명보험에 가입했다. 공교육의 강화를 외치면서 자신의 아이는 사교육 시장에 맡겼다.

부끄럽지만 나도 딸아이를 월 10만 원이나 하는 영어학원에 보내고 있다. 이대로 딸아이가 중학교에 입학하면, 나는 딸아이를 국수사과 학원에 보낼 것이다. 지금도 간혹 학원에 보내달라고 하는 것을 설득해서 막고는 있는데, 중학교에 입학하면 막을 재간이 없을 것 같다.

노동운동과 진보운동의 삶이 철저하게 자본의 포로가 되어 있다. 도대체 왜 이런 한심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무엇 때문에 우리는 이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가. 악어 아가리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자신의 몸통을 들이밀고 있는가.

한국사회가 그런 사회라는 것을 알고 운동을 하는 것이기에, 사회 탓만 할 수는 없다. 자본의 속성은 세상의 모든 것을 이윤과 연결시키기에, 자본의 탓만 할 수도 없다.

우리의 진보운동과 노동운동을 탓해야 한다. 교육정책, 주택정책, 연금정책, 의료정책 등을 고민하고 투쟁했지만, 우리의 실천은 거대담론에 머물러 있었다. 삶의 문제는 각자의 문제로 떠넘겨 버렸다. 그러는 사이 대중의 삶은 자본의 포로가 되어 갔고, 활동가의 삶도 자본주의 경제 질서에 의지하게 되었다.

   
  

거대담론 차원에서 비판하는 것으로 모든 것을 다했다고 판단했다. 그러는 사이 활동가들은, 간부들은, 진보적 성향의 대중들은 자본주의 경제 질서에 기대게 되었다. 실생활에서 아이의 교육은 어떻게 고민하고 풀어가야 하는지, 학원에 보내더라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고민하지 않았다.

초등학교 아이가 자연스럽게 인권, 평화, 평등의식을 가지도록 도와줄 수 있는 책 가운데 하나로 <고래가 그랬어> 같은 훌륭한 어린이 만화 월간지가 있다는 것도 몰랐다. 한 달에 소주 2병 반만 덜 마시면 아이에게 선물할 수 있다는 것도 몰랐다.

주식과 펀드문제에서도, 주택문제에서도, 의료문제에서도, 연금문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담론 차원에서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것으로 모든 것을 다 했다고 판단했다. 생활의 문제로 접근하지 않았다.

조합원들이 매년 임금인상의 욕구를 강하게 느끼고, 한 대가리라도 잔업 철야를 더 하려고 기를 쓴 이유가 하루 세끼 먹는 문제 때문이 아니었음을 우리는 천착하지 않았다.

포로가 투쟁을?

조합원들이 그랬던 것은 생명보험을 유지하기 위해 매달 십수 만 원이 필요하고, 주식과 아파트를 구입하면서 빌린 은행원금과 이자를 갚기 위해 매달 백여 만 원 안팎의 돈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자식의 학원비 때문에 적게는 십수 만 원에서 많게는 백여 만 원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렇게 살아가는 조합원들이 투쟁에 나서리라 기대하는 것은 고목나무에서 싹이 트기를 기대하는 것만큼 어려운 것이다.

우리는 이 문제를 극복해야 한다. 이것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고 실천하지 않으면, 진보운동과 노동운동은 현재의 자본주의 질서를 유지 온존하고 보완하는 역할에 그친다. 담론과 구조만으로 변혁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대중의 삶과 연동되어야 한다.

지금 노동조합운동은 바람 앞의 등잔 불과 같은 처지에 놓여 있다. 정리해고의 태풍이 불어오고, 임금삭감과 복지혜택 축소라는 칼바람이 몰아치는데, 우리의 바리케이드는 무너져 있다. 바리케이드를 세우고 보강하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그러나 나는 이럴 때일수록 삶의 문제를 싸안아야 한다고 판단한다. 그래야 태풍과 칼바람에서 비켜서 있는 조합원들에게도 바리케이드에 동참할 것을 설득할 수 있다. 더 이상 그런 문제를 개량주의로 치부하지 않아야 한다. 배부르고 한가한 운동으로 치부하지 말아야 한다.

노동조합운동에 조합원 대중의 삶을 고민하고 대안을 만들고 실천하는 사업이 필요하다. 민주노총과 각 산별단위, 지역본부, 사업장 단위노조에 ‘생활 사업부’를 신설하는 것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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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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