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희 대기자는 종북주의자인가?
삐라는 핑계일뿐, 핵 문제가 열쇠다
    2008년 12월 08일 01:1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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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김영희 대기자는 12월 5일 「대북 삐라, 잃을 게 더 많다」는 칼럼을 실었다. 김영희 대기자님(이하 ‘김 기자’)한테는 죄송한 일이지만 필자는 이 칼럼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다. 글을 쓰는 관점이나 칼럼의 메시지를 떠나 사실 왜곡, 북한에 대한 무지, 논리적 자기 모순으로 점철된 글이었기 때문이다.

이란 역사의 왜곡

아무리 칼럼이 논문과 달리 각주를 달지 않아도 된다지만 그렇다고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면 곤란하다. 김 기자는 이란의 사례를 들면서 북한은 이란과 다르기 때문에 삐라 전술이 잘못되었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이는 이란 ‘역사 왜곡’이다.

그는 칼럼에서 “호메이니가 쓴 것이 소형 녹음기였다. 그는 팔레비 축출을 선동하는 연설을 담은 녹음기를 이란 국내로 무수히 밀반입시켰다 … 이란은 7개국과 국경을 직접 맞대고 있는 나라여서 국경 산악지대를 통한 사람과 물자의 몰래 입국, 몰래 출국의 길이 크게 열려 있다”고 썼다.

   
  ▲ 하태경 열린북한방송 대표

김 기자는 호메이니 혁명의 성공 이유로 이란의 국경에 허술한 틈이 많아서 호메이니 연설이 담긴 녹음기를 대량 반입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필자가 확인해 본 결과 녹음기가 이란 국경을 통해 무수히 반입되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호메이니는 소수의 원본 테이프만 국내로 밀반입했다. 김 기자의 말처럼 “연설을 담은 녹음기”의 대량 밀반입은 없었다.

녹음기는 팔레비의 근대화 혁명으로 이미 이란 국내에 상당히 보급되어 있었다. 그리고 녹음 테이프는 이란 국내에 거주하는 성직자들이 대량 복제해 나눠준 것이었다. 이 사례는 한국에서 출판되어 있는 케빈 켈리의 ‘디지털 경제를 지배하는 10가지 법칙’에도 나오고 영문 구글에서 찾아봐도 바로 알 수 있다.

북한 현실에 대한 무지

김 기자가 이란 사례를 거론한 것은 북한은 이란과 달리 국경이 철저히 봉쇄되어 있음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즉 북한은 이란과 달리 국경이 다 막혀 있기 때문에 이란과 같은 일이 북한에서는 현실화될 수 없음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란에 호메이니 연설 테이프가 무수히 많이 유통된 것은 국경에 틈이 많아서가 아니라 내부 동조자들이 대량으로 복사한 것이라면 김 기자의 칼럼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진 것임을 알 수 있다.

김 기자는 첫 단추를 잘못 끼운 뒤 두 번째부터도 계속 잘못 끼우기 시작한다. 김 기자의 글을 다시 보자. “삐라는 선전효과를 내는 데는 녹음기를 못 따른다. 호메이니의 녹음기가 바다를 흔들었다면 대북 삐라는 작은 실개천에 파문을 일으킬까 말까다.”

김 기자가 잘못 끼운 두 번째 단추는 삐라와 녹음기를 비교하는 것이다. 이는 적절한 비유가 아니다. 이란에서 녹음기 사례를 가지고 왔다면 북한에도 녹음기에 필적할 만한 것을 비교해야 한다. 여기서 김 기자가 북한의 최근 현실에 대해 얼마나 무지한지가 드러난다.

북한에서 이란의 녹음기와 유사한 사례의 매체가 따로 있다. 바로 VCD 또는 DVD(VCD와 DVD는 서로 다른 것이지만 이 글에서는 통칭 ‘DVD’로 하자)이다. 김 기자는 이를 모르고 있다. 그래서 이란의 녹음기와 삐라를 비교하는 것이다. 김 기자가 최근 북한의 변화된 현실에 대해 무지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북한에서 발생된 일, 실시간 전달돼

지금 북한에서는 놀랍게도 과거 이란에서 발생했던 유사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란에서는 녹음 테이프가 대량 복제되었다면 지금 북한에서는 한국 영화, 드라마가 담긴 DVD가 대량 복제되어 유통되고 있다. 이란에서는 성직자가 대량 복제 주인공이었다면 북한에서는 보위부를 등에 업은 장사꾼들이 그 주인공들이다.

220명의 탈북자들을 대상으로 한 미국 단체 ‘Intermedia’ 조사 결과에 따르면 북한 주민의 20% 정도가 외부 DVD를 보았다고 한다. 외부 정보 유입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북한은 김 기자 주장대로 100% 고립된 사회가 아닌 것이다. 이미 상당히 외부와 소통하고 있는 사회인 것이다.

DVD 뿐만 아니다. 북한에서 외부 라디오 방송을 듣는 사람도 적지 않다. 2005년 한국언론재단이 탈북자 30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외부 라디오 방송을 들어본 사람은 11.2%(34명)나 되었다.

외국과 핸드폰 통화하는 사람들도 꽤 된다. 북한에서 해외 핸드폰 통화는 주로 북-중 국경 지역에서 중국 핸드폰이나 한국의 로밍 핸드폰으로 이루어진다. 대부분은 중국과 교역하는 장사꾼들이 핸드폰을 쓴다. 한국에 와 있는 탈북자들 중에서도 북한의 가족, 친구 등 지인들과 통화 가능한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래서 요즘은 북한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실시간으로 한국에 전해진다.

물론 삐라만을 딱 떼어놓고 본다면 그 효과가 단발성이고 그리 크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삐라를 포함하여 DVD, 라디오 방송, 핸드폰 등 외부 정보 매체가 북한 사회에 끼치는 영향을 종합해 보면 그 효과는 결코 작지 않다.

북한도 얘기하지 않은 몰상식한 주장

이러한 매체의 영향으로 요즘 북한 주민들의 의식은 10년 전과 질적으로 달라졌다. 그들의 머리 속엔 수령님이 최고가 아니라 돈이 최고다. 김일성이 죽었을 때는 슬퍼 울었을지 모르나 만약 김정일이 죽는다면 진심으로 우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오히려 속으로 만세를 부르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이처럼 북한이 다른 ‘자유 세계’에 비해서는 아주 폐쇄되어 있지만 과거 김일성 시대처럼 100% 고립된 사회라고 말할 수 없다. 북한을 100% 고립된 사회라고 이해하는 김 기자는 아직도 김일성 시대의 북한만 알고 있는 것이다. 최소한 김일성 사망 이후 15년 정도는 북한 사회의 변화에 대해서는 무지한 것이다.

김 기자가 잘못 끼운 세 번째 단추는 남북관계 단절의 원인을 삐라라고 말하는 북한의 주장을 무비판적으로 추종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한 번 김 기자의 글을 보자.

“삐라가 북한 당국이 남북대화와 금강산, 개성관광을 중단하고, 개성공단의 규모를 줄이는 조치를 취하게 만든 동기라면 … 삐라가 남북관계를 최악으로 후퇴시키고…”

먼저 여기서 김 기자는 중대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 금강산 관광의 중단마저 삐라 책임이라고 몰아 부치고 있다. 이건 북한도 주장하지 않는 정말 몰상식한 것이다. 아량을 베풀어서 고의로 왜곡한 것은 아니라고 하자. 김 기자의 삐라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분노 때문에 부지불식 간에 나온 실수라고 봐주자.

하지만 일반 평기자도 아니고 속칭 ‘대’기자인 사람으로서는 너무 큰 실수이다. 나아가 아직도 박왕자씨 사망 사건을 기억하는 대한민국 전체 국민에 대한 모독이다.

대기자 칼럼의 자가당착

아울러 김 기자는 북한 주장대로 개성관광 중단과 개성공단 규모 제한의 근본 동기를 삐라라고 생각한다. 이건 북한 주장을 완전 그대로 믿는 종북주의다. 김 기자는 항상 북한 주장을 액면 그대로 믿어 왔는지 궁금하다.

과거 김 기자는 김일성이 “우리는 핵을 만들 능력도 의사도 없다”고 했을 때도 그 말을 그대로 믿었을까? 그리고 과거 북한이 “우리는 일본인을 납치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을 때도 그 말을 그대로 믿었을까? 적어도 북한을 다루는 언론인이라면 북한의 주장은 항상 비판적으로 다루어져야 한다.

그런데 만약 김 기자가 진심으로 삐라가 남북관계 파탄의 원인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는 자기 칼럼의 논리와도 상충된다. 왜냐하면 김 기자는 칼럼에서 대북 삐라는 북한 내부 선전 효과가 별로 없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호메이니의 녹음기가 바다를 흔들었다면 대북 삐라는 작은 실개천에 파문을 일으킬까 말까다…. 탈북자 가족들이 삐라 보내기를 계속하는 것은 실질적인 효과보다는 심리적인 만족을 기대해서일 것이다.”

김 기자 말대로 “작은 실개천”에 불과하고 “실질적인 효과보다는 심리적 만족”을 위해서 하는 것이라면 북한 정부 입장에서는 전혀 개의(介意)할 필요가 없는 것이 아닌가? 이처럼 별 신경 쓸 필요도 없는 것이 어떻게 개성관광과 개성 공단 중단의 이유가 될 수 있는가?

만약 김 기자 논법대로 한다면 삐라는 개성관광과 개성공단 중단의 이유가 될 수 없다. 북한이 개성관광과 개성공단을 중단하고 싶은데 단지 삐라를 구실로 삼고 있을 뿐이다. 또는 삐라를 빌미로 개성관광과 개성공단 중단 협박을 하고 있다고 분석해야 김 기자 글의 논리적 일관성이 성립되는 것이다. 김 기자는 자신의 논리를 스스로 허무는 글을 쓴 것이다.

삐라와 북-미 관계 연계는 넌센스

게다가 김 기자는 삐라를 북-미 관계와 연계시킨다. “삐라가 남북관계를 최악으로 후퇴시키고, 얼어붙은 남북관계가 오바마 정부의 북미 대화에 걸림돌이 되고…”

이 대목에 이르면 이제 별로 화도 안나고 측은지심마저 생긴다. 삐라는 만악(萬惡)의 근원이다. 과연 북한이 미국과 대화하고 싶은데 삐라를 구실로 대화할 수 없다고 버티는 일이 발생할까? 과연 미국이 북한과 대화하고 싶은데 삐라를 대화의 장애로 생각할 수 있을까?

북-미 대화의 진전은 핵 문제 해결과 직결되어 있는 것이다. 핵 문제가 진전이 있으면 삐라와 상관없이 북-미 관계는 진전될 것이다. 핵 문제 진전이 없으면 당연히 북-미 관계도 답보할 것이다.

삐라가 북-미 관계의 걸림돌이 된다는 김 기자의 발상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김 기자는 삐라를 계속 보내면 북한이 열 받아서 그 보복으로 핵 실험을 한 번 더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삐라는 작은 실개천이 아니라 바다를 흔드는 것이 아닌가? 김 기자는 삐라는 작은 실개천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삐라가 작은 실개천이라면서 삐라가 남북 관계를 최악으로 후퇴시키고 나아가 북-미 관계까지 흔들다니…. 김 기자 좌충우돌의 끝은 과연 어디일까?

김 기자는 이 칼럼을 통해 잃는 게 더 많을까, 얻는 게 더 많을까? 글쓰기, 특히 기자로서의 글쓰기의 기본은 무엇일까? 먼저 그것이 과거의 역사이든 당면 현실이든 사실(fact)에 충실한 것이 기본 중의 기본일 것이다.

삐라 살포 잠정 중단, 이제 북미관계 진전되나?

그리고 또 하나는 자신의 글 안에서 논리적 상충이 없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김 기자의 이번 칼럼은 그 두 가지 기본이 모두 안 되어 있다. 사실도 왜곡하고 북한의 현실에도 무지하고 논리적으로도 앞뒤가 맞지 않다.

김 기자가 칼럼을 발표한 12월 5일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르나 삐라 살포를 주도한 단체들이 삐라를 잠정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만약 김 기자 주장대로라면 이제 만악의 근원인 삐라 살포가 중단되었으니 남북관계도 북-미 관계도 순풍을 달아야 한다.

삐라를 잠정 중단했는데도 남북 관계, 북-미 관계의 진전이 없으면 김 기자는 그 핑계 거리를 또 어디에서 찾을까? 삐라의 잠정 중단이 아니라 영원히 중단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설까? 그래서, 김 기자가 앞으로 어떤 글을 쓸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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