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노조? 잘해 봐, 우린 폐업한다"
        2008년 12월 01일 07:5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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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전 동희오토 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해복투) 최진일 사무국장은 조용히 모자를 눌러쓰고 침착하게 집을 나섰다. 작업복을 입은 채 출근하는 조합원들 틈에 섞여 아직 어두운 공장으로 몰래 들어간 후 화장실에서 4시간을 숨어 있었다.

    점심 시간, 조합원들이 밥먹고 나오는 시간에 맞추어 라인으로 들어가기 위해 4시간 동안 춥고 냄새나는 화장실에 쪼그려 앉아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4시간 기다린 15분의 만남

    시계를 몇 번이나 보다 깜빡 선잠이 든 꿈결에, 어쩌면 동희오토 하청노동자 수백명이 조끼를 입고 붉은머리띠를 두른채 화장실 앞으로 달려와 문을 벌컥 열며, “최진일 거기서 뭐해. 우리 모두 싸우고 있는데, 겨우 화장실에서 이렇게 졸고 있을거야?” 뜨거운 손잡고 일으켜주는 꿈이라도 꾸었을까?

    4시간을 기다려 12시 50분쯤, 밥먹고 난 조합원들이 늘 쉬는 불꺼진 라인의 한쪽, 불과 80일 전까지 함께 일하고 함께 쉬던 기계 냄새 익숙한 어두움 뚫고 통로를 걸어가는 발걸음 밑에 심장은 얼마나 뛰었을까.

    딱 15분이지만 라인에서 반갑게 만난 조합원들과 인사하고 얘기하니 배불렀다. 당연하게도 경비들과 정규직, 비정규직 관리자들이 호들갑을 떨며 출동을 했고 라인에서 몸싸움이 붙었다. 그리고 10분쯤 후 의장공장 밖으로 끌려나왔다.

       
     ▲지난 9월 출근투쟁 중이던 동희오토의 한 해고노동자가 관리자들에 의해 사지가 들린 채 공장 밖으로 끌려 나오고 있다.(사진=미디어충청)
     

    의장공장 앞에서 정문까지 한참을 걸어 나오는 길, 힘으로 안되는 줄 알면서도 허리를 부등켜 안고, 발목을 잡고 경비 팔뚝을 잡고 멱살을 잡고 서로서로 한덩어리로 뭉쳐 라인 빈 공간으로 휩쓸려 넘어지며 지켜주려 애쓰던 조합원들의 손길이 옷깃을 잡지는 않았을까. 그래서 자꾸만 정문 아닌 공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돌려 나오며 어쩌면 가슴이 시리지 않았을까.

    최진일 사무국장이 숨어서라도 기를 쓰고 들어간 라인은 ‘대왕기업’이라는 하청업체다. 얼마 전 대왕기업에서는 어용노조 위원장을 끌어내리고 새로운 집행부를 선출하는 선거가 있었다. 그 선거에서 유영애씨는 사측이 밀어주던 상대편 후보를 두배로 따돌리고 54표를 얻어 당선 되었다.

    민주노조 들어서자 폐업 통보

    54표라는 숫자는 대왕기업에서 회사쪽 관리자편과 과거 어용노조 집행부를 했던 사람들을 제외하면 이주노동자까지를 포함하는 현장의 모든 노동자들이 유영애를 지지했다는 것을 뜻한다.

    바로 다음날 유영애 위원장은 회사로부터 공문을 받았다.

    1. 항상 베풀어주신 호의에 감사드리오며 귀 노동조합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2. 본인의 건강상의 이유로 대왕기업을 더 이상 운영하기 어려워 2008년 12월 31일부로 폐업코져 통보하오니 업무 참조 바랍니다.

    동희오토에 있는 9개의 한국노총 소속 어용 기업별 노조 중에 처음으로 민주집행부가 당선되었다는 기쁨도 잠시, 유영애 위원장은 간부를 인선하고 내년 사업을 계획하기도 전에 숨가쁜 폐업투쟁을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다.

    당장 눈앞으로 닥친 상황은 가파른데 현장에서 조합원들이 서로를 확인하고 자신감을 얻는 사업을 하려하면 어김없이 동희오토 정규직 관리자, 경비들에게 막혀 쉽지 않았고 결국 최진일 사무국장은 직접 현장으로 들어가기로 마음먹었다.

    시간은 정직하다. 살아보니 감옥에서 징역을 사는 침묵의 시간도, 찬바람 부는 국회 앞 타워크레인에 조합원을 올려보내고 답답한 가슴에 불길이 활활 타오르던 시간도, 공장정문 앞에서 출입이 막혀 13시간을 공장만 노려보며 서있던 시간도 그냥 그렇게 흘러만 가는것은 아니더라.

    기다림이란 이름의 희망

    조합원들을 라인에서 만나고 싶어서 화장실에서 쪼그려 기다린 4시간은 40일도 되고 400일도 되고 4,000일도 될 수 있다. 그 멀미나는 시간 동안 아무려면 화장실의 4시간처럼 쉼없이 긴장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도 안된다. 다만, 그렇게 만난 조합원들이 몰려온 경비에 맞서 함께 싸워주던 손길을 잊지말기를. 그 손길을 알기 위해 화장실에 쪼그려 기다린 4시간의 기다림을 잊지 말기를.

    절망의 공장은 동희오토만이 아니다. 전국의 노동자들에게 깊이를 가늠할수 없는 늪처럼 구조조정이 다가오고 있다. 어떻게 해야 우리가 이기는 싸움을 할지 누구하나 시원하게 말하지 못하고 있는 이때, 비록 지금은 위축되어 있다해도 조합원들을 믿고 숨죽여 기다린 4시간, 그런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 시간을 우리는 ‘희망’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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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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