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교 그만 두고 농성장에 간 문학소녀
    By mywank
        2008년 11월 29일 12:5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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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희수 양(18)을 처음 만난 건 지난 10월 중순, 기륭농성장에서였다. 28일 그를 다시 만났다. 컨테이너박스 농성장 안에서 분회원들과 오누이처럼 지내던 잠자리 안경을 낀 소녀의 모습이 쉽게 지워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독한 감기 몸살을 앓고 있는 그가 두터운 외투를 입고 집 근처 약속 장소로 나왔다.

       
      ▲문희수 양 (사진=손기영 기자)
     

    한 달 전에 만났을 때 썼던 잠자리 안경은 그대로였다. “잠자리 안경이 촌스럽지 않나”는 농담을 던지며 인사를 건네자 웃으면서 면박을 주었다.

    “에이~ 무슨 소리에요. 요즘 트렌드도 몰라요? 영화배우 애슐리 올슨의 잠자리 안경이 너무 예뻐서 계속 하고 다녀요.”(웃음)

    소설과 시에 관심있는 소녀

    이날 희수가 들고 나온 붉은색 노트에는 움베르토가 자신의 책에 인용한 성경의 구절이 적혀 있었다.  

    새벽 여신의 아들 샛별아 네가 하늘에서 떨어지다니. 민족들을 짓밟던 네가 찍혀서 땅에 넘어지다니… …내가 하늘에 오르리라. 나는 저 구름 꼭대기에 올라간 가장 높으신 분처럼 되리라. 그런데 네가 지옥으로 떨어지고 저 깊은 구렁의 바닥으로 떨어졌구나. (중략)
    – 움베르토 에코의 『추(醜)의 역사』중

    “지난 번 노동자대회에 갔었는데, 행사 전에 책을 읽고 인상 깊은 부분을 노트에 적었어요. 성경에서 인용된 부분이기도 해요. ‘아름다운 곳에 대한 역사가 있다면, 추한 곳에 대한 역사도 있다’는 내용의 책이었죠. 틈틈이 습작을 하고 있어요. 워낙 소설과 시 쓰는데 관심이 있거든요”

       
      ▲희수의 습작노트 (사진=손기영 기자)
     
     

    희수는 “남파간첩의 삶을 다룬 김영하 씨의 『빛의 제국』, 송경아 씨의 『엘리베이터』도 재밌게 읽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는 소설가를 꿈꾸는 ‘문학소녀’다. 그래서 작년 예술 고등학교에 진학해 문예창작학을 전공했다. 하지만 지금은 ‘탈학교 학생(학교를 그만둔 학생)’이다.

    양아치 취급하는 시선 부담

    “소설에 관심이 많아서 예고에 들어갔지만, 집안 사정이 나빠져서 1학년을 마치지 못한 채, 인문계 학교로 전학을 갔었죠. 하지만 한 달 정도 다닌 인문계 학교생활은 정말 재미가 없었어요. 선생님들이 학생의 적성과 흥미보다는 ‘취업이 잘되니 어떤 대학으로 가라, 나중에 돈을 잘 버니 무슨 학과로 가라’는 이야기만 했었죠. 이런 환경에 적응을 잘 못했어요.

    또 자퇴를 결심한 시기, 학생주임이 제게 ‘서비스업 종사하는 애 같다. 아르바이트를 그런 곳에서 하냐’는 험담까지 들었어요. 애교가 많고 붙임성 좋은 제 성격을 비꼬았던 거죠. 학교를 나갈 사람이니 막 해도 된다는 식이었어요. 그 자리에 바로 학교를 그만 뒀어요” 

    학교를 그만 두고 예상치 못했던 힘든 일들은 없었을까. 다시 학교로 가고 싶은 생각이 들지는 않았을까. 

    “작년 12월 학교 그만둔 뒤, 반년 동안은 남들이 뭐라고 하든지 신경을 쓰지 않으려고 했어요. 하지만 주변에서 학교를 그만뒀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저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봤죠. 그동안 한번도 ‘불량소녀의 길’을 걸어본 적도 없는데, 저를 ‘양아치’ 정도로 취급하는 시선이 부담스러웠죠.

    하지만 다시 학교 갈 생각은 절대 없어요. 왜 타의에 따라서 행동하는지 이해가 안가요. 학교의 일방적인 요구를 수행하지 못하면, 낙오자가 되는 경험을 다시 하기 싫어요. 학교를 안 다니는 것도 제 개성이에요”

       
      ▲희수가 바라보는 세상은? (사진=손기영 기자)
     
     

    노동운동을 했던 ‘386세대’ 부모 아래서 자란 희수 양은 스스로 “부모님과 다르게, 그동안 사회문제에 무관심했던 ‘386 2세’였다”고 밝혔다. 그런 그에게 지난 9월 중순 우연히 인터넷 포털사이트 블로그에서 본 기륭문제 관련 글은 ‘문화적 충격(Culture Shock)’으로 다가왔다.

    기륭사태, 내겐 문화적 충격

    “블로그에서 기륭문제를 알리는 글을 봤어요. 순간 ‘어떻게 아직까지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평범한 글었지만, 제게는 문화적 충격이었죠. 다음 날 바로 기륭농성장으로 달려갔어요. ‘릴레이단식’이 진행되고 있었는데,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저도 단식에 동참했어요”

    희수 양은 이날부터 1주일에 2~3번씩 기륭농성장을 찾는다. 집중집회가 열리는 날이면 자유발언을 하기도 하고, 특별한 일이 없으면 농성장에 앉아 책을 보거나 분회원들과 어울리며 연대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는 또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모임인 ‘함께 맞는 비’ 회원이기도 하다.

    “저는 열심히 하는 축에 끼지도 못해요. 20대 중반의 언니가 있는데, 8일째 단식을 했지만 ‘기륭 후원의 밤’ 행사에 나와 전을 부치는 모습을 봤어요. 또 ‘함께 맞는 비’의 한 회원은 지병이 있어 수술을 받았는데도 농성장에 나와 활동을 벌이고 있죠.

    그래도 분회원 언니들이 저를 많이 아껴주세요. 오석순 조합원이 ‘시리우스 원정투쟁’에 갔을 때, 뉴욕에서 생일축하 문자를 보내줬던 기억도 나죠. 특히 이미영 조합원과 친해요. 미영 언니와 연대하는 분의 6살짜리 꼬마 그리고 제가 ‘양띠 연대’를 만들었거든요”(웃음)

       
      ▲사진=손기영 기자
     

    하지만 그는 기륭 농성장에서 연대활동을 벌이며, 또 다른 ‘문화적 충격’을 경험하게 된다. ‘공권력은 시민들의 편’이라는 막연한 믿음이 한순간에 깨졌기 때문이다. 희수의 기억은 지난 10월 15일 ‘기륭농성장 침탈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칼라TV 일일 리포터도

    “그 날 아침에 일어나 컴퓨터를 켰는데, 카페에 기륭농성장이 침탈당했다는 글이 올라왔어요. <아프리카 TV>를 보니 익숙한 얼굴들이 용역깡패들과 맞서는 모습도 보였어요. 바로 농성장으로 달려갔죠.

    현장에 가보니 너무 끔직 했어요. ‘공권력이 힘없는 노동자들과 시민에게 이렇게 밖에 할 수 없나’, ‘노동 문제를 바라보는 우리사회의 수준이 이것밖에 되지 않나’라는 충격을 다시 받았죠. 아무것도 몰랐던 저게 기륭은 ‘빨간 물’을 들여 준 공장이었어요”

    그는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 정태인 성공회대 교수 등 ‘쟁쟁한’ 인사들이 진행을 맞고 있는 <칼라 TV>의 일일 리포터를 맡은 경험도 갖고 있다. 서산에 있는 (주)동희오토 현장취재였다.

       
      ▲동희오토 투쟁현장에 일일 리포터로 활동한 희수 양.(사진=문희수)  
     

    “9월 중순 기륭농성장을 처음으로 찾았을 때, 소설가 송경아 씨가 제게 ‘직원 1,000명 중 850명이 비정규직인 사업체를 알고 있나, 함께 취재 갈 생각이 없나’고 물었고, 이에 ‘가보겠다’고 답해 농성장에서 바로 캐스팅이 되었죠.

    미래를 교살하는 공장

    9월 하순 경에 현장에 갔는데, 마침 ‘출근 선전전’이 진행되고 있었어요. 이분들과 인터뷰를 했는데, 작업복 받으면 바로 회사 로고를 칼로 긁어낸다고 했어요. 이 공장에 다니는 게 부끄럽고 나이트에 가면 부킹도 들어오지 않는다는 이유 때문이었죠. ‘미래를 교살하는 공장’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희수는 현재 ‘소녀의 아찔한 세상(☞바로가기)’이란 블로그를 운영하며, 책, 영화, 사회문제 등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글에 담고 있다. 그에게 앞으로 해보고 싶은 일을 물었다.

    “아직 부족하지만, 비정규사업장에 꾸준히 연대하면서 사회 참여적인 글을 쓰고 싶어요.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10대들의 시선이 담긴 글을 찾기 힘든데, ‘이제 10대들도 비정규직 문제에 심각성을 느끼고 있다’는 문제의식을 일으키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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