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리플리컨트가 필요하신가요?
    2008년 11월 22일 11:4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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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어진다. 생명력 다한 나뭇잎들이 화사한 빛깔 되어 떨어진다. 외면 받은 공장안의 설움이, 응어리들이 눈물 되어 떨어진다. 손 뻗히면 손가락마저 새파랗게 물들일 것만 같은 가을하늘 아래, 붉은 잎사귀들 바스락 밟혀 흙이 된다.

소리 없는 시냇물 위, 살포시 흘러가는 나뭇잎처럼 나긋나긋한 목소리, 그 속에 파묻힌 붉은 눈시울이 내 가슴에 피멍 들인다. 흙으로 돌아간 붉은 낙엽은 나무의 자양분이 되고, 아스팔트에 스며든 노동자의 붉은 눈시울은 콘크리트 빌딩의 거름되어, 자동차의 양분되어 흩어진다.

노동자의 눈물은 자동차의 양분

늦은 오후에 도착한 부평 대우자판 정문은 경찰들이 봉쇄한 상태였다. 반으로 자른 드럼통에 장작불을 피워 얼은 몸을 녹이는 조합원들. 회사 안에는 동료 조합원들이 감금된 상태다.

   
  ▲11월 초순경, 공장 안 노동자들에게 생필품을 전달하기 위해 들어가던 가족들은 물론 기자들까지 ‘노사충돌방지’를 이유로 경찰이 막아서고 있다.(사진=진보신당)
 

두꺼운 잠바 속을 비집고 들어오는 첫 추위의 바람은 한 겨울의 예비 된 추위를 능가하는 법. 회사 담벼락에 새로 설치된 반짝이는 철망, 조합원의 회사 출입을 막아서기 위해 촘촘히 줄을 지어 서있는 경찰들, 도로주변에 어슬렁이는 용역 덩치들, 가려진 CCTV와 눈에 띄지 않게 새로 설치된 카메라들. 남파간첩을 막아내기 위해 긴장한 국가 조직체마냥 회사를 보호하는 권력체계가 겨울바람에 체감 온도를 더욱 낮춘다.

대기업 조합원들의 싸움은 복지향상이나 성과급과 같은 문제가 아니라 수년간 쌓여온 노사간 불화의 결정체다. 최초 불화는 10억원 자본으로 신설회사를 만들어 영업사원 전원을 인사발령내리면서 발생했다. 근로조건을 그대로 승계하는 신설회사의 설립 자체가 의혹이 있다는 노동자들의 판단이 거부로 이어졌고, 사측은 신설법인이 아니면 희망퇴직이라는 양자선택을 강요했다.

법원은 근로자들의 동의를 얻지 못한 상태에서 신설회사로의 발령은 부당하다는 판결을 내려 노동자들에게 손을 들어주었다. 그러자 사측은 신설회사로 가는 것을 거부한 200여명의 직원을 재입사 형태로 받아들이면서 전원 대기발령이라는 일종의 보복을 해버렸다.

법이 노동자의 손을 들어도..

그로서 노동자들은 2년 넘게 최저생계비도 안 나오는 임금을 받으며 생활고에 시달리는 현실에 직면해있는 것. 그 과정에서 스트레스로 인하여 한 노동자가 쓰러져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 것은 지상파로도 전해진 바 있다.

이러한 노사간 갈등에는 또 하나의 가지가 있다. 현 대표이사인 이동호 사장은 반 노동조합 조직인 전발협(전문영업직 발전 협의회의 약칭)이란 것으로 노조탄압을 하여 승진한 대표인물. 대우자판에서의 노조탄압 또한 가공할만하다.

현재 대기발령을 받은 노동자들의 대부분이 노조원인데, 사측은 무능한 직원이 노조에 모여 있다고 주장한다. 2001년 회사가 CM에서 SR임금체계로 바꿀 때 거부했던 이들이 노동조합원이었다. CM이란 고정급 70%에 성과급 30%, SR이란 고정급 30%에 성과급 70%. 노조원들은 이것이 정규직을 비정규직으로 추락시키는 전략이라는 판단으로 거부한 거였다.

회사는 SR임금체계를 거부한 노조원들을 전시장이 없는 뒷골목과 같이 외진 곳으로 배치하였고, 그 결과 그들의 생산성은 현저하게 떨어진 것이다. 그렇게 사측 주장의 근거가 된 셈. 노조탄압을 받으며 대기발령으로 오늘까지, 예를 들어 차장 직급이 월 60만원도 안 되는 기본급만을 받으며 생활고에 시달리는 형편이다.

차장 직급이 월 60만원도 안돼

98년 IMF시절, 상여급을 반납하며 회사를 살리기 위해 전력을 다했던 조합원들, 지금은 회사에 감금되어있다. 최초 음식물 반입도 차단당하였으나 언론에 노출되면서 도시락 정도는 건네받을 수 있다 한다. 기자들을 통해 겨우 담배 몇 갑을 전해 받는 이들, 핸드폰 충전도 못하여 외부와 완벽히 단절되어있었다.

그렇다면 SR임금체계를 받아들였던 노동자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대부분이 극심한 경쟁과 생활고로 인해 회망퇴직 형식으로 사내에서 사라졌다고 한다.

매년 적자에 시달려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며 울먹이던 대우자판은 어떠한 상황일까? 자본금 180억의 상장회사 한독이 1000억 규모의 비상장회사 대우자판을 흡수하는, 소위’새우가 고래를 잡아먹는 격’이란 변칙적 흡수합병의 첫 사례로 기록된 우회상장. 그 과정에서의 막대한 이익은 대주주가 챙겼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 대우자판은 인천 송도부지의 도시개발구역 지정소식으로 장초반 급등세를 시현하고 있다. 그곳에 투자된 금액은 대체 얼마일까?

전태일은 그렇게 갔으나, 변한 것이 없다.

돌아오는 길, 평택에서 만나 일정에 없던 인터뷰에 응해주신 한 여성 노조원. 실내화와 같은 소모품 지급을 요구하고 작업환경 개선을 요구하다 해직 당했다며, 양팔을 잃은 한 동료의 이야기를 하다 결국 눈물을 닦는다.

   
  ▲투쟁현장의 피켓(사진=진보신당)
 

눈물을 드러내지 않는 차분하고 나긋나긋한 목소리를 들어며 눈물을 삼키다 집에 돌아왔지만, 삼켜진 눈물이 소화되질 않는다. 그 모습을 보던 한 친구가 던진 말, "울어…, 울어도 괜찮아."전태일 열사는 기념비로 추앙받지만, 공장안에는 변한 것이 없고, 노동자들은 더욱 복잡다단하고 교묘한 방법으로 억압받는다.

대한민국에서 노동자란 필요할 때 쓰고 필요 없으면 버리는 소모품에 불과한 존재. 그러한 체계를 정밀하게 갖춘 회사가 존경받는 사회이다.

이제 어느 한명이 분신을 하여도 가슴 뜨끔한 충격이 불가능한 곳. 폭력영상에 길들여진 현대인들은 탈리반의 참수영상을 신경 자극을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공유하는 이들이다.

고통과 분노의 연대, 감정이입은 시대를 거듭하며 점점 불가능해진다. 모두가 생활의 스트레스와 억압에 시달리는 곳, 그들에게 있어서 공감의 연대란 일탈이라는 수단으로서의 가벼운 유희일 뿐. 노동자 연대의 끈은 점점 가냘파진다, 개별적 유희의 수단을 찾아 나선다, 자본의 논리에 농락당하는 자신의 모습을 위대한 현대인의 초상으로 기념한다.

"분신해야 세상이 알아줄걸?"

‘뜨거운 태양아래 뒤집혀 발버둥치는 자라를 아십니까?’ 블레이드 런너가 던진 질문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리플리컨트. 영화 [블레이드 런너] 속에서 복제인간 리플리컨트와 인간을 구분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타생명의 고통에 대한 감정이입의 유무. 자라의 고통에 무감각한 자는 폐기당하여만 한다.

몸을 다시 뒤집어 세워 걸어가는 자라 위에 고꾸라진 이들, 그 위로 신나 껴 얹어져 부싯돌이 소음을 일군다. "…, 이제 우리 어떻게 해야 해? 분신이라도 해야 하나? 하지만, 우리 한두 명이 분신해서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거야. 우리 모두 분신해야 그나마 사람들이 알아줄걸? 그렇지 않을까?" 세상을 가득채운 리플리컨트, 그들은 분신으로 세상을 마감한 한 노동자의 삶에 냉소적이다.

스트레스로 인한 뇌출혈로 사망한 대우자판 노동자에게 던지는 사측의 한마디, "스트레스는 경쟁력을 향상시키는 필수조건 아닙니까?" 그들이 갖춘 이성은 뜨거운 ‘감정 이입’을 차단시킨다. 아스팔트 위에 건립된 차가운 콘크리트 빌딩으로서의 자본주의 논리, 이성.

감성의 착시현상을 바로잡기 위해 건립된 이성의 차가움이 감정이입을 차단시키는 가로벽이 되어버렸다. 세상을 가득 메운 리플리컨트형 인간 속에서 인간적 감성을 품은 리플리컨트가 이제 도망자 되었다.

노동자 핏덩이 들이키고 웃음짓는 현대인

국가의 이익이라는 타이틀 아래 짓밟힌 노동자의 핏덩어리를 선짓국으로 들이키고 웃음 짓는 현대인, 그 잔혹함이 일상이 되어버린 씨니컬한 시대. 블레이드 런너의 임무는 리플리컨트를 폐기하는 것이 아니다. 복제인간을 능가하는 콘크리트 감성으로부터의 도주, 과거 공동체 인성을 동경하는 리플리컨트와의 사랑을 꿈꾸는 것이리라.

어쩌면 우리는 공동체 형성과 유지를 위한 리플리컨트를 제조해야 할지도 모른다. 감정이입이 불가능해진 인간들에게 전기자극과 같은 첨단 기술로 감정을 삽입해주는 인조인간들. 당신에게 리플리컨트가 다가와 얘기한다. "이제 곧 감정이입이 발생할 것입니다. 전기자극으로 인하여 작은 물리적 충격이 있을 뿐 아니라, 명치를 짙게 누르는 감정에 이어 눈물이 흐를 수도 있으니 마음의 준비를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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