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애국자와의 대화
    2008년 11월 20일 09:4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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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서 오래간만에 좀 쓸만한 북한 관련 글을 찾아냈어요. ‘북한 애국자와의 대화‘라는 이 사이트에요. 거기에서 글을 쓰시는 분은 북한 관련으로 ‘내재적 접근’을 꾸준히 시도하시는 한 미국 학자 분이신데, ‘북한 애국자 박김리씨’는 그 미국 학자가 만든 가상 인물이죠.

그 대화의 목적이란 ‘중간급의 정상적인 북한 인테리 관료 박김리 동무’의 사고 방식을 가급적이면 현실에 가깝게 재현시킴으로써 북한이란 이질적인 타자를 ‘안으로부터 이해해보자’는 것입니다. 참 중요한 일인데, 구미에서는 아직까지 거의 하지 못하는 일이죠.

   
 

이 세상에서 인간이 타자를 다루는 데에 있어서 두 가지 하지 말아야 할 일은 천사화 (天使化)와 악마화죠. 그런데 아시아를 다루는 구미인들은 양쪽 오류를 다 동시에 범하죠. 예컨대 – 부처님을 믿는 저로서 약간 반가운 일이기도 하지만 – 승복을 입은 아시아인, 특히 티베트인처럼 구미인들에게 해가 될 게 없는 아시아인은 당장 ‘천사’의 반열에 오릅니다.

서양에 악마 노릇하는 이슬람과 북한

불교도 계급 사회에 적응하느라고 기독교 못지 않게 영혼을 팔아온 종교인데도, 유럽 불자들 대부분에게는 그러한 의식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사실, 오히려 진보적 가톨릭 같으면 자신들의 종파의 어두운 과거에 더 민감하죠).

러일 전쟁 때에 일군에 종군하여 구마자와대학에서 나중에 좌선을 가르친 그 유명한 사와키 고토 (澤木 興道, 1880-1965 )스님처럼 ‘적군을 죽이는 일을 즐겁게 한’ 종군 포교사들이 과연 몇 백 명이 있었는지, 지금 스리랑카에서 타밀 민족에 대한 차별을 합리화하는 승려들이 과연 어떤 역할을 하는지 제대로 아는 유럽 불자를 만나기는, 한국 목사님들 중에서 불교 공부를 하는 사람을 만나기가 어렵듯이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현실적인, 너무나 현실적인 종교는 완전히 신화가 된 것이죠. 그런데 천사가 있으면 악마도 있기 마련인데 그 악마의 노릇을 지금 탈레반과 같은 일부 이슬람 급진파나 북한이 하는 것입니다.

서구인들은 대개 유교에 대해서는 추상적으로는 존경심을 갖고 있죠. Theodore De Bary 같은 미국 석학들은 ‘개인이 道를 얻어 仁을 실천하는’ 유교를 아예 서구 자유주의보다 더 철저한 ‘도덕적 자유주의/개인주의’라고 칭송도 하고요.

그런데 추상적 이념 수준에서는 다 좋은데, 유교적 왕국을 정상적 국가로 보는 것이 지금 구미인들에게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모양입니다. 세습적 통치자와 문신, 무신 집단에 의해서 통치되는, 정확하게 왕경에서 거주하는 문무양반의 관료와 기술인, 경향의 양민, 그리고 향과 부곡, 소(‘특별 독재 구역’, ‘혁명화 구역’)의 천민 집단으로 나누어져 있는 ‘충성과 효성의 나라’, 북한은 지금 동아시아에서 유교적 왕국의 모델을 가장 정확하게 따르는 나라죠.

지금 위정척사파의 면암 선생께서 부활되셨다면 ‘오랑캐와 다를 게 없는’ 금수(禽獸)의 남한 대신에 북한을 선택했을 가능성은 100%입니다. 뭐, ‘주체사상’ 대신에 ‘인의염치’라고만 하면 면암 선생께서 생각하시는 천하와 별로 다르지 않기에 말씀이죠.

물론 사회주의자의 입장에서는 북한의 ‘국가적 왕조’든 한국 재벌가들의 ‘민간의 왕조’든 좋게 볼 일은 없습니다. 그쪽이나 저쪽이나 착취자 집단을 이야기하는 것이기 때문이죠.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북한을 특별히 멸시하거나 이질시할 것도 없다고 봅니다.

유교왕국화의 역사적 이유

미국의 가시적 압력, 중국과 러시아라는 강력한 이웃들의 비가시적 압력, 세계 자본주의 체제로부터의 고립과 기술적 후진성 등으로 인해서 북한은 결국 조선의 가장 보수적 전통에 회귀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즉, 유교왕국화되는 데에 충분한 역사적 이유가 있었던 것이죠.

그 이유가 철회되지 않는 이상, 즉 고립적 상황이 타개되지 않는 이상 유교적 왕국이 정상적인(?) 주변부형 개발독재로 탈바꿈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위대하신 수령님"같은 말이 귀에 거슬리면 남북 협력 관계를 위해서 일해야죠.

그리고 남한의 지배 집단을 남한 민중이 손봐야 하듯이, 북한 지배 집단도 결국 북한 민중의 문제가 돼야지, 구미인들이 바깥에서 와갖고 왈가왈불하고 비판할 일은 없다고 봅니다. 비판할 여력이 있다면 사우디아라비아부터 해보든지.

그런데 과문의 탓일 수도 있지만, 노르웨이 신문들이 북한의 인권 문제를 다루는 걸 많이 봐도 사우디아라비아 인권의 문제를 다룬 걸 한 번도 못봤어요. 그러니까 중세 왕권도 석유가 있고 없는 데에 따라 대접이 다르대니까요.

위에서 제가 이야기한 것은 제가 보기에는 아주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북한에 대한 내재적 접근을 보다 착실히 해야 그쪽에서도 ‘위정척사’ 기운이 가고 ‘문명개화’의 기운이 좀 더 빨리 오게 돼 있죠. 그런데 제가 그걸 아직도 예컨대 그 어떤 노르웨이 동료에게도 성공적으로 설득시킨 일은 없었습니다. 악마화의 정도가 그렇게 심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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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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