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성애는 선천성 성정체성 장애
        2008년 11월 18일 10:3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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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가 변하고 시대가 바뀜에 따라 새로운 사회적 문제가 발생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의제 설정과 정책적 요구가 생겨나게 마련이다. 산업화로 인한 환경, 생태 문제의 대두도 그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제는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진보 보수를 막론하고 정당이나 여타의 정치적 지향을 가진 단체들은 형식적이든, 실질적이든 이 문제에 대한 나름의 대책과 해결방안을 강령과 규약에 담고 있다.

    또한 민주주의의 확대와 사회복지 수준의 향상으로 과거 관심과 권리의 영역에서 제외되었던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인 여성, 장애인, 노인 등도 이제 국가적, 사회적 혜택의 영역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그런데 동성애 문제만은 여타의 다른 문제와 달리 사회 전체적인 우호적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

    세계적으로도 나라마다 일정한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그렇고 미국에서는 여전히 중요한 사회적 논란거리가 되고 있고 대통령 선거 등 정치적 지도자를 뽑는데 쟁점이 되곤 한다. 우리 사회에서도 진보적 정치단체에서는 이에 대해 우호적 태도를 보이고 있으나 그렇지 않은 정당 등 정치단체에서는 애써 회피하고 있고 보수적 종교단체 등은 매우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여전히 금기시되는 동성애

    다른 문제와 달리 특별히 동성애 등 성소수자 문제에 대한 이런 부정적인 태도는 이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알려진 것처럼 한때 인기 연예인이었던 홍석천씨가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소위 커밍아웃하자마자 화려했던 옛날의 그 인기는 간데없이 방송에서 퇴출되는 등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진 것에서도 이런 사회적 분위기는 충분히 감지된다.

    동성애 문제 등 성소수자 문제에 대한 바람직한 대책과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이 문제의 본질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와 접근이 반드시 필요하다. 물론 그래야 이에 대해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 대해 설득도 가능할 것이다.

    그러면 동성애 등 성적 소수자 문제 같은 것은 보수적 종교인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개인의 도덕적 타락에서 비롯되었거나 사회의 도덕적 타락의 징표로서 나타난 것일까? 동성애를 도덕적 타락으로 인한 것으로 보는 사람들은 이를 억압하거나 아니면 교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거나 그렇게 해결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흔히 그들은 성경에 나오는 소돔과 고모라 성처럼 유독 신의 심판을 받을 만큼 사회가 타락했을 때 동성애가 유행하고 사람들이 그것에 탐닉했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 주장은 오히려 거꾸로 다른 사실을 입증하는 근거가 될 수도 있다.

    즉 그 사회가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지 않고 개방적이었을 때는 자연스럽게 동성애 등이 표출되었지만 거꾸로 이런 행위가 죄악시되어 드러나면 엄하게 처벌받는 폐쇄적이고 억압된 사회일 경우 이것이 잘 드러나지 않고 잘 기록되지도 않았을 거라는 것이다.

    이와 다르게 대체적으로 진보적이거나 자유주의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들 중에는 동성애는 개인의 성적 취향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를 도덕적으로 단죄해서는 결코 안 될 일이며 다른 취향들이 그렇듯 그들이 그렇게 하든 말든 그것은 그들의 자유이며 그들의 그런 취향은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분명히 두 주장은 서로 반대편에 서 있다. 그러나 공통점도 있다. 둘 모두 동성애는 후천적이고 사회적이라는 것이다.

    진보, 보수 모두 동성애를 후천성으로 봐

    일전에 다른 나라의 TV 프로에서 동성애자에 대해 인터뷰한 것을 시청한 적이 있다. 서른 살 정도의 남자였는데 그는 보수적인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그가 동성애자인 것을 가족들에게 알리자 집안에서는 난리가 났다. 결국 그는 부모의 강권에 의해 이를 치료하기 위한 혹독한 훈련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그의 몸에 전기회로를 연결하고 여자의 벗은 몸과 남자의 벗은 몸을 스크린에 교대로 보여주면서 남자의 벗은 몸이 나타났을 때에는 전기를 흘려 심한 고통을 느끼도록 함으로써 남자 육체에 대해 혐오하도록 훈련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혹독한 훈련에도 그는 여전히 동성애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고 한다.

    실제로 동성애자가 어떤 훈련이나 치료에 의해서 다시 이성애자로 돌아왔다는 이야기는 거의 들어본 적이 없다. 다만 일시적으로 자신이 동성애자인 줄 착각했다가 다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한 경우는 있었지만 말이다.

    또한 이성애자인 사람이 취향을 바꿔 동성애자로 변했다는 말도 마찬가지다. 모진 정신적 훈련으로 자신의 욕구 자체를 넘어서는 수도승은 있을 수 있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봤을 때 동성애는 선천적이라고 봐야 한다. 외형상 드러난 자신의 신체와 다른 정신적 성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성적 소수자도 역시 그렇다.

    알다시피 생식은 이성간의 성적 행위를 통해 이루어진다. 남녀 간의 애정도 기본적으로 이에 기반하고 있다. 물론 드물게 나타나는 남녀 간의 숭고한 사랑에서 그렇듯 때로는 남녀 간의 애정이 그러한 생식 행위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넘어서기도 한다.

    가끔 성적 기능이 상실된 대상에 여전히 애틋한 애정을 가지는 경우가 분명히 있다. 그러나 이것 역시 생식에 근거한 이성애를 기반으로 해서 형성된 감정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물론 부모 자식 간의 사랑이나 친구간의 우정은 다른 차원이다.

    그러나 동성애는 처음부터 생식과는 무관하게 이루어진다. 그렇지만 분명히 성적인 애정 대상이다. 그런 점에서 동성애는 일종의 성정체성 장애라고 봐야 한다. 종합하면 동성애 등 성소수자는 일종의 선천성 성정체성 장애자라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시각이나 청각 장애가 그렇듯 장애가 결코 도덕적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없고 되어서도 안된다. 장애자도 다른 모든 사람들과 똑 같은 권리가 있고 또한 장애로 인한 불편이 있다면 이는 사회적으로 보호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장애라는 사실 자체를 부정해서는 혼란스러워진다. 당연히 동성애 등 성소수자 문제에 대한 정책 방향도 이런 관점에서 수립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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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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