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적 '묻지마' 피자 살포의 사연
    2008년 11월 13일 10:1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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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방방곡곡으로 배달된 27500원 짜리 피자 40판. 피자를 얻어먹은 사람 중 대부분은 주문자와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었다. 피자를 얻어먹은 사람 중에는 주문자와 운전 중 시비가 붙어 멱살잡이를 했던 사람이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 날 주문자가 피자를 나눠주기 위해 쓴 돈은 총 110만 원. 문제는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니었다는 거다. 이 사람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수 십에서 수 백만 원을 들여 얼굴도 모르는 사람에게 피자를 쏴왔고, 쏘고 있으며, 앞으로도 쏘게 될 것이다.(관련내용 보기)

   
   ▲ 한 누리꾼이 디씨인사이드(www.dcinside.com) 주식갤러리에 올린 피자배달 내역 캡쳐사진
 

불특정다수를 대상으로 한 묻지마 범죄가 빈발하고 있는 한국사회에서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한 묻지마 피자 살포가 이루어지는 이유는 도대체 무언가?

주갤-주식갤러리의 줄임말. 디씨인사이드(www.dcinside.com)라는 사이트에 있는 수 많은 갤러리(주:게시판) 중 주식투자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이다. 특별히 회원가입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그냥 누구든지 글을 쓸 수 있는 이 곳. 수 틀리면 그냥 사라져 버려도 연락할 길은커녕 그 사람이 누구였는지조차 알 수 없는 주갤엔 재미난 전통이 하나 있으니.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데, 왜?

주식 투자로 그날 큰 돈을 번 사람이 주갤러(주: 주식갤러리에 찾아오는 사람들)들에게 피자를 쏘는 전통이다. ‘내가 오늘 피자 쏜다’ 하면 줄줄이 선착순으로 신청을 하고, 쏜다는 사람에게 이메일 등으로 자기 주소를 보내면, 쏘는 사람은 피자 회사 홈페이지로 들어가 인터넷 주문을 통해 해당되는 주소로 피자를 배달해주는 것.

‘돈이 썩었나?’

얼굴 한 번 본 적 없고, 게시판에서 댓글이나 몇 번 주고 받은 게 관계의 전부인 사람에게 대체 뭐 때매 수 백만 원 어치 피자를 쏘는 걸까. 돈 번 얘기 안 하면 그만이고, 만에 하나 돈 벌었다는 소문이 퍼졌다 하더라도 그 다음날부터 입 싹 닦고 게시판 출입 안 해버리면 그만 아닌가?

내가 생각하는 답은 허무할 정도로 간단하다. 인정받고 싶어서. 디씨인사이드 내에서 자주 글을 쓰는 사람은 글을 쓸 때 보통 고정된 닉네임으로 글을 쓴다.(물론, 안 그래도 하등 상관없다)

가령, 내가 ‘꿀벌’이란 고정닉(주:고정 닉네임)을 갖고 게시판에서 ‘어떤 주식은 매도 타이밍이고, 어떤 주식은 매수타이밍이고’라는 등등의 글을 쓴다 치자. 이런 식으로 ‘꿀벌’이란 고정 닉네임으로 여러가지 선행(정보가치 있는 좋은 글, 피자 쏘기 등등)을 하면 ‘꿀벌’이란 닉네임은 게시판 안에서 존경받는 존재가 된다.

‘꿀벌’이 글을 쓰면 사람들이 열심히 댓글도 달고 반응해주고, 무슨 사안이 터지면 ‘꿀벌횽(주: 형(兄))의 의견을 들어보자’고 하는 등 완전 장로 대접을 받는다. 심지어는 정치력도 획득하게 되는데, 주식과 무관한 사회적 이슈에서도 ‘꿀벌’이란 닉네임을 통해 하는 발언은 큰 목소리를 내게 된다. ‘꿀벌’같은 사람 몇몇이 ‘우리 주갤에서도 광우병 소고기 반대 촛불시위에 나가자!’라고 하면 그게 주식갤러리의 화두가 되고, 많은 사람이 동참하게 되는 것이다.

주갤에서 얼굴도 모르는 사람을 위해 흔쾌히 피자를 쏘는 이유는 주갤에서 이 같은 지위를 얻고 싶어서이다. 오늘의 얘기는 여기서 끝이라고 할 거였으면, 글을 시작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여기서 주목 해야 할 점은 – 휘발성 강한 매체인 인터넷. 익명의 가명을 쓰고 되도 않는 악플이나 배설하고 도망가는 장소인 줄로만 알았던 인터넷이 사람들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중요한 일부가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의 ‘나’

‘##집안의 장남인 나, OO당 성향인 나, XX대 출신인 나, **직업을 갖고 있는 나’에 ‘주갤러인 나, 카연갤러(카툰 연재)인 나, 서로연(주: 다음카페 서로 돕는 로스쿨 연구회)소속인 나’가 추가된 것이다. 이런 정체성을 바탕으로 사람 사이의 관계가 재조정되고 있고, 조직화 역시 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형, 통 큰 선배, 헌신적인 당원’이란 정체성을 얻기 위해 해왔던 밥 사고 술 사기, 봉사활동 등을 인터넷 게시판에서 자신의 닉네임으로 하고 있는 거 아닐까?

진보정당의 핵심 관심사인 조직화. 앞으로 조직화의 초점을 인터넷 커뮤니티에도 상당 부분 둬야 할 것이다.

국회에서의 진보세력 조직화도 중요하지만, 교실 안에서의 조직화, 변호사 협회 내에서의 조직화, 산악회 내에서의 조직화, 동창회 내에서의 조직화 역시 엄청나게 중요하지 않은가? 이를 위해 그간 진보정당의 능력 있는 일꾼들이 그 얼마나 노력을 해왔던가.

허나 다들 알다시피 이런 일엔 무지막지한 시간을 투입해야 된다. 게다가, 노력을 한다 해도 반드시 성공하리란 보장도 없었다. 기껏 공들여 놨더니 돈 많은 경쟁자(?)가 와서 밥 한 번 술 한 번 사서 단숨에 분위기 역전당하는 일, 힘들여 다져놓은 조직인데 생업 때문에 몇 달 신경 못 썼더니 완전 와해 되어 있는 일, 요런 일 참으로 많았었다. 흐흑.

오프라인 모임을 꾸려가는 데 드는 시간과 자금력의 열세를 딛고 조직화로 나아갈 수 있는 길. 바로 인터넷 커뮤니티에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 대한 사람들의 충성도와 애착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5월 촛불시위 국면에서 보지 않았나? ‘XX대 총학생회, OO당, $$노조’깃발로만 가득하던 집회 장소에 ‘MLB PARK 카페, 소울 드레서 카페, DCINSIDE’ 같은 깃발이 나부꼈던 것을 나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돈이 드는 것도 아니다. 엄청난 시간을 투입해야 되는 것도 아니다. 따로 직업을 갖고 틈틈히 하면 된다. 핵심 조직가는 나름의 역할을 하되, 그 정도 결의가 안 되는 사람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 바로 인터넷을 통한 조직화 작업이다.

그러니, 앞으로 진보정당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의 조직화에 힘써야 된다, 라고 하고 말 거였으면, 역시나 글을 시작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비법 공개

사실 2006년 이후 지금까지 내가 해왔던 일은 인터넷 상에서 이런 모임, 조직을 만드는 일이었다. 회사를 차려 기업의 브랜드 커뮤니티를 대신 운영해주기도 했고, 관심 있는 주제와 관련해서는 직접 커뮤니티를 만들어 운영하기도 했으며, 안착된 커뮤니티를 바탕으로 오프라인 조직을 만들어 보기도 했다.

대표적인 커뮤니티가 ‘서로연 – 서로 돕는 로스쿨 연구회’(http://cafe.daum.net/snuleet)이다. 작년 7월에 개설해서 1년 3개월 만에 회원수 3만 명. 하루 방문자수 2만 명, 조직화된 오프라인 회원 200명이 소속되어 있는데, 시험을 대비한 각종 수험자료, 커트라인 정보 등이 풍부하게 올라와 로스쿨을 준비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들어 가봐야 하는 커뮤니티로 자리매김했다(라고 자부하고 있다).

앞으로 몇 회 동안 그간 인터넷 커뮤니티를 꾸려오면서 쌓아온 경험을 공유하고, 관심 있는 사람들과 함께 실험 한 가지를 해보도록 하겠다. 진보정당이라면 응당했어야 할 좋은 아이템이 하나 있다.

PS – 민주노총에서 포털을 만든다는 소문이 있는데, 들이게 될 노력에 비해 효과가 그리 크지 않을 것 같다. 그게 왜 인지는 다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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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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