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환경연합-최열 사태, 교훈은 무엇인가
        2008년 11월 12일 01:2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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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환경연합 중앙사무처 활동가 사직결의 기자회견. 11월 5일. (사진=환경연합 박종학)
     

    사무실 마당에 서서 고개를 푹 떨어뜨리고 있는 환경운동가들을 보는 마음은 착잡하기만 하다. 고참 운동가들이 모두 사표를 내고 급여도 받지 않고 백의종군하겠단다. 단체차원의 활동도 당분간 중단하고 성찰의 기회를 갖고, 앞으로 정부나 기업의 프로젝트도 일제 받지 않겠단다.

    대운하 반대 등 현안이 쌓여 있지만, 이번 기회만은 놓치지 않고 제대로 돌아보겠단다. 어디서부터 뭐가 잘못되었을까. 왜 이렇게 참담한 지경까지 내몰렸을까.

    경보음이 울리지 않았던 건 아니다. 문제제기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지난 2005년 1월 환경연합 부설 에코생협이 원자력발전소 등 감시대상 기업들에게 전등이나 라디오를 팔아먹었다는 한국방송 보도가 있었다.

    이때가 중요한 전환점이었어야 했다. 그렇지만 최열씨가 에코생협 이사장을 그만두고, 꼭 기업에만 팔았던 건 아니라는 변명으로 상황을 덮어버렸다. 망신은 당했을지 모르지만, 문제를 고치지는 않았다.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지만, 언제나 조직 보위 논리와 현실 논리가 앞섰고, 문제는 더 커져갔다.

    끊이지 않았던 눈길들

    돈과 관련한 추문은 끊이지 않았다. 창립 초기, 정권 차원에서 남산외인아파트를 철거하고 남산 제 모습 가꾸기 사업이 진행될 때, 환경연합은 남산에 자리 잡은 힐튼호텔을 단독 스폰서로 ‘남산 껴안기 대회’를 열었다. 어디로 튈지 모를 YS 때문에 호텔사업을 접어야 할지 조마조마하던 대기업은 환경연합이 내어 준 면죄부 덕에 가슴을 쓸어내렸을 거다.

    후원의 밤 때는 기업들에 공문을 보내 후원을 강요했고, 정부와 기업의 프로젝트에 무분별하게 덤벼들었다. 곳곳에서 회계 사고가 터지고 검찰 수사가 시작된 이후에야 사업비를 정식 회계 처리하기 시작했을 정도로 주먹구구식이었다. 남의 돈이 얼마나 무서운지 깨닫지도 못했다. 돈 내는 회원이 수만 명이나 된다면서도 왜 이렇게까지 망가졌는지 모르겠다.

    더 심각한 것은 뭐가 어떻게 잘못된 건지, 어디서부터 얼마나 잘못된 건지도 모른다는 거다. 독립채산제에 정식 회계처리도 하지 않았으니 슬쩍 빼돌린 돈의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 얼마나 많은 부정과 부패가 있었는지를 정확히 아는 것은 아마 검찰뿐이란 이야기가 있을 정도다. 대응도 어설프기 짝이 없었다.

    대운하 반대투쟁을 한 환경운동에 대한 정치탄압이라고 반발하더니 대응은 임기응변식이었다. 사태수습과정에서의 진정성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정부와 기업 후원으로 돈 잔치를 벌이더니 이제는 한 푼도 받지 않겠단다. 지켜보기가 민망하다.

    환경연합 사태는 돈 문제가 핵심이되, 회계처리가 아니라 재정구조의 잘못이 원인이고, 돈을 어떻게 보는가의 문제다.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전문적인 회계교육을 받지 못해서 생긴 문제는 아니다.

    돈은 무섭다. 돈이 있어야 학교나 병원에도 갈 수 있고, 사람 구실도 할 수 있다. 공공성과 연대성의 원리가 자취를 감춘 시장만능의 사회이니 오죽하겠는가. 돈이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 돈이 권력의 핵심이 된 시장만능의 사회에서 세상을 바꾸겠다는, 아니 최소한 덜 썩게 만들겠다는 시민단체의 주적은 돈이 될 수밖에 없다.

    ‘돈 문제’ 엄격해야 할 까닭

    시민단체가 돈 문제에 대해 누구보다 엄격하고 철저해야 할 까닭이 여기 있다. 나도 작지만 단체를 운영하고 있고, 아이 둘을 키우는 생활인이다. 돈이 얼마나 아쉬운지 모르지 않는다. 그렇지만 돈도 얻고 싸움도 잘하는 건 최소한 한국적 현실에서는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다. 돈도 많이 벌고, 사회적 영향력에다 존경까지 받겠다는 것도 무모한 욕심이다.

    시민단체 사람들은 미국이나 유럽의 예를 들면서 정부와 기업의 돈을 받는 것을 당연시하기도 한다. 정부가 해야 할 공익사업을 시민단체가 대신 해주는 것이니 당연히 비용을 받아야 한단다.

    아무리 공익을 위한 시민운동이라고 하지만 우리의 운동은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닌 스스로 자임한 일이다.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이 모두 운동을 하지 말라고 말렸지만 그래도 제 소신 지킨다며, 좀 더 보람 있게 살겠다며 선택한 일이다. 그 자존감을 왜 금전적 보상과 바꾸려고 하는가.

    돈이 없으면 일을 못한다는 것도 그렇다. 돈을 쓰지 않고도 할 수 있는 운동은 얼마든지 있다. 자기들이 프로젝트에 의존하는 관성에 빠져 있기 때문이지, 돈이 운동의 필요조건이라도 되는 것처럼 생각할 까닭은 없다.

    말이나 구호로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고 하지만 많은 시민단체들은 끊임없이 성장을, 더 큰 것을 추구해왔다. 더 많은 영향력을 원했고, 이는 상근구조의 비대화를 낳았다. 감당도 할 수 없는 많은 인력을 채용해서 규모를 키웠고, 커진 규모만큼 더 많은 돈을 필요로 했다. 미국과 유럽의 규모 있는 단체들을 모범으로 삼기는 했지만 고문과 실종, 살해의 위협에 시달리는 제3세계의 운동가들은 안중에도 없었다.

    기업이나 정부, 학교나 병원만 실용주의 노선을 걸었던 게 아니라 시민단체도 실용주의 노선에 충실했다. 체제와 불화하지 않았고, 급진적이고 과격한 것은 말뿐이었다. 수박처럼 속과 겉이 완전히 다른 색깔인 단체도 많았고, 민주파가 집권했던 10년 동안 정부나 기업의 언저리를 기웃거리며 재미를 봤던 사람도 적지 않았다.

    무엇이 운동의 관건인가

       
    ▲ ‘검찰의 시민사회 죽이기 표적수사를 중단하라’ 기자회견에서 눈물 흘리는 최열 환경재단 대표. 9월 24일.
     

    최열씨는 환경운동가도 먹고 살아야 한다고 했다. 맞다. 그렇지만 중요한 건 어떻게 먹고 사는가이다. 모두가 더 가난해야 함께 살 수 있다는 환경운동의 대의처럼 좀 더 가난하게 살 수도 있다.

    정말 생활이 곤란하다면 정직하게 현실에서의 패배를 인정하고 운동을 그만두거나 잠시 멈출 수도 있다. 돈이 우리 운동의 관건이고, 돈이 없으면 운동을 못한다는 기계적 사고에서 벗어나면 된다. 상상력이 문제지 길은 얼마든지 있다.

    시민운동이 위기라지만 지금도 늦지 않았다. 이제는 본격적으로 돈과의 싸움을 벌이며, 우리의 진지부터 튼실하게 꾸리자. 스스로를 냉정하게 돌아보는 성찰이 그 시작이 될 것이다.

    * <시민사회신문> 75호(11월 10일~11월 16일)에 실린 글입니다. 필자와 <시민사회신문>의 동의를 얻어 함께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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