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분 나쁜 <배트맨 다크나이트>
        2008년 09월 04일 10:3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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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판 <배트맨> 시리즈의 창조자인 팀버튼의 <배트맨>은 동화였다. 배경이 되는 고담시도 몽환적인 분위기의 인위적 창조물이었다. 희대의 악당 조커도 팀버튼의 <배트맨> 속에서는 엽기발랄한 코미디언 같았다. 별로 무서울 것도 없고, 별로 아슬아슬할 것도 없는 즐거운 만화였다. 그동안 <배트맨>은 워낙 비주얼 위주여서 이미지의 향연을 즐기는 데에서 만족할 만한 그런 시리즈였다.

    그래서 나도 별다른 생각 없이 <배트맨>을 볼 수 있었다. 팀버튼의 <배트맨> 1편의 경우엔 아마도 한 네 번 이상은 본 것 같다. 영화음악 CD도 살 정도로 <배트맨> 팬이었다.

       

    이번에 개봉한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다크나이트>는 현실적이다. <다크나이트>에선 피가 나고, 처절한 흉터가 보이고, 잔인한 폭력이 암시된다. 고담시도 전형적인 미국의 대도시처럼 표현되고 있다. 더 이상 만화가 아닌 성인용 액션느와르로 변신했다.

    현실적인 이야기이기 때문에 현실의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다보니 기분이 나빠졌다. 미국인들은 도대체 왜 <배트맨>에 열광하는 걸까? 그들은 지금 <배트맨>을 떠받들 때가 아니다.

    환타지 느와르로, 그리고 열광하는 미국인들

    물론 영화는 볼 만하다. 중간에 살짝 처지는 부분만 제외하면 입장료가 아깝지 않은 오락물이다. 이상한 건 기록적인 흥행이다. 미국에서 <다크나이트>는 사상 최대 흥행을 향해 질주하고 있다. 그럴 정도로 전무후무한 액션이 나오지는 않는다. 엄청나게 재미있는 영화라도 2~3억 달러 흥행에 그친다. <다크나이트>의 기록적인 흥행엔 영화의 재미로만은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다. 이건 일종의 사회현상이다.

    난 그 배경을 미국인들의 병적인 정신상태라고 본다. 범죄가 만연한 고담시는 딱 미국의 현실 그 자체다. 고담시는 뉴욕 같은 느낌이다. 미국인들은 불안에 빠져 있다. 그래서 그들은 툭하면 전쟁을 벌인다.

    범죄와의 전쟁, 테러와의 전쟁, 마약과의 전쟁. 미국은 총기사고율과 범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나라다. 그 스트레스가 자신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악’에 대한 증오로 나타난다.

    몇 년 전에 나온 덴젤 워싱턴 주연의 <맨 온 파이어>에서도 그런 증오의 일단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영화에서 덴젤 워싱턴은 납치를 벌이는 남미의 범죄자들에게 잔인한 고문을 감행한다. 어떻게 해도 좋으니 범죄자들을 처단하길 바라는 미국인들의 심리가 투영된 영화였다. 범죄에 대한 불관용. 과감한 물리력을 통한 철저한 근절. 그것을 통해 평화로운 삶을 바라는 미국인들의 심리.

    <다크나이트>의 정신도 범죄에 대한 불관용이다. 범죄자를 처단하기 위해 공권력이 총동원되는 것은 물론, 법을 뛰어넘고, 심지어는 타국의 주권을 침해하기도 한다.

    배트맨은 그것을 상징하는 존재다. 고담시의 법 위에 있으며, 홍콩에 잠입해 중국인을 마음대로 체포해오고, 전 시민을 도청하는 등 물리력을 휘두른다. 그것을 정당화하는 것은 단 하나, 범죄처단이다. 이것에 미국인들이 열광하고 있다.

    배트맨은 상상초월의 부자다. 영화 속에서 배트맨은 낮에는 자본력의 최강자, 밤에는 물리력의 최강자로 그려진다. 배트맨이 무슨 사업을 하는지는 나오지 않는다. <다크나이트>에 나오는 유일한 사업 장면은 금융업자와 M&A 투자를 협상하는 모습이다.

    뉴욕에 거대한 빌딩을 짓고, 어마어마한 부를 축적했으며, 투자사업을 벌이는 것은 전형적인 미국 금융자본의 모습이다. 응용과학부서가 있는 것으로 보아 제조업을 한다고 해도 금융과 융합한 GE그룹같은 형태인 것 같다.

    그런 기업들은 노동자를 자르며 부를 축적한다. 그렇게 탄생하는 초상류층. 국민이 상상도 할 수 없는 엄청난 부자들의 존재. 그들이 행사하는 압도적인 영향력. 오늘날 미국의 모습이다. 배트맨은 영화 속에서 지방검사에게 막대한 정치자금을 제공하려 한다. 이것도 미국식 금권정치의 한 단면이다.

    미국인들은 그런 부자가 밤의 영웅이 돼서 범죄까지 물리쳐주는 이야기에 환호를 보내는 것이다. 자기들이 조금 더 안전해질 줄 알고. 현실은 반대다. 배트맨이 없어서 미국의 범죄율이 높은 것이 아니다. 바로 배트맨 같은 초법적 부자들의 존재로 인해 발생하는 양극화가 범죄창궐의 원인이다.

    범죄율과 금권정치, 복지비, 세금의 함수관계

    남미에 창궐하는 납치산업은 고문을 불사하는 무자비한 경찰이 없어서 발생한 것이 아니다. 미국식 시장주의가 전파된 결과 생겨난 극단적인 양극화가 절망적인 빈민을 만들고, 납치산업과 마약산업을 만들어낸 것이다. 미국인들은 남미의 마약산업에도 히스테릭한 반응을 보인다.

    범죄를 없애고 싶으면 부자들에게 초법적 탈규제 영웅이 되길 바랄 것이 아니라, 규제를 부과하고 세금과 일자리를 요구해야 한다. 미국은 지금 워렌 버핏조차 자기가 부리는 사람보다 자기가 부담하는 세율이 더 낮다고 불평(?)하는 사회다.

    19세기, 20세기 초의 신화적 부자들의 시대가 다시 도래하고 있다. 그에 따라 양극화가 심화되고 시민은 범죄의 고통 속에서 떨고 있다. 마음속에서 증오심을 키우며.

    그런 상황에서 아무리 신을 찾고, 강력한 영웅을 불러봐야 달라지는 건 없다. 지금 미국인들에게 필요한 건 휘황찬란한 영웅이 아니라 건실한 복지다. 배트맨이 배트맨 영웅놀이에 쏟는 힘을 세금으로 바꾸면 범죄는 원천봉쇄될 것이다.

       

    부자들이 스스로 안 한다면 국민이 요구해야 한다. 하지만 미국인들은 엉뚱하게 초법적 부자영웅에게 환호를 보내고 있다. 세금은 생각도 못하고 부자들이 베푸는 ‘기부’라는 이름의 자비에 환호하는 모습과 같다.

    기분이야 좋겠지만 현실은 더 암울해질 것이다. 암울한 현실이 또 다른 배트맨을 부른다. 폭력은 점점 강해진다. 악순환이다. 세계 최강대국의 정신상태가 이런 수준이니 지구가 점점 ‘고담화’되는 것이다.

    이것이 보다 현실적인 <배트맨>을 보며, 또 그것이 미국에서 기록적인 흥행몰이를 하는 것을 보며 불쾌해진 이유다. 더 기분 나쁜 것은 그것이 우리 현실과 겹쳐지기 때문이다.

    부자에게 대권을 안겨주고 민생을 책임져 달라고 했던 우리 국민. 그 부자는 불관용 원칙, 강력한 법질서확립을 외치고 있다. 그리고 감세를 감행한다. 이대로 양극화가 심화돼 고통이 격심해지면 ‘법질서만으론 안 된다. 초법적 물리력, 배트맨이 필요하다’는 외침이 터져 나올 것이다.

    감세로 이익을 얻은 부자들 중 누군가 한 명이 배트맨 놀이를 시작하게 될까? 한국이 고담시처럼 변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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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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