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변검(變瞼), 그리고 공영방송 탈취사건
        2008년 09월 02일 01:4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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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편의 코미디를 보는 느낌이다. 그러나 그 코미디가 현실이라니…. 더구나 이 비극적 현실이 KBS 노조의 결정적 부역질 끝에서 탄생하고 있다니 이런 통탄할 노릇이 어디에 있겠는가?

    베이징올림픽 개막 축포에 맞춰 본격 시작된 KBS 탈취사건은 올림픽 성화가 꺼지자 마자 그 더러운 드라마를 완성했다. 회한과 분노 속에 한 달여 간의 올림픽 취재를 마치고 귀국한 뒤 첫 출근하던 지난달 27일. 우리는 정권의 제3 낙하산으로 점프 명령을 받은 이른바 신임 사장의 출근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보다 나를 더 비참하게 만든 것은 노동조합이 걸어놨던 ‘공영방송 사수, 낙하산 사장 결사 반대 현수막’이 급히 도착한 포크레인에 의해 뜯겨져 내려온 것이었다.

       
      ▲ 지난 8월 13일 서울 여의도 KBS 사옥에서 열기로 한 이사회를 막기 위해 KBS 사원행동 소속 구성원들이 3층 대회의실 앞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마치 신임 사장 오시기 전 몸과 마음을 정리하라는 지시가 있었던 것처럼 아침 8시 전에 급히 도착한 포크레인은 맘껏 굉음을 내며 대형 현수막을 끌어내렸다. 그렇게 KBS 노동조합의 공영방송 사수의지는, 낙하산 사장 반대 투쟁은 허무하게 막을 내렸다.

    중국 쓰촨지역의 전통 연극중에 ‘변검'(變瞼)이라는 놀라운 기법이 나온다. 기를 모은 손이 얼굴을 한 번 휙 스치면 다른 가면이 나타나고 또 한 번 휙 스치면 또 다른 가면이 나타난다. 가히 놀랄만한 경이로운 기술이다.

    최근의 한국 사회를 보면서 특히 KBS 사태를 보면서 문득 드는 생각이 바로 이 변검이다. 정연주를 내친 손으로 얼굴을 한 번 휙 스치니 K모씨가 나타나고 청중들이 야유를 보내는 또 한 번 휙, 또 다른 K모씨가 순한 양처럼 웃고 있다. 그러나 이번에도 청중들이 야료가 있다고 비난하자 기를 한 번 모으더니 휙하고 BS-LEE로 애칭되는 전 동네 이장 얼굴을 내놓았다. 그러면서 이 정도면 되지 않느냐며, 너희들과 같이 논매고 밭갈고 하지 않았느냐며 사탕을 쥐어주며 박수를 유도한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그 가면이 아무리 바뀌어도 그 연극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안다. 그 휙하는 손짓에 정신이 혼란해도 그 속에 홍위병 완장 찬 재민의 가면이, 또 그 안엔 괴벨스의 메가폰을 든 시중의 가면이 그리고 최종 맨얼굴의 주인공은 일구이언을 밥먹듯 해서 이미 철가면이 되버린 청와대 세입자라는 것을 말이다.

    그 청와대 세입자와 완장견들은 왜 이토록 집요하게 KBS장악을 노리는 것일까? 온갖 비난을 마다 않고, 갖은 무리수, 불법한 방법들을 동원해 마치 ‘나와바리’를 접수하려는 조폭들처럼 이들이 KBS를 차지하려는 것은 어떤 의도일까? 정말 KBS가 좌파에 의해 장악된 방송이었을까? 그래서 그들의 말대로 KBS를 진정 국민에게 돌려주려는 것일까?

    말이 길을 잃은 사회. 우리가 타고 가던 말도 갑자기 길을 잃었고, 우리가 상식과 양심과 진심을 담으려 노력하던 말들도 길을 잃었다. 협박이 진실을 매장시킨 사회,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말이 바람이 불 때 마다 대숲을 울리고 있다.

    법치를 소리 높여 외치던 대통령이 법을 어긴 측근들은 내새끼라고 편애하며 끌어안고, 또 아무런 부끄럼없이 스스로 법을 어겨가며 공공기관장들을 적으로 돌려 내쫓고 또 그의 시중들은 국민의 방송 KBS를 장악하기 위해 어린애도 유치하다할 후안무치한 방법들을 써가며 꼭두각시를 임명하고서도 ‘지금이 어느 때인데 방송 장악이냐’며 지나던 개도, 소도 웃을 거짓말을 반복하고 있으니 대한민국의 국격은 대체 어디로 가고 있단 말인가?

    더구나 통탄스러운 일은 이런 후안무치한 KBS 장악음모에 맞서 가장 앞장서 싸워야 할 KBS의 노동조합이 정권이 쥐어준 사탕의 달콤함에 빠져 그들이 유도하는 대로 박수나 치고 있다는 현실이다. ‘KBS 이사회는 해체돼야 한다. 이사회 사장 제청 결의를 인정할 수 없다’며, 서울 시내 곳곳으로 도망다니며 진행되던 이사회를 막기 위해 분노의 삭발까지 하며 동분서주하는 듯하던 노동조합은 변검의 화려한 기술에 넋을 잃더니, ‘낙하산은 과학적 개념이 아니다, 사실 지금 규정하에서는 누구든 낙하산이다, 신임사장은 KBS에만 있었던 사람으로 낙하산이 아니다’라는 궤변을 이어가며 사실상 ‘논리의 자살’을 택하고 말았다.

    KBS가 권력에 의해 장악됐다는 점도 통탄할 일이지만 우리는 이 과정에서 노출된 노동조합의 정치적 자살과 분열에 더욱 가슴 저미는 아픔을 느낀다. 방송 민주화의 역사에서 어디 이런 일이 한두 번이었던가? 그러나 이런 권력의 음모와 일시적 좌절에 맞서 다시 ‘정당한 말의 길’을 찾으려면 우리의 정신이 살아있어야 하고, 우리가 하나가 되어 있어야 가능한 일인데…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 손관수 KBS 9시뉴스편집팀 기자
     

    화려한 변검끝에 탄생한 KBS 탈취사건의 승리자는 누구일까? 그가 이명박일까, 최시중일까, 아니면 KBS 이사회일까, 혹 KBS 노동조합은 아닐까? 그러나 불행히도 이번 사태의 승리자는 없다. 모두가 패배자이고 역사의 죄인이다. 그리고 그 대가를 혹독하게 치를 것이다.

    변검의 세계기록은 36번 가면을 바꾼 것이라 한다. 한국인들의 기록은 이제 겨우 10번 정도라고 하는데 나는 그 후안무치하고 조변석개하는 화려한 변신술을 볼 때마다 이 대통령이 이 기록을 충분히 갈아치울 것으로 예상한다. 그가 밉지만 한가지 충고는 해줘야겠다. 그의 화려한 변검 기술 발전을 전세계가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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