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회전 대장정의 중국
        2008년 08월 20일 10:52 오전

    Print Friendly

       
    ▲ 『레드로드』, 이매진
     

    손호철 교수가 아예 작정하고 여행사진가로 나선 모양이다. 작년, 남미 여행기를 펴냈던 손 교수가 이번에는 중국 여행기 『레드로드』를 내놓았다. ‘대장정 13800km, 중국을 보다’라는 부제가 붙어 있고, 티벳 분쟁으로 출입이 통제됐던 쓰촨을 제외한 대장정 루트 전체를 ‘탐험’했다고 한다. 여행에 금년 봄 50일이 걸렸고, 그 전에 1년 반의 자료 조사와 반 년의 중국어 공부가 앞서 있었다고 하니, 어지간히 공이 들어간 여행이며, 여행 책이다.

    대장정 루트는 중국 1만 년 반역자들의 근거지, 촉과 오의 땅이다. 중원을 피해 남쪽과 서쪽과 북쪽을 빙 두르는 것이 대장정이었고, 손호철은 고생고생하며 오지들을 찾아 발길 닿은 곳마다의 풍광과 문물을 소개하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길에 들어서자 왜 이 길을 세계에서 가장 험난한 길이라고 하는지 이해가 됐다. 험준한 산과 아슬아슬한 낭떠러지를 끼고 있는 산길에는 두께가 20센티미터는 될 것 같은 먼지가 쌓여 있었다. 마치 길이 아니라 화성이나 달 표면 같았다. … 차 안에서도 마스크를 쓰고 있어야 했다.”

    “부슬비가 내리는 자오싱의 아침은 내가 보고 싶어한 소수민족의 마을이자 꿈꾸던 중국이었다. 인구 8000명의 아담한 마을로 나가자 벌써부터 복작대는 시장이 사람 사는 냄새를 솔솔 풍겨왔다. 학교에 가는 아이들이 줄을 서 있는 곳으로 가 보니 작은 찰밥 덩어리에 양념한 돼지고기 구이를 한 조각 얹은 음식을 먹고 있었다. 돈은 단 1위안(140원). 하나 사서 먹어보니 정말 맛있었다.”

    『레드로드』가 대장정 역사 소개를 피할 도리는 없다. 대장정을 다루는 많은 역사서들 만큼 자세히 1930년대 중국을 다루지는 않지만, 『레드로드』에는 손호철의 눈으로 번역한 그리고 현대 중국인의 눈에 비친 대장정 이야기가 담겨 있다. 손호철은 혁명유적의 안내원이 미니스커트를 입은 게 어색하다는 둥 좀 생뚱맞은 말을 하기도 하고, 98세의 홍군 노인을 만나기도 한다.

    “- 장정 중 무슨 일을 하셨는지요? = 펑더화이 부대에서 기관총 사수를 했지. 7킬로그램이나 나가는 기관총을 메고 다녔어. 한 번 져봐. 얼마나 무거운지 몰라. … – 장정 중 위험한 일은 없었나요? = 내 부대에서 7~8명만 살아남았지만 나는 상처 하나 안 입었지. 다 하늘에 계신 상제님이 돌봐주신 것이지.”

    노인은 상제님 덕이라 말한다. 이런 현대 중국의 모습이 이 책에서 가장 흥미진진하다. 빈민촌을 아예 싹 밀어버리고 올림픽을 하는 중국, 지구상 가장 빈부격차가 심할 수도 있는 나라 중국, 의료보호를 폐기한 사회주의인민공화국. 손호철은 한국의 진보 정치학자로서 이런 중국을 ‘여행’한다. 상파울루에서 룰라를 비판했던 이가 택시운전사였던 것처럼 이번에도 택시운전사가 사회주의 중국을 말한다. 어쩌면 손호철의 말일지도 모르겠다.

    “미국은 우회전 깜빡이를 켜고 우회전해갔다. 그래서 다소 덜컹거리지만 아직 잘 가고 있다. 러시아는 좌회전 깜빡이를 켜고 좌화전해 가다가 고랑에 처박았다. 이것을 보고 놀란 중국은 좌회전 깜빡이를 켜고 우회전해 가고 있다. 그것이 바로 중국적 특색의 사회주의다. 중국적 특색의 사회주의, 그것은 결국 자본주의다.” – 중국 택시기사의 말

    “중국의 ‘명동’이라고 할 수 있는 왕푸징은 외국 명품점이 즐비하고 옷차림이 화려한 중국인이 쇼핑을 즐기고 있어 개혁개방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그런데 문득 한 노숙자가 두꺼운 겨울옷을 입고 바닥에 웅크려 자고 있는 것이 보였다. 왕푸징의 거지 노숙자, 묘한 대비였다. 사회주의는 다른 것은 몰라도 노숙자와 거지는 없어야 하는 것 아닌가? 거지가 있는 사회주의, 중국이 주장하는 중국적 특색의 사회주의는 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은 400여 쪽 전체가 칼라 사진이고, 책 말미에는 짤막한 중국현대사 부록도 붙어 있다. 이번이 2권인 ‘손호철의 세계를 가다’ 시리즈는 7권까지 나올 예정이다.

       
     
     
    필자소개
    레디앙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