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손엔 촛불, 한 손엔 촛불 포켓북을!
        2008년 08월 08일 03:4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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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촛불은 혁명을 닮았다.” 촛불 시위 주동 혐의로 지금도 조계사에서 농성 중인 박원석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상황실장의 말이다. 왜 혁명을 닮았다는 것인가? “단편적 사회운동이 아니라 다양한 연구와 토론, 저술을 통해 끊임없이 재해석되어야 할 복합적 사회현상”에 가깝기 때문이다.

    도서출판 해피스토리에서 낸 신간 『촛불이 민주주의다』는 박원석 실장의 이러한 현장 증언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촛불 운동 과정에서 발표된 스무 명의 글이 그 뒤를 잇는다.

       
     
     

    그 중에는 이명박 정권의 폭력 진압을 “흡사 내전과 가깝다”고 비판하는 글도 있고, 새로운 정치 주체로 등장한 ‘여성’에 주목하는 글도 있다. 시청 앞 광장에서 개최된 열린 토론회의 발제문처럼 좀 길고 딱딱한 글들도 있는가 하면, 촛불 정국의 긴박함이 묻어나오는 짧은 호흡의 시평들도 있다.

    그래서 『촛불이 민주주의다』라는 이 책 자체가 흡사 종이 위 촛불문화제와 같은 느낌을 준다. 그렇다. 이 책은 촛불을 많이 닮아 있다. 중구난방인 듯하면서도 하나로 통하는 게 있고, 한 방향을 향하면서도 알록달록 다채롭다. 이것이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다.

    물론 촛불 시위 현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폭력 경찰이나 뉴라이트 훼방꾼들의 목소리까지 담아놓은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촛불의 한 당사자들, 그 벗들의 목소리만이 담겨 있다. 그러다 보니 대체로 ‘진보’적이라고 분류되는 필자의 글이나 그런 색깔의 매체에 실린 칼럼이 대부분이다.

    중구난방이면서도 하나로 통하는 미덕

    진보 필자들 중에서도 대의 정치에 기회를 주기 위해 촛불은 이 정도에서 “꺼야 한다”고 이야기했던 사람들 역시 이 책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이게 또 이 책 『촛불이 민주주의다』의 특징이다.

    촛불 운동 자체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어서 그렇겠지만, 이 책은 군대의 ‘야전 교범’(미군의 영향을 받은 대한민국 육군에서 흔히 ‘필드 매뉴얼’ 즉 FM이라고 불리는)과 같은 느낌도 준다.

    이제 촛불 운동의 세 번째 계절(가을)을 맞이하여 어떠한 방향으로 다음 걸음을 내딛어야 할지 이야기하는 글들이 있고, 또한 제3장 ‘촛불 집회를 둘러싼 쟁점들’에는 촛불 집회 현장에서 법리 논쟁이나 논리 싸움에 직접 활용할만한 내용들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윗도리 주머니에 들어갈 만한 크기의 이 책을 몸소 집회 장소에 들고 나가 문화제가 재미없어질 때쯤 시간 죽이는 데나 혹은 청와대를 향해 삿대질할 때 소도구로 써먹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듯하다. “한 손에는 촛불을, 한 손에는 촛불 포켓북을!”이라는, 예언자의 사도들을 연상시키는 구호 역시 생뚱맞지 만은 않을 것 같고.

    문제는 촛불들이 그토록 간절히 희구하는 대안의 방향이겠는데, 거기에 대해 이 책이 과거의 저들 예언자들처럼 명확한 메시지를 던져주는 것은 아니다. “이명박 정권 퇴진” 구호가 정신 나간 게 아니냐는 일침도 있고, ‘사회 공공성 서민 연대’라는 진지한 제안 등도 있지만, “야, 이거다”라는 그 한 방향은 이 책 안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서구 사민주의와는 퍽 다른 모양이 될 가능성”

    하지만 이게 이 책의 저자들이나 편집자를 탓할 일은 아니겠다. 이것은 어쩌면 정권 ‘초기’에 활화산처럼 폭발한 ‘예외적’ 사회운동인 촛불 운동이 떠안고 가야 할 운명 같은 것이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이 책에 실린 공들인 글들에서 사뭇 흥미로운 분석과 시사들을 제법 발견했다. “앞으로 한국의 진보적 제도 정당도 더 많고 더 높은 광장 민주주의, ‘생활 양식으로서의 민주주의’의 기초 위에서 새롭게 재창조될 것이다. 그리고 그 주체적 기반 문제도 서구 사회민주주의와는 퍽 다른 모양이 될 가능성에 대해서 진지한 검토가 필요할 것 같다”는 이병천 교수의 지적이 그 한 사례다.

    아무튼 2008년의 촛불 운동은 앞으로 10년은 족히 걸려 풀 수밖에 없을 엄청난 고민거리들을 던져주고 있다.

    마지막으로 책의 모양새에 대해 한 마디만 하면, 문고본을 지향한 것은 좋았는데 활자가 너무 작은 것은 흠이다. 앞으로 소라광장과 아고라와 인터넷 커뮤니티들의 눈높이에 맞추려면 대한민국의 활자 문화가 갈 길이 참 멀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촛불의 눈높이 앞에서 대한민국 정치가 느끼는 아득함만 하겠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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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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